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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의 현대역사[現代歷史]
정의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북도 부안 지역의 역사.
개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2020년 현재까지 전라북도 부안군은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광복 후 좌우 대립으로 인한 갈등과 그에 따른 상처들이 컸다. 미국과 소련으로 인한 남북 분단과 함께 민족 간의 싸움인 6·25 전쟁까지 일어나며 서로에게 씻기 어려운 상흔을 남겼다. 이런 상처들이 많이 치유되고 성장의 길목에 선 전라북도 부안은 새만금 간척 등의 사업으로 갯벌이 사라지면서 지역 경제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전라북도 부안 지역은 개발과 환경 보전이라는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하며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여러 어려움을 딛고 그동안 쌓았던 역사와 문화의 저력으로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갖기를 기대한다.
행정 구역 개편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전라북도 부안군은 행정 구역이 17면에서 부령면[현 부안읍], 주산면, 동진면, 행안면, 보안면, 산내면[현 변산면], 백산면, 상서면, 하서면, 줄포면 등 10면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1963년 1월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전라북도 부안군으로 위도면이 편입되었고, 1983년 2월 계화출장소가 동진면과 행안면 일부를 합쳐서 계화면으로, 산내면의 진서출장소가 진서면으로 분리 승격되면서 현 1읍 12면의 행정 구역을 갖추게 되었다.
광복 이후 사건
1. 광복 후 풍경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이 되었지만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는 큰 변화를 체험하기 보다는 ‘해방이 되었다’고, ‘평난(平亂)이 되었다’고 기뻐하는 정도였다. 해방이 되었지만 전라북도 부안의 일본군은 치안을 이유로 총칼로 무장한 채 부안 시내를 순찰했다. 일본인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거의 한달 여를 순찰했지만, 대항해서 무장을 해제할만한 세력이나 무력이 없어 지역 주민들은 안타까워하며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일제 강점기 부령국민학교[현 부안초등학교] 운동장의 신사당 주변에는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있었다. 벚꽃이 필 때면 화사함이 대단했고, 큰 그늘을 만들어 가을 운동회 때도 유용했다. 광복이 되자 지역 사회에서는 벚꽃은 일본의 국화이고 일본의 정신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기 위해서 심었기 때문에 베어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일어났고, 실제로 베어냈다. 광복 직후에는 친일파에 대한 비판이나 일본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했고, 지역에 남아 있는 기념물에서 일본인의 이름을 없애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기념비에 새긴 일본인 이름들이 많이 지워졌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돌비석에는 당시 일본 왕의 이름이자 연호였던 ‘소화(昭和)’라고 새긴 글씨가 많이 찍혀 남아 있지 않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는 나라의 혼란이 부안에서도 고스란히 계속되었다. 자고나면 곳곳이 좌익들이 붙인 전단지 천지였다. ‘토지를 무상 몰수 무상 분배하라’, ‘매판 자본가와 악덕 지주의 타도’, ‘친일파 민족 반역자들을 즉각 숙청 처단하라’ 등의 내용들이 많았다.
2. 3·22 총파업
1947년 3월 22일 남로당(南勞黨)에서 전국의 지하 조직·당원들에게 24시간 총파업 지시를 내렸다. 당시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는 단순한 총파업에 그치지 않고 남로당이 당력을 모아서 경찰과 대치하면서 조직의 명암을 가르는 큰 사건이 되었다. 시한부 총파업을 확대 해석하여 군민 항쟁으로 확대 시켰다고 주장되기도 하고, 전년의 10월 항쟁 때 불참했던 부안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보여주기식 체면치레의 잘못된 투쟁’이었다고 분석되기도 하는 사건이었다. 좌익 진영에서는 ‘부안 3·22 민주 항쟁’으로, 우익 진영에서는 ‘부안 3·22 폭동’으로 부를 정도로 평가가 엇갈린다. 3·22 총파업은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 좌익과 경찰이 일으킨 최대의 폭력 충돌 사건이었고, 이후로 부안 지역의 좌익 조직은 급속한 와해의 길을 걷게 되었다.
3. 보도 연맹 사건
6·25 전쟁은 20세기 어떤 전쟁보다 민간인 사망률이 높았던 전쟁이었다. 전쟁 기간 중에 남북한 전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망자의 수는 최소한으로 잡아도 200만 명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집단 학살로 인해 희생된 자들이 많았다. 1949년 10월 좌익 전향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국민 보도 연맹(國民保導聯盟)의 가입자 수는 30만 명에 달하였다. 주로 사상범을 가입 대상으로 했지만, 공무원의 지나친 실적주의와 지역별 할당제 때문에 인원을 채우기 위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가입을 강요받아 등록되는 경우도 많았다. 전라북도 부안군 지역의 보도 연맹원 및 예비 검속자들은 6·25 전쟁 발발 후 부안경찰서 유치장 등에 구금되었다가, 갑종은 1950년 7월 6일 상서면 감교리 개암사 옆 야산에서, 나머지는 7월 19일 줄포면 줄포리 후촌 골짜기와 7월 20일 산내면[현 진서면] 운호리 여룬개 골짜기에서 집단 사살되었다. 당시 시신 수습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희생자 수는 개암사(開巖寺) 옆 야산에서 100여 명, 후촌 골짜기에서 40~41명, 여룬개 골짜기에서 30여 명 이상[트럭 한 대]을 합해 170여 명이 사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4. 9·28 수복과 부안
9·28 수복 후 전라북도 부안군 지역에서는 경찰 및 향토 방위대들의 연합 부대가 변산으로 들어간 좌익 빨치산들과 교전하였다. 1951년 4월의 쌍선봉 작전과 중계 사자동 작전에서는 경찰 30명이 동원되었고, 전투는 11월까지 이어졌다. 경찰들은 빨치산의 근거지였던 의상봉, 쌍성봉, 덕성봉 등을 공격하여 빨치산들을 사살하거나 생포했고, 생포한 빨치산을 앞세워 비밀 굴과 같은 근거지들에 은거하던 빨치산들을 찾아내 다시 사살하였다. 1952년 경찰의 춘계 공세에 비밀 굴들이 드러나면서 많은 빨치산들이 생포되었다. 변산의 빨치산들은 무력의 열세로 경찰에 대항할 수가 없어 비밀 굴에 은거하다가 마을로 내려가 식량을 구해 연명하는 정도로 괴멸된 상태였다. 당시에 생포되었거나 타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생포된 부안 지역의 좌익들 중에는 사형을 당한 자도 있었고, 임창규와 손윤규처럼 감옥에서 옥사한 자도 있었다. 또한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적게는 19년, 많게는 30~40년을 복역한 비전향장기수들도 있었다. 이 중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신인영과 손성모는 2000년에 북으로 송환되었다.
간척 사업
1. 계화도 간척 사업
계화도 간척 사업은 1963년 박정희(朴正熙) 정권 시절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바다를 육지로 만드는 사업이었다.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진행되었고, 제1 방조제[3,556m, 계화도~하서면 의복리[현 계화면 의복리] 남돈마을]와 제2 방조제[9,254m, 계화도~동진면 안성리 문포마을]가 완공되며 1차 마무리되었다. 당시 사업에 참여한 건설 회사들은 계화산을 둘러싼 아름다운 풍광들을 이루는 바위들을 발파하여 방조제를 쌓는데 이용했고, 개인이 소유한 밭의 흙을 퍼 가기만 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원상 복구를 시키지도 않았다. 군부 독재 시절 하에서 건설업자들의 만행에 가까운 횡포에도 불만을 제기할 엄두도 못 냈다. 1차 마무리 이후 1978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내부 간척지를 조성하였다. 1965년 섬진강 댐의 완공과 함께 칠보 발전소[섬진강 수력 발전소]에서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 간척지까지 이어지는 약 67㎞의 동진강 도수로도 건설하여, 수력 발전에 사용한 물을 하서면 청호 저수지까지 끌어들여 계화도 간척에 필요한 농업용수로 공급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섬진강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었던 지역 주민 2,000여 세대가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와 창북리로 이주하여 간척지의 농사를 짓도록 하였다.
2. 새만금 간척 사업
정부는 1987년 7월 농지 확대의 필요성을 이유로 ‘새만금 간척 종합 개발 사업’을 발표하였다. 1969년의 큰 가뭄과 1970년의 대 식량 파동으로 식량 확보를 위한 대규모의 농지 확대 사업이 가능한 지역을 모색했고,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안을 중심으로 개발이 가능한 용지에 주목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1991년에 전라북도 부안~군산의 바다를 막는 새만금 간척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후 환경 단체와 지역민들의 반대와 법정 소송으로 인해 사업 진행이 두 번이나 중단되기도 하다가, 2006년 4월 21일에야 새만금 끝물막이 공사가 이루어졌다. 새만금 간척 사업은 애초 시작 당시에는 쌀이 부족하니 바다라도 메워서 농사를 짓자는 주장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그러나 공사를 시작한 지 30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쌀 한 톨 나오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과거와는 달리 쌀 부족 문제가 크게 심각하지 않은 시대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골프장으로, 카지노 지역으로, 태양광 지역으로, 비행장으로 바뀐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사건과 갈등을 딛고
1. 서해 훼리호 사건
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와 격포를 운행하는 서해 훼리호가 승객 362명을 태운 채 침몰하였다. 292명의 사망자를 낸 이 사건은 일어나서는 안 될 후진국형의 인재(人災)로 규정할 정도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희생자들은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 주민들과 바다낚시를 하러 온 사람들로 구명조끼조차 입지 못한 채 희생되었다. 사고는 여객선이 출항하기에는 어려운 악천후였는데도 무리하게 출항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또한 승객 수가 정원보다 141명을 초과했고 과다한 화물을 실어 무게 중심이 배 위쪽에 형성되면서 평형 상태로 돌아가는 복원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배의 스크루(screw)가 그물에 걸리고, 큰 파도가 배의 옆면을 치면서 서해 훼리호가 전복된 것이었다. 사고 당시 몇 명이 탔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은 관리 소홀과 함께 승객 명부조차 작성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마지막 실종자의 주검이 수습된 것은 사고가 일어난 지 20여 일이나 지난 11월 2일이었다. 서해 훼리호 사건은 해상 사고 후에 항상 문제점을 밝히고 구조적인 문제를 철저하게 밝혀 다시는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진했음을 보여주었다. 사고 1년 후인 1994년 10월 10일에는 서해 훼리호의 침몰로 57명의 주민을 잃은 전라북도 부안군의 위도면 주민들이 위령제와 함께 위령탑의 기공식을 가졌다. 매년 갖는 서해 훼리호 참사 추모 위령제에는 유가족과 위도 지역 주민들이 참석하여 위령탑에 헌화하며 희생자를 추모한다.
2. 부안 핵 폐기장
핵 폐기장은 원자력 이용 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인 핵폐기물을 영구 처분하기 위한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시설이며, 방폐장이라고도 한다. 핵폐기물은 그동안 원자력 발전소의 임시 저장고에 저장해 왔으나, 임시 저장고가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되면서 처분장의 건설이 필요하게 된 것이었다. 이전까지는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安眠島)와 경기도 옹진군 덕적도(德積島)에 건설하려 했다가 지역 주민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2003년에 전라북도 부안 군수가 핵 폐기장의 부안군 위도면 설치를 신청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유치 신청을 한 부안 군수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철저히 배제했기 때문에 주민들의 분노와 저항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전라북도 부안의 34개 단체가 참여한 핵폐기장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원회는 군수의 일방적인 핵 폐기장 유치에 대한 항의 시위를 하며 원천무효를 주장했고, 부안 주민들의 의견은 찬반으로 나뉘었다. 찬성자들은 부안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고, 반대자들은 방사성 물질이 유입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하였다. 특히 위험성과 함께 환경 문제의 어려움을 들어 관광 부안이 입을 이미지의 타격을 우려하기도 했다.
2003년 7월 24일에는 산업자원부가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 위원회를 열어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을 방폐물 처리장 부지로 최종 확정하였다. 전라북도 부안 군민들은 궐기 대회를 열어 위도면에 설치하려는 핵 폐기장에 반대하는 항의 시위를 하며 원천무효를 주장했다. 주민들은 매일 밤 촛불 시위를 하며 핵 폐기장 유치에 대한 반대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했고, 상경 시위와 해상 시위, 서해안 고속 도로 점거, 학생들의 등교 거부 등을 통한 투쟁도 벌여 나갔다. 시위 과정에서는 주민들 상당수가 부상을 당했고, 사법 처리된 자들도 390여 명이나 되었다2004년 2월 14일에는 전라북도 부안 군민이 원전 수거물 관리 시설 건립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했고, 투표율 72.01%에 91.83%가 반대하는 압도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로써 법적 효력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핵 폐기장 유치 반대’라는 부안 주민들의 분명한 의지가 드러나는 계기가 되어 위도 핵 폐기장 건립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2004년 9월 16일 산업자원부가 부지 선정 절차 포기에 들어갔고, 11월에는 부안 핵 폐기장 건립이 마침내 백지화되었다. 부안 핵 폐기장 유치 과정에서 드러난 찬반 의견은 주민들 간의 깊은 갈등으로 이어지고, 이후의 선거 과정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선호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핵 폐기장 문제를 겪으면서 나타난 긍정적인 면은 전라북도 부안 주민들이 에너지 문제가 남의 일이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이었다. 또한 자연 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환경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해안 고속 도로
서해안 고속 도로는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과 서울특별시 금천구 독산동을 연결하는 고속 도로이다. 1990년 12월에 착공하여 11년이라는 오랜 공사 기간을 걸쳐 2001년 12월 21일 완공되었다. 서해안 고속 도로는 제15호선이며 총 연장은 340.8㎞이다. 서해안 고속 도로는 서해안 인근의 중심 도시들을 이어주는 대동맥 역할을 하면서 전라남도 무안군[목포시]-전라남도 함평군-전라남도 영광군-전라북도 고창군-전라북도 부안군-전라북도 김제시-전라북도 군산시-충청남도 서천군-충청남도 보령시-충청남도 홍성군-충청남도 서산시-충청남도 당진시-경기도 평택시-경기도 화성시-경기도 안산시-경기도 시흥시-경기도 안양시-경기도 광명시-서울특별시 금천구를 연결하고 있다. 서해안 고속 도로는 그동안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 문제와 국토 계획 및 경제 개발에서 소외되던 서해안 지역의 관광 및 개발 잠재력 문제를 염두에 두고, 1980년대부터 건설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어지다가 1990년에야 건설이 시작되었다. 서해안 고속 도로의 개통으로 태안 해안 국립 공원, 변산반도 국립 공원, 고군산 군도 등 천혜의 해안 관광 자원을 찾는 사람들의 접근성이 크게 좋아졌다. 서해 연안의 인천 남동 공단, 안산 산업 기지, 시화 공단, 아산 공단, 군장 공단, 대불 산업 기지 등의 물동량 수송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전라북도 부안에는 부안 IC와 줄포 IC가 있어 서해안 고속 도로와 지역의 연결을 원활하게 하고 있다. 부안 IC는 국도 제30호선[부령로·하원로]으로 이어지고 지방도는 제747호선[덕신로]으로 연결된다. 이를 통해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백산면, 계화면, 하서면 등지와의 연결 및 새만금 지역과의 연결도 용이해지게 되었다. 줄포 IC는 지방도 제710호선[주을로]으로 이어지며 국도 제23호선을 통해 변산반도 국립 공원을 연결한다. 이처럼 전라북도 부안을 지나는 서해안 고속 도로는 부안에서 생산되는 물류의 수송과 부안을 방문하고자 하는 관광객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고속 도로의 지역 휴게소는 지역 홍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그동안 전라북도 부안 쪽에는 휴게소가 없었다가, 2018년에 부안 휴게소의 건립이 확정되며 생겨나게 되었다. 위치는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덕림리 일원으로서, 2020년 현재 ‘부안 주차장’이라는 이름으로 이용되고 있는 부지에 들어선다. 부지 면적은 양방향 7만㎡에 달하고 총 건축 면적 2,652㎡에 휴게소 1,694㎡, 캐노피 428㎡, 주유소 400㎡ 등과 함께 휴게텔 130㎡도 신축될 예정이다. 전라북도 부안군은 연 매출액 50억 원에 200여 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휴게소를 이용한 지역 특산물의 판매와 지역 홍보를 더하면 기대 이상의 혜택이 돌아올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서해안 고속 도로와 부안 휴게소는 교통편의 및 휴식의 제공과 함께 부안의 홍보 및 위상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2023년에는 제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로 인해 전 세계 168개국 5만여 명의 참가자와 관람객 4만여 명 등 총 9만여 명이 전라북도 부안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농어촌의 해체와 미래 부안
전라북도 부안군의 인구는 1965년에 17만 2866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1980년대 말까지도 10만 명대를 유지하던 인구는 2018년 12월 기준으로 5만 명대로 떨어질 정도로 급감하였다. 전출 인구가 전입 인구 보다 많고 출생 인구보다 사망 인구가 훨씬 웃돌면서 빚어진 일이었다. 전라북도 부안군의 계화면과 하서면의 인구가 특히 급감하였다.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인해 바다라는 생활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부안 지역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고, 이와 함께 곳곳의 지역 초등학교들이 폐교로 이어지고 있다. 전라북도 부안에 대한 그동안의 정부 투자는 계화도 간척 사업, 새만금 간척 사업 등과 같이 갯벌을 없애는 개발 위주의 사업이 주를 이루었고, 여기에 더해 핵 폐기장 건설 사업까지 이루어질 뻔하였다. 이런 국책 사업은 부안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찬반양론으로 극명하게 엇갈리게 하면서 갈등을 유발하고 심화시켜 큰 상처를 남기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미래의 부안은 개발에 목매기보다는 기존의 역사와 문화를 고리로 자연을 살리는 생태 부안, 관광 부안, 살기 좋은 부안, 그래서 외부인들이 귀농 귀촌의 대상지로 찾을 수 있는 부안으로 설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정진석, 『옳고 그름을 떠나서』(밝, 2002)
김형주, 『김형주의 못다 한 부안이야기』(밝, 2010)
『부안군지』(부안문화원, 2015)
부안독립신문(http://www.ibuan.com)
한국도로공사(http://www.ex.co.kr)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부안군청[ 扶安郡廳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에 있는 부안군 관할 지방 자치 행정 기관.
개설
전라북도 부안군은 동경 126도 40분, 북위 35도 40분에 위치해 있다. 전라북도 서쪽에 있으며, 북동쪽으로 김제시, 남동쪽으로 정읍시, 남쪽으로 고창군, 서쪽으로 바다와 접해 있고, 바다 북쪽으로는 군산시와 접해 있다. 해안선은 본래 동진강(東津江) 하구에서부터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우포리까지 99㎞였다가,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길이가 짧아져 현재는 66㎞이다. 동쪽이 낮고 서쪽이 높은 지형으로 서해로 불쑥 나와 있는 반도이다. 남서부는 변산이 겹겹이 싸여 있으며, 북동부는 넓고 비옥한 평야를 이루고 있다. 지형적인 영향과 북서 계절풍의 영향으로 겨울철에는 눈이 많이 내리는 기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설립 목적
부안군청은 전라북도 부안군 지역의 행정, 민원, 발전 및 주민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전라북도 부안군 지역은 백제 때 정치·군사·해양의 중요한 요충지였다. 부안 죽막동 유적은 백제의 해양 제사지였고, 주류성(周留城)은 백제 멸망 후 백제 부흥의 시작점이자 중심지였다. 행정상으로는 개화(皆火)와 흔량매(欣良買) 두 고을로 나뉘어 중방고사성(中方古沙城)에 속했다. 통일 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에는 개화현(皆火縣)을 부령현(扶寧懸) 혹은 계발(械發)이라 고쳐 불렀고, 흔량매현(欣良買縣)은 희안현(喜安縣)이라 고쳐 불렀다. 부령현과 희안현은 고부(古阜)의 속현이었다. 고려 때에는 희안현을 보안현(保安顯)이라 고치고 부령현은 그대로 사용했으며, 별호(別號)로 희안현을 낭주(浪州), 부령현을 부풍(扶風)이라 부르기도 했다.
1414년(태종 14)~1416년(태종 16)에 지방 관제 개정으로 부령현과 보안현의 합병과 해체가 몇 차례 이루어지다가, 1416년에 부령(扶寧)의 부(扶)자와 보안(保安)의 안(安)자를 따서 부안현(扶安顯)이라 고쳐 불렀다. 1417년에 흥덕진(興德鎭)을 부안에 귀속하여 부안진(扶安鎭)이라 하고, 병마사로 하여금 판사를 겸하게 했으며, 1423년(세종 5)에 첨절제사(僉節制使)로 바꾸었다가 현감으로 고쳤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편으로 부안현이 부안군이 되었다. 이듬해인 1896년(고종 33) 전국이 13도 체제로 재편되면서 전라도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분할되었고, 부안군은 전라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위도를 전라남도 영광군으로, 비안도를 전라북도 군산시로 떼어주고, 대신 고부군에서 백산면, 거마면, 덕림면을 편입시켜 10개 면이 되었다. 1943년에 "전라북도 부안군 부령면이 부안읍으로 승격되어 1개 읍 9개 면으로 되었고, 1963년 행정 구역 조정으로 전라남도 영광군의 위도면이 부안군으로 편입되어 1개 읍 10개 면이 되었다. 1978년 계화도(界火島) 간척 공사의 준공에 따라 3,968㏊의 면적이 늘어났고, 1983년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山內面)의 진서출장소와 행안면의 계화출장소가 진서면(鎭西面)과 계화면(界火面)으로 분리·승격하면서 1개 읍 12개 면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첫 군수로 이진흥이 임명된 이후로 37대 경삼수 군수까지 이어지다가, 지방 자치가 본격화된 1995년 이후로는 민선 1기 강수원 군수, 민선 2기 최규환 군수, 민선 3기 김종규 군수, 민선 4기 이병학 군수, 민선 4기와 5기 김호수 군수, 민선 6기 김종규 군수, 민선 7기 권익현 군수로 이어지고 있다.
전라북도 부안군 청사는 조선 시대 관아 터로 시작해 1969년 구 청사가 지어졌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흐르면서 노후하게 되었고, 1998년부터 신청사 건립 계획이 추진되었지만 아이엠에프(IMF) 외환 위기로 지연되었다. 이후 2007년 건립 공사를 시작해 민선 5기 김호기 군수 때인 2010년 12월 3일에 신청사를 완공하면서 부안군청 및 부안군 의회 개청식이 이루어졌다. 총사업비는 군비 166억 원과 기채 166억 원 등 332억 원이 투입되었다. 신청사는 대지 1만 4472㎡, 연면적 1만 9784㎡의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이다. 청사 앞 새빛 광장에는 관내 8개 종중으로부터 소나무 31본을 헌수 받아 ‘솔바람 숲’을 조성해 놓고 열린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신청사인 현재의 부안군청이 있는 곳은 과거 객사(客舍)가 있었던 곳으로 ‘부풍관(扶風館)’이라고 불렀고 현판도 남아있다. ‘부풍’은 부안의 옛 별호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안군청은 ‘미래로 세계로! 생동하는 부안’이라는 군정 지표 아래, 군민을 섬기고 신뢰 받는 참여 행정, 소득을 높이는 풍요로운 지역 경제, 지구촌 사람이 모여드는 문화 관광, 웃음과 희망이 함께하는 교육 복지를 군정 방침을 정하여 실행하고 있다. 민선 7기[권익현 군수]의 2020년 주요 군정 방향은 일 중심 조직, 청렴한 행정 실현, 미래 에너지 선도 도시 조성, 2023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성공 개최 준비, 함께 누리는 포용 도시, 사람 중심의 깨끗한 환경 조성, 누구나 살고 싶은 농정 구현, 글로벌 휴양 관광 도시 조성 등으로 정해 놓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로는 행정과 민원, 예산 편성과 집행, 새만금·잼버리, 주민 복지 및 환경 위생, 농업·수산업·임업, 산업 경제 및 문화 관광 진흥, 재난 안전 및 민방위 관리, 역사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 지역 개발과 교통 등에 관한 사무와 그 관련 조례에 근거한 규칙 제정 사무 등을 주로 수행한다. 제25회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사업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사무도 적극 수행하고 있다.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는 전 세계 회원국 5만여 명 이상의 청소년 및 지도자들이 참가하여 인종, 종교, 이념, 문화의 차이를 뛰어 넘어 문화 교류 및 우애를 다지는 세계 최고의 청소년 국제 행사이다. 지방 자치제 실시 이후 문화 관광, 환경 보존, 주민 복지 증진 등 군민의 삶의 질에 대한 역할 강조와 함께 주민이 적극적으로 행정에 참여하는 민주적 행정도 강화하고 있다.
현황
부안군청은 2020년 현재 행정 조직이 군수와 부군수, 2국[행정 복지국, 산업 건설국], 3담당관[기획 감사 담당관, 자치 행정 담당관, 미래 전략 담당관], 13과[새만금 잼버리과, 문화 관광과, 교육 청소년과, 사회 복지과, 재무과, 민원과, 농업 정책과, 축산 유통과, 해양 수산과, 환경과, 도시 공원과, 건설 교통과, 안전 총괄과], 2직속 기관[보건소, 농업 기술 센터], 2사업소[상하수도 사업소, 문화 체육 시설 사업소], 1의회 사무과로 편성되어 있다. 행정 인력은 총 1,090명이며, 공무원 749명, 공무직 284명, 청원 경찰 5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2020년 12월 말 현재 관할 인구는 2만 7819세대 5만 2140명[남 2만 5914명, 여 2만 6226명]이며, 65세 이상 인구가 총 1만 7371명[남 7,118명, 여 1만 253명]으로 전체의 33.4%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관할 지역 사회는 초고령 사회에 해당한다. 관할 면적은 493.35㎢이며, 관할 행정 구역은 1개 읍, 12개 면, 99개 법정리, 513개 행정리, 1,133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할 행정 구역인 전라북도 부안군은 지리적으로 전라북도 남서쪽 변산반도에 있고, 동쪽으로 정읍시, 북쪽으로 동진강 하구를 경계로 김제시, 남쪽으로 곰소만을 경계로 고창군, 서쪽으로 서해와 각각 접하고 있다. 서쪽 서해상의 위도, 식도, 정금도, 거륜도, 상왕등도, 하왕등도 등의 섬으로 구성된 위도면도 관할 구역에 속한다.
부안군청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당산로 91에 있으며, 지하 2층, 지상 5층으로 되어 있다. 지하에는 주차장과 방재 센터가 있으며, 1층에는 민원과, 엔에이치(NH) 농협 은행, 여성 휴게실, 모유 수유실, 문서고, 당직실 등이 있다. 2층에는 재무과, 대강당, 식당이 있고, 3층에는 군수실, 부군수실, 기획 감사 담당관, 자치 행정 담당관, 미래 전략 담당관, 문화 관광과, 새만금 잼버리과, 중회의실, 소회의실, 영상 회의실이 있다. 4층에는 국장실, 사회 복지과, 농업 정책과, 도시 공원과, 축산 유통과, 청문·감사장, 정보 통신실, 세미나실이 있으며, 5층에는 교육 청소년과, 해양 수산과, 건설 교통과, 환경과, 안전 총괄과, 재해 대책 상황실, 대회의실, 국세·지방세 통합 민원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안군협의회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민선 이후 전라북도 부안군 행정의 주요 특징은 재해·재난 방지, 농촌 개발, 쾌적한 환경 조성, 사회 복지, 보건 의료, 문화 관광, 주민 중심 행정 추진, 인구 감소 및 급속한 고령화에 대응한 지역 발전 전략 추진 등에 관한 업무를 특히 강조·확대해 나가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부안군지』(부안문화원, 2015)
주운현 외, 『쉽게 쓴 행정학』(윤성사, 2018)
임승빈, 『지방 자치론』(법문사, 2019)
「2020년 주요 업무 계획」(부안군, 2020)
「2019년 주요 성과」(부안군, 2020)
「새로운 부안군 발전의 역사를 써 나가자」(『주간 해피 데이』, 2013. 12. 20.)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부안의 관광 산업[ 觀光産業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의 산업 중 관광객을 대상으로 교통, 숙박, 오락 등을 제공하는 업종.
개설
전라북도 부안군은 전라북도 남서쪽 변산반도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황해에 접해 있고, 동쪽은 전라북도 정읍시와, 북쪽은 동진강(東津江) 하구를 경계로 김제시와, 남쪽은 곰소만을 경계로 고창군과 각각 인접하고 있다. 수도권과 3시간 거리, 전주권 및 광주권과 1시간 이내 거리로 교통 접근성이 좋고, 변산반도 국립 공원 등이 있는 관광지로서 인지도도 높아 연간 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주요 관광 자원
전라북도 부안군의 주요 관광 자원은 크게 자연 관광 자원, 문화 관광 자원, 체험·전시·관람 관광 자원 등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자연 관광 자원으로는 먼저, 대표적인 것으로 변산 8경이 있다. 웅연조대(雄淵釣臺), 직소 폭포(直沼瀑布), 소사모종(蘇寺暮鐘), 월명무애(月明霧靄), 서해 낙조(西海落照), 채석범주(彩石帆舟), 지포신경(止浦神景), 개암고적(開巖古跡) 등의 절경들이다. 다음으로 3개의 법정 지정 관광지도 있다. 우리나라 국립 공원 중 유일하게 산과 바다에 둘러싸인 변산 해수욕장, 「홍길동전」에서 꿈꾸던 율도국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위도, 그리고 아담한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 밭이 아름다운 모항 등 3곳이다. 또한 자연 경관 자원을 활용한 탐방로인 변산 마실길도 있다.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월명암·내소사, 곰소항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관음봉 등 서해 변산의 일출·일몰, 어항, 계곡·폭포 등 전라북도 부안의 비경을 두루 감상할 수 있는 자연 자원 탐방로이다. 문화 관광 자원은 2020년 기준으로 총 61종의 문화재가 있으며, 국가 지정 문화재 25종, 지방 지정 문화재 34종, 등록 문화재 2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 문화재가 주를 이루는 보물, 사적지, 명승지, 중요 무형 문화재, 시도 지정 문화재, 시도 기념물 등이다. 6개의 전통 사찰과 1개의 향교를 포함해서 종교적·민속적 가치를 모두 지닌 문화 관광 자원들이다.
체험·전시·관람 관광 자원은 지역 특성이나 특산품 등과 관련한 다양한 종류의 체험·관람이 가능하도록 조성된 관광 자원들이다. 구체적으로는 부안 영상 테마파크, 금구원 야외 조각 미술관, 휘목 미술관, 부안 누에 타운, 부안 곤충 과학관, 청림 천문대 청소년 수련 시설, 부안군 무형 문화재 종합 전수 교육관, 부안군 신재생 에너지 테마파크, 전북문화관광재단 새만금 상설 공연 「아리」, 아리울 승마장, 갯벌 체험[모항 갯벌 체험장], 도자기 체험, 채석강 수상 레저, 격포 유람선, 새만금 홍보관, 부안 청자 박물관, 원숭이 학교, 석정 문학관, 줄포만 갯벌 생태 공원 등이다. 생태 관광, 문화 관광, 모험 관광, 테마 관광, 가족 관광, 체험 관광, 휴양 관광 등 다양한 관광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관광 자원들이다.
지역 축제
전라북도 부안군에서는 관광 자원과 지역 특색을 활용한 다양한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매년 5월 개최되는 관광 문화 종합 축제인 부안 마실 축제이다. 부안 마실 축제는 부안 지역 천혜의 관광 자원, 역사 문화 자원, 인문 자원 등을 활용하여 마실[마을의 방언]이 갖는 의미를 담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관광객의 만족감과 지역민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부안 마실 축제는 여유를 찾아 떠나는 마실 여행처럼, 부안만의 특색을 바탕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차별화 된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군민 화합은 물론 부안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봄 소풍을 떠나던 추억을 선사하는 축제이다. 다음으로 젓갈의 고장 부안 곰소의 맛과 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곰소 젓갈 발효 축제가 있다. 곰소 앞바다의 어류와 곰소 염전의 천일염으로 삭힌 곰소 젓갈을 알리고 염전과 장터 등 지역 관광 명물을 홍보하기 위한 축제이며, 매년 10월에 개최된다. 김장용 젓갈 행사와 젓갈 시식회 및 김치 담그기와 품평회 등의 김장철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진행하는 축제이다. 2019년 4회를 맞이한 개암동 벚꽃 축제도 있다. 벚꽃이 개화하는 4월에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동 벚꽃길과 개암사 일원에서 개최된다. 소규모 마을 축제로 진행되지만, 차 없는 거리형 축제로 봄꽃을 만끽할 수 있도록 개암 저수지 입구부터 차량을 전면 통제한다. 다양한 프로그램의 운영을 통해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며, 벚꽃 축제와 함께 개암사와 주류성의 문화 탐방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이밖에 6월의 블루베리 축제, 8월의 변산 바다로 페스티벌 및 위도 상사화길 달빛 걷기 축제, 10월의 국화 축제·볏짚 축제, 12월의 설(雪)숭어 축제 등 전라북도 부안의 자원을 활용한 소규모 축제들도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관광 산업 현황
2015년~2019년 전라북도 부안군의 주요 관광 지점 19개소의 입장객 평균은 연간 200만 명을 넘고 있다. 대부분의 관광지와 방문객은 변산반도 국립 공원, 새만금 홍보관 등 해안 권역에 집중되고 있다. 2018년 12월 기준 전라북도 부안군 내 숙박 및 음식점업소는 1,217개, 도소매업체는 1,417개로 전체 사업체 수의 24.5%, 28.6%를 각각 차지하였다. 숙박 및 음식점업소는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에 38.2%, 변산면에 33.7%가 있어 두 지역에 71.9%가 집중되어 있다. 도소매업소는 52.5%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에 집중되어, 관광객 중심 판매 시설이 아닌, 주로 지역 주민 중심의 생활 밀착형 판매 시설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라북도 부안군에 등록된 관광 사업체로는 여행업체 23개가 있으며, 대부분 부안읍에 소재하고 있다. 관광 숙박업소는 가족 호텔업소 2개소와 관광 호텔업소 1개소가 있으며, 모두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에 소재하고 있다. 관광객 이용 시설 업소는 전문 휴양업소 1개소와 야영장업소 1개소가 있으며, 모두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에 소재하고 있다. 관광 식당 업소는 5개소가 있으며, 이 중 4개소가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에 소재하고 있다. 등록된 관광 사업체 대부분이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부안군지』(부안문화원, 2015)
『통계연보』(전라북도 부안군, 2019)
관광지식정보시스템(https://www.tour.go.kr)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서림 공원[西林公園]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와 서외리에 있는 공원.
개설
서림 공원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와 서외리의 성황산(城隍山)[115m] 일대에 조성된 공원이다. 성황산은 전라북도 부안의 주산(主山) 역할을 하며 부안읍의 북서쪽에서 시가지를 감싸주는 형국이다. 부안현(扶安縣)의 수호신을 모신 성황사(城隍寺)가 있었기 때문에 ‘성황산’이라 부르며, 삼국 통일 당시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진을 치기 위해 오른 산이라는 뜻으로 ‘상소산(上蘇山)’이라고도 한다. 성황산의 남사면에는 현재 부안군청이 들어서 있고, 옛날에는 부안 관아가 있었다. ‘서림(西林)’은 부안 관아의 서쪽 숲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며, 부안 관아의 후원(後園)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건립 경위
1847년(헌종 13) 부안 현감 조연명(趙然明)[1847~1849]이 황폐한 산으로 방치된 관아 주변의 성황산을 보고, 동네 유지 33인으로 구성된 ‘33인수계(三十三人修契)’를 조직하여 봄가을로 직접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고 서림정(西林亭)을 건립했다고 한다. 이후 이필의(李弼儀)[1864~1869] 현감이 부임했을 때도 황폐해져 있어 이전의 ‘계’를 부활하여 다시 숲을 가꾸게 되면서 오늘의 서림 공원이 되었다고 한다.
구성
서림 공원의 성황산은 진입로 4개에 등산로 4개가 조성되어 있다. 곳곳에 전망대가 있어 주변을 잘 조망할 수 있고,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 숲길과 편백 숲 등이 있어 운동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려는 전라북도 부안 군민들이 즐겨 찾는다. 서림 공원 동쪽 진입로에는 훼손된 자연을 원래의 자연 생태 공간으로 되돌리는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생태 숲이 있다.
현황
서림 공원은 전라북도 부안의 풍류와 선비 정신이 서려 있고 주변 풍경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공원으로 부안 군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다. 생태·환경적 가치와 함께 관이 주도해 조성한 공원 숲이라는 임업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에 국가 산림 문화 자산으로 지정되었다. 서림 공원 내에는 서림의 숲과 정자를 조성한 부안 현감 조연명과 이필의의 공적을 기린 비석(碑石), 임정 유애비(林亭遺愛碑)가 있다. 성황산 기슭에는 성황사, 혜원사(慧圓寺) 등의 사찰이 있다. 성황사는 1314년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창건된 고찰이다. 서림 공원의 전망대는 변산(邊山), 서해, 동진강(東津江) 유역의 평야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이 좋아 예로부터 시인 묵객(墨客)들이 시와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부안군청의 뒤편 진입로를 오르면 중턱에 매창 시비(梅窓詩碑)가 있고, 그 왼쪽과 오른쪽에는 ‘금대(琴垈)’와 ‘혜천(惠泉)’이라고 새긴 암각서가 있다. 전라북도 부안의 여류 시인이자 관기였던 이매창(李梅窓)이 올라 앉아 거문고를 타던 바위와 물을 마셨던 우물이라고 한다. 부안 관아 자리의 반석에는 1810년대에 부안 현감을 지낸 박시수가 ‘봉래동천(蓬萊洞天)’·‘주림(珠林)’·‘옥천(玉泉)’이라고 쓴 암각서가 새겨져 있다. 전라북도 부안이 신선이 살 만큼 경치가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고을임을 표현하는 도교적인 의미를 담은 말이다.
참고문헌
「관아(官衙) 주변의 땅 이름 2-성황산, 서림」(『부안 독립 신문』, 2009. 2. 1.)
전라북도공식블로그(http://blog.naver.com/jbgokr)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혜원사[慧圓寺]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 소속 사찰.
개설
혜원사(慧圓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며,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상소산(上蘇山)[성황산] 남쪽 기슭에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1924년 가야산(伽倻山)[1,430m] 해인사(海印寺) 삼선암(三仙庵)에 있던 승려 지승이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인법당(因法堂)을 세우고 머물면서 ‘청일암(淸日庵)’이라 이름했다고 한다. 1954년 승려 지승의 상좌인 승려 혜경(慧鏡)과 양보현 보살이 성황산 북서쪽 성황사 위에 석조 법당과 요사채를 지어 사찰의 면모를 지니게 되었다. 1970년 9월 성황산 남쪽 기슭의 서림 공원 내 현 위치로 옮겼으며, 1999년 2월 9일 ‘혜원사’로 개칭하고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의 말사로 등록하였다. 혜원사는 대한불교보문종 소속이었다가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으로 사찰 등록을 하였다.
활동 사항
혜원사는 교학 활동의 수행과 함께 사회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불교 대학, 어린이 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석가 탄신일 음악회 등 문화 공연 행사도 지속적으로 개최한다. 불우 이웃을 위한 봉사·구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혜원사는 극락전(極樂殿), 인법당, 산신각(山神閣), 무구원(無口院), 마하 문화원(摩訶文化院)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마하 문화원은 교육, 체험 등을 실시하는 다목적 건물이고, 무구원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선원(禪院)이다. 인법당은 법당과 요사채의 기능을 하는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3칸이며, ‘혜원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산신각은 사찰의 뒤편 조금 높은 언덕에 있다. 주지는 승려 정원이며, 신도는 1,500여 명 정도이다.
참고문헌
『부안군지』(부안문화원, 2015)
인터뷰(혜원사 주지 승려 정원, 2020. 6. 13.)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매창 공원[梅窓公園]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있는 이매창 기념 공원.
개설
이매창(李梅窓)[1573~1610]은 조선 선조(宣祖) 때의 여류 시인이다. 이름은 계생(癸生, 桂生) 또는 향금(香今)이라 했으며, 자는 천향(天香)이고 호는 매창(梅窓)이다. 전라북도 부안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한테 글을 배워 시(詩)에 뛰어났으며, 가무에도 소질이 있었고 특히 거문고를 잘 탔다. 개성의 황진이(黃眞伊)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의 명기(名妓)였고,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난 유희경(劉希慶), 허균(許筠), 이귀(李貴) 등과 교우가 깊었다. 1610년(광해군 2)에 38세의 나이로 죽어서 매창뜸에 거문고와 함께 묻혔으며, 죽은 지 45년 만인 1655년(효종 6) 묘비를 세웠다. 1668년(현종 9)에는 개암사(開巖寺)에서 매창의 시 58편을 모아 『매창집(梅窓集)』을 펴내었다.
건립 경위
매창 공원은 조선 시대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여류 시인이자 명기였던 이매창을 추모하기 위해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변천
부안군청에서 부풍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낮은 구릉지에 매창 공원이 있다. 매창 공원 자리는 원래 공동묘지가 있었던 곳으로 도시가 확장되면서 묘를 이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매창을 사랑하는 지역민들의 반대로 이매창의 묘와 부안 출신 명창 이중선의 묘만 남게 되었다. 1983년 8월 24일 이매창 묘가 전라북도 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 전라북도 부안군이 매창의 묘가 있는 곳에 시문학 공원을 조성하였다. 2011년 매창 공원을 확장하는 ‘매창 사랑의 테마 공원 조성 사업’ 기본 계획을 수립했고, 2013년 공원 조성 계획 수립을 완료하여 공사에 들어갔다. 이후 2019년 매창 사랑의 테마 공원, 매창 테마관과 부속 광장 등의 완공과 함께 공원 영역이 확대되며 부안의 중요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구성
매창 공원에는 이매창의 묘와 명창 이중선의 묘가 있고, 주변 곳곳에 매창의 대표 작품이 새겨진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매창의 시비 이외에도 유희경이 매창에게 보낸 시, 매창의 죽음을 애도하는 허균의 시, 매창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작품을 칭송한 후대 문인 이병기(李秉岐), 정비석(鄭飛石), 송수원, 김민성 등의 시도 비석에 새겨져 있다. 매창 공원에는 2019년에 개관한 매창 테마관도 있다. 매창 테마관은 한옥 양식의 2층 건물로 되어 있으며, 1층은 매창 관련 전시실과 한복 입기 등 체험 프로그램실, 2층은 세미나실과 감상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창 테마관의 현판에는 ‘매화꽃 핀 창가에 꽃비가 내릴 때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집’이라는 뜻의 ‘매창화우상억재(梅窓花雨相憶齋)’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현황
매창 공원에서는 2001년부터 매창 문화제가 열리고 있으며, 매년 음년 4월 5일에 부풍율회 회원들이 매창의 묘제를 지내고 있다. 전라북도 부안군에는 매창 공원과 매창 시비, 석정 문학관과 석정 시비, 서림 공원 시비, 부안 댐 문학 공원 시비 등 문학과 관련된 시비가 많이 건립되어 지역을 찾는 관광객에게 멋진 문학적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문헌
「매창 사랑의 테마 공원 조성된다」(『전북 도민 일보』, 2014. 4. 7.)
「매창화우상억재(梅窓花雨相憶齋)」(『이투데이』, 2018. 4. 11.)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매창 시비[梅窓詩碑]
정의
부안 출신의 조선 중기 여류 시인 이매창을 기리기 위하여 부안 지역에 세운 시비.
건립 경위
사람들에게 성황산으로 더 많이 알려진 부안 성소산, 서림 공원으로도 불리는 이 산의 입구에 서어나무로 둘러싸인 아담한 정자 서림정(西林亭)이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높여 있는 금대(琴臺) 아래쪽에 이매창의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부안’ 하면 떠오르는 조선 시대 명기(名技)이자 여류 시인이었던 이매창. 본명은 향금(香今)이고, 자(字)는 천향(天香), 호는 매창(梅窓) 또는 계생(桂生)이라고도 했다. 1974년 4월 27일, 매창기념사업회에서는 부안에 예향을 전한 이매창을 기려 금대 아래쪽 약수터 곁에 시비 1기를 세웠다. 이매창의 시조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를 새긴 이매창 최초의 시비인 것이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離別)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리(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규장각본 『가곡원류(歌曲源流)』에 실려 있는 매창의 절창 ‘이화우(梨花雨)’. 이 시비가 세워지고 나서 24년 후인 1997년 7월 1일, 100m쯤 떨어진 곳 등성이 마루 옛 망해루가 있던 동편 너럭바위께에 또 1기의 시비가 세워졌다. 당시 강수원 군수 시절에 서림 공원 재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부안군에서 건립한 것이다.
그러나 이매창의 시라 하여 「백운사(白雲寺)」라는 시를 새긴 이 시비는 많은 논란과 혼란을 야기시켰다. 이매창의 시가 아닌 것을 그의 시로 오인하여 세웠다는 것이다. 하여 부안 향토학자인 김형주가 여러 차례 철거 또는 개비(改碑)를 건의하는 사태로 번지게 되었다. 결국 「백운사」 시비는 논증된 바도 없는 작자 미상의 떠돌이 유전시(流轉詩)를 이매창의 명시(名詩)로 격상시켜 시비에까지 새겨 공원에 세웠다는 데에 사람들의 분노를 크게 사 비난까지 받기에 이르렀다.1974년 맨 처음 세운 시비 양옆 모서리에도 당시에 이매창의 대표적인 한시 「증취객(贈取客)」과 함께 「백운사」 시를 새겨 논란이 있었던 터였다. 더군다나 한 사람의 시비를 동일한 장소에 두 개를 세우는 일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 하여 더더욱 군더더기가 되었다고 꼬집었다. 이후 「백운사」는 평양 기생의 시로 밝혀졌지만, 2020년 현재까지도 시비는 고쳐진 바 없이 그대로 놓여 있는 상황이다. 2001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매창 공원이 조성되었다. 2010년 이 곳에도 이매창의 시비가 세워졌다. 이매창의 시 「병중(病中)」이 특이하게도 한자와 한글로 함께 새겨진 시비였다. 「병중」은 임진왜란 직후 이매창이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유희경(劉希慶)[1545~1636]을 그리워하며 쓴 한시로, 이매창 사후 발간된 시집 『매창집(梅窓集)』에 수록되어 있다. 매창 공원에는 이외에도 「이화우 흩날릴 제」를 비롯하여 「옛 님을 생각하며」, 「어수대」 등 10여 점의 시를 한글 또는 한자 시비로 세워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감상하도록 하고 있다. 도심 속 친근한 공원이라 부안 군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매창 공원에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된 이매창 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매창은 평소에 거문고와 시에 뛰어나 죽을 때에도 거문고를 함께 묻었다고 한다. 하여 시조와 창을 하는 모임인 부풍율회(扶風律會)에서 해마다 음력 4월 5일이면 이매창 묘 앞에 모여 매창 문화제를 지내고 있다. 이매창 묘비는 1655년(효종 6) 부풍시사(扶風詩社)에서 세운 것인데, 묘지 관리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마을의 나무꾼들이 벌초를 하며 무덤을 돌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런 뜻 깊은 곳이기에 이매창의 시비가 있는 공원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위치
서림 공원에 세워진 이매창의 시비 중 하나는 서림 공원 입구 금대와 혜천(惠泉)이라는 옛 우물 옆에 세워져 있다. 이매창의 무덤이 있다 하여 ‘매창이뜸’ 혹은 ‘매창뜸’으로 불리는 공동 묘역을 정비하여 만든 매창 공원에도 이매창의 시비가 여러 기 세워져 있다.
형태
부안에 세워진 매창의 시비로는 성소산 서림 공원 입구에 세워진 것이 최초의 것이라 한다. 그 형태가 간결하면서도 무게감이 있어 가무와 현금(弦琴) 연주 등 다재다능한 예술인으로서의 이매창의 자존감을 돋보이게 해준다. 매창뜸 즉 지금의 매창 공원에 세워진 매창의 여러 시비들은 서림 공원에서 보이는 시비와는 또 다른 멋이 있다. 요즘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게 한글로 쓴 것이 많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한문으로 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한글로 되어 있어 오가는 사람들이 이매창의 시를 쉽게 읊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시비의 형태 또한 여타 비와 달리 각을 두지 않고 자연석을 세워 놓은 것처럼 자연스럽고 인위적이지 않다.
의의와 평가
한시뿐만 아니라 현금과 가무가 빼어나 관련된 많은 일화를 남긴 이매창. 부안 현리 이탕종의 딸로 태어나 불과 38세로 불우한 생을 마친 부안의 명기지만, 개성과 주체적 삶을 구가했던 그녀의 예술혼과 문학적 성과는 조선 시조 4,000여 수 가운데에서도 빼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록 미천한 기생이지만 몸가짐을 바르게 하였으며, 당대 뛰어난 시인 묵객들과 함께 하였고, 허균(許筠), 이귀(李貴) 등과의 사귐이 있었지만, 촌은 유희경만을 사랑하면서 수절한 매창. 오늘날 전해지는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겨 시비에 새겨진 시들만으로도 조선조 기녀 문학의 일면을 접할 수 있기에 큰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당대 문학사적 의의와 함께 예향의 고장 부안의 문향에 한껏 취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허미자, 『조선조 여류 시문학 전집1』(태학사, 1988)
김형주, 『김형주의 부안 이야기』(도서출판 밝, 2000)
강서형, 「매창 한시 연구」(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부안군 신재생 에너지 테마파크[扶安郡新再生-]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백련리에 조성된 전국 최초의 신재생 에너지 복합 단지.
개설
부안군 신재생 에너지 테마파크는 테마 체험 단지, 실증 연구 단지, 산업 단지가 함께 자리하고 있어 연구 개발에서 생산, 교육, 홍보까지 종합적으로 이루어지는 복합 단지이다. 앞으로 새만금 부지에 1.19㎢ 규모의 풍력 시범 단지가 조성되고 8.26㎢의 신재생 에너지 부지가 조성되면 신재생 에너지 테마파크는 동북아 신재생 에너지 산업을 선도하는 첨병이자 거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건립 경위
부안군 신재생 에너지 테마파크는 연구, 산업, 교육 기능을 종합하여 저탄소 녹색 성장 정책에 부응하고, 신재생 에너지 산업을 전라북도의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조성하게 되었다.
변천
부안군 신재생 에너지 테마파크는 2003년에 지식경제부가 조성 계획을 확정했고, 2009년 5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2011년에 조성을 완료하고 가동을 시작하였다.
구성
부안군 신재생 에너지 테마파크는 테마 체험관, 실증 연구 단지, 산업 단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테마 체험관은 포디(4D) 영상관, 체험·홍보관 등 에너지와 관련된 다양한 시설들을 구비하고 최신 연출 매체를 활용하여 신재생 에너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교육 홍보 시설이다. 포디 영상관은 에너지의 소중함과 에너지 낭비의 경각심을 알려주는 입체 영화 「미래의 빛」을 상영하고 있다. 실증 연구 단지에는 4개의 국책 연구 기관이 입주해 실증 연구 성과 및 장비 활용, 현장 교육 등과 관련한 기업 지원 활동을 하고 있으며, 산업 단지는 실증 연구 단지와 연계해 신재생 에너지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현황
부안군 신재생 에너지 테마파크는 실증 연구 단지를 중심으로 태양광 실증 평가동, 풍력 시험동, 수소 연료 전지 시험동, 수소 스테이션, 태양광 성능 평가동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한국기계연구원 부설 재료연구소 풍력핵심기술연구센터, 한국산업기술시험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전북대학교 소재개발지원센터 등이 입주하여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실증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김진석 외, 『부안 신재생 에너지 단지 활성화 방안』(전북연구원, 2017)
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http://nrev.or.kr)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2025-02-10 작성자 명사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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