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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믿음의 치유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마르코 5,21-43
연중 제4주간 화요일
놀랍다! 사람이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사랑하는 딸이지만 이미 죽음에 이르렀는데 의사도 아닌 예수님께서 손을 얹어 주시기만 하면 살아날 것이라고 매달릴 수 있었을까? 또한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인은 ‘예수님 옷에 내 손이 닿기만 해도 치유될 거’라고 믿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이 가능했을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사제로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가져 보지 못했다. 물론 강론에서는 “믿음은 산도 옮깁니다.” 하며 웅변했지만 내 믿음은 아니었다. 나는 사랑과 용서의 전문가처럼 말했지만 실상 나에게는 사랑도 없었고 용서도 하지 못하는 모습만 확인될 뿐이다. 성품성사의 은총에도 왜 나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는지를 오랫동안 자문했는데, 문제는 ‘상식’ 때문이었다.
어떤 문제에 대한 옳고 그름이나 믿음과 불신의 판단에는 자신의 경험과 이성의 눈이 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내 신앙이란 겨우 상식적 틀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죽은 이도 살리실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이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상식을 넘어서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걸 안다. 예술의 세계도 그러하다. 음악이나 미술 등에서 기발하고 기막힌 작품을 감상할 때도 같은 감탄을 하게 된다.
생명의 주인이심을 믿고 말해 왔지만 죽은 목숨도 살리실 수 있다는 믿음이 내게 없었던 것은 확실하다. 동시에 주님께서 내게 그 믿음을 주실 수 있다는 믿음 또한 확실하다. 나에게 그런 믿음을 주신다면 나는 사랑과 용서의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그런 은사를 얻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살아간다.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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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착한 사람, 좋은 사람」
어떤 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저 사람은 착하기만 해요.”
어떻습니까? 좋은 말일까요? 나쁜 말일까요? 사실 나쁜 의미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착하기만 하지 능력이 없어서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긴 어떤 사업가로부터 이런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주위에서 욕을 먹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 소리를 들으면 경쟁력이 없습니다.”
착한 사람, 그래서 좋은 사람 소리를 들으며 살기에는 이 세상은 녹녹하지 않다고 합니다. 때로는 나쁜 사람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힘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착하고, 사람 좋다는 평을 받는 사람들이 무시되는 세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기분이 씁쓸합니다. 정말로 착하기만 하면 살기가 힘든 세상일까요? 그렇게 만들어 버린 우리 인간들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욕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지요. 그런데 저는 욕먹으면서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착한 사람, 좋은 사람 소리를 들으면서 살고 싶네요.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렇게 살라고 하셨으니까요.
***<행복이란 자신의 몸에 몇 방울 떨어뜨려 주면 다른 사람들이 기분 좋게 느낄 수 있는 향수와 같다(랠프 왈도 에머슨)>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마르코 5,21-43)
イエスは言われた。
「娘よ、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救った。
安心して行きなさい。
もうその病気にかからず、元気に暮らしなさい。」
(マルコ5・21-43)
He said to her,
“Daughter, your faith has saved you.
Go in peace
and be cured of your affliction.”
(Mark 5:21-43)
福者ユスト高山右近殉教者殉教者記念日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タラ、 ネ ミドミ ノル クウォンハヨッタ。
평안히 가거라.
ピョンアニ カゴラ。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クリゴ ビョンエソ ボソナ コンガンヘジョラ。
(마르코 5,21-43)
イエスは言われた。
이에스와 이와레타
「娘よ、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救った。
무스메요 아나타노 신코오가 아나타오 스쿳타
安心して行きなさい。
안신시테이키나사이
もうその病気にかからず、元気に暮らしなさい。」
모오 소노 뵤오키니 카카라즈 겐키니 쿠라시나사이
(マルコ5・21-43)
He said to her,
“Daughter, your faith has saved you.
Go in peace
and be cured of your affliction.”
(Mark 5:21-43)
Tuesday of the Fourth Week in Ordinary Time
Mark 5:21-43
When Jesus had crossed again in the boat
to the other side,
a large crowd gathered around him, and he stayed close to the sea.
One of the synagogue officials, named Jairus, came forward.
Seeing him he fell at his feet and pleaded earnestly with him, saying,
"My daughter is at the point of death.
Please, come lay your hands on her
that she may get well and live."
He went off with him
and a large crowd followed him.
There was a woman afflicted with hemorrhages for twelve years.
She had suffered greatly at the hands of many doctors
and had spent all that she had.
Yet she was not helped but only grew worse.
She had heard about Jesus and came up behind him in the crowd
and touched his cloak.
She said, "If I but touch his clothes, I shall be cured."
Immediately her flow of blood dried up.
She felt in her body that she was healed of her affliction.
Jesus, aware at once that power had gone out from him,
turned around in the crowd and asked, "Who has touched my clothes?"
But his disciples said to him,
"You see how the crowd is pressing upon you,
and yet you ask, Who touched me?"
And he looked around to see who had done it.
The woman, realizing what had happened to her,
approached in fear and trembling.
She fell down before Jesus and told him the whole truth.
He said to her, "Daughter, your faith has saved you.
Go in peace and be cured of your affliction."
While he was still speaking,
people from the synagogue official's house arrived and said,
"Your daughter has died; why trouble the teacher any longer?"
Disregarding the message that was reported,
Jesus said to the synagogue official,
"Do not be afraid; just have faith."
He did not allow anyone to accompany him inside
except Peter, James, and John, the brother of James.
When they arrived at the house of the synagogue official,
he caught sight of a commotion,
people weeping and wailing loudly.
So he went in and said to them,
"Why this commotion and weeping?
The child is not dead but asleep."
And they ridiculed him.
Then he put them all out.
He took along the child's father and mother
and those who were with him
and entered the room where the child was.
He took the child by the hand and said to her, "Talitha koum,"
which means, "Little girl, I say to you, arise!"
The girl, a child of twelve, arose immediately and walked around.
At that they were utterly astounded.
He gave strict orders that no one should know this
and said that she should be given something to eat.
2026-02-03「少女よ、わたしはあなたに言う。起きなさい」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福者ユスト高山右近殉教者殉教者記念日です。
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と神の母の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福者ユスト高山右近殉教者殉教者、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2月3日は、福者ユスト高山右近殉教者の記念日です。1552年、摂津の国(現在の大阪府の一部)に生まれ、11歳で家族とともにカトリックの洗礼を受けました。後に高槻城の城主となり、織田信長、豊臣秀吉の重臣として活躍しました。一方で宣教師を助けながら領内で福音宣教を積極的に進め、様々な慈悲の業にも力を尽くしました。1587年の伴天連追放令に伴い、豊臣秀吉から棄教を命じられたにもかかわらず、それには応じませんでした。結果、大名の地位を追われて加賀前田家に保護されました。1614年幕府の禁教令によりマニラに追放され、翌年2月3日に同地で逝去しました。63年の人生の中で、28年間を信仰のためにあえて厳しい道を選ばれました。全ての地位や名誉を信仰のために捨てた彼の生き方は、私たちの思いを超える大きな神のしるしです。(聖ヨゼフの学院のホームページ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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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ルコによる福音
<「少女よ、わたしはあなたに言う。起きなさい」>
そのとき、5・21イエスが舟に乗って再び向こう岸に渡られると、大勢の群衆がそばに集まって来た。イエスは湖のほとりにおられた。22会堂長の一人でヤイロという名の人が来て、イエスを見ると足もとにひれ伏して、23しきりに願った。「わたしの幼い娘が死にそうです。どうか、おいでになって手を置いてやっ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娘は助かり、生きるでしょう。」24そこで、イエスはヤイロと一緒に出かけて行かれた。
大勢の群衆も、イエスに従い、押し迫って来た。25さて、ここに十二年間も出血の止まらない女がいた。26多くの医者にかかって、ひどく苦しめられ、全財産を使い果たしても何の役にも立たず、ますます悪くなるだけであった。27イエスのことを聞いて、群衆の中に紛れ込み、後ろからイエスの服に触れた。28「この方の服にでも触れればいやしていただける」と思ったからである。29すると、すぐ出血が全く止まって病気がいやされたことを体に感じた。30イエスは、自分の内から力が出て行ったことに気づいて、群衆の中で振り返り、「わたしの服に触れたのはだれか」と言われた。31そこで、弟子たちは言った。「群衆があなたに押し迫っているのがお分かりでしょう。それなのに、『だれがわたしに触れたのか』とおっしゃるのですか。」32しかし、イエスは、触れた者を見つけようと、辺りを見回しておられた。33女は自分の身に起こったことを知って恐ろしくなり、震えながら進み出てひれ伏し、すべてをありのまま話した。34イエスは言われた。「娘よ、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救った。安心して行きなさい。もうその病気にかからず、元気に暮らしなさい。」
35イエスがまだ話しておられるときに、会堂長の家から人々が来て言った。「お嬢さんは亡くなりました。もう、先生を煩わすには及ばないでしょう。」36イエスはその話をそばで聞いて、「恐れることはない。ただ信じなさい」と会堂長に言われた。37そして、ペトロ、ヤコブ、またヤコブの兄弟ヨハネのほかは、だれもついて来ることをお許しにならなかった。38一行は会堂長の家に着いた。イエスは人々が大声で泣きわめいて騒いでいるのを見て、39家の中に入り、人々に言われた。「なぜ、泣き騒ぐのか。子供は死んだのではない。眠っているのだ。」40人々はイエスをあざ笑った。しかし、イエスは皆を外に出し、子供の両親と三人の弟子だけを連れて、子供のいる所へ入って行かれた。41そして、子供の手を取って、「タリタ、クム」と言われた。これは、「少女よ、わたしはあなたに言う。起きなさい」という意味である。42少女はすぐに起き上がって、歩きだした。もう十二歳になっていたからである。それを見るや、人々は驚きのあまり我を忘れた。43イエスはこのことをだれにも知らせないようにと厳しく命じ、また、食べ物を少女に与えるようにと言われた。(マルコ5・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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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ミサの「今日の黙想」です。
なんと驚くべきことでしょう。
人はどうして、あのような思いに至ることができたのでしょうか。
どれほど愛する娘であったとしても、すでに死に至った我が子を前にして、医者でもないイエス様がただ手を置いてくださるだけで生き返ると信じ、すがりつくことができたのでしょうか。
また、十二年もの間、出血に苦しんでいた女は、「イエス様の服に手が触れさえすれば癒やされる」と信じました。
どうして、そのような思いが可能だったのでしょうか。
正直に告白すれば、私は司祭として生きてきた中で、一度たりともそのような考えを抱いたことがありません。
説教では「信仰は山をも動かします」と雄弁に語ってきましたが、それは私自身の信仰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私は愛と赦しの専門家であるかのように語ってきましたが、実際の私は、愛することも、赦すこともできない自分の姿を確認するばかりでした。
叙階の恵みを受けながら、なぜ私にはそのような信仰がないのかを長い間問い続けてきましたが、その原因は「常識」にあったのです。
物事の正しさや誤り、信じるか信じないかを判断する際、人は自分の経験と理性の目を用います。
それ自体が誤ってい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
しかし、私の信仰は、結局その常識の枠の中に閉じ込められていたのです。
だからこそ、死んだ人をも生かすことができる、という思いにまで至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す。
「人はどうして、そんなことを考えられるのか」と思いながらも、私は常識を超えた信仰を持つ人々が確かに存在することを知っています。
芸術の世界もまた同じです。音楽や美術において、斬新で驚くべき作品に触れるとき、私たちは同じような感嘆を覚えます。
私は命の主であることを信じ、語ってきました。
それでも、死んだ命をも生かすことができるという信仰が、自分にはなかったことは確かです。
同時に、主がそのような信仰を私にお与えにな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信仰もまた確かです。
もし主が私にその信仰をお与えくださるなら、私は愛と赦しの人となるでしょう。
死ぬ前に、たとえ一度だけでも、そのような賜物をいただけますようにと祈りながら、私は生き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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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のみ言葉を読み、信仰を増し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