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7. 창조적 소수와 미메시스 체계(1)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줄곧 사용한 ‘미메시스(mimesis)’는 ‘모방’으로 번역되고 있지만, ‘표현’에 가까운 뜻입니다. 모방하는 사람으로서의 시인(「시학」 제2장)은 고결하거나 천박한 행위자를 모방하는 것인데, 시인이 직접 나서서 표현하는 것을 삼가기에 표현이라 하지 않고 모방이라 한 것입니다. 토인비는 문명의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미메시스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비창조적 다수가 창조적 소수를 미메시스할 수 있게 체계를 세워 운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사회적 훈련 곧 학습에 다름 아니라 할 것입니다. 미메시스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명은 소멸하기 마련입니다. 우리 사회를 리드하는 리더들은 이 점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문제적 현실은 교육으로 환원된다’는 명제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하겠습니다.
[보충]
* ‘시인이 직접 나서서 표현하는 것을 삼간다 (「시학」 제24장) ’는 것은, 마치 공자의 술이부작(述而不作)의 방법론처럼 텍스트로서의 행위자를 충실히 옮긴다는 뜻이라 하겠습니다.
* 열행자는 “금주에 열린 행복 379”에서 ‘창조적 소수’를 다룬 바 있습니다.
첫댓글 키워드1.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미메시스(mimesis)’ 개념을 주목함
키워드2. 토인비는 그의 문명론에 미메니스 개념을 원용함
키워드3. 문명의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미메시스 체계를 세워 운용해야 함
키워드4. 미메시스 체계는 사회적 훈련 곧 학습의 체계에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