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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 8:31-47
제목: 나의 뿌리는?
<서론>
우리 사회는 단일혈통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 아직 이해와 포용이 넓지 않습니다.
목요일 아침에 방송 차 방송국에 갔다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전도지를 하나 보았습니다.
트루디 사모님(극동방송 김장환 목사님 아내)의 간증이 실려 있는 전도지였어요.
읽다 보니, 내용 중에 지금은 장성해서 목사님이 된 두 아드님과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따님이 혼혈로 자라면서 겪었던 혼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어요.
당시 큰 아들인 김요셉 목사님은 자주 “엄마, 난 도대체 한국 사람이에요, 미국 사람이에요?”라고 묻곤 했다곤 합니다.
뿌리에 대한 질문이잖아요.
사람에게 뿌리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는 실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 시간에 초막절에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인 반응에 대해 함께 보았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유대인들 반응을 주의해서 보았던 것 기억하시나요?
이 사람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이 자신을 증언하시는 말씀을 듣고 빈정거리고 반문하고 깨닫지 못했었죠.
하지만 계속해서 말씀을 듣는 중에, 특히 십자가에 대해 주님이 예고하시는 말씀을 듣고는 그들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이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뿌리에 대한 말씀을 함께 보게 될 텐데, 이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에 함께 귀 기울이려고 합니다.
<본론>
1. 뿌리의 변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1-3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함께 읽은 말씀에서 예수님이 누구에게 말씀하시는지, 그 대상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건네시는 대상은 “자기를 믿은 사람들,” 즉 예수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내 말에 거해야 참으로 내 제자가 된다, 다시 말해서, 진리를 알아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의당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 아닌가요?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다 참된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참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다시 말해서, 자유롭게 되려면, “주님 말씀에 거해야, 즉 진리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제자가 되고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뿌리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그와 같은 뿌리의 변화는 주님 말씀에 거하는데 있다, 진리를 아는데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주님 말씀에 거한다, 진리를 안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그 의미가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이 부분은 뒤에서 상세히 보기로 하고, 먼저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의 의미부터 보아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이 말씀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넘길 수만 없는 게, 유대인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을 듣고 강하게 반발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뭐라고 반발하는지, 33절에서 확인해 보시죠.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멸망해서 포로로 끌려가고, 페르시아의 속국으로 있었고, 셀류키드나 프톨레미 왕조에게 간섭을 받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거든요.
게다가 이 당시 로마의 식민 지배 아래 있었고...
그런데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니!
자, 여기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바벨론이나 페르시아나 로마의 속국이 된 적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이해해야 하는데요,
“아브라함의 자손”은, 뒤에서 또 보겠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대단한 긍지를 주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은 육적으로는 남에게 매이고 종살이를 할지언정, 영적으로는 하나님 자녀, 즉 자유자라는 인식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물리적이고 육신적인 자유가 아니라 “영적인 자유”를 가리킨다는 겁니다.
그러면 영적인 자유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이어지는 34-36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이 말씀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주님이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죄의 종이 아니면 달리 무엇이더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바로 여기서 “자유롭게 한다,” 즉 영적인 자유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이것은 “죄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시겠죠.
주목할 것은, “아들이, 즉 예수님이 자유롭게 하셔야만 사람이 참으로 자유를, 죄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는 점이에요.
앞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해서 “진리”는 바로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겠죠.
결국, 죄로부터 자유를 얻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뿌리의 변화는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라는 거예요.
따라서 이 은혜, 즉 뿌리의 변화를 맛보려면, 진리이신 예수님 말씀에 거해야 하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2. 두 뿌리: 마귀 vs. 하나님
1) 마귀에게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
37-38절을 보십시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이 말씀에서 주님이 유대인들에게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언뜻 보기에 이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참 아브라함의 자녀라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런 뜻과 상관 없다는 사실이 금새 드러나는 게, 주님이 곧바로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안에는 내 말이 거할 곳이 없고 너희는 나를 죽이려 할 따름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대로 행한다”고 말이죠.
다시 말해서, 37절에서 말씀하신 아브라함의 자손은 그저 육신으로, 혈통 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고,
실제로 너희는 아브라함의 자녀가 아니다, 너희 아버지는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아브라함이 그들의 아버지라면, 그들 속에 주님 말씀이 당연히 거할 수 있어야 정상이고, 주님을 그렇게 죽이려 할 수 없다는 거죠.
이 말씀에 유대인들은 또 다시 발끈하면서, 39절 전반부,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고 반발하거든요.
그러자 주님은 그들 말에 대해 이렇게 반박하십니다.
39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아브라함이 그들의 아버지이고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어떻게 해야 한다?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해야 한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자식은 그 부모를 닮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당연히 아브라함처럼 행동하는 것이 정상이에요.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이라면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유일한 진리로 알고 삶을 드려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죠.
심지어 그는 말씀에 순종하여 100세에 낳은 이삭까지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려 했기 때문에 인류 최초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칭찬까지 받았어요.
따라서 정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처럼 진리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거예요.
하지만, 40절에서 거듭 말씀하듯이,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말씀하시는 주님을 죽이려 합니다.
주님은 이것이 그들의 아버지가 아브라함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41절 후반부에서 보듯이,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 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라고 또 반발하는데,
이것은 이전에 반발하던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우회적인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쓰기 때문입니다.
자, 이들 말대로 이들이 정말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마땅할까요?
42절 말씀대로 주님을 사랑해야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고, 스스로 오신 것도 아니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뿌리에서 나왔다면 사랑하는 것이 정상인데, 한 뿌리가 아니기 때문에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죠.
그렇다면 주님께 반발하는 이 유대인들은 어디서 났고, 그들의 뿌리, 그들의 아버지는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4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유대인들이 아무리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이라고 우겨도, 주님은 그들이 “마귀에게서 난 자들”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귀는 어떤 자이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두 가지, 첫째, “살인한 자!” 둘째, “거짓말쟁이이자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시죠.
본래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은 죄와 사망 권세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원문 상으로 보면, 선으로,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마귀가 아담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들었고, 죄로 인해 죽음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마귀는 죽음을 가져온 자, 살인한 자인 거죠.
아울러, 마귀가 아담을 유혹해서 죄를 짓게 할 때 사용한 것이 거짓말이죠.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는 거짓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었어요.
모든 세계가 하나님 말씀으로, 진리의 말씀 지음을 받았고, 따라서 진리의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거짓말은 마귀가 가져온 것이고, 모든 거짓말은 마귀로부터 난 것입니다.
따라서 마귀는 거짓말쟁이고 거짓의 뿌리가 마귀이기 때문에 거짓의 아비라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살인과 죽음, 그리고 거짓은 마귀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짓과 살인을 저지르는 자마다 누구의 행실을 하는 것이다?
마귀의 행실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와 같은 행실로서 자신이 마귀에게서 난 자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이 살인과 거짓말인가 하는 점인데,
오늘 말씀에서 아무리 봐도 유대인들이 구체적으로 살인을 저지르지도, 일부러 거짓말을 지어내려고 애쓰는 것 같지도 않거든요.
하지만 주님은 유대인들이 너희 아비 마귀, 즉 살인한 자요 거짓의 아비인 마귀가 하는 대로 행하고 있다고 말씀하시고...
우리는 어떤 구체적이고 밖으로 드러난 행위만을 행위로 생각하기 쉬운데,
특정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어떤 입장, 어떤 편에 서는가 하는 것 역시 행위와 직결된 문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서 사람 행동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살인이나 어떤 특정한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도 주님 반대편에 서고, 주님 말씀하시는 진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면 그것은 실제 살인이나 거짓말을 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 자체가 참 믿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그 행실이 마귀를 따른다,
다시 말해서, 주님 편에 서지 않고 주님 말씀을 귀 기울여 순종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 뿌리는 마귀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
반대로,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을 뿌리로 두고 있는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중간 중간 다루었던 부분이지만,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요.
하나님을 뿌리로 두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앞서 어떤 사람들이라고 했었나요?
우리 인생은 누구의 예외도 없이 아담의 피를 물려받은 죄인들이고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뿌리가 하나님일 수 없죠.
따라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은 뿌리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말씀에 거하는 사람들,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이 자유롭게 하신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더 이상 아담의 자손이 아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한 것처럼 하나님 말씀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 말씀이고 진리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그리고 이런 태도가 바로 앞에서 말씀드린 주님 말씀에 거한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안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입니다.
47절 전반부에서 이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어요.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이와 같은 말씀에 대한 순종은 자연스레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사실, 앞서 본 것처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이고,
뿌리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분이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할 따름입니다.
원래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에 불과했잖아요.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뿌리를 두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가,
한 근원에서 났다고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했어요.
따라서 우리 또한 하나님께 속해 있고 하나님께 뿌리를 두고 있다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분이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누차 강조하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주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그 말씀에 순종하려는 태도입니다.
그것이 주님 말씀에 거하는 것이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3. 나의 뿌리는 어디인가?
“나의 뿌리는 어디인가?”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말씀에 거하는, 즉 예수님을 참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뿌리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로만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참으로 믿는다면 예수님 말씀을 사랑하고 예수님 말씀에 거하십시오.
다시 말해서, 주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그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려 하십시오.
그것이 뿌리의 변화를 경험한 증거이고, 그 증거를 가진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롭게 된 사람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결론>
예수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이 논쟁하시는 말씀을 통해 뿌리에 대해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1. 뿌리의 변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2. 두 뿌리: 마귀 vs. 하나님
3. 나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에 거하는, 참으로 진리이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가 주는 자유를 아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