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에 귀의하오며,
리투아니아 출신 원보스님은 복숭아빛 발그레한 볼과 훌쩍 크신 키로
부끄럼 많고 여릿여릿한 사미니 스님입니다.
강원 방학을 맞아 화계사에 머무르던 스님은 한국 비구니 은사스님을 따라 만행길에 올랐습니다. 먼저 부산 부근을 방문하셨습니다. 은사 스님 도반이 머무시는 수행처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스님은 신도도 없으시고 오직 수행만을 하시는 분이시므로 도량을 따뜻하게 할 연료를 가지고 있지 않으셨습니다.
마침 스님들께서 이 수행처를 방문했던 날이 올해로 가장 추운 영하 10도, 체감온도 20도의 날씨를 보이던 때였는데... 일년 내내 온기라고는 맛을 못 본 방에서는 뼈를 시리게 하는 냉기가 휩싸고 돌았습니다.
어리신 사미니 스님은 어쩔 줄 몰라 가지고 간 옷이란 옷은 다 껴 입고 이불도 둘둘 감아 쓰고 우두두~~ 떨고 있는데 오랜만에 만나신 두 분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밤새도록 편안하게 앉아 도란도란 그간의 회포를 풀고 계셨습니다.
"원보야, 내일은 시내로 탁발을 나갈란다..."
은사스님 말씀에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미니 스님은 생전 처음 해보는 탁발에, 온 몸을 엄습하는 추위에 걱정이 태산이라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추운 곳에서 밤을 지내야 한다니... 게다가 이 추운 날 탁발이라고? 아마도 이런 상황이 연옥의 일종이라고 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른 아침, 길을 나섰습니다.
먼저 자갈치 시장에를 들어섰습니다.
안 그래도 엄청 훌쩍 큰 키에 서양 사미니 스님이니 요죽 눈에 뜨입니까!
게다가 당당하고도 우렁차며 큼지막한 목소리의 은사스님의 "관세음보살!..." 정근과 목탁 소리...
가장 큰 발우를 얼굴 높이로 들고 부지런히 은사 스님 뒤를 따랐지만
시간 나면 전국을 걸어서 몇 달씩 만행하신 실력가, 은사스님의 잰 발걸음을 따를 수야 없었겠지요.
순박하지만 억센 아줌마들의 여러 가지 질문들이 쏟아졌고, 줄줄 따라 붙는 꼬마들에, 짐수레들이 거치적거린다고 고함을 질러 대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참자, 참자, 이것도 수행이다. 나는 수행승이다. 너무나 수행이 하고 싶어서 그 멀리에서 여기 대한민국을 찾아 오지 않았는가? 곧 끝날 것이다... 비지땀이 흐르고 얼굴이 화끈 거렸습니다.
1시간이 흘렀습니다. 목이 말라 옵니다. 은사스님 얼굴을 쳐다 보았습니다. 전혀 변화됨 없이 계속 목탁을 치시며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십니다.
아이구우... 한숨을 크게 내쉬어 봅니다.
2시간이 흘렀습니다. 높이 들고 있는 발우가 자꾸 쳐져서 내려 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스님, 이제는 되었지요? 돌아 가시지요..."
"아직은 아니다... 관세음보살!..." 역시나 미동도 없으십니다.
3시간, 4시간이 경과하였습니다.
거의 울다시피 돌아 가시자고 간청을 드립니다.
여전히 끄떡도 않으시고, 아직은 아니다! 그러십니다.
앞길을 막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지고 알아 들을 수 없는 고함 소리가 귓전을 괴롭힙니다.
은사스님 뒤에 바싹 붙었다 싶다가도 어느 새 저만치 떨어져 홀로 있는 자신을 발견 하고는 재게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5시간이 경과하였습니다. 스님의 눈치를 살핍니다. 전혀 변함이 없으십니다. "관세음보살!" 정근 소리 또한 아직도 힘이 넘칩니다.
이제는 포기를 합니다.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습니다.
오직 할 뿐! 입니다.
시계를 초조하게 드려다 보지 않았는 데도, 6시간이 흐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딱! 걸음을 멈추신 은사 스님께서,
"이만하면 되었다. 돌아 가자" 그러셨습니다.
뛸 듯이 기뻤습니다. 탁발 동안 괴로웠던 피곤도 잊고 한달음에 달려 어제 묵었던 가난한 은사스님 도반스님 절에를 돌아 왔습니다. 정말 훈훈하였습니다. 6시간 이상 칼바람을 맞으며 바닷가 저자 거리를 헤매던 때에 비하면, 이 곳은 따뜻한 훈풍이 도는 극락이었습니다. 저녁 공양과 예불을 마친 스님은 아무 생각도 없이... 근심 걱정 모두 잊고 그대로 달콤하고 안온한 꿈나라로 들어 갔습니다.
어제와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도반스님도 그대로이고, 신도분이 어디서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요, 군불을 따뜻하게 지핀 것도 아닙니다. 날씨는 어제보다 더 추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만 원보스님 마음 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으며 잠이 드는 스님 입가에는 슬며시 미소가 감돌았습니다.
춥다, 덥다, 또 춥다...()...
첫댓글 ^^
하하하... 뭔가 마음을 때리고 지나갑니다. 모든건 마음먹기 나름인걸요....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