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자회견] 연대와 집회로 전장연과 함께하는 시민사회 행동 3일차
차별은, 이제 그만! 혐오는, 쓰레기통에!
모두의 존엄과 평등의 길을 열어가는 전장연과 함께 투쟁하는 사람들의 기자회견
#발언 1 -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전장연의 투쟁은 어떠한 방해 속에서도 멈춘적이 없다.공고한 차별의 현실이 여전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인 권리행동을 해야 한다. 요새 싸움은 기세라고 하지만, 장애인권운동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고, 멈출 수 없고,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기세로만 하는 싸움이 아니다. 차별의 현실을 바꾸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권리행동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정부와 공권력은 차별의 현실을 개선하기는 커녕 정당한 권리 행동을 오히러 불법 행동이라고 하면서 지속적으로 갈라치기하고 있다. 이러한 정당한행동에 대한 서울교통공사 지속적인 방해행동은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한다. 당신들이 지금 주장하는 시민들의 불편에 대해서 지금 취해야할 것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막아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개선할 수 있기 위한 방법 찾기다. 이렇게 치졸하고 저열하게 시민의 정당한 행위를 막고 방해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역할이 아니다.
우리가 왜 같이 싸우고 연대하는지 궁금해할 것 같다. 그 동안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사회적 변화는 시민들의 연대의 힘에서 비롯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마주하는 구조적 차별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직면해 있는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권리행동과 함께 시민들의 연대해서 가능했다. 연대의 과정은 서로의 운동을 배우고, 경험하고 차별의 양상과 문제가 무엇인지 서로 알아가면서 가능했다. 이러한 연대의 힘은 확장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존엄을 위한 투쟁은 수많은 경로로 확장한다. 이 연대의 확장이 투쟁이 멈추지 않았고, 멈추지 않고 있고, 멈추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기대를 이어준다. 그 어떤 혐오와 차별에도 맞서겠다는 굳건한 의지다.
전장연 동지들이 나아가는 길에 차별금지법제정연대도 끝까지 함께 하겠다. 우리의 연대가 차별과 혐오를 끊고 평등으로 나아갈 것이다. 혐오가 아닌 평등이 이긴다.
#발언2 - 고운(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평등열차를 타기 위해 모인 이들이 함께하는 세 번째 아침입니다. 아니, 세 번째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2년 전 12월 3일부터 전장연은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날을 함께했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애인의 이동권,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롭게 이동하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함께 싸우고 서로를 지켜왔습니다. 그 시간 동안 사랑하는 동료를, 친구를, 가족을 잃어야 하기도 했습니다.
끝없는 싸움이 계속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지하철을 타겠다는 것, 버스를 타겠다는 것입니다. 시설 바깥에서, 집밖으로 나가서, 교통카드를 찍고 대중교통을 타서 밥을 먹고 은행에 가고 극장에 가고 병원에, 공원에, 마트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고 관계를 맺고 일상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 너무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예산이 없어서? 그렇다면 예산이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증액하지 않는, 승인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장애인의 일상은 후순위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그냥 집에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 시설에서 살면 되는 것 아니냐. 왜 굳이 나오려고 하느냐. 왜 굳이 뭘 하려고 하느냐. 가만히 있어라. 우리는 이를 차별이라고 부릅니다. 아주 선명한 차별입니다. 외면하려고 해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는 차별입니다.
차별에 저항하면 혐오의 낙인이 찍히곤 합니다. 무엇보다 대책 마련을 위해 힘써야 할 서울시장은 출근길 행동을 두고 ‘사회적 테러’라고 합니다. 지하철에, 버스에 오르려는 장애인을 경찰이 가로막습니다.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시민의 불편을 초래한다고, 갈라칠 것이 없는 문제를 갈라치기 합니다. 보이지 말아라. 눈에 띄지 말아라. 우리는 이를 혐오라고 부릅니다. 아주 명백한 혐오입니다. 국가가, 지자체가 나서서 혐오를 일삼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역시 일상 속에서 차별과 혐오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동성 부부의 혼인신고는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수리되지 않습니다. HIV/AIDS 감염인의 섹스는 전파매개죄라고 합니다. 트랜스젠더가 수술 없이 성별을 인정 받고 필요한 의료적 조치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은 극히 희박합니다. 동성 군인이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해도 추행이라고 합니다. 학생인권조례는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폐지의 압박에 시달립니다. 이것이 바로 차별이라고, 혐오라고 싸우는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존중은 하지만 눈에 띄지는 말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숨어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동정을 받아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 우리는 불평등한 세상을, 혐오와 차별이 당연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무섭습니까? 무엇이 두렵습니까?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성소수자가 광장에 나와 행진을 하고, HIV/AIDS 감염인이 섹스를 하고, 게이 군인이 군 복무를 하고, 동성 부부가 혼인신고를 하고, 퀴어 청소년이 숨지 않고 학교에 다녀도 세상은 망하지 않습니다. 평등은 해롭지 않습니다. 평등한 세상은, 소수자가 행복한 세상은 그렇지 않은 세상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 즐겁고 이롭습니다.
평등을 향한, 모두가 존엄한 세상을 향한 역사는 우리의 평등열차를 타고 전진할 것입니다. 그 누구도 남겨두지 않고, 모든 이의 해방을 꿈꾸며 끝까지 전진할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면 외우십시오. 차별은 나쁜 것, 평등은 좋은 것이라고 외우십시오. 정치는 하루 빨리 이 평등열차에 탑승하시길 바랍니다. 차별은, 이제 그만! 혐오는, 쓰레기통에! 투쟁!
#발언3 - 몽(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왜 차별을 이제 그만 멈춰세워야 할까요?
장애인을, 우리 모두를 권리를 가진 인간에서 삭제하기 때문입니다.
왜 동정을 이제 그만 집어쳐야 할까요?
같은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한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혐오를 지금 당장 쓰레기통에 내던지자고 할꺼요?
평등하게 살아보자고 함께 외쳐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차별을 멈춰세우고, 동정을 걷어내고, 혐오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늘 어둠을 헤쳐 왔습니다. 장애인권운동은 우리에게 드리운 어둠이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구축된 사회, 장애인과 동등한 시민으로 관계맺을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 때문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었습니다.
차별의 구조를 바꿔내기 위한 힘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바로 장애인, 바로 차별받는 소수자들, 바로 함께 연대하는 이들인 우리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목소리마저 짓밟겠디고 합니다. 국가가 앞장서서 장애인과 장애인권운동을 가르고, 성실한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가르고, 정상 시민과 성소수자를 가르면서, 바로 그 장애인, 여성과 노동자 시민, 성소수자 시민의 투쟁으로 쌓아올린 권리에 대한 공격을 허용합니다.
공공의 거점에 대해 시설관리권을 운운하는 서울교통공사, 시민들의 모일 권리를 불법이라고 우기는 황당한 경찰, 돈 벌기 위해 시위에 참여한다고 거짓선동을 하는 정치인들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합니까.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지만 전장연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고, 성소수자들이 하는 행사가 약자로서 배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행정 관료를 언제까지 참아줘야 합니까.
우리가 끊임없이 항의하고 이유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렇게 해도 된다”는 규범을 제시하는 이들 때문입니다. 국가가, 공권력이, 행장이 앞장서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거나 혹은 그에 대한 제지를 방치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바로 이 지하철 승강장이라는 현실에서 목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차별과 혐오는 자기들이 다 앞장서서 선동해놓고, 그 감당은 시민들의 일상에 떠맡겨놓았으면서, 우리가 대항할 무기인 우리의 목소리와 연대까지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 동등하게 교육받고 노동할 권리,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시민으로 살아갈 권리를 나중으로 미루는 국가때문에 우리 중 누군가는 먼저 나서서 지하철을 탑니다. 국가가 내팽개쳐둔 그 역할을 우리 스스로가 하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저는 전장연 동지들과 함께 엉망진창인 이 시스템을 부수고, 누구도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기필코 만들고 싶습니다. 시혜가 아니라 평등할 권리를, 배려가 아니라 동등한 존엄을 외치며 싸워온 장애인권운동과 함께, 열차에 탑승하는 시민들과 함께 한국사회 차별이라는 어둠을 함께 헤쳐나갑시다.
#발언4 - 길벗(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안녕하세요, 전장연과 함께 투쟁하고 있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길벗입니다.
서둘러 속도를 내어도 바쁜 출근길, 언젠가 그 길에 함께 오르기 위해 지하철이나 버스 안이 아닌 승강장 앞에서 아침을 여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도 여러분처럼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가려는 시도들은 번번이 승강장 앞에서 가로막히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들과 함께 승강장 앞을 나서기 위해, 함께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자꾸 기다리고 또 멈추게 됩니다. 눈앞의 에스컬레이터와 계단과 턱에, 항상 만원인 엘리베이터에, 크게 벌어진 승강장 사이 틈에, 보기에도 좁은 공간에, 사용자를 고려 않고 설치된 장애인화장실 앞에. 주저하기도 하고 눈치도 보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나아가보려고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안전을 해치는가요? 여러분을 불편하게 만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 동료들의 움직임은 시민 여러분의 안전을 전혀 해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불편도 초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안전하고 편리하고 평등한 공공시설이 될 수 있도록 요구하고 또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지요.
이는 마땅하고 당연한 요구입니다. 이들은 시설로부터 나와 존재의 자유를 누리고, 이동권과 교육권, 노동권,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오늘날까지 생존하며 싸워온 이들입니다. 이 권리들은 장애인만이 누리는 게 아닙니다. 광화문 사거리의 횡단보도, 지하철 역사의 엘리베이터, 저상버스도 모두 이들이 이루어냈습니다.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사회가 더 평등하도록 변화를 촉구해온 이들입니다. 우리 모두의 권리를 위해, 한국사회의 평등을 위해 여기 전장연 동지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한편 이들을 향해 막말을 쏟아내며 혐오로 선동하는 정치권이야말로 규탄의 대상입니다. 기본권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소수자를 혐오 선동으로 번제 삼아 시민들을 싸움 붙이고, 뒷짐 진 채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오늘날의 정치 말입니다.
사실 성소수자 인권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번 ‘나중에’로 밀려나며 없는 존재 취급에 맞서 온 성소수자 운동은 장애 운동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성소수자 운동은 ‘우리가 여기 있다’는 존재의 가시화, 당사자와 지지 커뮤니티의 조직과 운동, 그리고 다른 소수자들과의 연대로 쓰인 역사였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혼자 싸워오지 않았습니다. 장애인이자 성소수자, 여성, 노동자, 그리고 그 경계와 틈에 겹쳐 있는 수많은 이들이 존재하듯이, 이 역사는 많은 정체성들이 공존하는 우리 모두의 투쟁이기도 했습니다.
보다 나은 세상으로 앞당기기 위해 함께 평등열차에 탑시다. 평등버스에 탑시다. 함께 길을 거닐읍시다. 장애인권을 위해,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모두의 평등과 존엄을 위해 주저 말고 함께 해주십시오. 차별과 혐오, 긴장과 경계가 만연해 있는 이 사회에서 우리의 여정은 항상 모두에게 열려 있을 것입니다. 함께 투쟁합시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