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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여]
1. 핀란드 , 헬싱키 시내 / 낮 (타이틀 백 몽타주)
나른한 음악이 흐르는, 슈퍼마켓의 생활 용품 코너.
시선을 한쪽에 고정한 채 서있는 상민.
두툼한 코트에 어그 부츠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다.
진열대의 바디 케어 제품들을 꼼꼼히 살피다가 하나를 집어 들고 설명문을 보지만,
핀란드어라서 읽지 못하고 난감해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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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중인 오래된 교회의 공사 현장.
안전모를 쓴 기홍, 핀란드인 동료와 긴 복도를 걸으며 진행 상황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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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 직원에게 이야기를 하는 상민.
영어와 몸짓을 섞어 질문을 해보지만,
직원이 영어를 못 알아듣는 듯 핀란드어로 뭐라 말하고는 다른 직원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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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한가운데에 홀로 선 채, 낡은 목재 기둥을 세심하게 만져보고 있는 기홍.
그 기둥을 따라서 시선을 위로 하면, 돔 형식의 높고 우아한 천정.
복도 쪽에서 자신을 찾는 동료의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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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 앞 거리.
낮 시간이지만 마치 새벽 무렵처럼 어스름한 하늘 (극야 현상).
오랜 동안 쌓인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전형적인 북유럽 도심 풍경.
상민이 쇼핑 봉투를 들고 슈퍼마켓 정문을 나선다.
같은 시간, 맞은 편 길가에 멈춰 서는 SUV.
차에서 내려 카페테리아로 들어가려던 기홍, 무심코 길 건너편의 상민을 본다.
새로 산 담배를 뜯어서 불을 붙이고 발걸음을 옮기는 상민.
얼어붙은 눈길을 거침없이 오가는 현지인들과는 달리 걸음걸이가 어설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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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테리아.
식판을 들고 사람들 사이에 서있는 기홍과 동료.
음식을 담아주는 직원이 안면이 있는 듯 두 사람에게 웃으며 인사한다.
핀란드어로 음식 주문을 하는 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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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달리는 기홍의 차.
동료/ (영어) 아직도 고민 중?
기홍/ (끄덕이며) .....
동료/ (영어) 하긴. 여기 사는 게 좀 답답할 수도 있겠다. 이년이나 있었으면.
기홍/ (영어) 그런 건 아냐. 일도 잘 맞고, 우리 가족한테도... 여기가 괜찮아.
동료/ (영어) 잘됐네 그럼. 이참에 한국 지사 쪽하고 상의해서 아예 이쪽으로 옮겨오지
그래.
그때, 차 창밖으로 - 쇼 윈도우 디스플레이 앞에 서서 열심히 메모를 하는 -
상민의 모습이 스쳐지나가자 룸미러로 흘깃 그녀를 보는 기홍.
동료/ (핀란드어) 어, 조심, 조심!!!
시선을 돌린 기홍이 놀라며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는다.
눈길에 미끄러지며... 가까스로 멈춰 서는 차.
큰 개를 데리고 길을 건너던 노인이 차 앞에 서서 기홍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당황하며 멋쩍은 표정을 짓는 기홍.
그 거리의 다른 쪽.
상민이 소란스러운 소리에 기홍 쪽을 잠시 돌아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쇼 윈도우로 돌린다. 차가운 바람에 뺨이 발그레해진 상민, 휴대폰으로 디스플레이 사진을 몇 장 찍고 돌아서서
뛰어가 노면 전차에 올라탄다.
2. 헬싱키 , 국제 학교 / 낮
상민이 복도에 서서 창을 통해 교실 안을 들여다본다.
가정집 주방과 똑같이 꾸며진 공간에서 개별 교육을 받고 있는 종화.
상담 교사가 다가온다.
교사/ (프린트를 건네며, 영어) 이거, 캠프 준비물이에요.
상민/ (영어) 모르겠어요... 애 혼자 보내는 게 맞는 건지.
교사/ (영어) 혼자라뇨? 교사들하고 학생들 다 같이 가는데.
상민/ (영어) 며칠씩 저랑 떨어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교사/ (영어) 처음엔 다 그렇죠. 그래도 익숙해져야 되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다시 종화 쪽을 바라보는 상민, 표정에 안도와 근심이 교차한다.
3. 헬싱키 , 건축 회사 / 낮
모던한 분위기의 사무실 전경.
회의실에서 설계 도면과 모형, 자재 샘플 등을 앞에 놓고 상의를 하고 있는 기홍과 직원들.
동료/ (영어) 자, 커피 타임 하고... 삼십분 뒤에 계속 합시다.
직원들이 하나 둘씩 회의실을 나가고,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는 기홍.
기홍/ (영어) 미치코? (사이) 지금 어디에요?
4. 헬싱키 , 국제 학교 앞 / 낮
학교 건물을 나서는 미치코(유림의 일본인 보모), 기홍과 통화하고 있다.
미치코/ (영어) 상담 끝나서 이제 집으로 가요. (사이) 예.
미치코, 전화를 끊고 곁에 서있는 유림의 손에 장갑을 끼워준다.
미치코/ (일본어로 혼잣말) 너네 아빠가 날 못 믿나봐...
입구에 서있던 상민, 두 사람과 시선이 마주 치자 살짝 웃어 보인다.
미치코도 고개를 꾸벅 숙여 상민에게 인사하고 유림과 함께 걸어간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는 상민,
인기척에 돌아보면 종화가 상담 교사와 함께 나오고 있다.
상민/ (활짝 웃으며) 야아, 우리 미남 아들이다-.
상민이 종화에게 다가가 품에 안는데, 종화는 조그맣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교사/ (영어) 저기, 궁금해서요. 종화가 자주 부르는 이 노래가 뭐죠?
상민/ (영어) 한국 TV에서 나오는 광고예요.
교사/ (영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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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정원 옆길을 걸어가는 상민과 종화.
종화/ (노래)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1577, 1577, 대리운전...
시선을 바닥으로 향한 채 노래를 반복하는 종화.
그 모습을 보며 걷던 상민, 갑자기 눈이 쌓인 화단으로 달려가서 눈을 뭉친다.
상민/ 우리, 눈싸움하자.
상민, 마치 어린 아이처럼 열심히 눈을 뭉쳐서 종화를 향해 던지는데...
걸어가던 종화의 머리에 퍽, 하고 맞는다.
눈을 맞은 종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움직임이 없다.
상민, 의아한 표정으로 종화에게 다가간다.
상민/ (표정을 살피며) 왜 그래... 아팠어?
상민, 머리에 묻은 눈을 털어주는데 느닷없이 상민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치는 종화.
고개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세게 맞은 상민, 바닥에 주저앉는다.
상민/ (아픔을 애써 참으며) 그냥 장난친 건데. 엄마가... 미안해.
종화/ 그래. 엄마가 미안해.
상민/ 응. 정-말 미안.
종화/ (앞서 걸어가며)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머리를 매만지며 일어서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종화의 뒤를 따라가는 상민.
5. 헬싱키 , 기홍의 아파트 / 밤
아파트 거실로 들어서는 기홍.
TV를 틀어놓은 채 미치코가 소파에서 자고 있다.
방문을 열고 유림이 자는 모습을 확인한 기홍, 미치코를 살짝 흔들어 깨운다.
부스스하게 일어서는 미치코, 휴대폰을 찾아서 시간을 보고는 코트를 찾아 입는다.
휴대폰 벨소리에 전화를 받는 기홍.
문주/ (E) (술 취한 듯) 뭐,하,셔,요?
기홍/ 지금 막 집에 왔어. (현관을 나서는 미치코에게 손을 흔들며) 어디야?
문주/ (E) (애교 섞인) 웅... 아직 탈린에 있거든.
기홍/ (의아한) 탈린? 배 안탔어? (휴대폰 시계를 본다)
문주/ (E) 헤헤, 그렇게 됐네. 미안... 온 김에 하루만 더 돌아보고 갈려구.
기홍/ 오늘 밤늦게라도 온다고 했잖아? 유림이 캠프 가는 거 땜에.
문주/ (E) 알아. 아는데... 생각보다 여기 좋은 샵들이 너-무 많은 거 있지.
소품들도 그렇구 옛날 가구 같은 것도 멋지구. 내가 사진 열심히 찍어갈게.
기홍/ (난감한 표정) .....
기홍/ (E) 암튼. 오빠가 유림이 바래다줄 거지?
기홍/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래. 알았어. 조심해서 다니고.
문주/ (E) 유림이 좀 바꿔줘요.
기홍/ 지금 자는데. 내일 아침에...
문주/ (E) 인사만 할래. 잠깐만 깨워줘.
방으로 가는 기홍, 자고 있는 유림을 살짝 흔들어 깨운다.
기홍/ 유림아? 엄마 전화. (유림의 손에 휴대폰을 쥐어준다)
문주/ (E) 유림아-.
유림/ (누운 채로) 으응...
문주/ (E) 오늘 학교 갔었지? 상담 잘했어?
유림/ (표정 없이) 응.
문주/ (E) 예-쁜 선물 사가지고 갈게. 캠프 갔다 와서 보자, 응?
기홍, 통화하고 있는 유림의 작은 어깨를 내려다본다.
6. 헬싱키 , 상민의 레지던트 하우스 / 밤
욕실.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양치질을 하고 있는 상민.
입을 헹구다가 거울에 붙은 몇 장의 - 할 일을 적은 - 메모지들을 살펴본다.
그 중 한 메모. ‘종화 아빠 안부 전화!’
휴대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해보는데... 한국은 이른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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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안. 자고 있는 종화의 곁에 눕는 상민, 손을 뻗어 종화를 살짝 끌어안는다.
짜증 섞인 신음 소리를 내며 뒤척이는 종화.
상민, 조심스럽게 손을 떼고는 종화의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느새 창밖에는 조용히 눈이 내리고 있다.
7. 헬싱키 , 국제 학교 부근 도로 / 아침
회사 동료와 통화(출근이 늦는다는 설명)하며 운전하고 있는 기홍, 옆자리를 흘깃 살핀다.
조수석에 앉아 창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유림.
전화를 끊고 유림을 다시 보는 기홍, 뭐라 말을 걸까... 하다가 그만 둔다.
학교 건물이 보이고, 앞서 가던 통학 버스가 멈춰 서자 기홍의 차도 그 뒤에 정차한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 중에 상민과 종화의 모습이 보인다.
노래하는 종화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상민.
그들 곁을 지나치며 상민을 유심히 보는 기홍.
8. 헬싱키 , 국제 학교 앞 주차장 / 아침
상민, 종화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손을 맞잡고 있다.
상민/ 갔다 온 애들이 그러는데, 캠프장이 진-짜 좋대. 재미있을 거야.
너무 재밌어서 우리 종화가 안돌아올까봐 난 걱정이거든.
대기해 있는 버스 앞에서 종화를 부르는 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종화가 돌아서서 가려는데 다시 팔을 잡고 품에 안는 상민,
마치 영영 헤어질 것처럼 꼭 끌어안고 한동안 놓지 않는다.
상민/ 사랑해... 알지?
상민이 품에서 놓아주자, 뒤도 안보고 걸어가는 종화.
한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상민, 교사를 따라 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돌아서서 걸어가다가... 갑자기 멈춰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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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앞에 서서 교사와 이야기하고 있는 상민.
교사/ (난감한 표정, 영어) 안됩니다. 우리 방침을 지켜주셔야죠.
상민/ (영어) 그냥 멀리서 보기만 할게요. 멀리서, 방해 안하구요.
교사/ (영어) 엄마가 따라가면 이 캠프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저희를 믿고 맡겨주셔야...
상민/ (영어) 정말 방해 안한다니까요. 제 아이는... 나 없으면 안 돼요.
교사/ (단호하게, 영어) 정 그러시면, 여기서 아이 데리고 돌아가세요.
상민/ ...예?
교사/ (영어) 미안하지만 아이도 캠프에 갈 수 없다구요.
상민/ .....
교사/ (영어) 생각해보세요. 이 먼 데까지 오신 이유를.
잔뜩 격앙된 표정의 상민, 하지만 달리 더 할 말이 없다.
주위에 학부형들 몇몇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상민을 바라보고 있고,
그들 뒤편으로 기홍의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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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태운 버스가 떠나고, 학부형들도 하나 둘씩 빠져나가며 텅 비어가는 주차장.
망연자실 서있던 상민,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는데 라이터를 찾을 수 없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차에 막 타려는 기홍에게 다가가는 상민.
상민/ (영어) 미안하지만, 불 좀 빌릴 수 있어요?
잠시 멍하게 상민을 보던 기홍, 시거 잭을 눌렀다가 뽑아서 건넨다.
담배에 불을 붙인 상민, 고개를 살짝 숙여 고마움을 표시하고 돌아서려는데.
기홍/ 한국분이시죠?
상민/ ...예.
상민, 무심하게 답하고는 도로 쪽으로 무작정 걸어간다.
상민/ (돌아서서 다짜고짜) 캠프장이 여기서 멀어요?
기홍/ 음... 탬페레 근처니까... 서너 시간 정도 거리일거예요.
상민, 대꾸 없이 도로 저편을 응시하며 서있다.
그런 상민을 바라보는 기홍.
9. 헬싱키 북쪽 , 교외 도로 / 아침
기홍의 차가 한적한 도로를 달려간다.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응시하던 상민, 운전하고 있는 기홍을 돌아본다.
기홍/ (시선을 의식하고) 예?
상민/ 정말 괜찮으신 거죠?
기홍/ (피식 웃으며) 이번이 세 번째예요. 예, 괜찮다구요.
상민/ 아... 어쨌든...
기홍/ 네, 네에. 고맙다는 말도 아까 하셨습니다...
상민/ (기홍의 옆얼굴을 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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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더 적막한 시골길. 벌판 전체가 눈으로 덮여 온통 하얀 세상이다.
말없이 각자의 시선으로 창밖을 보고 있는 두 사람.
아까보다는 조금 안정을 찾은 듯 한 상민, 내비게이션을 들여다본다.
상민/ 우리 지금, 맞게 가고 있는 거예요?
기홍/ (농담처럼) 음... 아마 그럴걸요.
상민/ (왠지 못미더운) .....
기홍/ (상민의 표정을 보고 웃으며) 그 쪽은 전에 함 가본 적 있어서 길 잃어버릴 없어요. 가는 방향이 북쪽이거든요. 저-기, 빛 보이죠?
상민, 기홍이 가리키는 쪽을 보면 멀리 지평선 위 하늘에 푸른빛이 신비롭게 퍼져있다.
기홍/ 멀리 북극에서 날아오는 빛이에요. 저걸 따라가면 되요.
순간 기묘한 느낌을 받은 상민, 시선을 고정하고 말이 없어진다.
눈 덮인 도로를 달려가는 기홍의 차. 마치 빛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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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달려가는 기홍의 차.
코너에서 커브를 틀다가 바퀴가 눈길에 미끄러지며 잠시 아찔한 순간이 되는데...
간신히 차를 안정시킨 기홍이 옆을 돌아보면, 시트에 깊이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는 상민.
그녀의 얼굴을 잠시 보는 기홍.
마치 오랜 시간 잠을 못 잔 사람처럼 깊이 잠든 모습.
기홍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스친다.
10. 탬페레 부근 , 호수 / 낮
잠들어 있던 상민이 깨어난다.
주위를 둘러보면, 차는 한산한 공원 주차장에 서있고 운전석도 비어있다.
차문을 열고 나오는 상민, 산책로 표지판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걸어간다.
좁고 굽은 길을 따라 내려가 보니, 그 끝에는 드넓은 호수.
호수 전체가 눈으로 뒤덮여 마치 세상의 끝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 풍경을 마주 하고 서있는 상민, 왠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인기척이 들리고, 기홍이 다가온다.
기홍/ 깊이 잠드신 거 같아서 안 깨웠는데.
상민/ 아... 예. 죄송해요.
기홍/ 뭐가요?
상민/ 운전하시는데 옆에서 자구 있어서...
기홍/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기.
상민, 기홍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본다.
호수 건너편으로 커다란 통나무 집 몇 채가 보이는데,
불을 피웠는지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다.
기홍/ 경치 좋죠?
상민/ (캠프 쪽에 시선을 둔 채 고개를 끄덕이고) .....
기홍이 갑자기 호수 위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간다.
상민/ (불안한) 어어... 위험한데.
기홍/ 꽁꽁 얼어서 괜찮아요. 와보세요.
상민/ (고개 저으며) .....
기홍/ 무서워요? (발로 얼음을 탁, 탁 내리쳐 보인다)
상민이 그 모습을 보다가 자신도 호수 위로 살금살금 들어간다.
기홍/ (안쪽으로 더 들어가며) 갑시다. 저기 캠프로.
상민/ (의아한) ...여길 건너자구요?
기홍/ 예. 애들한테 가봐야죠.
상민/ ...진짜?
기홍/ 차로 가도 되는데, 이렇게 함 가로질러 가보죠 뭐.
상민/ (설마, 하는) .....
기홍/ (상민 표정 보다가) 농담이에요.
상민/ (싱겁다는 듯) 알아요.
기홍/ 아니. 가자면 갈 수는 있는데, 저게 여기서 보는 거보다 훨씬 멀거든요.
상민/ ...재미없어요. 그런 농담.
기홍/ (살짝 무안한) .....
얼어붙은 호수 위에, 거리를 두고 서있는 두 사람.
잠시 말이 없고...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그들을 감싼다.
상민/ 우리요, 이제 돌아가요.
기홍/ 예? 애들... 안보구요?
상민/ (돌아서서 걸어가며) 집에 갈래요.
기홍/ ...괜찮겠어요?
상민/ 여기서 봤으니까... 됐어요.
상민, 앞서서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고 기홍이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따라간다.
11. 탬페레 부근 , 주유소 / 낮
어느덧 조금씩 눈발이 날리고 있다.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 카운터에서 커피를 사고 있는 상민.
창밖을 보면, 기홍이 - 회사 동료와 - 통화를 하며 타이어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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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홍, 주유소 직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상민이 다가와 커피를 건넨다.
기홍/ (받아서 한 모금 마시다가 상민을 보고) 하나만 샀어요?
상민/ 전 커피 안 마셔요. 위가 안 좋아서.
기홍/ 아...
상민/ 근데 여긴 먹을 게 별로 없어요. 차가운 샌드위치밖에.
기홍/ 괜찮아요. 커피면 됐죠.
상민/ 뭐든 따뜻한 걸 좀 드셔야 하지 않을까...
기홍/ 그러고 싶긴 한데 우리, 빨리 출발해야 될 거 같아요. 저 친구한테 들으니까
오늘 눈이 장난 아니게 올 거라네요. 타세요. (운전석 문을 여는데)
상민/ 근처에서, 잠깐 식사하고 가면 어때요?
기홍/ ...많이 배고파요?
상민/ 솔직히 좀, 그래요.
기홍/ (하늘을 보며 고민하는) .....
상민/ 제가 살게요. 태워주셨으니까... 사드리고 싶어요.
12. 탬페레 부근 , 레스토랑 / 낮
한적한 도로변에 위치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두 사람.
상민/ (열심히 먹는 기홍을 보다가) 맛있어요?
기홍/ 그런대로. 먹을 만해요.
상민/ 다행이네...
기홍/ (상민의 접시를 보며) 왜, 음식이 그대로예요. 제 꺼 좀 드실래요?
상민/ 아니요. 원래 이런 거 별로 안좋아해요. 입이 완전 토종이라... 된장, 청국장 같은 거 좋아하거든요. 외국 나오면 핸드백에 고추장도 넣어가지고 다녀요.
기홍/ 아... 그럼 여기 계시기 힘들겠다.
상민/ 예. 힘들어요. 눈도 너무 많이 오구, 밤도 길고... 좀 힘들었는데... 뭐, 며칠 있으면
돌아가니까.
기홍/ 고추장, 지금 있어요?
상민/ ...왜요?
기홍/ 여기 섞어 먹어보려구.
상민/ (주위를 돌아보며) 눈치 보이는데...
기홍/ 그럴게 뭐 있어요. 줘보세요.
상민, 고추장 튜브를 꺼내 기홍에게 살짝 건넨다.
파이스티(스프 종류)에 고추장을 짜서 넣고 휘젓는 기홍, 한 입 먹어본다.
기홍/ (눈을 크게 뜨고) 와아...
상민/ 맛있어요?
기홍/ (인상 찌푸리며) 이렇게 희한한 맛 처음이에요.
상민, 기홍의 표정을 보며 큭, 하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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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민/ 이년 동안 계셨으면, 어때요 여기. 살만 하던가요?
기홍/ 음... 뭐. 괜찮아요. 처음에야 낯설고 그랬지만... 사람 사는 데가 다 비슷비슷한 거죠.
상민/ (대꾸 없이 기홍을 보는) .....
기홍/ ...왜요?
상민/ 대답이 뭐 그래요. 애매하구... 무성의하게.
기홍/ 아... (실수했나 싶어서) 예. 여기, 살기 좋아요. 조용하고 깨끗하고...
상민/ (표정 굳었다가) .....
기홍/ 눈도 많이 오고.
상민/ (어이없는 듯 피식 웃으며) .....
기홍/ (진지하게) 원래 일 땜에 오게 된 거지만, 좀 지내다보니까... 적어도 아이한테는
꽤 좋은 환경인 거 같아요.
상민/ (같이 진지해지며) ...어떤 면에서?
기홍/ 아시잖아요? 여기선 아이들끼리 경쟁시키지 않는다는 거. 인재 여럿 키우는 거 보다,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는 게 교육 목표라고.
상민/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다... (한숨) 말만 들어도 좋네요...
기홍/ .....
상민/ (화제 바꾸며) 아이가 따님이죠? 어제 학교에서 봤어요.
기홍/ 제 딸인 걸 어떻게...?
상민/ 이 학교에 아시아 애들이 둘 밖에 없다고 들었거든요. 부인이 일본 분이신거 같던데.
기홍/ ...예에? (웃으며) 그 친구는 베이비시터예요. 일본에서 온 유학생.
상민/ 아... 어쩐지. 엄마가 너무 어려보이더라.
기홍/ (농담으로) 그럼 전,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인다는 뜻인가...
상민/ 그게 아니고... (뜬금없이) 어려보이는 게 좋아요?
기홍/ 뭐... 꼭 그렇진 않은데... (괜히 창밖으로 시선 돌리고) 어, 눈이 더 세졌네.
13. 템페레 부근 , 교외 도로 / 낮
한낮이지만 벌써 어둠이 짙게 깔리고,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거의 주차를 한 것처럼 도로에 멈춰 서있는 자동차들.
조수석에 앉아있는 상민의 시선으로, 교통경찰과 이야기하고 있는 기홍이 보인다.
기홍, 머리에 묻은 눈을 털며 차로 뛰어온다.
기홍/ 도로를 통제했대요.
상민/ 예? 그럼 언제쯤...
기홍/ 눈이 그쳐야 제설 작업을 할 수 있어서 기다려봐야 된데요.
상민/ (걱정스럽게) 어쩌지...
기홍/ 기차는 다닌다니까 탬페레 역으로 가면 탈 수 있을 거예요. 가볼래요?
상민/ .....
기홍/ (차 시동을 걸고) 가봅시다.
상민/ 저만 기차를 타면... 혼자 여기서 기다리시게요?
기홍/ 그래야죠. 여기선 뭐, 흔히 있는 일이에요. 저 사람들 봐요. 당황하지도 않아요.
상민/ .....
14. 탬페레 부근 , 레스토랑 / 저녁 무렵에서 밤까지
(#12의) 레스토랑으로 다시 되돌아온 두 사람.
웨이트리스가 테이블로 온다.
웨이트리스/ (핀란드어) 다시 오셨네요.
기홍/ (멋쩍게 웃어 보이는데) .....
웨이트리스/ (핀란드어) 괜찮아요. 여기 계신 손님들 모두 가다가 되돌아온 분들이에요.
상민/ (웨이트리스가 메뉴를 두고 돌아가자) 뭐래요?
기홍/ 다시 만나서 반갑대요. 저 사람들 다 우리랑 같은 처지라면서.
상민이 주위를 둘러보면, 아까보다 많은 사람들로 식당이 채워져 있다.
기홍/ 이번엔 뭘 먹나... (메뉴를 펴보며) 그런데, 정말 기차 안타실거예요?
상민/ 괜찮다니까요. 지금 세 번째 물어보시는 거예요.
기홍/ (멋쩍은) ...
상민/ 애들 캠프도 이 근처니까...
기홍/ 여차하면 데리러 가려구요?
상민/ 어쩌면.
기홍/ 제 생각엔, 애들이 우리보다 더 잘 있을 거 같은데.
상민/ 그런가...
기홍/ 지금 걔들 걱정할 처지가 아니잖아요?
두 사람, 마주 보고 허탈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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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눈보라 속에 외롭게 서있는 노란 가로등.
그 뒤, 창 안쪽으로 보이는 상민과 기홍,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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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과 달리 말이 없어진 두 사람.
상민이 접은 냅킨으로 테이블을 닦듯 살살 문지르고 있다.
그런 그녀를 유심히 보던 기홍, 자신도 냅킨을 접어 테이블을 문지른다.
기홍이 따라하는 행동에 멋쩍은 듯이 웃는 상민.
상민/ (불쑥) 그래서. 여기 있는 동안 아이가 좀, 좋아졌어요?
기홍/ 음... 글쎄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상민/ (인상 쓰며) 어어. 저거 봐. 또 애매하게...
기홍/ 아니, 아니. 진짜 그래요. 겉으로 눈에 보이는 증상이 아니니까. 우울증이란 게 원래,
쉽게 낫는 병이 아니잖아요?
상민/ (고개 끄덕이며) ...그렇구나. 난 또, 같은 학교라서 비슷한 줄 알았는데 아니네.
우리 애는... 그보다 많이 안 좋아요. 많이.
기홍/ .....
상민/ 이런저런 방법 다 해보고, 방학 때면 외국 시설들 가보고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괜히 서글픈) 막상 또 오니까, 겨우 한 달 있는 동안 뭐가 달라질까 싶기도 하구.
기홍/ (상민의 표정을 보다가) 그래도, 뭐든 시도해보는 게 중요하죠.
상민/ (애써 밝은 척) 그렇죠? 뭐든 해야겠죠. 뭐든...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기홍/ .....
상민/ (기홍이 대꾸가 없자) 전엔 안 그랬는데 여기 와서 자꾸 시계 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도대체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시간 개념이 없어지구...
기홍/ 알죠. 저도 겪어봐서.
상민/ 며칠 그러다보니까... 시간이란 게 무의미해지고, 아이가 깨면 아침이구나, 배고프다면 저녁 먹을 때가 됐나, 뭐 그런 식으로 살고 있더라구요. 마치... 원시인이 된 기분?
기홍/ ...원시인?
상민/ 예에. 원시인.
웨이트리스가 계산서를 들고 다가온다.
웨이트리스/ (핀란드어) 미안합니다. 지금 문 닫을 시간이에요.
기홍/ (상민에게) 여기, 끝났다는데요.
상민/ ...벌써? (카드를 꺼내 내민다)
웨이트리스/ (핀란드어) 혹시 숙소 필요하세요?
기홍/ (핀란드어) 숙소... 글쎄...
웨이트리스/ (핀란드어) 여기 뒤편에 호텔이 하나 있는데, 필요하시면 알아봐 드릴게요.
주말이라 방이 없을 수도 있거든요.
기홍, 어떡하나... 하는 표정으로 상민을 바라본다.
15. 템페레 부근 호텔 , 로비 / 밤
카운터의 직원이 컴퓨터로 예약을 확인하고 있다.
직원/ (영어) 침대 두 개 있는 방이라고 하셨죠?
기홍/ (영어) 어. 아니. 아니요. 방 두 개...
직원, 두 사람을 흘끔 보고는 다시 빈 방을 확인한다.
상민과 기홍이 각자 신용카드를 건네고, 직원이 열쇠 두 개를 내민다.
16. 호텔 , 복도 / 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어두운 복도를 걸어가는 두 사람.
상민이 자신의 방 번호를 확인하고 멈춰 선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짧지만 미묘한 느낌.
기홍/ 그럼, 쉬세요.
상민이 방으로 들어가고 혼자 복도에 남겨진 기홍.
잠시 머뭇하다가 자신의 방 쪽으로 걸어간다.
17. 호텔 전경 , 그녀와 그의 방 / 밤
호텔 밖에서, 나란히 보이는 두 개의 방 창문.
각자의 방 침대 끝에 움직임 없이 앉아있는 상민과 기홍.
(마치 두 사람이 한 방에서 등을 지고 있는 듯 한 느낌이다)
18. 호텔 앞 / 아침
호텔 정문을 나서는 상민.
아직 어둡고 인적이 전혀 없는 정원. 밤과는 달리 차분하게 눈이 내리고 있다.
정원 맞은편엔 나무들이 빼곡한 숲이 가로등 빛에 어슴푸레 보인다.
담배를 꺼내고 호텔 성냥을 켜서 피우는 상민, 표정이 전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인다.
기홍/ 어, 일어나셨네요.
상민이 돌아보면 정문 앞에 기홍이 서있다.
상민/ 그냥 눈이 떠졌어요. 바람 소리가 멈추니까 너무 조용해서.
기홍/ (고개 끄덕이며) 조용해서 깼다...
두 사람, 나란히 서서 정원 쪽을 바라본다.
상민/ (기홍을 보며) 왜 나왔어요, 이렇게 일찍?
기홍/ 산책 삼아... 주변 좀 둘러볼까 싶어서요.
19. 숲 / 아침
숲 사이의 산책로를 천천히 걸어가는 두 사람.
주위가 고요해서 걸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만이 크게 들린다.
갑자기 멈춰 서는 상민.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하늘 높이 솟은 침엽수들 사이로, 그들이 지나온 길이 하얀 양탄자처럼 길게 뻗어있다.
마치 달력에서나 보던,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닫지 않은 광활한 자연의 느낌.
기홍, 몇 발자국 지나쳤다가 상민을 돌아본다.
상민/ 봐바요. 발자국이 벌써 다 없어졌어...
기홍/ (길 양쪽을 번갈아 보고) 많이 들어온 거 같은데, 슬슬 돌아가죠.
상민, 대꾸 없이 돌아서서 다시 가던 길로 계속 걸어간다.
그녀를 바라보던 기홍, 묵묵히 뒤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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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앞서서 오르막을 걸어가는 상민, 거리를 두고 따라가는 기홍.
사뿐히 내리는 눈이 두 사람의 머리와 어깨에 쌓여가고 있다.
상민/ (돌아보며) 힘들어요?
기홍/ 쉽지 않네요...
상민/ 난 괜찮은데. 많이 걷는 편이거든요. 일하는 샵이 산 밑에 있어서 언덕길을 매일
오르락내리락해요.
기홍/ 무슨 산이요?
상민/ 남산.
기홍/ 남산... 산이라구 해서 어디 시골인가 했네. 남산 어느 쪽?
상민/ 하얏트에서 경리단 내려가는 길, 아세요?
기홍/ 아... 요즘 그 동네가 인기라던데. 맛집들 많다고.
상민이 다시 멈춰 서고. 기홍을 돌아보며 손으로 숲속을 가리킨다.
나무들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통나무 코티지들.
상민, 방향을 꺾어 숲 속으로 들어가는데 기홍이 말릴까, 하다가 그만 두고 따라간다.
몇 발자국 가던 상민이 깊은 눈구덩이에 한 쪽 발이 푹, 빠지며 엉덩방아를 찧는다.
기홍, 당황하는 상민을 보고 웃으며 다가가 상민의 팔을 잡고 구덩이에서 빼내준다.
민망한 표정으로 일어서는 상민.
기홍이 허리를 숙여 상민의 바지 밑쪽에 묻은 눈을 털어준다.
상민, 그런 기홍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기홍이 몸을 일으키자, 두 사람이 서로 가깝게 마주 보게 된다.
잠시 상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기홍.
상민의 속눈썹에 눈이 하얗게 쌓여있다.
기홍/ 눈썹에두 쌓이네...
기홍이 손을 얼굴로 가까이 가져가자, 움찔 하는 상민.
손가락으로 상민의 눈썹 위 눈을 살짝 훑어 내리는 기홍.
체온에 눈이 녹으며 상민의 뺨을 타고내리는 물 한줄기가... 마치 눈물처럼 보인다.
그런 상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기홍.
순간 멋쩍어진 상민, 기홍의 머리를 가리킨다.
상민/ 할아버지 같아요. 머리 허-연 할아버지.
기홍, 장난스럽게 머리를 막 흔들어 눈을 털어내자 상민의 얼굴로 눈이 마구 튄다.
기홍/ 됐어요?
뒤로 물러난 상민, 얼굴에 튄 눈을 닦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한다.
20. 통나무 코티지 / 아침에서 낮까지
코티지 안으로 살며시 들어온 두 사람, 어두운 실내를 천천히 둘러본다.
벽에 커다란 장작 난로가 있고 반대쪽에는 긴 나무 벤치와 담요 등이 놓여있다.
기홍/ 이거, 사우나네...
상민/ ...막 들어와도 괜찮아요?
기홍/ 글쎄요. (사우나용 돌을 만져보며) 누가 왔다 간지 얼마 안됐구나. 성냥 있죠?
상민이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건네고, 기홍이 장작에 불을 붙인다.
그 모습을 잠시 보던 상민, 창가로 가서 벤치에 앉는다.
상민/ 우리 지금, 꼭 불량 청소년들 같아.
기홍/ (웃으며) 그러게... 본드라도 불어야겠네요.
상민/ 그런 거 해봤어요?
기홍/ ...어땠을 거 같아요?
상민/ 글쎄... 모르죠 뭐. (편하게 기대며) 따뜻해서 좋다... 이런 숲속에 사우나라니.
기홍/ 얘네들, 사우나 진짜 좋아하잖아요. 돈 벌면 집보다 사우나를 먼저 만든다니까.
100년 전까지만 해도 핀란드 여자들이 사우나에서 아이를 낳았대요. 그래서...
한참 사우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기홍, 대꾸가 없어서 돌아본다.
눈을 감고 있는 상민, 마치 잠이 든 것처럼 보인다.
천천히 다가가 곁에 앉는 기홍, 상민을 바라본다.
따스한 기운에 홍조를 띤 얼굴. 눈이 녹아서 젖어있는 머릿결.
잠시 보다가 조심스레 상민의 뺨을 만지는 기홍.
상민이 살짝 눈을 뜨고 기홍을 물끄러미 본다.
상민/ 미안... 무슨 얘기 하고 있었죠?
기홍/ (당황) 어... 핀란드 여자들이 사우나에서...
상민, 말하고 있는 기홍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키스한다.
서로의 입술을 찾는 두 사람... 조금씩 더 격렬해진다.
옷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닿는 기홍의 손길에, 상민의 몸이 조금씩 떨린다.
천천히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는 기홍.
거친 숨소리와 함께 일그러지는 상민의 표정.
기홍/ (멈추고) 아파요?
상민/ 아니... 조금. (기홍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괜찮아요.
기홍,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점점 가빠지는 두 사람의 숨소리. 그러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진다.
기홍이 움직임을 멈추고 보면, 상민은 창밖을 무표정하게 응시하고 있다.
그 표정을 잠시 보다가 상민의 몸에서 물러나 앉는 기홍.
옆으로 돌아눕는 상민.
기홍이 손을 뻗어 상민의 머리를 어루만진다.
상민, 기홍의 손을 잡는다.
상민/ (기홍의 손을 물끄러미 보며) 어. 손톱 봐...
기홍/ 왜요?
상민/ 남자 손이 왜 이래... 꼭 여자 손톱 같잖아.
기홍, 장난스럽게 손을 빼는데 상민이 다시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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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누워있는 두 사람. 기홍이 상민을 등 뒤에서 안고 있다.
상민/ 아까, 잠 깨고 일어나보니까... 아이가 옆에 없잖아요. 근데...
걔가 곁에 없으면 정말 세상이 무너질 거 같았는데. 이상하게 맘이 편한 거야.
아, 이런 적이 없었구나... 싶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상민의 어깨를 감싸 안는 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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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는 상민, 고개를 돌려보면 기홍이 장작불을 살펴보고 있다.
상민/ (어둑한 창밖을 보고 놀라며) 벌써 밤이에요?
기홍/ 밤이라뇨... 점심 때 조금 지났을 걸요.
상민/ (돌아누우며 한숨) .....
기홍/ 차에서도 그렇구, 정말 잘 자는 거 같아요.
상민/ (얼굴 붉어지며) 아, 창피하네...
기홍/ 창피할 건 또 뭐 있어요.
일어서서 코트를 입는 기홍.
기홍/ 나무 좀 구해와야겠다.
기홍, 돌아누운 채 대꾸 없는 상민을 잠시 바라보고 밖으로 나간다.
혼자 남겨진 상민, 몸을 일으켜 앉는다.
벤치 끝에 -기홍이 해놓은 듯 - 자신의 옷이 반듯하게 개어져 있다.
창밖을 보면, 숲속으로 걸어가는 기홍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이다가 사라진다.
담배를 찾아서 불을 붙이려다가 멈추고... 다시 창밖을 보는 상민.
21. 숲 / 낮
담요를 몸에 두른 채 코티지에서 나오는 상민,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사방이 똑같아 보여서 기홍이 걸어간 방향을 알 수가 없다.
무작정 숲 한 쪽 방향으로 걸어가는 상민.
상민/ 어딨어요-? (당황하는) 어딨냐구요!
두리번거리며 애타게 소리쳐도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고...
점점 더 불안해하는 상민.
그때 부스럭, 하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는데.
내리는 눈 사이로 검은 형체의 실루엣.
십 여 미터 전방에 커다란 곰이 상민을 바라보고 있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굳어버린 상민.
한동안 상민을 바라보던 곰, 오히려 상민이 두려운 듯 돌아서서 숲속으로 총총히 사라진다.
곰이 사라진 뒤에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민.
기홍이 다가와 어깨를 건드리자 악, 소리를 내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기홍/ (자기도 놀라서) ...왜 이렇게 놀래요?
상민/ (멍한 표정으로) .....
기홍/ (농담으로) 표정이 꼭, 곰이라도 본 사람처럼.
상민, 곰이 있던 쪽에 시선을 고정 한 채 - 믿기지 않는다는 듯 - 말을 잇지 못한다.
기홍/ 추운데 들어갑시다. (코티지 쪽으로 앞서서 간다)
22. 헬싱키 북쪽 , 교외 도로 / 저녁 무렵
운전하던 기홍, 상민을 돌아본다.
머리를 시트에 기댄 채 창밖을 향하고 있는 상민.
기홍/ (조그맣게) ...자요?
상민/ ...아니요.
기홍/ 말이 없어서 또 주무시는 줄 알았네.
상민/ 좀 졸리긴 한데...
기홍/ 그럼 자요.
상민/ (장난스럽게) 싫어요. 깨있을래.
기홍/ (맞장구치듯) 아, 네...
상민, 기홍을 돌아보며 미소 짓는다.
멀리 도시의 불빛들이 조금씩 가까워져온다.
23. 헬싱키 , 상민의 레지던트 하우스 앞 / 저녁
기홍,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운다.
뭔가 할 말을 찾듯 망설이는 두 사람.
상민/ 조심해서 가세요.
기홍/ 저기...
상민/ (멈칫) .....
기홍/ 생각해보니까 우리, 서로 이름도 모르네요.
아쉬운 표정으로 상민을 바라보는 기홍.
상민이 살짝 웃어 보이고 몸을 돌려 문을 열려는데, 기홍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기홍을 돌아보는 상민... 동시에 그녀에게 키스하는 기홍.
점점 키스가 격렬해지면서, 두 사람의 뜨거운 호흡으로 창에 뿌옇게 김이 서린다.
상민/ (기홍의 귀에 속삭이는) ...해요, 지금.
기홍, 시트를 뒤로 젖히고 상민을 안아서 뒷자리로 넘어간다.
옷도 벗지 않은 채 불편한 자세로 상민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기홍.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두 사람.
Cut to
정사가 끝난 후.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두 사람.
상민이 차문을 여는데, 기홍이 다시 상민의 손을 잡는다.
상민, 마치 악수를 하듯 기홍의 손을 꽉 쥐어주고는 차에서 내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상민.
그녀의 모습이 건물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는 기홍.
24. 헬싱키 , 기홍의 아파트 앞 / 밤
아파트 야외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기홍의 차.
주차를 한 기홍, 시동을 끄고 2층 창 쪽을 올려다보면 실내등이 켜져 있다.
내리지 않고 앉은 채 생각에 잠긴 기홍.
25. 헬싱키 , 기홍의 아파트 / 밤
거실로 들어서는 기홍.
테이블 앞에 앉아 노트북을 보던 문주, 기홍을 보고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든다.
기홍/ (다가가며) 잘 갔다 왔어?
문주/ 응-. 계속 늦네. 많이 바쁜가봐. (노트북을 돌려서 보여주며) 사진.
자신이 찍어온 사진들을 하나씩 클릭하며 보여주는 문주.
문주/ 이거. 빈티지 소파. 컬러 너무 좋지 않아? 서울 집 거실에 잘 맞을 거 같은데.
(기홍 표정을 흘깃 보고) 패브릭이라 여름에 좀 더워 보일려나...
기홍/ 예쁘네...
문주/ 역시 쇼핑하기엔 에스토니아가 여기보다 나은 거 같애. 물가도 싸고 고풍스런 것도 많고... 쓸 만한 소품만 골라골라 샀는데두 트렁크 하나 꽉 찬 거 있지. 사온 거 지금 볼래?
기홍/ 응, 잠깐만. 옷 좀 갈아입고. (방으로 가며) 유림이는 캠프 잘갔다.
문주/ (모니터를 응시한 채) 응. 땡큐...
기홍, 문주의 뒷모습을 잠시 보다가 침실로 들어간다.
침대에 걸터앉아 셔츠 단추를 풀던 기홍, 움직임을 멈추고 공허한 표정으로 벽을 응시한다.
26. 헬싱키 , 상민의 레지던트 하우스 / 밤
욕실 안.
샤워를 마치고 타월로 물기를 닦고 있는 상민.
거울에 김이 어려 흐릿하게 비춰진 자신의 모습에... 잠시 시선을 멈춘다.
그리고, 그 옆에 붙어있는 메모지로 시선을 돌린다.
Cut to
목욕 가운을 입고 소파에 앉아 부동산 정보지(핀란드)를 보고 있던 상민.
충전기에 연결 되어있던 휴대폰을 들고 한국 시간을 확인한 후 전화를 한다.
상민/ 나에요.
재석/ (E) (졸린) 으응...
상민/ 어. 아직 자는구나... 미안.
재석/ (E) 오늘 일요일이잖어... 왜. 무슨 일 있어?
상민/ (아차, 싶은) 아니. 그냥 했어요.
재석/ (E) 거긴 몇 시야?
상민/ 밤 12시 좀 넘었어. 아까 핸드폰 배터리가 없었거든. 혹시 전화했나 해서.
재석/ (E) 나... 안했는데.
상민/ ...으응.
재석/ (E) 종화는. 어때?
상민/ 괜찮아. 여기가 잘 맞나봐.
재석/ (E) 다행이네....
상민/ 자요. 나중에 다시 할게.
재석/ (E) 응, 그래.
전화 끊은 상민, 적막한 거실을 둘러본다.
정말... 혼자라는 느낌.
27. 헬싱키 , 국제 학교 앞 / 낮
캠프 갔던 아이들이 돌아오는 날.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기다리던 학부형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아이를 끌어안고
반가워한다. 상민도 그들 틈에 있다가 종화를 보고 다가가 품에 안는다.
상민/ (눈물까지 글썽이며) 안녕?
종화/ 발이, 발이... 집에 가고 싶어.
상민/ 발이 시려워서. 그래, 집에 가자.
그 때, 먼발치로 - 기홍의 차와 같은 종류의 - SUV가 멈춰 서는 게 보인다.
상민이 그 쪽을 응시하지만... 운전석의 사람이 누군지 잘 보이지 않는데.
버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림이 다가가 조수석에 올라타자 바로 출발하는 차.
상민의 앞을 지나치면서 보이는 운전자는 여자(문주)다.
그 자리에 선 채 멀어지는 차를 보다가... 괜히 민망해져서 피식, 웃어버리는 상민.
종화/ (상민을 잡아끌며 노래하는)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앞뒤가 똑같은...
상민/ (따라 부르며) 전화번호, 1577, 1577, 대리운전 1577...
상민, 종화와 함께 노래 부르며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간다.
28. 서울 , 올림픽대로 / 며칠 후 , 저녁 무렵
차창 밖으로 스치는, 서울 도심의 겨울 풍경.
효선(상민의 샵 매니저)이 운전하는 카니발에 타고 있는 상민과 종화.
창밖을 보던 상민이 하품을 한다.
효선/ 피곤들 하겠다. 비행기를 열 시간씩이나... 아우, 비행기 타는 거 난 진짜 싫어.
상민/ (뒤 좌석의 종화를 돌아보며) 종화는 안 졸리니? 비행기에서 못 잤잖아.
종화, 대꾸 없이 스마트패드만 열심히 만지고 있다.
효선/ (룸 미러를 보며) 어째 좀 얌전해진 거 같기도 하고... 거기, 지내긴 어땠어요?
상민/ 음... 괜찮았어.
효선/ 겁나 춥다던데.
상민/ 응. 추워. (창밖을 보며) 근데... 좋아. 조용하고 깨끗하고... 눈도 많이 오고.
효선/ 눈이야 뭐... 여기도 엄청 오는데.
상민/ 아냐. 많이 달라. 많이.
효선/ 뭐가 그렇게 달라?
상민/ (창밖에 시선 고정한 채) 그냥... 달라.
29. 서울 , 상민의 집 / 저녁에서 밤까지
부유층 주택가에 위치한 빌라.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상민과 종화.
상민/ 와... 집에 왔다.
도우미 아줌마가 부엌에서 나와 둘을 반긴다.
아줌마/ 오셨어요?
상민/ 예. 종화야, 인사해야지?
아줌마/ 어어, 종화가 그새 키가 컸나보다.
아줌마가 머리를 쓰다듬으려는데, 그냥 휙 지나쳐서 서재 쪽으로 뛰어가는 종화.
Cut to
서재 문을 열어보는 상민.
종화, 의자에 앉아있는 재석의 무릎 위에서 가슴을 마구 때리며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다.
재석/ (웃으며) 어이구, 아파라. 그 사이에 힘이 더 세졌네.
상민/ 종화야. 아빠 아파. 그만 해.
재석/ (오히려 종화를 끌어안으며) 아빠도 종화가 많이 보고 싶었어요...
상민, 애틋하게 안고 있는 두 사람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재석/ (상민에게) 자기도 이리와 봐. 간만에 마누라 좀 안아보자.
상민, 피식 웃으며 재석에게 다가가고... 앉은 채로 상민의 허리를 감싸 안는 재석.
재석의 팔에 안긴 채로 책상 위에 켜있는 모니터 화면을 보는 상민.
재석이 패널로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이다.
상민/ 모니터 하는 거야?
재석/ 응. 고정 패널이라 신경 많이 쓰이네. (상민의 얼굴을 보며) 어. 쫌 야윈 거 같아.
(등을 어루만져주며) 이런... 많이 힘들었나보구나.
상민/ 나야 힘들 게 뭐 있어. 종화가 어떤지 몰라서...
재석/ 큰 기대하지 말자고 했잖아. 잘 돌아왔으면 된 거야. 좋은 경험 했다,치고.
상민/ (물러나며) 짐 좀 풀어야겠다.
재석/ (모니터 응시한 채) 담배 냄새난다. 끊었다더니 다시 피는 거야?
상민, 나가다가 멈칫 하고 옷 냄새를 맡아본다.
Cut to
침실. 상민이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있다.
방으로 들어온 재석, 상민의 곁에 앉아 잠시 보다가 그녀의 잠옷 속으로 손을 넣는다.
상민이 눈을 살짝 뜨며 재석을 돌아본다.
재석/ 많이 피곤해?
상민/ (졸린 듯) 음... (재석을 향해 돌아눕는다)
재석, 상민의 팬티를 벗기고 위로 올라가 삽입하며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눈을 감고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조금씩 신음 소리를 내는 상민.
그러는 사이, 종화의 방 쪽에서 소리가 들린다.
움직임을 멈추는 재석, 자주 그랬다는 듯이 허탈하게 웃으며 일어나려한다.
상민/ (재석의 등을 툭, 툭 쳐주며) 자요. 내가 가볼게.
Cut to
종화의 방으로 들어와 스탠드 불을 켜는 상민.
악몽을 꾼 듯, 알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리며 벽 구석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종화.
상민, 다가가서 종화를 품에 안고 바닥에 함께 눕는다.
상민/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 괜찮아... 푹 자고 나면, 잊어버릴 수 있어.
엄마도... 그랬음 좋겠어...
씁쓸하게 미소를 띤 상민의 얼굴에서, 길게 F.O.
30. 서울 , 상민의 샵 / 수개월 후 , 낮
가을 정취가 느껴지는 거리 풍경.
개성 있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고즈넉한 언덕길에 위치한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매장.
한 여자 손님이 돌아다니며 옷을 보는데, 그 곁에 상민과 효선이 따라다니고.
반듯한 정장의 여직원들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한 직원이 다가와 커피를 건네자 받아서 냄새를 맡아보는 손님.
손님/ 음-. 향 좋다. 난 여기 커피가 참 맛있더라. (옷을 꺼내 펼쳐보며) 뉴욕, 언제 가세요?
상민/ 원래 이맘때쯤 함 가야 되는데, 서울 런칭 행사로 언니가 올 거라서 미뤘어요.
손님/ 맞아 참. 런칭할 때 됐지... 와. 기대된다. 저도 불러주실 거죠?
상민/ 당연하죠. 그런데, 이번엔 좀 작게 할까 해요.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손님/ 암튼 부러워요. 나도 대표님처럼 그런 언니 있음 좋겠어.
상민/ 아유, 뭐가 부러우세요. 최고 여배우가.
손님/ 부럽죠. 완전 잘나가는 디자이너인데... 그것도 뉴욕에서. 얼마나 멋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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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사무실. 상민과 효선, 직원들이 모여앉아 피자를 나눠 먹고 있다.
효선/ 에이, 누가 컴비네이션으로 시켰어. 페퍼로니 치즈로 하랬는데.
직원1/ 페퍼로니 치즈, 너무 심심해요.
효선/ 니네가 피자 먹을 줄을 모르는 거야. 피자는 기본이 페퍼로니 치즈라니깐.
직원2/ (상민에게) 대표님, 왜 더 안 드세요.
상민/ 별로 배 안고파서.
효선/ 이 분은 느끼한 거 안좋아하시잖어.
직원1/ 피자두요? 맛있는데...
상민/ (정색하며) 아냐. 나 잘 먹어.
효선/ 외국 갈 때마다 고추장을 한 박스 씩이나 들고 가면서 무슨...
왁자지껄...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인데.
상민, 냅킨으로 테이블을 문지르고 있던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본다.
31. 호텔 , 야외 수영장 / 낮
특급 호텔의 야외수영장.
상민과 한실장(아트 디렉터)이 호텔 관계자와 함께 수영장 주위를 걸으며 런칭 행사 장소
대여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호텔 관계자가 무전 호출을 받고 잠시 자리를 비운다.
상민/ 어때요, 실장님은?
한실장/ 스페이스는 재밌고 화사해서 좋은데... 아쉬운 건, 런웨이가 좀 짧게 나올 거 같고...
아무래도 아웃도어라 젤 문제가 날씨예요, 날씨. 늦가을이라 저녁때면 무지 쌀쌀할
거고... 혹시 비라도 와봐. (고개를 절레절레) 우리, 야외는 좀 피하는 게 어때요?
상민/ 언니가 좀 특이한 공간을 원해서 여길 생각했었거든.
한실장/ 스케줄이 아무리 타이트해도, 몇 군데 더 알아보고 결정하는 게...
상민의 휴대폰 벨이 울린다.
상민/ 잠깐만. (전화 받으며) 예. (사이) 아, 예. 선생님, 안녕하세요. (사이) 예?
(잠시 듣다가 표정 굳어지고) 아, 그래요... 어쩌지...
32. 상민의 집 / 저녁
종화의 방.
하정(종화의 개인 교사)이 종화를 옆에 앉혀놓고 그림 치료를 하고 있다.
열린 문틈으로 방 안을 보는 상민.
하정과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종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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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싱 룸.
퇴근해서 돌아온 재석이 옷을 갈아입고 있고, 상민이 뒤에 서서 옷을 받아 걸어준다.
상민/ 주변 애들 교과서를 다 찢었대. 그나마 누구 안 때린 게 천만 다행이지...
재석/ 그래서, 물어줬어?
상민/ 책값하고, 문화 상품권 같이 보내줬어요. 일일이 사과 전화 다하고.
재석/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럼 됐지 뭐.
상민/ 여행 갔다 와서 많이 나아진 줄 알았는데... (한숨) 있잖아요. 이참에... 강북 쪽으로
전학 시키면 어때? 강남 학교는 왠지 좀 까다로운 거 같아. 부모들 항의도 심하구.
재석/ 이봐요, 이상민씨. 강북으로 가면 좀 다를 거 같아요? 어차피 일반 학교는 어딜 가든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어.
상민/ 그래도 조금은 낫지 않을까 싶어서...
재석/ 내가 그랬잖아. 일반 학교 고집하면 안 된다구. 여기 특수 학교도 나쁘지 않아.
상민/ (난감한) 특수 학교는.....
재석/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당신 그러는 거, 남들이 보면 허영이야. (나가며)
외국 학교들 가서 너무 좋은 것만 보구 왔나...
혼자 남겨진 상민. 종화의 방 쪽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재석/ (소리) 우리 종화, 선생님이랑 그림 그렸어요? 뭐 그렸어요?
하정/ (소리) 와아, 멋진 비행기네. 엄마랑 이거 타고 어디 갔었어요?
종화/ (소리) 비행기, 비행기가 막 날아서...
33. 상민의 샵 & 앞 거리 / 낮
쇼윈도우 앞에 서서 디스플레이를 유심히 보고 있는 상민.
외출했던 효선과 직원이 큰 짐가방들을 들고 샵으로 들어오자 상민이 돌아본다.
효선/ 원단 샘플 받아왔어요... 엄-청 많아. 지금 볼래요?
상민/ 쫌 있다가. (다시 디스플레이로 시선을 돌리고는 생각에 잠긴다)
효선/ (다가와서) 왜. 무슨, 문제 있어요?
상민/ 응... 볼 때 마다 자꾸 맘에 걸려.
효선/ 뉴욕 매장하구 같은 컨셉인데.
상민/ 건물 외벽 톤하고 어딘가... 잘 안 맞는 거 같거든.
효선/ 난 좋은데.
상민/ ...그래?
효선/ 디스플레이 팀 연락해서 상의해볼까?
상민/ 아까 통화했어.
효선/ (돌아서서 가며 궁시렁) 까탈스러... 트리플 A형...
그 자리에 계속 서있던 상민, 문득 쇼윈도우 밖 거리를 응시한다.
한 남자가 가게들 앞을 하나씩 지나치며 안쪽을 흘깃흘깃 들여다보고 있다.
잠시 그를 지켜보다가... 놀라는 상민.
맞은편 가게 앞을 막 지나치는 남자는, 기홍이다.
샵 앞 거리.
주위를 둘러보며 걷던 기홍, 건너편 쇼윈도우 안쪽의 상민을 발견하고 멈춰 선다.
잠시 상민과 시선을 마주 하다가 살짝 미소를 띠며 반가움을 표시해 보는데,
그에 반해 상민의 표정이 애매하게 굳어있어서 기홍은 괜히 뻘쭘해진다.
어쩌나... 순간 망설이며 우물쭈물하던 기홍, 어색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돌아선다.
상민/ (소리) 안녕하세요?
기홍이 돌아보면, 상민이 샵 입구 앞에 나와 있다.
기홍/ 아, 예... 안녕하세요?
마주 본 채, 잠시 할 말을 찾는 두 사람.
그들 사이로 차들이 오고 간다.
기홍/ (샵을 가리키며) 여기?
상민/ (고개 끄덕) .....
기홍/ (고개 끄덕) 아...
상민/ 어쩐 일이세요?
기홍/ (차 소음에 잘 안 들려서) 예?
상민/ (큰소리로) 어쩐 일이시냐구요-.
기홍/ 그...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지나는 길이었어요.
다시 할 말이 없는 두 사람, 어색하다.
기홍/ (우물쭈물) 그럼, 수고하세요. (돌아서려는데)
상민/ 저기.
기홍/ (돌아보는) ...?
상민/ 시간 괜찮으시면, 차 한 잔 하고 가실래요?
34. 상민의 샵 / 낮
2층 사무실. 통유리 앞에 서서 매장을 내려다보는 기홍.
상민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들어와 테이블에 앉는다.
기홍/ (돌아보며) 의외네요.
상민/ 예? (잠시 생각) 아... 저하고 안 어울린다, 뭐 그런 뜻?
기홍/ 그게 아니구... (맞은편에 앉고) 사장님 스타일로 보이진 않았거든요.
상민/ 사장님 스타일은 어떤데요? (물티슈로 테이블을 살살 문지른다)
기홍/ (난처한) 어어. 말이 왜 꼬이지...
상민/ 괜찮아요. 사실, 전 무늬만 사장이에요. 매장 담당 직원. 진짜 주인은 따로 있구.
기홍, 상민의 뒤 벽에 붙은 수많은 메모지들을 호기심 있게 보다가...
다른 쪽 벽에 걸린 패션쇼 포스터와 사진 액자들(상희, 디자이너)에 시선을 멈춘다.
기홍/ 저 분?
상민/ (고개 끄덕이다가 기홍과 시선이 마주 치자 괜히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서울엔, 아주 들어오신 거예요?
기홍/ 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케이스에서 명함을 꺼내 보며)
이상민 대표님... 건강이 좋아지셨나봐요.
상민/ ...?
기홍/ 위가 안 좋아서 커피 안 마신다고 했잖아요.
상민/ 가끔은... 마셔요. 손님 있을 때. 참, 별 걸 다 기억하시네...
기홍, 대답 대신 물티슈를 꺼내 테이블을 문지른다.
그런 기홍을 보고 피식, 웃는 상민.
노크 소리가 나고 직원이 고개를 내민다.
직원1/ 디스플레이 팀 왔거든요. 좀 기다리라고 할까요?
상민/ (잠시 머뭇) 아... 응.
기홍/ (직원이 문을 닫자) 바쁘신가 본데, 일보세요. (일어선다)
상민/ 우연, 아니죠?
기홍/ 음... 반반? (문을 열며) 언덕 위쪽에서 내려왔으면 금방 찾았을 텐데.
바보같이 저- 밑 사거리부터 올라오느라 무지 힘들었어요. (나가려는데)
상민/ 다시 보니까, 좋네요.
기홍,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간다.
유리창 너머로 매장을 나가는 기홍을 내려다보는 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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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윈도우 앞에서 디스플레이 팀과 이야기 중인 상민.
들고 있던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리고. 확인 버튼을 누르자 액정에 뜨는 문자.
‘저도 다시 봐서 좋았습니다 - 김기홍’
번호를 저장할까... 망설인다.
그런 상민을 흘깃 보는 효선.
35. 거리 , 기홍의 차 / 낮
예전 기억을 떠올리는 듯, 살짝 미소를 지은 채 운전하고 있는 기홍.
컵 홀더에 놓인 휴대폰 벨이 울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히 휴대폰을 들어서 발신자를 보는데... 문주다.
기홍/ (전화 받고) 응. (사이) 밖에 있다가 현장 들어가는 길인데. (사이) 지금?
(곤란한 표정) 아... (사이) 그래. 알았어. (끊는다)
기홍, 신호에서 멈췄다가 유턴을 한다.
36. 초등학교 앞 , 기홍의 차 / 낮
도로변에 멈춰 서는 기홍의 차.
기홍/ (현장 직원과 통화) 그 쪽 사이드만 홀드하고, 사진 좀 찍어서 메일로 보내줄래?
(사이) 응. 오늘 밤까지 수정할게. (두리번거린다)
교문 안쪽에 서있는 유림이 보인다.
기홍, 전화를 끊고 손을 뻗어 조수석 문을 열고 부르자, 유림이 다가와 차에 탄다.
기홍/ 엄마가, 유림이 데리러 오다가 급한 일이 생겼나봐.
유림/ (고개만 끄덕) .....
기홍/ 음... 우리, 간만에 영화나 한 편 보구 들어갈까?
기홍이 무심코 유림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데, 유림은 살짝 그 손을 피한다.
기홍/ (무안해지고) 뭐, 보고 싶은 거 없어?
유림/ (고개 가로 저으며) .....
기홍이 표정을 살피는데, 유림의 시선은 창밖을 향하고 있다.
기홍/ (차를 출발시키며) 요즘 재밌는 게 없나...
37. 기홍의 집 / 밤
건축가답게 로프트 스타일로 쾌적하게 꾸며진 실내.
테이블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기홍.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문주가 큼지막한 쇼핑 봉투를 들고 요란하게 들어온다.
기홍, 문주에게 시선을 주고는 다시 노트북을 들여다본다.
기홍의 뒤로 가서 끌어안는 문주, 그의 머리에 키스를 한다.
문주/ (기홍을 안은 채) 유림인, 자?
기홍/ 응.
문주/ (모니터를 보며) 일하나 보네...
기홍/ 구조 조금 바꿀 게 생겨서.
문주/ 세나 언니가 까탈 부리는 구나. 그 언니 왜 그런데...
기홍/ 건축주잖아. 해달라는 대로 해줘야지.
문주/ 친구끼리 대충 좀 하면 어때서. 꼬옥- 건축주 티를 내.
문주, 쇼핑 봉투를 들고 부엌으로 간다.
기홍/ (화제를 돌리려) 오픈파티 어땠어?
문주/ 사람들 진짜 많더라. 인경이 걔, 이젠 가로수길에서 명사 됐나봐. (부러운 듯)
대기업에서 프랜차이즈 제안도 들어왔대. 근데, 카페 인테리어가 영- 꽝인 거 있지.
잘나가는 디자이너가 했다는 게... 돈만 덕지덕지 바른 거 같구. 내가 했으면 아마
훨씬 잘했을 걸? (봉투에서 와인을 꺼내며) 세일하길래 몇 병 샀다. 오빠 좋아하는
쇼비뇽 블랑... 한잔 줄까?
기홍/ 그래.
문주/ (잔을 꺼내며) 아참. 설계 사무실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기홍/ 아까 한선배 만났는데, 시간 좀 더 달라구 했어. 조금 더 생각해보고...
뭐, 어차피 세나네 공사도 있으니까 그거 마무리 하고나서...
와인병을 따려는데 잘 안되는지 인상을 쓰고 있는 문주.
그러다가 갑자기 오프너를 싱크대로 휙, 던져버린다.
기홍/ (소리에 놀라서) ...괜찮아?
문주/ 오프너가 뭐 이따위야.
기홍/ 놔 둬. 내가 할게.
문주/ (표정 다시 밝아지며) 나 씻고 올 거니까 먼저 마시지 마. 응? (욕실로 간다)
기홍이 싱크대로 가보면, 와인잔이 깨져있다.
38. 한정식집 , 야외 주차장 / 낮
주차장 앞 벤치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재석.
차가 들어와 멈춰 서고, 상민이 케잌 상자를 들고 내린다.
재석/ (조수석의 종화를 보고 상민에게 다가가서) 하정이가 종화 봐주기로 안했어?
상민/ 학교에 일이 좀 생겼대.
재석/ 자리 산만해지겠네. 또 종화 옆에 붙어있어야 되나...
상민/ (문을 열고 종화를 내려주며) 어어. 그러면 좀 안되나...
재석/ (종화의 손을 잡고) 무슨 케잌 샀어, 할머니 좋아하시는 롤 케잌 산거 맞아요?
상민/ (장난스럽게) 네에 -.
종화/ (따라 하는) 네, 네 -.
재석/ 우리 종화, 대답도 씩씩해요...
사이좋게 나란히 걸어가는 세 사람.
39. 한정식집 , 별채 / 낮
상민의 시어머니 생일을 맞아 식사하는 자리.
시부모, 둘째 아들 내외, 시누이 내외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앉아있는 상민의 식구들.
롤 케잌에 꽂은 초에 불을 붙이고 모두 축가를 부른다.
재석/ 종화야. 할머니한테 뽀뽀해드려야지.
하지만, 종화는 휴대폰 노래를 틀고 귀에 댄 채 테이블 주변만 계속 돌고 있다.
시어머니/ (한숨 쉬며) 생긴 건 저렇게 멀쩡하게 예쁜데...
옆에 서서 박수를 쳐주던 매니저가 샴페인을 따라준다.
상민/ 혹시요... 삶은 계란 좀 몇 개 주실 수 있나요? 애가 그걸 좋아해서...
매니저/ (잠시 머뭇) 예. 갖다드리겠습니다.
시어머니/ ...삶은 계란?
40. 가라오케 / 낮
분위기를 바꿔 흥청거리며 놀고 있는 사람들.
며느리가 딸과 함께 춤을 추며 댄스곡을 부르고, 도우미가 탬버린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다.
시아버지/ 야, 누가 폭탄 좀 시원하게 말아봐라.
사위/ 예엡! 알겠습니다.
시아버지/ 역시 낮술이 좋아, 낮술이.
모두들 술 마시고 박수도 치면서 즐거워하는데, 정작 주인공인 시어머니의 표정은 어둡다.
상민의 시선으로, 대형 모니터에 얼굴을 바짝 대고 장난치는 종화와 재석이 보인다.
시누이/ (갑자기 상민에게) 언니, 정말 둘째 계획은 없는 거예요?
상민/ (살짝 당황) 둘째는 뭐... 종화 아빠랑 예전에 다 결정했던 거라서...
시누이/ 하여튼 큰오빠 성격두 참... 그거 유전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소심해서 그래.
아니, 정신과 의사면서 자기 애 하나도 못 고치나?
둘째 아들/ (옆에서 듣다가) 이런 주책바가지 같은... 모르면서 무식한 소리 좀 작작 해라. (상민에게 건배하며) 형수님, 신경 쓰지 마세요.
시누이/ 왜 그래? 내가 뭐 어쨌다구?
둘째 아들/ 좀 닥치고 있으라고.
시누이/ 오빤 왜 나만 가지고 지랄이야?
둘째 아들/ (인상 쓰며) 이게 씨...
시아버지/ 쟤네들은 또 왜 저래?
그때, 모니터 앞에 서있던 종화가 (상민의) 휴대폰으로 온 문자를 읽는다.
종화/ 안녕..하세요.. 김,기,홍입니다.. 혹시 바쁘..바쁘시지 않으면...
얼핏 그 소리를 들은 상민이 종화를 바라보며 내심 긴장하고...
다행히 재석이 휴대폰을 받아 상민에게 건넨다.
사위/ (어수선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자, 자, 다음 노래는 우리 안재석 박사님 -.
재석이 막 노래를 하려는데, 종화가 마이크를 뺏어서 반주도 없이 노래를 한다.
종화/ 잘 생겼다 잘 생겼다 얼굴 얘기 아니에요 오해 말아줘...
일순간 종화를 보며 말이 없어지는 사람들... 그 사이, 상민은 슬쩍 휴대폰 문자를 본다.
‘안녕하세요 김기홍입니다 혹시 바쁘시지 않으면 통화할 수 있을까 해서요’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주위 눈치를 살피는 상민, 문자를 삭제한다.
재석/ 종화야, 마이크 아빠 주세요. 아빠 주세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반복해서 노래를 부르는 종화.
그 모습을 잠시 보던 상민, 일어서서 앞으로 나가 종화의 노래를 따라 한다.
시아버지/ 여어... 잘하는구나, 우리 손자! (박수를 친다)
당황하던 도우미가 탬버린으로 박자를 맞추기 시작하자, 멍하게 보던 사람들도 얼떨결에
박수를 쳐주는데... 갑자기 시어머니가 울음을 터뜨린다.
종화와 상민의 노래는 계속 되고, 시어머니는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고... 난장판이다.
41. 갤러리 / 낮
한창 내장 마무리 공사 중인 대형 갤러리 (쿤스트할레 스타일은 어떨지...).
기홍이 실내 이곳저곳을 체크하며 현장 직원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그러다가 휴대폰을 보지만... 상민의 문자는 오지 않았다.
42. 거리 , 상민의 차 / 저녁
상민이 운전을 하고, 뒷자리엔 잔뜩 취한 재석이 잠든 종화를 안고 있다.
재석/ (혼잣말) 엄마도 차암... 못말려.
상민/ (룸미러로 뒤를 보며) 응?
재석/ 진짜루 이혼하겠댄다.
상민/ .....
재석/ 칠십 다 되서 무슨 이혼이야. 아무리 아빠가 바람 좀 폈다고...
상민/ (괜히 심난한) .....
43. 갤러리 / 밤
건물 맨 위층 구석에 위치한 사무실.
임시로 쓰는 듯, 테이블과 야전 침대 정도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모니터로 도면을 보고 있던 기홍, 갑자기 휴대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해본다.
기다리는 상민의 문자는 여전히 오지 않았고...
지금 뭐하는 건가, 싶어서 멋쩍은 미소를 짓는 기홍.
노크 소리 들리고 문이 살짝 열리며 세나가 고개를 내민다.
기홍/ 오셨어요, 건축주님.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세나/ 감시하러 왔다...
기홍/ 안그래도 문주가 그러더라. 니가 엄청 까탈 부리는 거 같다고.
세나/ (정색하며) 어어? 무슨 얘길 했길래 그런 오해를 하게 하냐.
기홍/ 그냥 농담이겠지 뭐.
세나/ 집에 안가구 뭐하구 있어? (모니터를 본다)
기홍/ 한선배가. 이번에 설계 입찰 들어갈 시안인데, 좀 봐달라구 해서.
세나/ 아, 한선배... 그럼, 여기 지사에 남기로 한 거야?
기홍/ 글쎄. 아직 잘 모르겠다.
세나/ 아직도 모르면 어떡해...
기홍/ 그러게 말이다...
세나/ 솔직히 넌, 돌아가고 싶잖아? 핀란드로.
기홍/ (고개만 갸웃) .....
세나/ 으이그. (기홍의 어깨를 툭, 치며) 나가자. 건축주가 맥주 한잔 살게.
44. 상민의 집 / 낮
휴일의 오후. 거실 바닥에 앉아 옷수선 바느질을 하고 있는 상민.
켜놓은 TV에선 의료 상담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패널로 출연한 재석이 나온다.
화면 밑에 자막. ‘신경정신과 전문의 안재석 박사’
그녀의 뒤 소파에 앉아 스마트패드로 게임을 하던 종화, 갑자기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상민/ (달래듯이) 아빠 나오는 거 봐야지, 응?
듣지 않고 리모컨을 계속 누르는 종화, 어느 CF 장면에서 멈추고 노래를 따라 부른다.
종화/ 잘 생겼다 잘 생겼다 얼굴 얘기 아니에요 오해 말아줘...
상민, 체념하듯이 두고 다시 바느질을 하려다가 문득 바닥에 놓인 휴대폰을 본다.
순간 망설이는 표정인데...
45. 기홍 장모의 집 앞 / 낮
교외에 위치한 개량 한옥집의 앞 길.
기홍이 차 앞에 기대어 서서 대문 쪽을 보고 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조그만 고양이를 안은 장모가 유림을 데리고 나온다.
장모/ 아니, 들어오지 않구 왜 거기 있어.
기홍/ 바로 가야죠. 일요일이라 차도 막힐 거 같고...
장모/ (유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또 놀러 와. 응?
기홍/ (차에 타며) 유림이, 할머니한테 인사드려야지.
유림, 차에 타려다가 돌아서서 장모에게 살짝 고개 숙이고는 바로 차에 타버린다.
기홍/ 갈게요. (차를 출발시키며 유림에게) 어땠어, 재밌었어?
유림/ (시선을 정면으로 한 채 고개 끄덕) .....
기홍/ (유림을 보며) 고양이, 많이 컸더라. 전에 봤을 땐 주먹만 했는데. 그지?
유림/ (여전히 앞만 보고 고개만 끄덕) .....
기홍/ .....
46. 카페 / 저녁 무렵
문주가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다.
기홍이 들어서서 그녀들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온다.
문주/ (기홍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우리 기사님 오셨네...
기홍/ (친구들에게) 안녕하세요?
문주/ 왜 혼자에요. 유림이는?
기홍/ 차에 있어. 나가자.
문주/ 더 놀다가게 데리고 들어와.
기홍/ 안그래도 물어봤는데, 집에 가고 싶대.
친구1/ (눈치 보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나두 가야겠다.
문주/ 어어? 왜 그래-. 나 한번 나올려면 힘들어, 애땜에. (기홍에게) 오빠, 가서 데리고 와.
친구2/ 오늘만 날이니. 담에 또 보자, 응?
친구들이 주섬주섬 일어나자, 테이블엔 기홍과 문주만 남게 된다.
문주/ 하여튼 내가 뭘 못해... (신경질적으로 일어선다)
47. 기홍의 집 / 밤
유림의 방.
취기가 올라있는 문주, 옷도 벗지 않은 채 유림을 안고 침대에 털썩 눕는다.
문주/ 니네 아빠가 말야. 엄마를 자꾸 가둬놓는다? 왜 그런 줄... 유림이는 알아?
유림/ ...왜요?
문주/ (유림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엄마가 챙피한가 봐...
문밖에서 보던 기홍, 돌아서서 욕실 쪽으로 간다.
Cut to
욕실의 부쓰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 기홍.
문이 열리고, 문주가 옷을 벗으며 부쓰 안으로 들어온다.
좁은 부쓰 안에 닿듯이 서있게 된 두 사람.
문주, 잠시 눈을 감고 얼굴에 물줄기를 받다가 돌아서서 기홍의 가슴에 키스를 한다.
가만히 문주에게 몸을 맡기는 기홍.
문주, 몸을 돌려 벽을 향하고 기홍의 몸을 끌어당긴다.
기홍, 문주의 허리를 감싸 안고 안으로 들어간다.
신음 소리를 내는 문주.
문주/ 나 사랑해?
기홍/ (계속 몸을 움직이며) ...응?
문주/ 사랑한다구 해 봐.
기홍/ .....
문주/ 사람이 어쩜 그렇게 솔직해... 이럴 땐 거짓말도 좀 할 수 있는 거지.
기홍, 행위를 멈추고... 문주, 뒤로 손을 뻗어 기홍의 성기를 만진다.
문주/ 어어. 왜 이래.
기홍/ (문주의 몸에서 떨어지며) 미안...
부쓰에서 나가는 기홍, 타월로 몸을 닦는다.
문주/ (버럭) 아, 쫌! 미안해? 뭐가? 뭐가 미안한데! 하여튼 착한 척은...
묵묵히 듣다가 욕실을 나가는 기홍.
48. 상민의 샵 / 아침
2층 사무실.
상희와 화상으로 국제 통화를 하고 있는 상민.
상희/ 사진들 다 훑어봤는데... 잘 모르겠더라. 좀 캐주얼하게 할 수 있는 장소 없나.
상민/ 한실장이랑 열심히 알아보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상희/ 그래. 나 서울 들어가기 전까진 찾을 수 있겠지?
인터폰이 울린다.
직원/ (E) 대표님, 재단 회사에서 전화 왔는데요. 돌려드릴까요?
상민/ 그래요. (상희에게) 언니. 좀 있다가 다시 할게. (내선 전화 받으며)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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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윈도우 뒤쪽에 서서 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상민.
효선/ 뭐 보고 있어요?
상민/ (돌아보며) 그냥...
효선/ 요즘 언니, 쫌 멍하게 보여...
상민/ (못들은 듯) .....
효선/ (대꾸 없는 상민을 잠시 보다가) 어라. 새치 있네.
상민/ 응?
효선/ 뽑아줄게. (머리를 만지며) 무슨 흰머리가 벌써 있어...
상민/ 혹시, 담배 있니?
효선/ 피지도 않는 사람한테 웬 담배... (새치 한 개를 잡아 뽑는다) 언니, 이거 봐.
49. 상민의 샵 앞 거리 / 낮
편의점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사서 나오는 상민.
한 개비 꺼내 피우면서 샵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길 건너편에 차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서있는 게 보인다.
무심코 지나쳐서 샵으로 들어가려는데, 운전석 창이 열리면서 기홍이 고개를 내민다.
상민,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왠지 가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는데...
기홍/ 안녕하세요?
상민/ ...예.
기홍/ .....
상민/ 저, 기다리신 거에요?
기홍/ 그런... 셈이죠.
상민/ 전화를 하시지 왜...
기홍/ 며칠 전에 문자 함 했는데 답이 없으셔서, 좀... 그렇더라구요.
상민/ 아, 미안해요. 깜빡했네.
기홍/ 점심, 드셨어요?
상민/ 아직...
기홍/ 좋은 식당 있거든요. 같이 가실래요?
상민/ (샵 쪽을 보며 고민하는) .....
기홍/ 어차피 밥은 먹어야 되잖아요.
50. 갤러리 / 낮
텅 빈 홀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상민.
기홍/ (소리) 올라오세요-.
상민이 올려다보면, 기홍이 맨 위층 난간에 서서 손을 흔들어 보인다.
복잡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 사무실로 들어서는 상민.
기홍이 배달시킨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고 포장을 벗기고 있다.
상민/ 좋은 식당이라더니...
기홍/ 식당보다 좋지 않나? 조용하고.
상민/ 일하는 사람들은?
기홍/ 다들 식사하러 갔고... 한 사람은 여길 지켜야죠. (수저를 건네며) 드세요.
좋아하시는 된장찌개.
상민, 수저를 받아들고 앉는다.
상민/ 건물이 특이해요. 용도가 뭐에요?
기홍/ 전시도 하고, 공연이나 세미나 같은 것도 하고. 뭐, 복합 문화 공간이라고들 하던데.
상민/ (고개 끄덕이며) 이런 거 만드는 사람이었구나... 의외네.
기홍/ 왜. 나랑, 안 어울려요?
상민/ 네.
기홍/ (뻘쭘한) 아...
상민/ 농담이에요. (방을 둘러보며) 근데. 이 방은 왜 이렇게 썰렁해요?
기홍/ 공사 끝나면 창고로 쓸 건데... 그전까진 임시 사무실 같은 거죠.
상민/ 사무실이 따로 없어요?
기홍/ 아직은. 여기서 일도 하고 밥도 먹고 가끔 늦으면 잠도 자고... 복합 생활 공간이랄까.
상민/ 애매하네... (찌개를 먹어보고) 어, 맛있다. 찌개에 밥 말아도 되요?
기홍/ ...좋을대로.
상민/ (밥을 듬뿍 넣고) 이렇게 먹으면 더 맛있거든.
기홍/ 어째 모양이 좀...
상민/ 응?
기홍/ 개죽 같아 보이는데.
상민/ (찌개 그릇을 자기 앞으로 가져가며) 그럼 먹지마요.
기홍/ 쫌-만 먹을게요.
상민/ 개죽이라며...
장난스럽게 옥신각신 하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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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홍을 따라서 실내 곳곳을 둘러보는 상민.
임시 사무실과는 달리 모던하고 시원스러운 공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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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민, 난간에 기대어 서서 아래층 홀을 내려다보고 있다.
기홍이 커피잔을 들고 와 상민에게 건네고 곁에 나란히 선다.
잠시 후, 기홍이 상민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얹는다.
기홍을 돌아보는 상민.
두 사람, 시선이 마주 치자 어색하게 웃는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공사 인부들이 보이자 손을 살짝 빼는 상민.
상민/ 공사가 언제 끝나요?
기홍/ 다음 주에 준공 검사 받으면... 아마 다다음주쯤?
상민, 잠시 생각하다가 휴대폰을 꺼내서 홀 쪽을 향해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의아하게 보는 기홍.
51. 상민의 샵 / 밤
매장이 문을 닫은 후.
사무실. 모니터로 의상 디자인을 하나씩 체크하며 상의하고 있는 상민과 효선.
아래층 소파에서는 하정이 종화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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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혼자 앉아 패션 모델들의 프로필을 보고 있는 상민.
문이 열리고 하정이 고개를 내민다.
하정/ 더 계실 거죠? 효선 언니 가는데 같이 나갈까 해서요.
상민/ (시계를 보고) 아, 미안... 많이 늦었지. 내가 정신이 없네. 종화는 뭐해?
하정/ 밑에 소파에서 자요.
상민/ 응. 고마웠어. 잘 가.
하정이 나가고, 상민이 일어나 통유리로 다가가서 매장 쪽을 내려다본다.
소파에서 담요를 덮고 곤히 자고 있는 종화의 모습.
(인써트 - 거리에서 보이는 샵 전경. 경보기를 작동시키고 밖으로 나오는 효선과 하정.
2층 사무실 조명만 켜있는, 어두운 건물.)
테이블로 돌아온 상민, 프로필들을 챙겨서 가방에 넣는데 차임벨 소리가 울린다.
의아한 표정으로 아래층에 내려가는 상민.
입구로 가서 유리문 밖을 보면... 기홍이 서있다.
기홍/ (장난스럽게) 옷 좀 보러왔는데. 너무 늦었죠?
상민/ 영업시간 끝났는데요.
기홍/ 아... 어쩌지. 나중에 다시 올까요?
상민이 문을 열어주고 입구에서 비켜서자, 기홍이 안으로 들어온다.
문을 잠그는 상민의 뒤에 바짝 다가서서 어깨를 감싸 안는 기홍.
상민/ 우리, 아까도 만났잖아요.
기홍/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차가 알아서 여기로 오더라구.
상민/ (피식 웃고) .....
기홍/ 안경 썼네요.
상민/ ...노안이 와서.
기홍, 상민에게 키스한다.
잠시 그를 받아들이는 상민.
상민/ (살짝 떨어지며) 이렇게 무작정 왔다가 내가 없었으면.
기홍/ ...그냥 돌아가면 되죠 뭐.
다시 입을 맞추는 기홍.
상민, 안경을 벗고 기홍에게 키스하며 깊이 안긴다.
종화/ (소리) ...엄마?
순간, 동시에 당황하며... 굳어버리는 두 사람.
낭패스러운 표정의 상민과 어리둥절한 기홍.
상민, 먼저 가라는 듯 기홍에게 손짓을 한다.
기홍이 고개를 끄덕이고 입구로 가자, 돌아서서 종화 쪽으로 다가가는 상민.
상민/ (끌어안으며) 응, 엄마 여깄어... (자책하는 듯한 표정이다)
밖으로 나간 기홍이 돌아보면... 유리문 저편으로, 종화를 꼭 안고 있는 상민의 모습.
애틋하면서도, 왠지 서글퍼 보인다.
잠시 그렇게 보다가, 씁쓸하게 발걸음을 돌리는 기홍.
52. 기홍의 집 / 초저녁에서 밤까지
넓은 테라스에 모여 바비큐를 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 기홍의 지인들이고, 문주가 밝은 표정으로 그들 사이에서 대화하고 있다.
테라스와 연결된 부엌. 기홍이 냉장고에서 와인과 캔맥주를 꺼내고 있다.
화장실에 나오던 세나가 보고 다가온다.
세나/ 뭐, 도와줄까? (와인을 건네받고 테라스 쪽을 보며) 문주씨... 좋아 보인다.
기홍/ 그래?
세나/ 유림이는?
기홍/ 방에 있어.
세나/ 왜에. 나와서 같이 먹게 하지.
기홍/ 아직 좀, 낯을 가려서... 그건, 어떻게 하기로 했어? 런칭 행사.
세나/ 응. 어제 그 쪽 샵에 가서 얘기 들었구, 현장에서 다시 미팅하기로 했어.
패션쇼라... 오프닝으로 괜찮을 거 같애.
기홍/ 잘됐네.
세나/ 그, 이상민 대표라는 여자. 분위기 묘하던데... 매력 있더라. 어떻게 아는 사이야?
기홍/ (애써 무덤덤하게) 헬싱키 있을 때. 유림이 다니던 학교에서 잠깐 봤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던 문주, 기홍과 세나가 함께 있는 모습을 유심히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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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 사람들 대부분 취기가 많이 올라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다.
친구1/ (접시를 뒤집어보며) 오우, 메이드 인 에스토니아... 어쩐지 문양이 고풍스럽더라.
문주/ 예쁘죠?
세나/ 소품들 많이 사왔나봐. 거실에 커튼도 가져온 거라며.
문주/ 그건 핀란드 마리메꼬.
친구2/ 마리메고 뭐고 생전 북유럽 근처에 가봤어야 말이지...
친구3/ 에스토니아가 핀란드에서 가깝나?
친구2/ 저런 무식한...
세나/ 좋은 가구도 진짜 많은데. 알바 알토 같은 거. 이삿짐으로 갖고 올 수 있잖아?
문주/ 그러구 싶었는데... (기홍을 흘깃 보고) 어떻게 될지 몰라서 고민하다가 못샀어요.
친구2/ 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는 건가?
기홍/ 아직, 좀 생각 중이야.
세나/ 빨리 결정해야지, 우리 공사도 다 끝나가는데.
문주/ 그죠? 그 잘난 갤러리 땜에 몇 달을 저러고 있으니.
세나/ ...?
문주/ 난, 오빠가 나 땜에 돌아온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언니네 공사 때문인 거
같더라구. 아니. 일종의 핑계인가? 어쩌면, 그렇고 그런 사이? 하긴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세나/ (애써 침착하게) 에이, 무슨 농담을...
문주/ 나, 바보 아니에요. 맨날 친구가 어쩌고 우정이 어쩌고... 남녀 사이에 그런 게
어딨어. 웃겨...
기홍, 난감한 표정으로 문주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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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을 나서는 세나와 그녀의 남자 친구.
기홍이 미안한 표정으로 뒤에 서있다.
세나/ 신경 쓰지 마. 나, 내일 새벽에 지방 가야 되서 그래. 정말루.
기홍/ .....
세나/ 진짜 괜찮으니까, 공사나 잘 마무리 해주셔요. (웃어 보이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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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로 다시 나오는 기홍.
그런데,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고...
난간 위에 맨발로 올라가 - 에스토니아 음악에 맞춰 - 위태롭게 춤을 추는 문주가 보인다.
문주/ 오빠-, 올라와 봐.
기홍/ (다가가며) 위험해. 내려 와. 응?
문주/ 뭐니, 남자가 그렇게 겁이 많아...
그때, 곁의 친구가 기홍의 어깨를 건드려서 돌아보면... 유림이 입구 앞에 서있다.
창백한 얼굴로 문주를 응시하고 있는 유림, 소변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린다.
기홍이 당황하며 유림에게 다가가려는데, 문주가 먼저 뛰어가서 유림을 들어 품에 안는다.
문주/ (사람들에게) 가지마세요. 금방 나올게 -.
아무 일 없다는 듯, 유림을 안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문주.
망연자실 그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는 기홍.
주위 사람들이 더 난감한 표정으로 기홍의 눈치를 살핀다.
53. 상민의 집 / 밤
어두운 침실 안.
누워있는 상민, 고개를 돌려 잠이 든 재석의 얼굴을 바라본다.
상민/ (작은 소리로) ...자요?
재석/ (살짝 깨며) ...으응.
상민/ .....
재석/ 왜 안자구.
상민/ 잠이 안오네.
재석/ 피곤하지 않아? 요즘 계속 늦게까지 일하면서.
상민/ 있잖아요... 나, 종화랑 외국에서 이삼년 정도 있다 오면 어떨까.
재석/ ...어디로 가고 싶은데. 캐나다? 핀란드?
상민/ 어디든.
재석/ (한숨 쉬는) 둘이 떠나면. 나 혼자 홀애비로 살으라는 건가... 너무 하네...
상민/ .....
재석/ 그만 자자, 응? (달래듯이 상민의 등을 톡, 톡 두드려준다)
상민, 고개를 돌려 천정을 바라본 채 생각에 잠긴다.
54. 기홍의 집 / 밤
파티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후.
어수선한 테라스에서 기홍이 혼자 정리를 하고 있다.
누군가 두고 간 담뱃갑을 들어서 열어본다.
안에 남겨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피우며 의자에 앉는다.
먹다 남은 음식과 술병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테이블을 멍하게 바라보는 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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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거실. TV를 켜놓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문주.
기홍이 다가와 그녀의 곁에 앉는다.
기홍/ 대충 치워놨구... 설거지는 내일 하자. 너무 많네.
문주/ (TV를 응시한 채) .....
기홍/ (TV로 시선을 돌리고) 뭐야. 재밌는 거야?
문주/ 오빠.
기홍/ ...응?
문주/ 행복하지 않지?
기홍/ (문주를 잠시 보다가) 무슨 소리야, 그게.
문주/ 날 버려.
기홍/ .....
문주/ 나는... 그럴 용기 없으니까, 오빠가 날 버리는 거야. 어때?
기홍/ (애써 웃어넘기려는) 정말, 그러길 바래?
문주/ 또 저런 식이지. 항상 자기만 좋은 사람인 척... 내 와이프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아이도 저렇게 됐으니까, 그래서 불행한데... 그래도 내가 다 떠안겠다...
기홍/ 문주야.
문주/ (몸을 일으켜 앉으며) 괜찮아. 오빠가 어떻게 해도... 나, 원망 안할 거거든.
일어서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문주.
혼자 남겨진 기홍, 공허한 시선으로 TV를 응시한다.
버라이어티 쇼에 나온 연예인들이 왁자지껄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다.
55. 명품샵 / 낮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매장을 둘러보고 있는 상민.
의상 디자인 시안과 매칭해보며 런칭 행사에 쓸 액세서리들을 고르고 있다.
56. 갤러리 / 낮
2층 난간에 나란히 서있는 상민과 세나.
홀을 내려다보며 런칭 행사에 대해서 상의하고 있다.
상민의 시선으로, 홀 한쪽에서 여직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기홍이 보인다.
정작 기홍과 직원은 일 얘기를 하고 있는데, 상민에게는 두 사람의 모습이 제법 친근하게
느껴져서 은근히 마음이 상하는데...
기홍이 돌아서서 홀을 지나다가 상민과 시선이 마주 치고, 사무적으로 고개만 숙여 보인다.
그때, 휴대폰 벨소리.
상민/ (세나에게) 잠깐만요. (전화 받으며) 네. (사이) 예, 선생님.
중요한 얘기인 듯, 통화를 하면서 구석으로 가는 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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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표정의 상민, 급히 계단을 내려와 홀을 가로질러서 밖으로 나간다.
직원들과 작업을 하고 있던 기홍이 의아하게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런 기홍을 지켜보는 세나.
57. 초등학교 / 낮
상민, 교무실에서 선생님과 마주 앉아 있다.
선생님/ 그냥 좀 때린 정도라면 어떻게 막아보겠는데, 이번엔 정말 곤란해요.
아이 하나는 샤프 펜이 손등에 꽂혔으니까... 하마터면 불구 될 뻔 했다구요.
상민/ (끔찍해서 눈을 질끈 감고) .....
선생님/ 미안하지만 더 이상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상민/ 사과하고 배상하고, 얼마든지 다 할 거니까... 그냥 반만 바꾸면 안 될까요?
애가 지금 다른 학교로 가면 적응이 힘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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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찹한 표정의 상민이 종화의 손을 잡고 복도를 걸어간다.
선생님/ (V.O) 일반 학교로는 전학이 힘들 거예요. 이참에 특수 학교를 생각해보시는 게....
교실 옆을 지나쳐 가는데, 아이들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장난스럽게 소리친다.
아이들/ 야! 이 바보야!
아이들/ 나는 바-보다.
종화/ (따라 하며) 나는 바보다 -.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더 빨리 걷는 상민.
종화/ 나는 바보다, 나는 바보다, 나는 바보다.
상민/ (손으로 종화의 입을 막으며) 니가 왜 바보니, 넌 바보가 아냐...
종화/ 나는 바보다, 나는 바보다...
상민,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눈이 붉게 충혈 되지만... 꾹 참고 학교를 나선다.
58. 상민의 집 / 저녁
차려놓은 저녁상을 앞에 두고 앉아있는 상민과 종화.
종화/ 나, 계란.
상민/ 계란은 내일 먹고 밥 먹자. 와, 맛있는 거 많네.
종화/ 계란! 계란!
상민/ 밥 먹으면 줄게. 응?
종화, 밥그릇을 바닥으로 집어 던져 버린다.
상민/ (잠시 말이 없다가) 아주머니, 계란 삶아놓은 거 있죠?
아줌마/ (걱정스럽게) 아침에도 많이 먹었는데...
상민/ 괜찮아요. 주세요.
냉장고 위에 숨겨뒀던 계란 바구니를 꺼내 놓는 아줌마.
종화가 계란 하나를 얼른 집어든다.
상민/ (계란 껍질을 벗기며) 자, 봐. 엄마도 먹는다.
계란을 꾸역꾸역 입에 넣기 시작하는 상민.
입에 꽉 차도록 물고는, 종화를 보고 웃는 표정을 짓는다.
갑자기 목이 메어 심하게 기침을 하다가... 눈이 벌겋게 충혈 된다.
(인써트 - 침실 협탁에 놓인 상민의 휴대폰, 기홍의 전화로 진동하다가 멈춘다.)
Cut to
화장실.
변기 앞에 주저앉아 먹은 것을 토해내고 있는 상민.
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재석/ (소리) 참... 애랑 똑같이 그러면 어떡하니...
59. 갤러리 / 저녁
한실장과 어시스트가 홀에서 실측을 하고 사진을 찍는 등, 플로어 플랜을 짜고 있다.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그들을 보는 기홍, 주위를 살피지만 상민은 보이지 않는데.
홀 한쪽에서 인테리어 회사 직원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던 세나 쪽으로 다가간다.
기홍/ 아트팀?
세나/ 응. (기홍을 흘깃 보며) 이대표는 못온다네.
기홍/ (고개만 끄덕) .....
세나/ 많이 바쁜가봐. 아까 급한 일 있다고 나가더니.
기홍/ .....
60. 상민의 집 / 밤
침실.
지친 얼굴로 누워있는 상민.
옆방에서 재석이 종화에게 책을 읽어주는 소리가 들려온다.
재석/ (소리) 바닷가에서 두 사람의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어부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어요. 그물이 무거워요, 굉장히 큰 고기가 걸린 것 같아요...
협탁 위에서 짧게 진동하는 휴대폰.
누운 채로 문자 메시지들을 확인하는 상민.
그 중 하나는 기홍으로부터 온 것. ‘시간 괜찮으실 때 전화 부탁합니다’
물끄러미 보고 있던 상민, 문자를 삭제한다.
61. 상민의 샵 앞 거리 / 밤
길 가에 멈춰 서는 기홍의 차.
운전석의 기홍이 건너편 상민의 샵을 바라본다.
아무도 없는 듯, 내부의 조명이 모두 꺼져있다.
62. 기홍의 집 / 밤
집으로 들어서는 기홍.
실내는 어둡고 인기척이 없다.
부엌으로 가서 물을 꺼내 마시며 휴대폰을 확인해보지만, 아무 문자도 와있지 않다.
돌아서서 방 쪽으로 가려는데, 복도에 작은 그림자가 있어서 멈칫 하고 유심히 본다.
굳은 듯이 서서 욕실 안을 응시하고 있는 유림.
기홍/ ...뭐해?
유림,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서있다.
기홍이 다가가서 보면, 욕실 바닥에 문주가 쓰러져있다.
다급하게 문주를 끌어안으며 흔들어보지만... 옅은 숨소리만 흘리며 의식이 없는 문주.
세면대에는 수면제 약병과 술잔 등이 함께 흐트러져 있다.
기홍/ (휴대폰을 꺼내며) 유림아, 방에 가있어, 응?
63. 종합 병원 , 정원 / 아침
밤을 샌 듯, 지친 모습으로 병원 건물을 나서는 기홍.
벤치에 유림과 함께 앉아있는 장모에게 다가간다.
장모/ 피곤하지? 한숨도 못자고.
기홍/ (곁에 앉으며) 괜찮아요.
장모/ 일하는 데 가봐야지.
기홍/ 전화해놨어요.
장모/ 퇴원하면... 당분간 내가 데리고 있을게. 유림이랑 같이.
기홍/ ...괜찮으시겠어요?
장모/ 그럼 어떡해. 내가 낳은 자식이니까 뒤치다꺼리 해야지. 유림이 학교도 데려다주고...
(유림의 머리를 만지며) 근데 우리 유림이, 지 할미랑 말을 잘 안 해요...
기홍/ .....
장모/ 자책하고 그러지 마.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기홍/ 아무래도... 여기 떠나있는 동안 더 나빠진 거 같아요. 진작 돌아왔어야 하는 건데.
장모/ 어디 있단들, 마음의 병이 쉽게 낫겠어?
기홍/ .....
장모/ 누구보다 내가 잘 알잖아. 원래 감정 기복이 심한데다 피해 의식도 강하고...
너무 일찍 시집가서 애 낳구, 서방만 바라보며 살다가 아직 어른이 못된 거지.
기홍/ .....
장모/ 답답하겠지만, 시간을 좀 줘봐.
기홍, 벤치 반대편 끝에 앉아있는 유림을 물끄러미 본다.
64. 상민의 샵 / 낮
2층 사무실에서 상민과 효선, 한실장이 행사장 도면을 보며 상의하고 있다.
휴대폰 진동이 울리자, 슬쩍 확인해보는 상민. 하지만... 스팸 문자다.
상민, 다시 한실장의 설명을 듣지만 왠지 정신이 다른 곳에 가있는 듯한데.
그러다가 갑자기 일어서서 사무실을 나간다.
효선과 한실장, 벙 찐 표정으로 서로 마주 본다.
복도로 나온 상민, 휴대폰에서 기홍의 번호를 찾고는 전화를 할까 망설이는데...
계단 소리가 들리고 직원이 올라온다.
직원/ 대표님, 3시 약속한 손님 오셨는데요.
상민이 계단 쪽으로 가서 아래층을 내려다보면, 단골손님인 듯한 여자가 손을 흔든다.
여자에게 웃어보이는 상민, 거울 앞에서 머리와 옷매무세를 다듬은 후 계단을 내려간다.
65. 종합 병원 , 복도 / 저녁
기홍, 복도에 서서 열린 문 사이로 병실 안을 들여다본다.
링거 주사를 꽂은 채 누워있는 문주.
그 옆 보호자 침대에는 장모가 앉아있고, 무릎 위엔 유림이 잠들어 있다.
벤치로 가서 앉는 기홍, 벽에 머리를 기대고 길게 한숨을 내쉰다.
66. 상민의 샵 / 밤
사무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상민.
문이 열리고 효선이 들어와 파일 묶음을 테이블에 놓는다.
효선/ 이거, 잊지마요. 출장 잘 갔다 오시고-.
상민/ 응. 들어가.
Cut to
모두들 퇴근하고 혼자 남아있는 상민.
1층 매장 안을 왔다갔다 배회하다가 가끔씩 창밖을 본다.
인적 없는 거리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가로등만 외롭게 서있다.
왠지 기홍이 모습을 보일 것도 같지만...
상민, 실내등을 하나씩 끄면서 밖으로 나가 문을 잠근다.
디졸브.
67. 상민의 샵 앞 거리 / 아침
주차장에 차를 세운 상민, 샵 입구로 가다가 건너편에 세워진 기홍의 차를 보고 멈춰 선다.
매장에서 기다리던 효선이 상민을 보고 나온다.
효선/ (봉투를 건네주며) 으휴... 이걸 놓구 가면 어떡하냐. 응? 언니, 요즘 진짜 좀 이상해.
상민/ 어, 미안...
효선/ 여기 있어요. 차 빼올게.
효선이 주차장 쪽으로 간 후, 상민은 기홍의 차 쪽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본다.
운전석에서 잠들어 있던 기홍, 상민이 유리창을 두드리자 눈을 뜬다.
기홍/ (잠이 덜 깬 얼굴로 창을 열고) 응? 여기... 웬일이에요?
상민/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참...
기홍/ (길게 하품) 아침 먹었어요?
상민/ .....
기홍/ 배고파요.
상민/ 미안한데, 시간이 안돼요. 지금 기차 타러 가야되거든.
기홍/ 어디, 가요?
상민/ 부산에 일이 있어서.
기홍/ 데려다 줄게요.
상민/ ...부산까지?
기홍/ 모셔다 드리죠 뭐. 전에도 함, 그런 적 있는 거 같은데.
상민/ (문득 옛 기억을 떠올리고) ...오늘은 괜찮아요.
기홍/ 그럼, 기차역까지만.
상민, 기홍의 얼굴을 보며 망설이는데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서 돌아본다.
건너편에 카니발을 세워놓고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효선.
68. 거리 , 기홍의 차 / 아침
기홍이 운전을 하고, 조수석에 상민이 앉아있다.
상민/ (기홍을 잠시 보다가) 얼굴이 왜 그래요. 면도도 안 하고... 무슨 일 있어요?
기홍/ (얼굴을 만지며) 이상해요? ...아침을 굶어서 그런가.
상민/ .....
Cut to
서울역 앞에 멈춰 서는 기홍의 차.
상민/ 고맙다고 해야 되나... 모르겠네.
기홍/ 내가 졸라서 온 건데 뭘.
상민/ 아침 꼭 드세요.
기홍/ 넵.
상민/ 면도도 하구요.
기홍, 웃으며 고개 끄덕인다.
차에서 내린 상민, 손을 흔들어 보이고 돌아서서 광장 쪽으로 간다.
69. KTX 안 / 아침
막 출발해서 플랫폼을 벗어나고 있는 기차.
창가에 앉아 밖을 보고 있던 상민, 뭔가 마음에 걸리는 듯한 표정인데.
휴대폰을 꺼내 기홍에게 전화를 건다.
발신음을 듣는 상민, 옆자리로 와서 앉는 사람을 무심코 돌아보면... 기홍이다.
기홍/ 이거, 부산 가는 기차 맞죠?
상민/ (물끄러미 보며) .....
기홍/ 혼자 심심하실까봐.
상민/ (어이없는) 진짜 대책 없다...
판매원이 카트를 밀며 객실로 들어온다.
기홍/ (판매원을 보고) 배고픈데 잘됐네.
상민/ 철이 없는 건가...
기홍/ (상민에게) 뭐 먹을래요? (판매원에게) 저기, 삶은 계란 있어요?
판매원/ 네. 몇 개 드려요?
기홍/ (상민에게) 몇 개?
상민/ (진저리를 치며) 아, 아니. 싫어요.
기홍/ 계란 세 개, 사이다 두 개. (돈을 내고) 기차에선 역시 삶은 계란에 사이다죠.
상민/ ...줘요. 내가 해줄게.
상민이 계란을 받아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기홍/ (잠시 보다가) 그게 아닌데. 방법을 잘 모르시는군.
상민/ ?
기홍, 계란 하나를 들어 자기 이마에 팍 친다.
기홍/ 이러면 훨씬 쉽고 빠르다구. 함 해봐요.
상민, 계란을 집어서 기홍의 이마에 내리친다.
기홍/ (아픈 듯 찡그리며) 어어... 왜 나한테...
상민/ 진짜네... 잘 벗겨져.
껍질을 다 벗긴 계란을 상민이 건네자, 덥썩 받아먹는 기홍.
계란을 한가득 입에 문, 어린아이 같은 기홍의 표정을 보고 상민이 미소 짓는다.
갑자기 상민에게 입을 맞추는 기홍.
상민/ 아, 더러워. (자신의 입을 닦으며) 묻었잖아...
상민, 손을 뻗어 기홍의 입 주위에 묻은 노른자 부스러기도 털어준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기홍, 다시 상민에게 살짝 입을 맞춘다.
상민, 주위 눈치를 살피는데... 다행히 기차 안은 한산하다.
상민/ (열심히 먹는 기홍을 보며) 어쩜 저렇게 태평할까...
기홍/ (돌아보며) ...응?
상민/ 아-무 고민도 없는 사람처럼.
기홍/ 내가 그렇게 보이나...
상민/ 도대체, 일은 언제 해요?
기홍/ 공사, 다 끝났잖아요.
상민/ 그럼 이제, 돌아가는 건가... 핀란드로?
기홍/ 음...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거 같고.
상민/ (흘겨보며) 무슨 대답이 또 저러니...
기홍/ 상민씨 땜에 못 돌아갈 거 같은데.
상민/ (피식 웃으며) 아무래도... 여자랑 이런 상황이 생전 처음인가 봐.
기홍/ ...?
상민/ 농담도 참 별루고... 잘 해주려고 애쓰는 게 너무 티나고 어설퍼.
기홍/ (장난스럽게) ...들킨 거에요?
상민/ 아, 몰라. 나 잘래요.
상민, 신발을 벗어 발을 시트에 올리고 머리를 기대며 눈을 감는다.
기홍/ 발목이 예쁘네...
상민이 눈을 떠보면, 기홍이 자신의 발을 어루만지고 있다.
상민/ 뭐야... 징그럽게. (발을 빼는데)
기홍/ 가만 있어봐요.
마사지 하듯이 상민의 발을 매만지는 기홍.
그런 기홍을 바라보는 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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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나온 상민이 자리로 돌아와 보면, 기홍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잠들어 있다.
상민, 기홍의 머리를 살짝 밀어 시트에 기대게 한다.
기홍/ (눈을 뜨며) 어. 나 안잤어요.
상민/ 코 골았으면서 무슨... 빨리 자요.
기홍/ 자기 싫은데.
상민/ 내가 봐줄게요.
기홍/ ...?
상민/ 예전에. 나 자는 거 봐줬잖아... 이번엔 내가 볼게.
상민, 기홍에게 입을 맞추고는 대각선 맞은 편 자리로 간다.
기홍/ ...너무 멀어.
상민/ 방해 안하려구.
두 사람, 말없이 서로를 응시한다.
70. 부산역 / 낮
기차에서 내린 두 사람, 사람들에 섞여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기홍이 상민의 손을 살짝 잡는다.
Cut to
대합실.
두 사람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걷고 있다.
상민이 멈춰 서자, 기홍도 멈춰 선다.
상민/ 그만 가요.
기홍/ .....
상민/ 데려다 줬으니까... 여기선 내가 배웅해주고 싶어.
기홍/ (잠시 상민을 보다가) 오케이. (돌아서서 간다)
그의 모습이 멀어지고,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계속 그 쪽을 보고 있는 상민.
왠지 모르게... 마음이 저려온다.
71. 부산역 , 플랫폼 / 낮
벤치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기홍.
상민과 함께 있을 때와는 다르게, 쓸쓸한 모습이다.
72. 갤러리 / 저녁 무렵
입구로 들어서는 기홍.
홀 한 쪽의 바 테이블에 앉아있는 세나를 보고 다가간다.
세나, 잔에 양주를 따라서 기홍에게 건넨다.
기홍/ 웬 술이야, 혼자서.
세나/ 자축하고 있었지... 오늘, 준공 검사 통과했잖아.
기홍/ ...미안. 내가 왔어야 되는데.
세나/ 아냐. 못 올 거라고 생각했어.
기홍/ .....
세나/ 얼굴이 안 좋네.
기홍/ (한 모금 마시며) .....
세나/ 하긴, 좋을 리가 없지.
기홍/ (씁쓸한 표정) 사는 게... 왜 이렇게 애매한지 모르겠다.
세나, 잠시 기홍의 바라보다가 일어선다.
세나/ 먼저 갈게. 데이트가 있거든. (돌아서려다가) 오프닝 때까진 있어줄 거지?
기홍, 고개를 끄덕인다.
세나가 나가고, 혼자 남겨진 기홍.
73. 부산 해운대 , 호텔 / 저녁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
사람들과 - 부산에 개설할 브랜치 계획에 관한 -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상민.
휴대폰이 울려서 보면, 기홍이다.
상민/ (자리를 벗어나 전화 받으며) 네.
기홍/ (E) 바빠요?
상민/ 조금.
기홍/ (E) 그렇구나...
상민/ .....
기홍/ .....
상민/ 여보세요?
기홍/ (E) 네.
상민/ 술 마셨어요?
기홍/ (E) 조금.
상민/ 그만 쉬어요. 아까 보니까 많이 피곤해 보이더라.
기홍/ (E) 그래요.
상민/ .....
기홍/ (E)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요. ...끊을게요.
전화가 툭, 끊어지고... 잠시 굳은 듯 서 있는 상민.
일행들 쪽을 바라본다.
74. 갤러리 / 밤
택시에서 내리는 상민, 갤러리 입구 쪽으로 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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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사무실로 들어서는 상민, 어두컴컴한 실내를 둘러본다.
뒤쪽에서 기홍이 다가와 상민을 감싸 안는다.
잠시 그렇게 서있는 두 사람.
상민이 돌아서서 기홍에게 키스한다.
점점 키스가 격렬해지면서... 서로의 옷을 하나씩 벗겨준다.
기홍, 상민을 야전 침대에 눕히고 다시 키스하려는데, 상민이 기홍을 눕히고 위로 올라간다.
천천히, 기홍을 몸 속 깊이 받아들이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상민.
기홍이 감고 있던 눈을 살짝 뜨면, 상민이 자신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다.
손으로 상민의 눈을 가리려는 기홍. 하지만 상민이 그의 손을 잡아서 내린다.
서로 시선을 마주 하는 두 사람.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간절한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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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가 끝난 후.
서로를 안은 채 누워있는 두 사람.
상민/ 따뜻해. 이대로, 잤으면 좋겠다.
기홍/ 자요.
상민/ 안 돼. 여기서 잠들면... 못 일어날 거 같아.
기홍/ .....
상민/ 처음 이 방에 왔을 땐, 너무 답답해 보였는데. 생각보다 아늑하네.
기홍/ 나도 그랬어요. 하는 일이 그래선지... 늘 넓고 큰 공간들에만 익숙해 있다가,
이렇게 좁은 방이 편하게 느껴질 줄 몰랐거든.
상민/ 그때 그, 통나무 사우나가 생각나.
기홍/ ...여기서 나가면 눈 덮인 숲이 있겠네.
상민/ 응.
기홍/ 생각해보면... 그 상황이 현실이었나, 싶기도 해.
상민/ (잠시 생각하다가) 우린... 지금 우린, 현실일까?
기홍, 상민의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기홍의 품에 더 깊이 안기는 상민. 그녀에게 키스하는 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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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있던 상민이 몸을 일으켜 앉는다.
깊이 잠들어있는 기홍을 보다가...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75. 상민의 샵 / 새벽
어두운 사무실로 들어온 상민, 의자에 앉아 머리를 기대고 창밖을 본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번져가는 하늘.
시선을 돌려 모니터에 붙어있는 메모지를 본다. ‘AM 9:00 언니 귀국, 효선 공항 픽업'
상민, 잠을 청해 보려는 듯 눈을 감는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뜨는데.
갑자기 복잡한 감정이 밀려오며... 조금씩 눈이 젖어온다.
76. 갤러리 / 아침
야전 침대에 앉아있는 기홍.
테이블 위에 - 상민이 개어둔 - 자신의 옷이 보인다.
휴대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하다가... 무심코 사진 앱을 누른다.
핀란드에서 찍은, 문주와 유림의 사진들.
물끄러미 사진을 보고 있는 기홍, 착찹한 표정이다.
77. 실내 수영장 / 아침
유리창을 통해 수영장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상민.
수영 치료를 받고 있는 종화와 풀 사이드에서 지켜보는 하정의 모습.
휴대폰 벨소리.
상민/ (효선의 번호임을 확인하고) 응. (사이) 지금... 서울 가는 길. (사이)
바꿔줄래? (목소리 밝아지며) 응, 언니. 잘 왔어?
78. 갤러리 / 낮
상희와 행사 스탭들이 홀을 다니며 상의하고 있다.
바 테이블에 앉아서 보고 있는 상민.
무심코 기홍의 사무실 쪽을 올려다보는데, 상희가 다가온다.
상희/ 여기, 괜찮은데. 잘 찾은 거 같다.
상민/ 그래? 다행이네... 아버지는, 요즘 어때?
상희/ 여전하셔. 담배 끊고 좀 안정이 안된다고는 하시는데. 테러 땜에 뉴욕을 빨리 떠나야
된다나. 매번 만나면 그러신다. LA는 지루해서 싫고, 샌프란시스코는 지진 땜에
무섭고. 도대체 어딜 가시겠다는 건지...
상민/ 그럼... 여기로 오심 되잖아.
상희/ 서울? 야, 북한이랑 전쟁 난다고 절대 싫댄다.
상민 / (웃으며) 아버지두 참.....
무대 감독인 젊은 미국 남자(남친)가 다가와 상희의 어깨를 감싸며 다정하게 얘기한다.
남친/ (영어) 그 날 리허설을 한 시간 정도 앞당기자고 하는데 어떻겠어?
상희/ (영어) 그래.
남친/ (영어) 뭐, 필요한 거 없구?
상희/ (영어) 아니, 괜찮아.
남자 친구, 상희에게 가볍게 키스하고 돌아간다.
상민/ ...많이 어려보이는데.
상희/ 쫌 어리지.
상민/ 심각한 사이?
상희/ 나야 늘 심각했지, 언젠 안 심각한 적 있니... 결혼을 물어보는 거라면, 글쎄.
아직은 별로.
상민/ .....
상희/ 너처럼 살 자신도 없고.
상민/ 나처럼 사는 게... 어떤 건데?
상희/ 잘 살잖아. 아냐? (일어서서 남친 쪽으로 간다)
테이블에 남겨진 상민,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는 상희와 남자 친구를 바라본다.
79. 기홍의 집 / 밤
집으로 들어서는 기홍, 불을 켜고 거실을 둘러본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적막함.
Cut to
테라스로 나온 기홍.
난간으로 다가가 위로 올라간다.
마치 문주의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듯, 난간 위를 위태롭게 걸어보는 기홍.
멈춰 서서, 멀리 도심의 불빛을 바라본다.
80. 상민의 집 / 밤
방 앞에 선 채, 잠든 종화를 보고 있는 상민.
불을 끄고 문을 닫는다.
Cut to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아 런칭 행사 순서를 체크하고 있는 상민.
샤워를 마친 재석이 가운을 입고 다가온다.
재석/ 아직도 일해?
상민/ 응. 먼저 자요.
재석/ 진짜 바쁘네... 패션쇼에 출장까지. (곁에 앉고) 처형은, 계속 호텔에 있겠대?
상민/ 혼자면 우리 집에 있으라구 할 텐데, 남자 친구가 같이 와서.
재석/ 남친 또 바뀌었다며? 하여튼 처형 참... 그 나이에 능력도 좋아. 자매 맞어?
상민/ ...무슨 뜻이야?
재석/ 언니는 그렇게 자유분방한데... 당신은 전혀 안 그렇잖아.
상민/ (화제를 돌리며) 종화 학교는. 알아보고 있는 거지?
재석/ 어, 좀 더 있어봐. 어차피 새학기에 맞춰서 가는 게 좋으니까.
상민/ (한숨) 큰일이네... 요즘 내가 신경도 못써주는데.
재석/ 이럴 때 좀 놀게 놔 둬. 건강한 게 최고야. (일어서며) 나, 잔다.
81. 기홍 장모의 집 / 낮
벽 사방에 탱화가 가득 걸려있는 거실.
기홍과 문주가 창가에 앉아 정원 쪽을 바라보고 있다.
정원에선 유림이 고양이들과 놀고 있고, 장모가 뒤 쪽에 서서 지켜본다.
문주/ 고양이하고는 말을 곧잘 하거든. 서로 통하는 게 있는 건가... 신기해.
기홍/ .....
문주/ 좋아 보이지? 유림이.
기홍/ 너도 좋아 보여.
문주/ 그래? 그래봤자... 갇혀있는 건 마찬가진데.
기홍/ 왜 그렇게 생각하니. 누가 널 가뒀다구.
문주/ 아닌가? 근데 왜 난 늘 갇혀있는 거 같지...
기홍/ 우리 있잖아. 핀란드 돌아가지 말고 여기 계속 살면서... 너 하고 싶은 일 해보고...
그렇게 하면 어떨까.
문주/ (씁쓸하게 웃으며) 모든 게 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해?
기홍/ .....
문주/ 오빠는 날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고개 저으며) 아냐.
문주,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일어나 방으로 간다.
82. 상민의 샵 & 앞 거리 / 낮
행사 준비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매장 풍경.
상민과 상희가 패션 모델들의 신체 치수를 세심하게 재고 있다.
샵 앞에 카니발이 멈춰 서며 효선과 상희의 남친, 스탭들이 내린다.
직원 / (상민에게) 대표님, 의상 왔어요-.
상민과 상희, 하던 일을 멈추고 샵 앞으로 나간다.
스탭들이 트렁크 문을 열고 큰 의상 박스들을 꺼내 샵 안으로 나르고 있다.
상희, 남친에게 다가간다.
상희/ (허리에 팔을 두르며, 영어) 미안. 서울에 처음 왔는데 일만 하게 해서.
남친/ (영어) 무슨 소릴... 괜찮아, 난.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는 상민.
상희/ 상민아. 다들 왔는데 점심 먹고 오자.
상민/ 으응... 갔다 와. 난, 잠깐 어디 좀 다녀 올게.
상희/ ...지금? 늦으면 안되는데.
상민/ 금방 올 거야.
83. 갤러리 / 낮
갤러리로 들어서는 상민,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본다.
텅 빈 홀을 지나서 계단을 올라 기홍의 임시 사무실 쪽으로 간다.
간유리 안쪽으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자, 반가운 표정이 되고...
머리를 살짝 매만진 후, 문을 연다.
하지만, 기홍의 책상엔 세나가 앉아서 컴퓨터를 보고 있다.
세나/ ...어?
상민/ (당혹스러운) .....
세나/ 웬일이세요... 오늘 약속이 있었나?
상민/ (머뭇) 아니요... 그냥, 지나는 길에 들렀어요.
세나/ (눈치를 채고) 김소장 보러 오셨나본데... 오늘 못 올 거 같거든요.
상민/ 아...
세나/ 준비 잘 되시죠?
상민/ (웃어 보이며) 네에. 그럼, 다시 연락드릴게요. (돌아서려는데)
세나/ 대표님.
상민/ (멈춰 서며) 예?
세나/ 혹시... 모르실까 봐 말씀드리는 건데요.
상민/ ...?
세나/ 김소장, 요즘 상황이 안 좋아요. 부인이... 많이 아프거든요.
Cut to
힘없이 갤러리를 나서는 상민,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탄다.
미동 없이 앉은 채... 허탈한 시선.
(다음 씬의 기홍 얼굴로) 디졸브.
84. 교외 도로 , 기홍의 차 / 저녁 무렵
차들이 몰려 정체되어있는 도로.
운전석에 앉아있는 기홍, 표정 없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85. 상민의 샵 / 밤
상희가 런칭 행사에 쓸 의상을 하나씩 펼쳐놓고 컨셉을 설명하고 있다.
직원들과 함께 둘러서서 열심히 메모하고 있는 상민.
마치 갤러리에서의 상황을 잊으려는 듯한 표정인데.
Cut to
휴식 시간.
모두들 둘러앉아 야식을 먹고 있다.
상민의 휴대폰이 진동하고, 발신자를 확인해보면... 기홍이다.
잠깐 동안 망설이는 상민, 휴대폰을 들고 일어나 자리를 벗어난다.
상민/ 네.
기홍/ (E) 통화 괜찮아요?
상민/ (사무적으로) 네, 말씀하세요.
기홍/ (E) .....
상민/ 여보세요.
기홍/ (E) 이상한데.
상민/ ...뭐가요?
기홍/ (E) 목소리가 좀 그래.
상민/ .....
기홍/ (E) 표정도 안좋구.
상민, 쇼 윈도우 밖을 보면... 차 안에 앉아있는 기홍이 보인다.
두 사람이 유리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며 통화하는 상황.
기홍/ (E) 나와요.
상민/ 지금 바쁜데요.
기홍/ (E) 잠깐이면 되요.
상민/ .....
기홍/ (E) 응? 얼굴만 보고 갈게.
86. 상민의 샵 앞 / 저녁
상민이 운전석 쪽으로 다가가자 기홍이 창을 내린다.
기홍이 웃어 보이지만, 상민은 웃지 않는다.
기홍/ 나한테 할 말 있죠?
상민/ (태연한 척) 무슨...?
기홍/ 아까 갤러리에 왔다 갔잖아...
상민/ .....
기홍/ 그런 표정 하지 말고, 할 말 있음 해요.
상민, 샵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고민하듯 잠시 그렇게 있다가 조수석에 탄다.
상민/ (다짜고짜) 가요.
기홍/ ...?
87. 갤러리 / 밤
텅 빈 홀의 바 테이블에 앉아있는 두 사람.
상민은 시선을 피한 채, 말이 없다.
기홍/ (달래듯이) 얘기 좀 해요.
상민/ .....
기홍/ 나랑, 말 안하구 싶어요?
상민, 일어선다.
상민/ 위에 사무실로 가죠.
기홍/ ...?
상민/ 가서 우리, 섹스해요.
기홍/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왜 이래...
상민/ 당신, 나 좋아하잖아. 나도 당신 좋아하거든. 그럼 된 거야. 그러니까...
얘기 같은 거 필요 없어. 그냥, 나이트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즐기면 되.
상민, 기홍에게 키스하며 셔츠를 벗기려고 한다.
기홍/ (뿌리치며) 이러지 마요!
상민/ .....
기홍/ ...얘기 좀 하자구요.
상민/ 우리한테... 할 얘기가 뭐 있을까.
기홍/ 왜 그렇게 화가 나있어요. 내가 상민씨를 이용했다고 생각해요? 상황이 안좋으니까 욱 하는 기분으로 바람이나 피는, 그런 놈으로 생각하는 거에요?
상민/ .....
기홍/ (괜히 미안해지며) .....
상민/ 커피 마시구 싶어요. 있어요?
상민의 표정을 살피던 기홍, 일어서서 계단 쪽으로 간다.
상민/ 기홍씨한테 화내는 거 아냐.
기홍/ (돌아보며) .....
상민/ 나한테... 나 자신한테 화가 나서 그래.
기홍/ .....
Cut to
다용도실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 기홍.
휴대폰 알림음이 들려서 보면, 상민의 문자다.
‘우리, 여기까지인 거 같아요. 제일 좋을 때 끝내요.’
그리고, 출입문 닫히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Cut to
갤러리 입구 앞으로 뛰어나오는 기홍.
하지만, 상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88. 거리 , 상민의 차 / 아침
거리에 비가 내리고.
운전하던 상민이 돌아보면, 종화가 창밖을 유심히 보고 있다.
상민/ ...뭐 그렇게 보고 있어?
종화/ 비가 많이, 많이 와.
상민/ 그래. 비가 많이 온다. 그지?
종화/ 많이. 많이...
휴대폰이 울리고... 발신자를 보면 기홍이다.
상민, 수신 거절 버튼을 누른다.
89. 실내 수영장 앞 , 상민의 차 / 아침
차를 세우고 내리는 상민.
비를 맞으며 뛰어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자 종화가 내리는데, 휴대폰 벨이 다시 울린다.
상민/ (무심코 받으며) 네.
기홍/ (E) 어휴, 이제야 받네.
상민/ .....
상민,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수영장 쪽을 본다.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쓴 아이들이 들어가고 있지만, 종화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기홍/ (E) 여보세요?
상민/ ...네.
기홍/ (E) 전화해도 안 되고 문자도 답이 없고...
상민/ (운전석으로 돌아오며) 운전 중이었어요.
기홍/ (E) 아...
상민/ .....
기홍/ (E) 비도 오는데 커피 한잔 할까요?
상민/ 아니요.
기홍/ (E) 그럼... 이따가 일 끝나고?
상민/ 미안하지만, 이제 연락 안했으면 좋겠어요.
기홍/ (E) ...왜요?
상민/ 그냥. 그렇게 해요.
기홍/ (E) 난 이해 못하겠는데. 만나서 얼굴 보고 얘기해줘요.
상민/ .....
90. 공영 주차장 / 아침
넓은 야외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상민의 차.
자신의 차에서 기다리던 기홍, 내려서 다가간다.
창문을 내리는 상민.
기홍/ 어제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해요...
상민/ .....
기홍/ 무성의하게.
상민/ 더 말할 게 없었어요. 그냥... 힘들어지기 전에 여기서 끝내고 싶어요.
기홍/ 그럼, 같이 있었던 일들은... 아무 것도 아닌 거였나?
상민/ 우리가... 뭘 할 수 있죠?
기홍/ .....
상민/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이러다가 결국 너절하게 헤어지는 것 뿐이라구.
기홍/ 그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근데...
그때, 상민의 휴대폰 벨이 울리며 기홍의 말을 끊는다.
상민/ (전화 받으며) 예. (사이) 뭐? (당황하며) 아니... 삼십분 쯤 전에 들어갔는데...
(사이) 그래. 그 안에 더 찾아봐. 응?
상민, 창백한 얼굴로 전화를 끊는다.
91. 거리 , 상민의 차 / 아침
기홍이 상민을 대신해서 운전하고, 상민은 조수석에서 통화를 하고 있다.
상민/ (흥분한) 왜 신고를 안 받아? 애가 없어졌는데. (사이) 분명히 수영장으로 들어갔다구. (사이) 아냐, 하정씨. 내가 다시 전화할게. (사이) 알았어. (사이) 알았다니까.
상민, 전화를 끊고 깊이 한숨을 내쉰다.
상민/ 한 시간 된 애들은 실종 신고를 안 받는대. 그게 말이 되요?
기홍/ 일단 경찰한테 얘기는 해놓은 거니까, 우리가 더 찾아보죠.
상민/ .....
기홍/ 너무 걱정 말아요.
상민/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남의 일이라구 그렇게 쉽게 말해도 돼? 종화는... 정상이
아니잖아! 언제 어떻게... 어떻게 될지 몰라서... (울먹인다)
기홍, 상민의 손을 잡아준다.
Cut to
수영장 근처 거리를 천천히 돌고 있는 상민의 차.
두 사람, 주위를 살펴본다.
기홍/ 조금 더 멀리 가봐야 되나...
상민, 발밑에 뭔가가 걸려서 보면 종화의 운동화 한 쪽이다.
상민/ (눈물이 그렁이며) 신발도 없이...
기홍/ (뭔가를 보고) 어? 저기.
상민, 기홍이 가리키는 방향을 유심히 본다.
아파트 단지 옆으로 흐르는 작은 하천 옆 고수부지.
물가에 사람의 형체 하나가 조그맣게 보인다.
92. 고수부지 / 아침
주차장에 멈춰 서는 상민의 차.
우비를 입은 종화가 하천 쪽을 바라보며 서있다.
상민/ (급히 내리며) 종화야!
종화, 상민을 돌아보고 해맑게 웃는다.
달려가서 종화를 꼭 끌어안는 상민.
기홍이 종화의 신발을 들고 다가온다.
상민/ (종화의 얼굴을 만지며) 왜 여기 있어... 비 맞잖아.
종화/ (하천 쪽을 응시한 채) 떠내려 가. 막... 떠내려 가.
상민/ ...?
종화/ 떠내려 가....
상민/ (갑자기 생각난 듯 기홍에게) 신발 줘 봐요.
기홍이 신발을 건네주자 느닷없이 물속으로 던져버리는 상민.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기홍.
뒤이어 상민이 물속으로 첨벙, 뛰어든다.
기홍/ (놀라며) 어어?
상민, 물살을 헤치고 가서 자신이 던진 신발을 주워 들더니 종화를 향해 흔들어 보인다.
상민/ (활짝 웃으며) 찾았어. 봤지? 엄마가 찾았어.
종화, 신이 나서 박수를 치고... 기홍은 여전히 어리둥절하다.
93. 거리 , 상민의 차 / 아침
운전하고 있는 기홍, 룸 미러로 뒤를 본다.
흠뻑 젖은 상민이 종화를 품에 꼭 안고 있다.
상민/ 오래 전에... 속초에 갔었는데, 바닷가에서 놀다가... 종화 신발이 벗겨져서 파도에
떠내려 가버린 거예요. 그 때 생각이 났나봐. 애한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겠지...
기홍/ (고개를 끄덕이며) 찾아줬잖아요. 이제 잊어버릴 수 있겠네.
상민/ 응... 잊어버릴수록 좋은... 그런 기억도 있으니까.
기홍/ .....
종화/ 바다 갈래. 바다. 응? 바다...
상민/ 바다 가구 싶어? 그래. 다음에 우리 바다에 또 가자.
종화/ 바다, 바다, 바다...
94. 공영 주차장 / 아침
주차되어있던 기홍의 차 옆에 멈춰 서는 상민의 차.
상민이 종화를 안은 채 뒷자리에서 내리고, 기홍이 우산을 받쳐준다.
상민/ (종화를 뒷좌석에 태우고) 고마워요.
기홍/ .....
상민/ 같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기홍/ ...다시 볼 수 있는 거죠?
상민, 대답 대신 기홍의 손을 잡아 -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 악수를 하고는 차에 탄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상민을 바라보는 기홍.
차를 출발시켜서 가던 상민, 주차장 입구에 멈춰 서서 룸미러를 본다.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기홍의 모습.
상민의 마음이... 서서히 저려온다.
95. 거리 , 상민의 차 & 기홍의 차 / 아침
운전하고 있는 상민, 뒤에서 상향등 빛이 비춰서 룸미러를 보는데.
어느새 기홍의 차가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다.
룸미러를 통해 흐릿하게 보이는 기홍의 얼굴.
기홍이 양쪽 방향등을 번갈아 깜박이자, 상민의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떠오른다.
상민의 차가 신호에 멈춰 서고, 기홍의 차가 옆 차선으로 와서 선다.
두 사람, 차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본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홍의 차가 상민의 차 앞으로 끼어 들어오고.
마치 메시지처럼, 방향등을 켰다 껐다 반복한다.
상민이 유심히 보면, 기홍이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하고 있다.
96. 교외 도로 / 낮
도심을 벗어난, 한적한 도로.
두 대의 차가 빗길을 달린다.
상민의 차에선 상민과 종화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97. 바닷가 / 낮
제방 옆에 나란히 세워진 두 대의 차.
상민이 우산을 들고 종화와 바닷가를 걷고 있다.
차 안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기홍.
종화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걷던 상민.
거센 바람에 이내 우산은 뒤집혀버리고, 그 모습을 보던 기홍이 차에서 내리려는데...
뒤집힌 우산을 던져버리고 멋쩍은 듯이 기홍을 향해 웃어 보이는 상민.
흠뻑 젖은 채로, 장난을 치고 있는 두 사람을 기홍이 지켜본다.
98. 해변 펜션 / 낮
욕실. 따뜻한 물을 받은 욕조에서 종화를 씻기는 상민.
종화는 뛰어놀던 여흥이 아직 남아서 물장난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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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 침대에 잠들어있는 종화.
욕실에선 속옷 차림의 상민이 드라이어로 옷을 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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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 정원. 어닝 아래 벤치에 앉아 바다 쪽을 보고 있는 기홍.
방에서 나온 상민, 기홍의 곁에 가서 앉는다.
기홍/ 종화는?
상민/ 곯아떨어졌어.
기홍/ 힘들었나보네... 좀 있다 출발해야겠다.
나란히 앉은 채 바다를 바라보는 두 사람.
한 남자가 혼자 서핑 보드를 들고 비오는 해변을 걸어가고 있다.
상민/ 외로워 보인다...
기홍/ 우리랑 비슷하지 뭐.
상민/ (기홍을 보며) 외로워요? 별로 안 그래 보이는데.
기홍/ 나, 고아에요. 몇 년 전에 사고로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거든. 그 분들 돌아가신
댓가로... 난 내 맘대로 사는 자유를 얻고. 참, 아이러니지.
상민/ .....
기홍/ 아까 바다에서 두 사람 보는데... 엄마 생각이 나더라구.
상민/ 난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는데. 애기 때 세상을 떠나셨거든. 그래서... 언니가
나한텐 엄마나 다름없어요.
기홍/ (상민을 보다가) 거봐. 우리 둘 다 외롭잖아.
기홍의 휴대폰이 진동한다.
하지만, 받지 않으려는 듯 놔두는 기홍.
상민/ 전화 받아요.
기홍,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때 상민의 휴대폰 벨이 울리고...
두 사람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리는 상황인데.
기홍/ 안받아요?
상민/ (고개를 저으며) 다시 하겠지 뭐.
마주 보고 피식 웃는 두 사람.
상민, 기홍에게 몸을 기댄다.
기홍이 상민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고, 상민은 잠을 청하듯 눈을 감는다.
기홍/ 생각해보니까... 우린 만날 때마다 매번 어딜 여행하는 거 같애.
상민/ ...정말 그렇네.
기홍/ 이제 어떡할까.
상민/ .....
기홍/ 이대로 돌아가지 말까?
상민/ 그러지 뭐.
기홍/ 농담 아닌데.
상민/ .....
기홍/ 상민씨 말대로... 우린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는지도 몰라. 지키지 못할 약속 같은 거 할 용기도, 나한텐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없는데... 놓치고 싶지도 않고.
근데... 뭐든 할 수만 있으면, 억지로라도 붙들고 싶어. 당신, 너무 좋아하니까.
상민/ .....
기홍/ 어떤 식으로든, 당신이 하자는 대로 따를게. 제발... 헤어지자는 말만 하지 말아 줘.
부탁이야.
상민/ (눈시울이 젖어오며) 참... 큰일이다, 우리.
상민, 두 팔을 기홍의 허리에 두르고 깊이 안긴다.
기홍이 상민에게 키스하고... 상민도 그의 입술을 찾는다.
서로를 안고 있는, 두 사람의 간절한 모습.
99. 상민의 집 / 밤
거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종화.
재석이 곁에서 종화의 체온을 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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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 욕조에 걸터앉아 물을 받고 있는 상민.
재석이 들어와 상민에게 와인잔을 건넨다.
재석/ 비를 그렇게 맞았는데두, 몸은 괜찮아 보여.
상민/ 다행이다...
재석/ 바다 보구 와서 기분 좋아서 그런가... 애가 완전 업 돼있는데. 갑자기 바다 갈
생각을 왜 했어?
상민/ 으응... 종화가 가고 싶다구해서.
재석/ 잘했어. 가끔 바람도 쐬고 그래야지.
상민/ .....
재석/ 그러고 보니 가족 여행 간지도 꽤 됐네... 봐서 겨울에 일본 온천이라도 함 가자.
재석이 나가고, 상민이 와인을 한 모금 마시다가 실수로 살짝 흘린다.
레드 와인 한 방울이 욕조 물로 떨어져 천천히 번지는데... 마치 핏빛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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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화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완성되어 간다.
바다 배경에 세 사람.
종화, 상민... 그리고 한 남자.
100. 기홍의 집 / 밤
집으로 들어서서 거실을 지나다가 멈칫 하는 기홍.
테라스 쪽에서 조명 빛이 새어들어 오고 있다.
의아한 느낌에 테라스로 나가보는 기홍.
난간에 앉아있던 문주가 기홍을 돌아본다.
기홍, 잠시 서있다가 문주 옆으로 다가가서 곁에 앉는다.
문주/ 이 자리가 제일 맘에 들어. 여기서 보는 하늘이... 참 좋아.
기홍/ (문주를 바라보며) .....
문주/ 있잖아... 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한 거지. 간호사가 필요한 게 아냐.
기홍/ .....
문주/ 오빠 많이 좋아해. 너무 좋아해서 문제겠지. 그런데... 오빠가 날 환자로 보니까,
견딜 수가 없었어. 그런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오빠를 보는 건 더 괴롭구.
기홍/ ...널 환자로 보지 않아. 차라리... 내가 환자지.
안쪽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유림, 천천히 테라스로 나와 기홍과 문주 사이에 앉는다.
문주/ (난간에 누우며) 나, 여기 누웠다.
기홍/ .....
문주/ 괜찮지?
기홍/ (감정이 북받치는) ...응.
기홍, 고개를 떨군다.
말없이 보고 있던 유림이 손을 뻗어 기홍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서러운 감정이 밀려오면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기홍.
그 흐느낌이 조금씩... 커져간다.
101. 상민의 샵 / 며칠 후 , 저녁
행사 준비로 분주한 매장.
패션모델들이 최종 피팅을 하는 상황이어서 온통 북새통이다.
상민이 상희를 따라다니며 체크 사항을 메모한다.
직원이 상민의 휴대폰을 들고 다가온다.
직원/ 아까부터 계속 울려서요.
상민/ (확인 없이 받으며) 네.
기홍/ (E) 잘 지내요?
상민/ (기홍 목소리임을 알고 자리를 벗어나며, 밝은 표정으로) 여보세요-.
기홍/ (E) 많이 바쁘죠.
상민/ 응. 요 며칠 계속 정신이 없었어요. (홀 쪽 상황을 살피며) 기홍씨도 바빴나 봐.
서로 연락 한 번 못했네.
기홍/ (E) ...잠깐 볼 수 있을까?
상민/ 아... 내일 행사 끝날 때까진 힘들 거 같은데. 계속 붙어있어야 되서.
상민을 찾는 상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상민/ 미안.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요.
102. 갤러리 앞 / 저녁
출입문 앞에 서있는 기홍,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건너편에 세워진 차로 걸어가는데 알림음이 들린다.
상민의 문자. ‘나도 보고 싶어요.’
문자를 물끄러미 보는 기홍.
103. 갤러리 / 낮 그리고 저녁
(인써트 - 런칭 행사를 알리는 외벽 현수막)
홀에서 행사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최종 리허설을 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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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용도실.
커피를 내리고 있는 기홍.
상민이 한실장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들어서다가, 기홍을 보고 멈칫 한다.
한실장/ (기홍에게) 안녕하세요, 소장님.
기홍/ (돌아보며) 진행 잘 되세요?
한실장/ 네. 다들 무대가 좋다는데요. 소장님이 건물을 멋지게 만드신 덕분이겠죠.
기홍/ 에이, 별말씀을... 커피 좀 드릴까요?
상민/ ...네. 고맙습니다.
한실장/ 저는 괜찮아요.
냉장고에서 콜라 몇 개를 꺼낸 한실장이 다용도실을 나가고, 두 사람만 남게 된다.
기홍의 곁으로 다가가 나란히 서는 상민, 살짝 기홍의 손을 잡는다.
기홍/ 이따 끝나고 봐요.
상민/ 많이 늦을 텐데... 다음에 여유 있게 보면 좋지 않을까.
기홍/ 괜찮아요. 기다릴게.
상민의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소리.
효선/ (E) 메이데이, 메이데이... 상민 대표님. 어디셔요. 선생님이 찾아요. 오버.
상민/ 알았어.
두 사람, 손을 잡은 채 서로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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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경과.
본 행사가 시작되어 리셉션을 하고 있는 홀 안.
모던한 하우스 음악이 울리는 가운데, 샴페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상민이 상희를 따라다니며 손님들과 인사하고 있다.
상민의 시선으로, 난간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기홍이 보인다.
상민이 기홍을 향해 살짝 미소 지어 보이는데, 기홍의 표정은 왠지 어두워 보인다.
그 표정이 살짝 마음에 걸리지만, 주위 사람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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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칭 무대가 시작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음악에 맞춰 런웨이를 걷고 있는 모델들.
무대 뒤편에서 진행 상황을 보고 있는 상민.
순간순간 초조한 느낌이 얼굴에 스친다.
104. 갤러리 앞 / 밤
행사가 끝난 후.
짐 박스들을 밴에 싣고 있는 상민의 직원들.
트렁크를 닫으며 차에 타는 효선, 입구 앞에 있는 상민을 본다.
상민의 시선은... 거리 저편에 서있는 기홍의 차를 향해있다.
효선/ 타요, 가는 길에 집에 내려줄게.
상민/ 저기.. 먼저 가. 좀 있다 따로 갈게.
직원들이 탄 차가 떠나고, 혼자 남은 상민.
차가 완전히 멀어지는 걸 확인하고는 기홍의 차 쪽을 돌아본다.
차에서 내리는 기홍.
상민, 환한 표정을 지으며 기홍 쪽으로 걸어간다.
종화/ (소리) 엄마 -.
흠칫 놀라는 상민, 멈춰 서서 돌아보면...
종화의 손을 잡은 재석이 뒤편에서 걸어오고 있다.
상민/ (놀라서 말을 못하고) .....
재석/ 벌써 끝난 거야?
상민/ ...응.
종화/ 엄마, 엄마.
재석/ 쫌만 늦었으면 니네 엄마 못만날뻔 했네...
상민/ ...여긴 왜 왔어?
재석/ 오늘따라 종화가 자꾸 엄마를 찾아서... 바람도 쐴 겸 모시러 왔지요.
상민, 내려다보면 종화가 자신의 치마 한 쪽을 잡고 매달려 있다.
기홍이 먼발치에서 그들을 보고 있다.
105. 거리 , 재석의 차 / 밤
재석이 운전하고 있고, 상민은 종화와 뒷자리에 타고 있다.
흔들리는 표정의 상민.
그녀의 얼굴 위로 네온사인들이 어른거린다.
106. 갤러리 앞 , 기홍의 차 / 밤
기홍, 차에 기댄 채 망연자실하게 서있다.
자동차들이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간다.
씁쓸하게 웃으며 차에 타는 기홍.
잠시 생각하다가 체념한 듯, 시동을 건다.
107. 상민의 집 / 밤
욕실로 들어온 상민.
휴대폰으로 기홍에게 보낼 문자를 찍고 있다.
‘정말 미안해요. 오늘은 안되겠...’ 까지 쓰다가 멈춘다.
고개를 들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본다.
Cut to
거실.
상민, 급히 나가다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재석 앞에서 멈춰 선다.
재석/ (의아한 표정으로) ...나가는 거야?
상민/ ...응.
재석/ 어딜?
상민/ (망설이다가) 만날 사람이 있어서.
재석/ 뭐야... 이 시간에. (농담으로) 애인이라도 되나보지?
상민/ (진지하게) 응.
재석/ (표정 바뀌며) ...?
상민/ 나, 그 사람 없으면 안되거든.
재석/ (일어서며) 도대체...
상민/ 날 용서하지 않아도 돼. 나도... 나도 날 용서할 수 없으니까.
재석/ 잠깐 앉아봐.
상민/ ...미안해요. 정말.
상민, 돌아서서 나간다.
108. 상민의 집 앞 / 밤
상민, 빌라 입구에서 나와 차 쪽으로 간다.
재석이 뒤를 따라 나온다.
재석/ 잠깐만.
듣지 않고 차에 타는 상민.
재석/ 이상민, 왜 이래.
상민/ .....
재석/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상민/ (시동을 걸며) .....
재석/ 그 놈이야? 바다에 같이 갔던 놈?
상민/ .....
재석/ (어이없는) 설마 했는데...
차를 출발시키는 상민.
빌라 단지를 빠져나오며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누른다.
109. 갤러리 / 밤
어두운 갤러리로 들어서는 상민.
행사 때문에 어질러진 홀의 풍경.
Cut to
임시 사무실.
상민이 들어와 야전 침대로 가서 걸터앉는다.
휴대폰을 꺼내 기홍에게 보낼 문자를 누른다.
‘먼저 와있어요. 기다릴게’
110. 갤러리 앞 / 밤
갤러리 앞에 멈춰 서는 기홍의 차.
기홍, 차에서 내려 출입구 쪽으로 다가간다.
문을 열려다가 갑자기 굳은 듯, 움직임이 없다.
그리고... 갈등한다.
111. 갤러리 / 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사무실.
여전히 같은 자세로, 침대에 앉아있는 상민.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본다.
초조한 표정.
Cut to
어느 덧,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창을 통해 들어온다.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앉아 있는 상민, 휴대폰 통화 버튼을 누른다.
스피커폰으로 들리는 안내음.
‘전원이 꺼져있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되오니...’
힘없이... 휴대폰을 바닥에 내려놓는 상민.
기홍이 오지 않는다는,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이다.
그녀의 쓸쓸한 모습에서.
길게 F.O.
112. 특수 학교 , 놀이터 / 1년여 뒤 , 낮
초겨울의 학교 전경.
미끄럼틀을 반복해서 타고 있는 종화.
벤치에 앉아 삶은 계란 껍질을 벗기고 있는 상민(스타일이 많이 달라진)과 하정.
상민/ 쟤, 살이 좀 빠진 거 같아.
하정/ 한창 키 클 때라서 그렇겠죠.
상민/ (계란을 한 입 먹으며) 금방 어른 되겠구나...
하정/ 요즘도 바쁘세요?
상민/ 별로. 부산에 브랜치 내는 거 땜에 한동안 정신없었는데... 이젠 한가해.
하정/ (계란을 먹으며) 돌아오실 때, 되지 않았어요?
상민/ (종화를 보며) 글쎄...
하정/ 사모님 만나고 가면 물어보고 그러시는데. 잘계시냐구.
상민/ 종화 아빠가?
하정/ 네. 궁금하신가 봐요.
상민/ .....
하정/ 이젠 화도 많이 풀리신 거 같고.
상민/ 어? 쟤 모래 먹는다, 모래.
종화가 바닥에 주저앉아서 뭔가를 입에 넣고 있다.
하정, 벌떡 일어나서 종화에게 뛰어간다.
113. 상민의 샵 / 낮
쇼 윈도우 뒤에 서서 유심히 보고 있는 상민.
효선이 곁에서 상민의 표정을 살핀다.
효선/ 뭐가 또 이상해?
상민/ 응... 그냥 좀... 이상해.
효선/ 디스플레이 팀 부를게.
상민/ 아까 불렀어.
효선/ (맨날 이런 식이야, 하는 표정) .....
Cut to
2층 사무실.
예전처럼 모여앉아 피자를 나눠먹으며 떠들고 있는 상민과 직원들.
114. 상민의 원 룸 / 아침
편한 차림으로 빨래를 널며 통화하고 있는 상민.
상민/ 일도 없는데 가라구?
상희/ (E) 꼭 일 땜에 와야 돼? 그냥 휴가 내서 한번 와라. 같이 놀게.
상민/ 나중에 날씨 좀 풀리면. 뉴욕 겨울은 너무 추워.
상희/ (E) 뭐, 서울은 안춥니?
상민/ 그래도 여기가 좀 나을 걸.
상희/ (E) 아빠도 걱정 많이 하거든. 너, 혼자 살면서 궁상 떤다구. 와서 좀 달래드려.
상민/ ...생각해볼게.
상희/ (E) 그래. 또 연락하자.
상민/ 응, 언니...
상민, 전화를 끊고 빨래 바구니를 집어 든다.
그러다가 문득 창밖을 보면... 눈이 내리고 있다.
오랜 동안, 움직임 없이 하늘을 응시하는 상민.
디졸브.
115. 핀란드 , 헬싱키 , 국제 학교 앞 / 낮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하늘.
눈이 쌓여있는 학교 전경.
(누군가의 시선으로)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림이 보인다.
잠시 후 기홍의 차가 멈춰 서고, 유림이 달려가서 탄다.
길 건너편에 서있는, 택시의 뒷자리에 상민이 앉아있다.
룸 미러로 상민을 보는 여자 택시 기사.
기사/ (영어) 저 차예요?
116. 헬싱키 부근 , 택시 / 낮
기홍의 차 뒤를 따라 한적한 길을 달려가는 택시.
상민의 시선으로, 낯익은 설경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간다.
117. 헬싱키 부근 , 레스토랑 / 낮
택시가 주차장 입구에 멈춰 선다.
레스토랑 쪽을 응시하는 상민, 주차장에 세워진 기홍의 차가 보인다.
상민/ (영어) 기다려 줄 수 있어요?
기사/ 그래요.
차에서 내려 눈을 밟으며 레스토랑 쪽으로 걸어가는 상민.
창가에 다가가 살짝 안을 들여다본다.
웨이트리스에게 주문을 하고 있는 기홍과 문주, 유림이 보인다.
모두들 밝고, 행복해 보이는 표정.
그들 누구도 상민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돌아서서 벽에 기대는 상민, 고개를 숙인 채 길게 숨을 내쉬어본다.
Cut to
기홍과 문주, 그리고 유림.
웨이트리스가 다가와 아이스크림과 커피 두 잔을 테이블에 놓는다.
문주/ 와아... 아이스크림이다.
기홍/ 진짜 맛있겠네... 아빠도 먹고 싶은데. 조금 줄 거지?
유림, 잠시 고민하다가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떠서 기홍의 입에 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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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민이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데 매니저가 다가온다.
매니저 / (핀란드어) 몇 분이세요?
매니저 뒤편, 먼발치로 기홍의 가족들이 보인다.
상민/ (순간 다시 망설이며, 영어) ...화장실이 어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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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세면대의 물을 틀어놓은 채 서있는 상민.
상기된 표정으로 거울을 보다가...
물을 잠그고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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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트리스의 안내로 테이블에 앉은 상민.
몇 개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기홍과 그의 가족이 앉아있다.
상민을 의식하지 못한 채, 유림과 아이스크림을 나눠먹으며 웃고 있는 기홍.
그런 기홍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상민.
그녀의 표정에 만감이 교차한다.
기홍이 웨이트리스를 부르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상민과 시선이 마주 친다.
굳은 듯이 상민을 바라보는 기홍.
상민이 자신과 마주 보고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표정이 흔들리는 기홍, 어떡할까... 고민한다.
웨이트리스가 테이블로 다가와 기홍의 시선을 가린다.
문주가 신용카드를 건네고 웨이트리스가 돌아서자, 상민은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창밖 주차장을 보면, 상민이 막 택시에 타고 있다.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기홍.
택시가 막 출발해서 도로 저편으로 달려간다.
기홍,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자신의 차 문을 연다.
차에 막 타려는 순간... 레스토랑 안쪽의 유림과 시선이 마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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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홍,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돌아와 앉는다.
문주/ (카톡을 보며) 이거 봐. 엄마가 보낸 사진.
기홍/ .....
문주/ (기홍을 흘깃 보고) 응, 오빠? 이 딱 달라붙는 요가 옷. 진짜 웃기지.
기홍/ ...으응.
문주/ (문자를 보다가 깔깔 웃으며) 어머, 노인 클래스에서 자기가 제일 날씬하대.
왜 이러니, 우리 엄마.
기홍/ (창밖에 시선 둔 채) .....
118. 헬싱키 부근 , 택시 / 낮
달리는 택시 안.
눈이 조금씩 흩날리기 시작한다.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표정 없이 창밖을 보고 있는 상민.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고, 알 수 없는 조합의 번호가 액정에 떠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는 상민.
상민/ ...네.
재석/ (E) 어, 나야.
상민/ (재석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응.
재석/ (E) 여보세요? ...종화 엄마?
상민/ ...으응. 얘기해.
재석/ (E) 벨소리가 이상하네. 멀리 있나봐.
상민/ ...어디 좀 왔어.
재석/ (E) 소리도 좀 끊기는 거 같아. 잘 들리니?
상민/ (한쪽 귀를 막으며 큰소리로) 응, 난 들리는데. 안 들려?
그런 상민을 룸미러로 흘깃 본 택시 기사, 차를 갓길에 세운다.
재석/ (E) 어. 지금은 괜찮아.
상민/ .....
재석/ (E) 잘 지내?
상민/ ...응. 그럭저럭.
재석/ (E) 저기, 종화 바꿔줄게. (종화에게) 종화야, 엄마.
종화/ (E) (CF 노래) 000, 0000, 000...
상민/ .....
종화/ (E) (계속 노래) 000, 0000...
상민, 종화의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오래 전, 탬페레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숲 풍경.
상민/ 그래... (눈시울이 젖어오며) 나도 사랑해... 사랑해.
전화를 끊는 상민.
상민/ (기사에게, 영어) 미안합니다. 이제...
말하다가 멈추고...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내는 상민.
상민/ (울먹이며, 영어) 이제... 가도 돼요.
기사, 꺼놓았던 시동을 켜면서 룸미러로 상민을 본다.
고개를 숙인 채... 소리 죽여 흐느끼고 있는 상민.
상민을 잠시 보다가 다시 시동을 끄는 기사, 차에서 내린다.
택시 안에 혼자 남겨진 상민, 애처롭게 오열한다.
기홍의 차가 갓길의 택시 옆을 지나치며 달려간다.
119. 헬싱키 부근 , 기홍의 차 / 낮
운전하며 룸미러를 보는 기홍.
방금 지나친 택시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표정이 점점 흔들리고... 운전대를 잡은 손도 왠지 불안하다.
그때, 문주의 손이 기홍의 손등에 얹힌다.
기홍/ (돌아보며) .....
문주/ 고마워.
기홍/ (의아한) ...응?
문주/ 고맙다구.
기홍/ .....
문주/ 그냥... 고마워.
창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기홍.
애써 복잡한 감정을 억누르려 해보지만...
조금씩 눈시울이 젖어온다.
120. 헬싱키 부근 , 한적한 도로 / 낮
택시에서 내리는 상민.
아직 감정이 채 가시지 않은, 발그레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맞는다.
차에 기대 선 채 담배를 피우던 기사, 상민을 바라본다.
상민이 기사 쪽을 돌아보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인다.
기사/ (영어) 필래요? (담배 갑을 내민다)
상민이 다가가 담배 한 개비를 꺼내고, 기사가 라이터로 불을 붙여준다.
나란히 차에 기대어 서서 담배를 피우는 상민과 기사.
상민의 시선으로, 멀리 호수를 둘러싼 숲이 보인다.
그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두 사람의 침묵을 감싼다.
상민/ (돌아보며, 영어) 지금... 몇 시죠?
기사/ (영어) 시계가 없어서... 잠깐만요. (차문을 열려는데)
상민/ (영어) 아, 아니요. 괜찮아요.
기사/ ... ?
상민/ (영어) 몰라도 돼요. 모르는 게... 더 좋아요.
끝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잘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