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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내 아버지 집에.
누가복음 2장 40절-52절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어떻게 자라셨을까요?
요즈음 젊은 부부들은 아기들이 자랄 때 육아일기를 씁니다. 사진도 많이 찍어 줍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기록한 말씀은 없을까요?
궁금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하여 대부분 침묵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과 함께 성장했던 예수님의 형제 즉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마저도 예수님의 성장 과정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으므로 궁금함이 더해집니다. 그러나 다행히 사 복음서 중에서 유일하게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40절입니다.
“아기 예수는 자라가면서 강하여 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예수님께서 아기로 태어나시고 12살까지의 전 과정을 이렇게 한 줄로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12년의 성장 과정을 이렇게 짧게 기록하여 아쉽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성장을 친히 주관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이 자랄 때에도, 예수님처럼 ‘튼튼하고 건강한 육체와 날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녀야 할 지혜가 하나님께서 친히 충분하게 채워주시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양육하신 예수님은 어느덧 12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맞이한 명절에 있었던 이야기가 오늘 본문입니다.
유대인들의 관습에는 절기, 즉 명절이 되면 예루살렘 근처의 15마일(약 30km)에 사는 12살 이상의 남자들은 모두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소년 예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들뜨셨겠습니까? 우리도 어린 시절에 서울에 가는 것을 기대하고 부풀었던 마음들을 생각해 보시면 더 이해가 잘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마 소년 예수님도 웅장한 성전도 보고 싶고,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유대 나라의 가장 큰 도시의 모습을 보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거기에다 명절에는 산헤드린의 대학자들이 성전 뜰에서 강의하게 되는데, 예를 들자면 사도바울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이라는 대학자들의 공개 강의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에 대해서 궁금했던 것들을 훌륭한 랍비들을 통해서 해결 받는 기막힌 기회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가족들도 예루살렘에서 명절을 잘 지내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부모들은 얼마나 놀랐을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 자녀들을 키우다가 잃어버렸던 경험이 있는 부모들은 충분히 이해하실 줄 압니다.
한편으로 자기 아이가 같이 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하루 동안이나 몰랐다니 예수님의 부모들은 얼마나 무관심한 사람들인가? 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명절이 끝나면 삼삼오오 떼를 지어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먼저 여자들이 가고 남자들은 며칠 후에 뒤에 따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요셉과 함께 있는 줄 알았던 것이고, 요셉은 마리아와 먼저 간 것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예수님이 자기들과 함께 있지 않았던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깜짝 놀란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아 사흘 동안이나 걱정하면서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겪었을 초조한 마음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애를 태우고 찾은 예수님은 어이없게도 성전에서 학자들의 강의를 듣느라고 정신이 팔려있는 것입니다.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고 하시며 묻기도 하시고”
여기서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셨다”는 말씀은 유대 나라의 숙어로써 “배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이르기를 “오늘 선생님께 많이 질문하고 오너라.”라고 인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란 것은 같이 앉아서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어린 예수가 강의를 듣는 모습이나, 질문하는 내용이 나이에 비해서 조숙했던 것은 물론이고, 사뭇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한마디로 ‘멍’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튼튼하게 하시고, 지혜가 충분하게 친히 양육하셨으니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아들 예수를 찾느라 사흘이나 애간장을 태웠던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강의 푹 빠져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자랑스럽다’라고 느낄 기분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자마자 마리아는 “얘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걱정하도록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걱정하며 너를 찾았는지 아느냐?”라고 책망했습니다.
아마 화가 나서 예수님의 어깨를 잡고 흔들면서 나무랐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뜻밖의 반응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정말 어이없는 대답이었습니다.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는 정말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들 부부는 이 대답이 마음에 쓰였지만 마리아는 마음에 새겨 두게 되었습니다.
그 부부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용을 누가복음 1장 30절에서 33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서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할 때, 천사들이 전하여 준 말입니다.
그렇다면 기록자 누가가 오늘 본문을 기록하였던 의도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 알지 못하셨습니까?” 라는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고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더 놀라운 것은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아심에도 불구하고, 그 후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까지 18년 동안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버지를 따라 목수의 일을 배우고 집안을 도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아니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그렇게까지 겸손하실 수 있으실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화려하게 세상에 등장하셔서 놀라운 일들을 보이시면서 내가 분명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보여 주셔도 할 말이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겸손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예수님은 목수 일을 아주 잘 하셨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말이나 소에게 씌우는 멍에를 잘 만드셨는데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세상의 위인전에서는 어릴 적부터 보통 사람들과 너무나 달랐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아셨지만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까지는 부모 아래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혔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를 예수 믿게 해 주신 이연길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말씀은 “하나님께 질문을 많이 하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 질문을 많이 하십시오.
하나님께 많이 배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 뜻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물으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배우기를 싫어합니다.
더구나 싫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나는 더 이상 배우지 않아도 예수 잘 믿을 수 있다” 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사람에게 가르칠 스승은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아니 하나님이시면서도 배우고 익히셨습니다.
하나님의 일 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일도 철저하게 배우고 익히셨습니다.
귀하고 기막힌 일만 배우신 것이 아니라, 힘들고 천한 일도 겸손히 배우셨습니다.
또한 권력 있고, 유식하고, 유능한 부모 밑에서 자란 것이 아니지만,
그 분들 밑에서 철저하게 아들로서 순종하며 배우고 자라셨습니다.
성급하고 조급하지 않게 하나하나 배우시고, 철저하게 행하셨습니다.
가난한 부모를 돕기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때를 30년 동안 묵묵히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나 기다리지 못합니다.
일확천금을 계획하는 것은 물론, 허황된 꿈도 꾸지 마시고 서두르지 마십시다.
신학교도 1년 4학기가 있답니다. 속성과정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단보다 더 무모한 것이 무인가 신학교라는 분도 있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겸손히 때를 기다리고 배우셨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나이 30세면 지금으로 말하면 50세 정도 된다고 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바느질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소정의 과정과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더욱이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씀은 생각지도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절대 축복하실 수 없는 방법입니다. 개처럼 벌었던 사람은 개같이 쓰는 법입니다. 정승같이 벌었어야 정승같이 쓸 수 있습니다. 과정이 나쁜데 결과가 좋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들은 한결같이 과정을 뛰어넘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철저하게 겪을 것 다 겪게 하시고, 당할 것 다 당하게 하시고 난 후에 쓰십니다.
대충 쓰임 받는 것은 상상치도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겸손해지고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거하여야 할 줄 알지 못하셨나이까?”
아버지를 바꾸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나사렛에서 목수 일을 하시면서 자신을 힘겹게 양육하신 아버지 요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자기를 보내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진정한 아버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확실하게 진정한 아버지를 알게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 이미 육신의 부모의 자식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식으로 아버지가 바뀌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양육 받으시고, 자라가시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는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는 어떤 일에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육신의 부모들의 은혜를 잊어버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친히 우리들의 육신의 부모를 택하시고 지명하셨습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기로 계획하시고, 가장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나님 대신 양육하여 주실 분들을 친히 택하셨습니다.
그분들께 우리를 지금까지 양육하게 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여러분을 눈물로 기도하시고, 땀 흘려 양육하신 부모님들께 진정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하여 부모를 택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합당하게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 명령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말씀하신 계명 중 제일 먼저 하신 말씀입니다.
더구나 “그리하면”이라고 조건까지 붙여서 분명하게 명령하셨습니다. 이 계명을 지키면 반드시 그렇게 하시겠다는 의지의 약속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약속까지 하시면서 명령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의 부모를 부모로 지명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공경하시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것이 감사하시다면,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하신다면,
하나님 대신 우리를 양육하시느라 애쓰시고, 수고하신 부모님들을 진정으로 감사하면서 존경하면서 사랑합시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진정으로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년 수가 더 해 감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심에 따라, 아버지 하나님과 육신의 부모님을 더 사랑하여 하나님께 그리고 사람에게도 더 사랑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진정으로 사람의 자식답게 ‘참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