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농구스타 박찬숙 씨가 오늘 국가인권위원회에 ‘고용차별’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저 또한 이미 밝힌 대로 유승희 의원과 함께 그 자리에 동행했습니다.
박찬숙 씨가 체육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반영한 듯 취재진 50여명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사진과 취재기사도 속속 온라인 뉴스사이트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도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걱정이 듭니다. 자칫 박찬숙 씨의 본뜻이 왜곡될 우려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무엇이 문제의 핵심인지를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박찬숙 씨가 이 문제를 국가인권위원회로 가져간 이유 말입니다. 일부 시각처럼 단순히 우리은행 감독 면접에서 탈락한 개인적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까요.
박찬숙 씨가 진정서를 제출하면 밝힌 회견문 몇 대목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저도 선수시절, 남자감독에게 차마 말 못할 고민이 생길 때마다 혼자 속으로 앓아야만 했습니다. 고민을 나눌 여자감독, 여자코치 한명 없는 상황에서 오직 동료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만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대다수의 여자선수들이 그때의 제 처지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작금의 사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안으로, 여성스포츠분야에서 여성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재 여성프로농구연맹 6개 구단 중 여성감독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10년 역사의 여자프로농구가 이제까지 여성감독을 단 한명도 배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스포츠계의 심각한 여성고용 불평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가 1차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도 여성차별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국가인권위원회에 고용차별 진정서를 내기까지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우리은행 감독선임 과정에서 제가 받은 차별이 저 개인의 문제로 끝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저를 이 자리까지 오게 했습니다. 제2, 제3의 여성 피해 선수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하여, 또 지금도 열심히 코트를 뛰고 있을 여자후배들에게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만들어주고자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박찬숙 씨가 인권위 진정을 통해 추구하는 것은 ‘개인적 이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박찬숙 개인으로 보자면 이번 일이 오히려 남성중심의 농구계에서 ‘미운털’이 박히는 계기로 작용할 공산이 더 클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제가 소속한 민주노동당에 여성할당제를 도입하고자 치열한 ‘당내투쟁’을 벌인 바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30% 할당’을 관철하기 위해 ‘왕따’를 당하면서 남성 중앙위원들과 싸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박찬숙 씨가 용기를 내 마주하고자 한 것은 ‘구조적 문제’였던 것입니다. 10년이 지나도록 프로 여성농구단에 여성 지도자가 단 한 명도 배출되지 않았다는 객관적 지표가 보여주는 것이 성차별이 아니고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고용차별’을 굳이 ‘박찬숙의 실력’ 문제로 돌려보려는 이들은 ‘박찬숙이 아니라도 젊은 시절 실업팀과 프로팀에서 주목받으며 뛰었던 그 많은 여자선수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다는 말인지’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입니다. 이번 일이 체육계의 성차별, 거기에서 필연적으로 불거지는 성추행 관행을 뿌리 뽑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많은 이의 성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