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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2 장 : 성도의 의무에 관한 권고(2)
2. 산 돌이신 예수(2: 4-8)
④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⑥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⑦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⑧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2: 4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하고 버렸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배척과 버림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세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예수님을 사랑하셨고 인류의 구속자(救贖者)로 택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보배로운 산돌이시다. 산돌이란 그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시고 그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구주이심을 뜻한다고 본다.
1)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저자는 본문에서 '버린'과 '택하심을 입은'을 대조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에게 배척당한 진정한 메시야임을 드러낸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는 예수를 메시야로 영접하여야 할 자칭 건축자들인 유대인들이 오히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사실을 가리킨다.
* 막 8: 31 -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 눅 9: 22 -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 행 4: 11 -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예수께서는 비록 유대인들에게는 배척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지라도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았다.
'택하심을 입은'(에클레크톤)은 '인정받다'라는 의미를 가진 '도키몬'에서 파생된 단어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을지라도 하나님께는 존귀함을 받았음을 시사한다.
* 행 2: 22-24 -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보배로운'(엔티몬)은 문자적으로 '존경을 받는', '존귀한'이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신 영광을 가리킨다(1: 19).
* 눅 7: 2 -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 눅 14: 8 -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 빌 2: 29 -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무지와 불순종으로 인해 배척 당하셨으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높이셔서 교회의 영원한 기초가 되게 하셨다.
'산돌'은 실제로 유대인들 사이에 메시야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모퉁이의 머릿돌
* 마 21: 42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2) 생명수의 반석
* 고전 10: 4 -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3) 기초석
* 고전 3: 11 -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4) 심판의 돌로 비유되었다(Blum, Stibbs, Leighton, Selwyn).
* 단 2: 34 -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이러한 비유와 마찬가지로 메시야이신 예수를 비유하는 '산 돌'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 확실한 사실이며 예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교회의 초석이 되심을 시사한다.
'나아와'(프로스 혼 프로세르코메노이)는 현재 분사로 사용되어 그리스도인이 예수께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서 한 번만 나아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끊임없이 나아와야 함을 강조한다(Robertson, Lenski, Caffin).
또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반석에서 물을 마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앞에 나아올 때는 언제든지 그로 말미암아 신령한 물(고전 10:4)을 마실 수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Hort, Bigg, Reicke).
본 절은 예수께서 비록 사람에게는 버림받았을지라도 메시야로서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의 구원의 반석이 되심을 시사한다.
2: 5 -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신약성도들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와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
신령한 집’(오이코스 프뉴마티코스)은 성도들이 모여 건립되는 교회를 가리킨다. 교회는 돌들로 지은 건물에 비유된다.
신령한 이라는 말은 교회가 단지 물질적 건물이나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고 성령께서 거하시는 집, 곧 성령의 전인 것을 나타낸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3: 16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했다.
신약교회는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과 그들의 연합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에베소서 2: 21-22은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말한다.
신약교회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집으로 건축되고 있다. 이것은 온 세계에 흩어져 사는 모든 성도들을 포함하는 거대한 교회이다. 지금도 이 교회의 건축 소리가 온 세계 곳곳에서 요란하게 들려지고 있다.
한 명의 영혼 구원을 통하여 벽돌 한 장이 쌓여 가는 이 건축은 예배당 건축보다 수천 배 더 큰 의미와 중요성이 있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비록 물질적으로는 부유하지 못해도, 이 영적 건축, 곧 전도와 성화의 일에는 크게 여기고 힘써야 한다.
또 우리는 신약교회라는 이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제사장(히에라튜마)는 제사장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들로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 제사들을 드려야 한다.
그 영적인 제사란 우리의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헌신과 봉사의 삶을 가리킨다. 우리는 모든 악독과 속임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을 버리고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한다.
1) 너희도 산 돌 같이
베드로는 앞 절에서 그리스도를 산 돌에 비유하였다. 본 절에서는 산돌을 그리스도인들에 비유하고 있다.
'산 돌'(리도이 존테스)는 복수로 그리스도 앞에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산돌이 되며 생명의 근원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야 할 존재임을 시사한다(Lenski, Leighton, Robertson).
2)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신령한 집'은 저자가 본 절에서 그리스도인을 제사장직에 연결시키는 것으로 보아 성전 곧 교회를 의미한다.
* 시 69: 9 -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 사 56: 7 -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 막 11: 17 -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세워지고'(오이코도메이스데)는 예수께서 직접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된 동사와 동일하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단지 교회에 나아올 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리스도에게 나아와서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산 돌이 되며, 거듭난 자들과의 연합을 통해 교회를 이루게 됨을 강조한다(Alford, Vincent, Stibbs, Leighton, Selwyn, Michaels).
* 롬 12: 1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 롬 15: 16 -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 고전 3: 16 -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엡 2: 20-22 - ⑳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 엡 3: 6 -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3)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제사장에 비유하고 있다.
'제사장'(히에라튜마)은 '제사장의 직분'이나 '제사장의 단체'를 의미한다.
* 눅 1: 8 -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가진 산 돌이라는 사실에서 진일보하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사직을 수행하는 제사장이 되었음(만인 제사장)을 의미한다.
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제사장적 역할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Blum, caffin, Alford, Selwyn, Reicke).
실제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이어야 했었다.
* 출 19: 6 -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그들이 이루지 못했으나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교회가 그 이상(理想)을 실현했으며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그 직무를 감당하게 되었다(롬 12: 1, Lightfoot, Calvin, Stibbs).
* 빌 2: 17 -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 히 13: 15 -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 계 1: 6 -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 계 5: 10 -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 계 20: 6 -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우리는 여전히 희생제물을 바쳐야 햐는가?
아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죄 사함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바쳐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도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하여 단번에 영원히 드려지는 희생제물(어린 양)이 되셨기 때문이다(1: 9).
하나님의 신령한 집의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희생 제물은 우리 자신이다.
* 롬 12: 1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즉 우리의 능력과 감사와 봉사, 기도, 헌신, 찬양 등을 바쳐야 한다.
* 히 13: 15 -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2: 6 -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베드로는 앞서 진술한 자신의 가르침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증명한다.
1)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오티 페리에케이 엔 그라페'는 문자적으로 '경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라는 뜻이다.
이제까지 논증한 진술 곧 그리스도께서 산 돌이신 것과 그에게 나아가는 자도 누구든지 산 돌인 것이 성경 안에 이미 확증(確證)된 사실임을 시사한다.
* 사 28: 16 -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 롬 9: 33 - 기록된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2)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본 절은 사 28: 16의 인용이다. 모퉁이 돌'(아크로고니아이온)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 현관의 돌이다(Jeremias).
Ⓑ 건축물의 현관이나 기초를 닦는데 필요한 돌이다(Grant).
Ⓒ 건축물의 벽과 벽 사이를 잇는 건물의 기초요 중심되는 돌이다(Lloyd, Calvin, Stibbs).
'아크로고니아이온'이 '가장 높은'이란 의미를 가진 '아크로스'와 유대인의 건축 양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초요 중심인 '모퉁이 돌'을 의미하는 '고니아이오스'의 합성어인 것으로 보아 세 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이것은 '모퉁이 돌'이 벽과 벽을 연결하여 건축물을 지탱하는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퉁이 돌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도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셔서 교회를 이루심을 시사한다(Blum, Stibbs, Michaels).
* 엡 2: 20 -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시온에 두노니'는 요긴한 모퉁이 돌로서의 그리스도의 독특한 위치가 하나님에 의하여 이미 확정되었음을 시사한다.
모퉁이 돌은 건축물의 벽과 벽 사이를 잇는 돌로서 건축물을 지탱하는데 가장 기초가 되고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돌이다.
메시야를 가리키는 별명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건축물에서 모퉁이 돌 같은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기초석을 의미한다.
메시야는 하나님의 왕국을 지탱하는 말뚝이나 전쟁에서 승리하는 싸우는 활, 세상을 다스리시는 권세 잡은 자로도 묘사 되었다.
'두노니'(티데미)가 본 절에서는 현재 능동태로 사용되고 8절에서는 부정과거수동태로 사용되어 그리스도의 역할이 이미 확정되었으며 지금도 수행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독특한 지위가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하며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거치는 돌이 된다(8절, 롬 9: 33).
* 마 21: 42,44 -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3) 그(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이에 해당하는 '호 피스튜온에프 아우토 우 메 카타이스퀸데'는 문자적으로 '저를 믿는 자는 다급한 일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는 의미로 두려움과 공포로 부터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 견고히 서게 됨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인이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는 때에 대해서는 두 견해가 있다.
Ⓐ 현재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보호를 받는 것이다(Bengel).
Ⓑ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다(Meyer).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2: 7,8 - ⑦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⑧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베드로는 본문에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비교하여 각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어떤 가치로 나타나는지를 설명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이시다. 이 세상에 주 예수님보다 더 귀한 분은 없고 더 귀한 것도 없다. 그러나 그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버린 돌, 부딪히는 돌, 거치는 반석이 되셨다.
많은 이들이 그 돌에 부딪혀 넘어졌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열심히 전하고 가르치고 권면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있고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어떤 이들은 영생에 이르게, 또 다른 이들은 그들의 죄 가운데 버려두셔서 영원한 형벌에 이르게 정하셨다. 죄 가운데서 멸망 받을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것이다.
1)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보배이나'(헤 티메)에서 관사 '헤'는 강조적인 표현으로 그리스도는 자신과 연합한 그리스도인에게 크나큰 영광이요 보배가 되심을 시사한다(Blum).
베드로는 믿지 않는 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지니는 가치에 대해 두 가지 인용문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1)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본문은 시 118: 22의 인용이다. '버린'(아페도키마산)은 문자적으로 '거절당한'이란 의미로(RV) 그리스도께서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거부당하신 사실을 나타낸다.
* 고전 9: 27 -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되었다.
* 시 118: 22 -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예수께서도 친히 그 예언을 확인하셨다(마 21: 42).
* 눅 20: 17,18 - ⑰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⑱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사람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여 버렸으나 하나님은 배척당한 예수를 영광의 자리로 높이셨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는 사 28: 16을 반영하는 것으로(6절 주석참조) 하나님에 의해서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심을 시사한다(마 21: 42. Blum).
* 막 12: 10 -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 행 4: 11 -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모퉁이의 머릿돌은 건물의 모퉁이의 머릿돌, 곧 주춧돌을 의미한다. 이 돌은 건축물을 지탱하기 위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기초석으로 가장 중심이 되는 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올바로 세우기 위해 머릿돌로 왔지만 교만하고 어리석은 그 땅의 건축자들(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 돌을 하찮게 여겨 버렸다.
그 결과 예수님은 이방교회의 모퉁이 머릿돌이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셨다.
(2)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본문은 사 8: 14의 인용이다. '부딪히는 돌'은 길가에 있는 불필요한 돌들처럼 보행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방해물을 암시하며 '거치는 반석'은 덫이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나 덫이 되며 심판의 돌이 된다(Origen, Caffin, Delitzch, Selwyn, Stibbs).
그러나 그리스도 자체가 걸림돌이나 덫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믿지 않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불신앙함으로 걸림돌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덫이나 장애물'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들의 불신앙이다(Beare, Blum).
2)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본문 역시 '믿지 않는 자'에 대한 진술이다.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프로스코프투신 토 로고 아페이둔테스)는 문자적으로 '순종치 않아 말씀에 넘어진'이라는 의미로 믿지 않는 자들이 넘어지는 원인이 순종치 않는 불신앙에 있음을 시사한다.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에서 '이렇게'는 '넘어지나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문은 믿지 않는 자들의 불순종에 대한 형벌이 예정되었음을 시사한다(Blum, Hort, Bigg, Caffin, Be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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