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 말씀의 능력’입니다.
인간은 얼마나 능력이 탁월한지 하루살이가 나눈 대화도 잘 알아듣습니다. 하루살이들이 하루 종일 놀다가 헤어지면서 “내일 만나자”라고 하니 “그런데 내일이 뭐야?”라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 알아들었는지 참 신통합니다. 저에게는 ‘왱’ 소리밖에 안 들리던데... 하루살이는 내일이 없습니다. 즉 미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과거도 없습니다. 어제나 옛날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날, 어느 날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그 어느 날도, 어떤 날도 없습니다. 오직 그날, 한 날, 오늘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루살이입니다. 인간이 육체로 살아가는 날이 그와 같습니다. 잠시 잠깐 머물다가 떠나가는, 지나가는 것일 뿐입니다. 영원할 것처럼 살아가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아버지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으니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입니다. 죽음은 단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출발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요5:24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죽어도 다시 사는 것이 부활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 생명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부활하겠고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누리리라,’ 이것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시고 생명이시기에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요10:10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 땅에 잠시 사는 동안 육신의 호흡, 목숨을 조금 더 연장시키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 즉 영생을 주러 오셨습니다. 그 생명을 주시되 더 풍성히 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면서 “말하는 자의 소리여”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보다 육 개월 먼저 태어난 세례요한을 가리킵니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주의 오심을 예비하자 유대 지도자들이 와서 묻습니다. “네가 누구이기에 세례를 베푸느냐?” 이때 세례요한은 “나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그가 무엇을 외쳤습니까?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꾸며도 때가 되면 들의 풀과 꽃과 같이 시들고 마를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영원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원히 사모하고 추구해야 할 것은 이 땅에 잠시 있다가 사라지고 썩어지고 말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요6:27)라고 약속했습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 곧 주의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을 믿고 주의 말씀을 붙잡고 주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힘쓰며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과 함께 살아가야 할까요?
1.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요6:63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단지 용기와 의욕이 갖게 하고 살아갈 힘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영혼을 살리는 생명입니다. 우리 영혼에 하나님의 생명을 불어넣어 소생시키고 회복시키는 능력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외칩니다. 비와 눈이 내려 땅을 적셔서 풀을 자라게 하고 소출을 내어 육체를 살리게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을 살리는 양식인 것입니다(사55:10,11). 비와 눈이 땅을 살린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수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겔47:1입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그 물이 흐른 결과를 8,9절에서 말씀합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강을 살리고 바다를 살리듯 하나님의 말씀은 메마른 영혼을 소생시키고 죽었던 영혼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비록 마른 막대기 같을지라도 싹이 나게 하고 열매 맺게 하십니다. 마른 뼈일지라도 생기를 불어넣어 강한 군대를 일으키는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사 위험한 지경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치료하신다고 했습니다(시107;20). 천사를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게 하십니다(시103:20).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고 순종할 때 우리 영혼은 회복되고 살아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능력입니다.
2.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갖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롬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자라고 믿음이 자랄 때 영혼이 힘을 얻게 됩니다. 세상의 지식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소문만 듣고 그 말에 반응하고 이끌리어 살면 믿음이 자라기는커녕 있던 믿음마저도 잃게 됩니다. 차를 타고 갈 때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끼리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아가지만 아예 멈춰서있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면 멀어져 보이지 않는 것처럼 우리 믿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까마득히 멀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믿음의 사람과 교제하며 하나님 앞에 나와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사모하면 '아, 그렇구나, 맞아, 나도 기도해야지, 주님을 바라보아야지'하며 믿음이 생기고 소망이 생깁니다. 침체된 영이 회복되고 소생합니다. 다시 일어서서 달려가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능력입니다.
빈 깡통에 물을 넣고 흔들면 어떤 소리가 납니까? 찰랑찰랑 물소리가 납니다. 자갈을 넣고 흔들면 딸그락딸그락 자갈소리가 납니다. 모래를 넣고 흔들면 쓱쓱 모래소리가 납니다. 깡통에 무엇을 넣고 흔드느냐에 따라 소리가 다릅니다. 이처럼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느냐에 따라 생각이 다르고 말이 다릅니다. 어떤 분은 만나면 ‘야, 그 드라마 봤냐? 어떤 사람은 야, 어디 가 봤냐? 야, 그거 먹어봤냐?’ 라고 합니다. 어떤 장로님이 사극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대표기도하면서도 "하나님 아버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옵소서"라고 했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하나님과 교제한 사람은 나누는 대화가 벌써 다릅니다. 달라도 많이 다릅니다. 그 대화 속에 믿음이 보이고 소망과 비전이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 계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 계신 분이 복된 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애써야 하고 말씀이 늘 내 곁에서 들려지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애쓰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온갖 세상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더욱 자라게 되길 축복합니다.
3.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고 깨끗하게, 거룩하게 씻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어서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는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히4:12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벽에 박힌 못처럼 마음에 새겨져서 그 말씀이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칼이 찌르듯 듣는 자의 마음을 찔러 움직이게 하는 능력입니다. 말씀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은 도무지 안 될 것 같애, 안 변할 것 같아, 아무리 애써도 안 돼’ 해도 그것은 우리 생각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 그 말씀이 역사하면 그도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씨를 뿌리고 물을 주었어도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고전3:7). 우리는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언젠가는 자라서 열매가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깨끗하게 씻기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4.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지혜롭게, 명철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시119:98입니다.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원수보다, 노인보다, 스승보다 지혜롭게 할까요? 그 답은 시19:7이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하나님의 말씀, 율법은 하나님의 지혜이니까요. 그러므로 완전한 것이고 순결한 것이니 사람들의 눈을 밝히고 여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면 됩니다. 할렐루야!
5.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대적을 이기게 하는 힘이요,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 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 세상의 권세들을 대항하는 것인데 영적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방망이라고 고백합니다. 렘23:29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굳은 마음과 악한 생각을 깨트리게 하는 불방망이요, 검입니다.
우리가 악한 영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불방망이요, 검인 말씀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이지도 않는 어둠의 영들을 대적하고 쫓아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는 자를 원수가 손대지 못합니다. 귀신이 한 길로 왔다가도 일곱 길로 떠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기록된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과 함께 동행하므로 승리하는 주의 자녀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