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사우나/靑石 전성훈
혼자 즐기는 놀이나 취미가 있으면 좋다. 괴롭거나 힘들거나,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다른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 아무 때나 홀로 할 수 있는 사소한 놀이나 유희라면 더없이 바람직하다. 사우나는 오래전부터 즐기던 나의 은밀한 유희이다. 생활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던 사우나 놀이도 코로나 탓에 그만둔 지가 만 3년이 넘는다. 몇 년 만에 사우나 문을 두드린다. 모처럼 다시 찾은 사우나가 웬일인지 서먹서먹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 옷을 벗으려다 보니 커다란 거울 앞에 붙은 글이 눈에 들어온다. “ 남탕 청소 인부 급구, 저녁 9시~11시, 임금은 원하는 대로 ”. 코로나 탓에 세상이 바뀌어도 정말 많이 바뀐 게 틀림없는 것 같다. 동네에 단 하나 남은 사우나가 아직도 영업하는 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잘 알듯이, 옛날 목욕탕과 사우나의 구별이 확연히 다른 점은 사우나에는 땀을 빼는 습식과 건식 시설이 있고, 단잠을 즐길 수 있는 휴게실이 있는 것이다. 사우나를 처음 찾았던 건 결혼하고서도 한참 세월이 지나서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산행을 마치고 토요일 저녁에 사우나 가는 게 정해진 일과로,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한동안 함께 다니며 부자의 정을 쌓았던 추억의 장소가 동네 사우나이다.
처음 사우나를 이용했을 때는 목욕탕에 다니던 것처럼, 머리를 감고 샤워를 마친 다음에 곧바로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게 순서였다. 우연한 기회에 운동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나서 사우나를 이용할 때 먼저 냉찜질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순서를 바꾸기 시작했다. 용기를 내어 냉탕에 들어가 한동안 물속에서 서서 체조를 하거나 물속에서 숫자를 세면서 걷기를 하였다. 허리디스크로 인한 통증 때문에 물속에서 걸으면 다리에 무리를 주지 않아 허리 유연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찬물에서 걷기도 했다.
냉탕에 들어가려면 몸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냉탕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스스로 불어넣는다. 그다음에 종아리부터 넓적다리를 거쳐 허리까지 찬물을 조금씩 끼얹는다. 몸이 찬물에 적응하는 순서이다. 그러고 나서 심호흡을 한 번 더하고 드디어 냉탕으로 들어선다.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탕에서 이를 꽉 물고 찬물에 서서히 익숙해져 간다. 어느 정도 시간이 되어, 차가운 물에 얼얼해진 몸으로 뜨거운 탕에 들어가면 발과 다리에 짜릿짜릿한 정전기 같은 느낌이 올라오면서 머리와 등허리에 땀이 솟기 시작한다. 그렇게 10여 분 이상 뜨거운 탕에서 몸을 데우고 적당하게 풀어진 몸에 차가운 물을 끼얹으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몸과 마음에 여유를 찾아주는 느긋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다음에는 습식과 건식 사우나실에 들어간다. 사람마다 사우나를 대하는 느낌이 다르고 즐기는 방식이 다르기에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습식과 건식 사우나실에 들어가 땀을 흘리는 게 최고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땀을 흘리며 몸과 마음을 완전히 풀어버리면서 넋을 놓으며 그 순간을 즐긴다.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그야말로 사우나 ‘멍때리기’이다. 사우나실에서 다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그런대로 재미있다. 비 오듯 땀을 쏟으면서 각자만의 특이한 표정을 짓거나 모습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맨 체 무표정한 사람, 그런가 하면 조그맣게 흥얼흥얼하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숫자를 세는 사람도 있다. 가끔 뱃살이 몹시 불러 남산만 한 사람을 보면 정말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만히 혼자 웃으면서 슬그머니 모래시계를 엎어놓고 다시 똑바로 세운다. 모래시계를 뒤집어가면서 시간을 재어본다. 사우나 놀이를 좋아하기에 보통 사우나에 가면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 살살 잠이 오면 바닥이 따끈따끈한 게르마늄 수면실에서 땀을 쏟으면서 낮잠을 즐긴다. 수건으로 배 위를 가볍게 덮고 20~30분 정도 잠을 자고 나면 몸이 그렇게 개운해질 수 없다. 다시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어갔다가 머리를 다시 감고 비누로 몸을 씻고 나온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나서 음료수 한 잔 마시면 사우나 여행도 끝이 난다. 온천에 자주 갈 수 없기에 꿩 대신 닭이라고 생각하며 사우나를 즐긴다. (2023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