이른 아침 딸아이와 집을 나섰다. 모처럼 엄마와의 외출에 신이 난 딸아이는 사실 학교 안간 것을 더 좋아하는 눈치다. 오늘 딸아이는 취재하는 엄마를 따라 전라북도의 작은 초등학교에 체험학습을 하러 간다. 5월의 한낮은 이미 30도가 넘는 불볕더위다. 이제 봄은 여름에 풀이 죽어서 제 향기를 내지 못한다.
우리가 방문한 당북초등학교는 전교생이 200명이 채 안 되는 아담한 학교다. 그런데 평범해 보이는 이 학교가 매주 수요일과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이면, 마법이라도 걸린 듯 국악학교로 변신한다. 3학년 1반은 가야금반이 되고, 4학년 1반은 아쟁반이 되며, 소강당은 사물놀이반이 되는 식이다.
교실 곳곳에서 국악관현악과 타악 합주 그리고 민요, 판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대중가요를 따라 부르던 아이들 입에서 ‘산도깨비’ 가락이 흘러나오고, 아이돌의 민망한 춤을 따라하던 몸짓에서는 덩실덩실 어깨춤이 넘실거린다. 산도깨비도 흥에 겨워 도깨비방망이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는 듯하다. 국악학교로 변신하는 마법은 저 도깨비방망이 덕분일까.
“에루와 둥둥 에루와 둥둥”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악기연주소리, 몸짓이 해맑고 정겹다.
“엄마! 나 여기 좋아.”
이렇게 이야기하며 내 뒤로 숨어버리는 딸아이가 어쩐지 안쓰러워 보였다.
딸아이도 체험학습 온 것이 아니라 저 무리 속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청소년기 예술교육은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예술적인 향기가 묻어났던 경험은 아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학습에 지친 아이들을 쉬게 해준다. 예술로 꿈꾸는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주머니가 가벼워 내 아이에게 다양한 예술교육을 시켜주지 못하는 엄마 마음은 무겁다.
사교육이 필요 없는 풍성한 공교육이 실현되는 세상을 오늘도 나는 꿈꾸어 본다.
5월의 봄 향기는 사라졌지만, 내 마음 속 봄은 아직 인 것 같다.
- 당북초등학교는
- 전북 군산에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가장 가고(보내고) 싶어 하는 학교 중 하나이다. 2004년 전교생 33명으로 폐교 위기에 놓였던 당북초등학교의 변화는 실로 드라마틱하다. 교직원들은 학교를 ‘아이들의 행복한 놀이터’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교육활동을 시도했고, 2012년 ‘예술꽃 씨앗학교’를 시작하며 학교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매주 수요일 창의적 체험활동과 방과 후 시간이면 전교생은 교실을 이동하며 다양한 국악수업을 받는다. 가야금, 해금, 양금, 소금, 피리, 타악 등 악기수업과 국악관현악단의 합주, 민요, 전통무용, 판소리 등 다양한 수업이 동시에 진행된다. 전주교육대학교 음악교육과, 전주시립국악단, 도내 문화예술단체 등에서 활동하는 지역 예술가들이 강사로 나서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올해 연말 공연으로 전교생이 참여하는 창작국악극을 준비하고 있는데, 여기에 들어갈 노래와 연주를 중심으로 국악수업이 진행된다. 얼마 전, 예술꽃 씨앗학교 학생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고자 예술강사들이 특별히 준비한 공연 <예술꽃 오감 음악회>이 열렸다. 공연을 보고 한 아이가 쓴 관람평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제목 : 예술꽃을 심은 나는 행운아 였다
당북초등학교 6학년 1반 장소윤
우리학교에는 다른 학교에는 없는 특별한 꽃이 있다.
꽃은 매주 수요일이 되면 흥겨운 노랫소리와 함께 피는데, 오늘 그 꽃들이 만개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중략) 내가 국악기를 배우고, 내 악기가 생긴다는 것도 너무 설렜는데 관현악단에 계신 선생님들의 국악 사랑을 느낄 수 있다니!! 당북초로 전학 와서 예술꽃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된 게 너무 감사하고 행운이었다.
- 조숙경 _ 그림책작가
-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며, 따뜻한 마음과 생각이 담긴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 한다.
<오뚝이는 내 친구> <돌아와 악어새> <북극곰이 곰곰이> <한나도 우리 가족이에요> <야옹이 어디간다> <그날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배탈 난 호주머니> <쑥쑥요가> 등의 그림책을 출간했다.
sasa5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