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구지봉과 금오산
가야(김해) 김씨의 시조 김수로 왕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구지봉 龜旨峯.
신라(경주) 김씨들의 주 터전인 월성의 주산 主山인 금오산 金鰲山,
금관가야를 건국한 김해 중심부에 자리한 구지봉 龜旨峯과,
신라 경주의 들판 중앙에 자리한 남산 南山인 금오산 金鰲山.
구지봉은 거북 구 ‘龜’ 자를 사용하고,
금오산은 자라 오 ‘鰲’ 자를 사용하고 있다.
지명 地名이 지닌 그 의미가 근사 近似하다.
파충류인 자라와 거북은 자신이 위험하다고 느끼면 머리와 목을 움츠려서
단단한 등 껍질 속으로 집어넣어 버린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머리를 숨겨버리는 것이다.
심신이 피곤한 도피자의 처지에서는 안전한 곳으로 숨고 싶다는
촉박 促迫했던 심리적인 상태가 은연중에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로 먼저 도래 渡來하여 가야국을 건국한 김수로왕이 덩치가 큰,
거북이를 의미하는 ‘구 龜’란 지명 地名을 먼저 사용하였고,
뒤이어 사로국으로 입국한 김알지 일행은 거북보다 몸집이 작은 자라 ‘오 鰲’라는
지명을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보기에는 월성의 금오산이 김해의 구지봉에 비해 훨씬 더 높고 크지만,
김수로 왕이 한반도에 먼저 도래 渡來하였고,
족보 族譜 상으로도 김알지 대보 大輔보다 한 항열 行列이 더 높아 아저씨 뻘이며,
직위도 더 높은 김수로 왕에게 ‘자라’보다 더 큰 ‘거북이’를 양보하였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자신들이 산을 넘고 깊은 강을 건너 넓은 바다를 항해하여,
힘들게 이주 移住한 새로운 신천지 新天地에 우뚝 솟아있는 산과 깊은 계곡을 보고는
아마도, 안식처 安息處를 찾은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산봉우리는 세찬 바람과 뜨거운 태양 빛을 차단 遮斷시켜 주는 역할도 하지만,
멀리 바라볼 수 있는 망루 望樓처럼 주위를 관찰 觀察할 수 있는 정찰대 偵察臺 역할도 하며,
산기슭 모퉁이 남향 골짜기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어, 쉴수있는 아늑한 안식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넓은 바다를 항해하여 미지의 세계로 이주해온 이민자들의 눈에는 구지봉의 그 봉우리와
들판 가운데에 우뚝하니 자리하고 있던,
금오산이 마치 ‘거북이’와 ‘자라’ 모양의 형상으로 비추어졌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피신처를 찾아 헤매던 이민자들의 피곤하고 절박했던
심정 心情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는 지명 地名의 유래 由來다.
한편,
두 여인네는 거친 초원보다는 천국과 같은 아름다운 금수강산 錦繡江山 사로국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초원에는 가족과 생사를 함께한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아름답고 살기 편한 천국이라도 가족과 동료들이 우선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초원으로 빨리 가자고 보챈다.
월성에서는 말도 귀하고, 말이 있어도 마음껏 달릴 평지가 별로 없었다.
곡식을 재배하는 평지를 벗어나면, 산이 많아 지형 地形이 비탈지고 대부분 계단식으로 층이 나 있었다.
말이 달리기에는 결코 좋은 지형이라고 할 수가 없다.
평지는 대부분이 수전 水田과 밭으로 일구어져 있으며, 논에는 벼와 돌피,
밭에는 각종 채소와 콩과 기장 등의 곡식들을 재배하고 있었다.
흉노인들은 곡물은 물론, 채소조차도 입에 대지를 않는다.
상추나 파. 들깻잎과 배추. 무와 산나물 등을 먹는 농경민들을 이상하게 바라본다.
그들은 “양과 말이 먹는 풀을 사람이 어떻게 먹느냐?”며 신기해한다.
상추나 들깻잎 등의 채소를 권하면 두어 번 씹어보고는 얼굴을 찡그리며 뱉어 버린다.
초원에서는 오직, 육류인 고기와 우유만 먹고 생활한다.
인체에 필요한 비타민과 미네랄 등은 갓 잡은 동물의 간 肝과 육회 肉膾,
그리고 양과 야크. 낙타의 젖을 통하여 섭취 攝取한다.
어릴 적 농경 부락인 사로국과 대륙의 산동성에서 자라난 이슬비는 어려서부터 곡물을 섭취했지만,
우문청아는 이중부와 생활하면서 조금씩 맛을 보아 이제는 제법 잘 먹는다.
벌써 일곱, 여덟 살이 된 사로와 안개는 말을 타고, 넓은 초원을 마음껏 달리고 싶다.
초원을 떠나온 지 두 달 가까이 말을 타지 못하니 온몸이 근질근질한다.
초원에서는 온종일 말과 더불어 살고, 어린 양이나 아기 염소를 껴안고
매일 이리저리 뒹굴어야 하는데 월성에는 가축들이 귀하였다.
아이들은 이미 초원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나지막한 산과 골짜기마다 맑고 깨끗한 물이 쉼 없이 흐르는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금수강산보다는
맘껏 말을 달릴 수 있는 거친 초원이 그립고,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갓 잡은 가축의 부드러운
생간 生肝을 맨손으로 쥐어뜯어, 굵은소금에 찍어 먹으며, 그 풋풋한 피비린내를 느끼고 싶고,
옷이나 맨발에 소똥, 말똥을 묻힌 채 풀밭을 마구 뛰어다니는 동무들이 보고 싶다.
어릴 적 자랄 때의 주위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평생동안 잊지 못하고 또, 그리워 한다.
우문청아 일행은 산비탈의 생강나무가 노란 꽃을 떨굴 때, 사로국에 도착하여 할아버지 할머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연 분홍빛 산 벚꽃이 지고 까맣게 익은 버찌가 땅에 떨어질 때 즈음,
서라벌에서 출발하여 나정에서 쪽배를 타고 형산강 물줄기를 따라 근오지로 입해 入海하였다.
박달거세는 초원과 사로국의 연락을 책임질 연락단원을 여러 차례의 경선 과정을 거쳐
선발 選拔 된 일백 명을 함께 선승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매년 연락단원 50여 명을 선발하여 초원으로 보내주겠다며 약속하였다.
사로국에서는 초원으로 연락병이나 호위병으로 한 번이라도 다녀오면,
군에서는 곧바로 부하를 열 명 거느릴 수 있는 직책인 십장 什長직을 주었다.
먼 외지 外地로 고생하며 다녀온 그 경험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연락병으로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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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