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주 정촌 고분에서 출토
"손상 없는 가장 완벽한 상태"
龍 장식 금동신발은 처음… 중앙서 내린 장례하사품 추정
- 신발 바닥에도 龍 얼굴
뿔·귀·코·이빨까지 보여… 스파이크 모양의 징 23개도
"백제 금동신발이 이렇게 완벽한 상태로 출토된 건 처음입니다!"
23일 전남 나주시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상준) 대회의실. 흙덩어리가 채 떨어지지 않은 금동신발 한 켤레가 테이블에 올라온 순간, 곳곳에서 탄성이 새나왔다. 발등에 올려진 용(龍)머리 장식이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했다. 바닥에는 투조(透彫·뚫어 만듦)와 선각(線刻·선처럼 파서 새긴 무늬)으로 장식된 용 얼굴 2개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이상준 소장은 "한마디로 '용무늬의 대발견'"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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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 없이 완벽한 상태로 출토지금까지 발견된 백제 금동신발 중 가장 완벽한 형태의 신발이 전남 나주 정촌 고분에서 출토됐다. 지난해부터 정촌 고분 발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올해 이곳 돌방무덤 3기에 대한 내부 발굴 조사에서 백제 금동신발을 비롯해 금제 귀걸이와 금제 장신구, 마구(馬具), 화살통 장식, 화살촉, 옥, 석침(石枕·돌베개)과 각종 토기류가 쏟아져 나왔다며 이날 유물을 공개했다.
- 발등에 용머리 장식이 올려진 5세기 후반의 백제 금동신발이 전남 나주에서 출토됐다. 길이 32㎝, 높이 9㎝, 너비 9.5㎝. 백제 금동신발로는 17번째 출토품으로, 용머리 장식이 올려진 금동신발은 백제·고구려·신라를 통틀어 처음이다. /뉴시스
백제 금동신발로는 17번째 출토품. 이상준 소장은 "그동안 무령왕릉을 비롯해 고창 봉덕리, 공주 수촌리, 고흥 안동 고분 등지에서 발견됐지만 부분적으로 훼손되거나 일부 장식이 손상된 채 수습됐다"며 "반면 이번엔 용 모양 장식과 발목 덮개, 연꽃과 용 얼굴까지 완벽한 상태로 발굴됐다"고 했다.
금동신발이 출토된 1호 돌방무덤은 최대 길이 485㎝, 너비 360㎝, 높이 310㎝ 규모로 현재까지 알려진 마한·백제권 초기 대형 돌방무덤 가운데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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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장식 올려진 금동신발은 처음
- 금동신발 X-ray 사진. 바닥의 중앙엔 8개의 꽃잎을 삼중으로 배치한 연꽃무늬가 있고, 눈을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린 용 얼굴이 연꽃의 앞뒤에 새겨져 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가장 주목되는 금동신발은 길이 32㎝, 높이 9㎝, 너비 9.5㎝. 발등 끝 부분에 용머리 장식이 올려진 건 백제는 물론 고구려·신라 금동신발을 통틀어 처음이다. 용머리 장식은 대롱처럼 연결돼 탈부착할 수 있게 했는데, 한 짝은 용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갔지만 한 짝엔 온전히 남아 있다. 발목 부분에는 금동판으로 된 덮개를 부착했고 바닥에는 스파이크 모양의 징 23개를 붙였다. 바닥 한복판에는 8개의 꽃잎을 삼중으로 배치한 연꽃무늬가 있고 연꽃 중앙에는 꽃술을 새겼다. 연꽃의 앞뒤에는 눈을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린 용 얼굴 2개가 정면으로 묘사돼 있는데 용의 머리에 난 뿔과 귀, 코, 이빨까지 보인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신발 바닥에 용 얼굴을 측면으로 표현한 건 더러 있었지만 정면으로 바라보는 모습은 처음"이라며 "백제 장인의 창의성과 정교한 공예기술, 디자인 감각을 보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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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중앙에서 내려준 장례 하사품"이 교수는 "백제 금동신발의 양식적 변천으로 볼 때 한성시기 말인 5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금동신발 제작 기술이 최정점에 이른 시기의 작품"이라고 했다.
무덤 주인공은 당시 영산강 유역의 유력한 지방세력이었던 걸로 보인다. 김낙중 전북대 교수는 "백제 중앙에서 제작해 내려준 장례 하사품으로 보인다"며 "용머리 등 화려한 장식을 보면 소유자의 특별한 지위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다.
첫댓글 이렇게 세밀하다니!! 옛날부터 손재주가 뛰어난 민족이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