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저마다 자신의 문화,경험,계획,재능으로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피조물 보호에 협력할 수 있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찬미받으소서/14항)
1. 찬미받으소서(LAUDATO SI’).프란치스코 성인은“저의 주님,찬미받으소서.”라고 노래하였습니다.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아름다운 찬가에서 우리의 공동의 집이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 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저의 주님,찬미받으소서.누이며 어머니인 대지로 찬미받으소서.저희를 돌보며 지켜 주는 대지는 온갖 과일과 색색의 꽃과 풀들을 자라게 하나이다.”
2.이누이가 지금 울부짖고 있습니다.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우리는 지구를 마음대로 약탈할 권리가 부여된 주인과 소유주를 자처하기에 이르렀습니다.죄로 상처 입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폭력은 흙과 물과 공기와 모든 생명체의 병리 증상에도 드러나 있스비다.이러한 이유로 혹사당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땅은“탄식하며 고통을 겪고”(로마8,22)있습니다.우리는 자신이 흙의 먼지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창세2,7참조).우리의 몸은 지구의 성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 공기를 마시며 지구의 물로 생명과 생기를 얻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3. 50여 년 전에 세계가 핵 위기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던 무렵 성 요한 23세 교황께서는 전쟁 반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평화를 제안하는 회칙을 반포하셨습니다.교황께서는“가톨릭 세계”뿐 아니라“선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회칙‘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발표하셨습니다.이제 우리가 세계적인 환경 악화에 당면하였기에 저는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이를 대상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저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지속적인 선교 쇄신을 촉구하고자 교황 권고‘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을 썼습니다.이제 저는 특별히 우리의 공동의 집에 관하여 모든 이와 대화를 나누고자 이 회칙을 씁니다.
4. ‘지상의 평화’가 발표되고 8년이 지난 1971년 복자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생태 문제가 무절제한 인간 행위의 “비극적 결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자연을 불법 사용함으로써 자연을 파괴할 위험에 직면하고 인간 스스로가 도리어 이런 타락의 희생물이 될 위험도 없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또한 바오로 6세교황께서는 국제 연합 식량 농업 기구에도“산업 문명의 역효과에 따른 생태적 재난”의 가능성에 대하여 비숫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가장 뛰어난 과학적 발전,가장 놀라운 기술 능력,가장 엄청난 경제 성장은 참다운 사회적 도덕적 발전과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인간을 대적하게 될”것이므로“인간 행위의 근본적인 변화가 긴급하데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5.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이 문제에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보이셨습니다.당신의 첫 회칙에서 인간이 자주“자연환경을 놓고서 즉각적 이용과 소비에 유익한 것 말고는 다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듯”보인다고 경고하셨습니다.나중에 교황께서는 세계적인 생태적 회개를 요청하셨습니다.또한“참다운 인간 생태론의 윤리적 환경을 보호하려는‘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하셨습니다.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세상을 맡기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 생명 자체가 많은 타락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선물이기에 인간 환경의 파괴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우리의 세상을 보호하고 증진하려는 모든 노력은”생활 양식,생산과 소비 양식 그리고 오늘날 사회를 다스리는,이미 확립된 권력 구조의 변화를 요청합니다.참다운 인간 발전에는 도덕적 특성이 있습니다.이는 인간에 대한 온전한 존중을 전제로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또한“우리는 각 사물의 본성과 그것이 질서 있는 체제,정확하게 말해서‘우주’에서 차지하는 상호 연관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그러므로 현실을 변화시키는 인간의 능력은 하느님께서 최초로 주신 본래의 선물을 바탕으로 발전되어야 합니다.
6. 저의 전임자이신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도“세계 경제의 역기능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하고,환경 존중을 보장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 성장 모델의 수정”을 제안하셨습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세상을 그 일부 요소들만 따로 분석할 수 없다고 보셨습니다.‘자연이라는 책은 하나이고 나눌 수 없는 것으로“환경,생명성,가정,사회관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그래서”자연 훼손은 실제로 인간 공존을 실현하는 문화와 긴밀히 관련“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우리가 무책임한 행동으로 자연환경을 심각하게 훼손시킨 사실을 인정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사회환경도 해를 입었습니다.자연환경과 사회 환경의 훼손은 모두 궁극적으로 동일한 악 때문에 발생하였습니다.이 악은 바로 우리의 삶을 이끌 만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기에 인간의 자유는 무한하다는 생각입니다.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잊었습니다.“인간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아닙니다.인간은 자신을 창조하지 않습니다.인간에게는 정신과 의지뿐 아니라 본성도 있습니다.”아버지다운 마음으로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피조물이 손상을 입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라고 우리에게 촉구하셨습니다.곧“우리 자신이 최종 결정을 내리고 모든 것을 그저 우리의 소유물로 여겨 우리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피조물이 손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높은 법정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 자신 이외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면 피조물의 착취가 시작됩니다.”(찬미받으소서 개정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어리석은 자 마음속으로
‘하느님은 없다’ 말하네.
모두 타락하여 불의를 일삼고
착한 일 하는 이가 없구나.
(시편53,2)
“어리석은 자”의 마음속에는 어리석은 확신이 있다.그들은 그릇된 세계관을 가지고 창조주 하느님이 세상 안에 세워놓은 정의의 질서를 인식하지 못한다.어리석은 자들은 하느님이 이 세상 안에서 어떻게 활동하시는지 안다고 확신한다.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볼 수 없기에 하느님이 어떻게 행하시는지 생각하지 못한다.“마음”은 의지작용의 중심이다.이곳에서“하느님은 없다”는 단정이 이뤄진다.“하느님은 없다”는 것은 하느님이 세상 안에 현존하지 않으신다는 선포다.그러나 사제 실비아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하느님은 아무것도 보지 않으신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하느님에게서 눈을 빼앗아 버리고,심지어 그분에게서 실체를 제거해 버린다.왜냐하면 그들은,하느님이 아무것도 보지 않으신다고 말 할 때 그분이 아예 존재하지 않으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비록 범죄는 이성과 결합하지 않기 때문에 악행은 이성에 바탕을 두지 않지만,나는 불신의 죄보다 더 이성적이고 몰상식한 죄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인은‘타락하여 불의를 일삼는 이들’을 어리석은 자와 연관시킨다.이리석은 자는 본래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가 아니고 의도적으로 완고하고 악의적인 행위들을 골라서 하는 자다.구약성경에서‘어리석음’을 뜻하는 히브리말은‘나발’이고,대표적인 어리석은 인물로는 다윗과 갈등을 일으킨 나발이 있다.그는 부유하고 권력이 있었지만 건방져서 자신의 부와 권력을 남용했다(1사무25,2-42참조).예수님은 “어리석은 자야,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루카12,20)라고 말씀하셨다.
시편53편의 전체적 의미:시편53편은 14편에 이어 동일한 메시지를 시편집에서 두 번이나 전할 정도로 그 의미가 중요하다.이 시편은 악행이 만연한 곳에서 하느님은 현재 활동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활동하고 계신다는 강한 확신을 표현한다.“하느님은 사람들이 억압받는 바로‘거기’(6절)에 계신다.거기서 그분은 악인들에 대항하는‘전사’로서,그리고 악인들로부터 심하게 위협받는 사람들의 구세주로서 계신다”(쳉어)어리석은 자들은 실제로‘하느님의 현존이 없다고’고 생각한다.그들은 하느님이 하늘에서 굽어살피시고,하느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인간들을 비웃으신다는 사실을 무시하려한다.그러면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빵처럼 먹어 삼키고자 착취한다.그러나 하느님은 그들을 물리치실 것이다.이 시편은 하느님이 인간세상의 부패와 하느님에 대한 불신을 종식시키실 것에 대한 신뢰와 열망을 표현하다.이 시편을 통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착취하는 데 참여하고 있지는 않는지 깊이 성찰하도록 도전을 받는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시편42-89편/바오로딸/전봉순 著)
“공의회 폐막 이듬해에 주교품에 오른 김수환 추기경과 마찬가지로,공의회가 마지막 회기를 준비하던 1965년 6월에 주교품에 오른 지학순 주교 역시‘공의회의 사람’이긴 마찬가지였다.그는1977년 8월에 열린 인천교구 사제단 주최의 ‘정의구현을 위한 특별기도회’의 강론(“교회의 사명과 쇄신을 생각한다”)에서 공의회의 의의를 이렇게 정리했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의 근본정신은 교회의 사명이 인류 전체와 사회 각층에 미친다고 하는 데 있습니다.즉 구제해야 할 것은 인간이며 개혁해야 할 것은 인간 사회인 것입니다.따라서 교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은 개체로서의 인간,전체로서의 인간 즉 인간 자체인 것입니다.실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2천년 가톨릭의 역사가 이룩한 위대한 정신적인 혁명인 것입니다”(2:324)그는 또 “제2차 바타칸공의회와 교도권”이라는 강론에서,공의회가“실로 교회 2천년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대사건이었고,교회혁신의 위대한 진보”였다고 평가했다.지 주교는 또“현대 사목의 동향과 미래 교회의 구조”라는 제목의 강론에서 공의회를‘그리스도에게 향하기 위한 교회의 비중심화 (非中心化)’,‘各地 주교에게 향하기 위한 로마의 비중심화’,‘하느님의 민중(백성)에게 향하기 위한 성직자의 비중심화’,‘他그리스도 교회 및 타 諸 宗敎로 향하기 위한 가톨릭교회의 중심화’,‘세계와 인간문제에 향하기 위한 교회 관심의 비중심화’,등으로 설명하기도 했다.”(본문254~255발췌)
*영화 이야기
라스트 미션 The Mule
-2018년 개봉한 미국의 범죄영화로 감독은 클린트 이스우트
영화 ‘라스트 미션’은 평생 가족을 잘 돌보지 못한 늙은 가장의 후회와 그런 자신의 잘못을 만회 하기 위한 선택과 새로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실제로 마약 운반책을 하다가 87세의 나이에 검거된 레오 샤프의 실화를 바탕으로 원제는 ‘The Mule’로, 속어로는 ‘마약 운반책’을 뜻하기도 한다.
시간의 소중함과 어른으로서의 책임, 어느 분의 한줄 평인 “클린트 이스우트의 얼굴이 평화다”가 떠오르는 영화. netflix로 감상 가능.
덜어내고 털어내고
비워낸다 해서
사람이 가져야 할
멋을 잃게 되거나
삶의 맛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의 멋
삶의 맛은‘채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비움’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 길은 진정으로
나 되기 위해 걷는 길이다
그러니 빨리 걷는 길이기보다
느리게 걷는 길이고
여럿이 더불어 걷는 길이기보다
홀로 고독하게 걷는 길이다
물론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고독하지만
쓸쓸하지 않게 말이다
어쩌면 사람은 나이 들어서
죽는 게 아니라
점점 편하게
주저 앉으면서
조금씩 사그라져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의 멋/정진홍)
늘 멋진 날 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