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줄기에 속한 천성산(922m)은 양산의 명산이다. 나, 유도사는 이 산 기슭에서 30 년을
살면서 원효암, 홍룡사, 미타암, 화엄벌 등지로 천 번 넘게 올랐다. ㅡ 당시 정상은 군부대가 있어
출입금지였다. ㅡ 동기는 이랬다. 30대 초반. 공기 탁한 도금공장에서 주-야 교대로 일하며,
습작한다고 줄담배까지 피워대니 기침감기를 달고 지냈다. 일단 글쓰기를 중단하고 매일 산을 향해
걸었다. 처음에는 느릿느릿 힘들었으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몸이 변화되어, 오르막 산길을 달릴
정도로 힘이 넘쳤고 감기는 내 몸에서 사라졌다. 산이 나를 살렸다고 생각되어 틈을 내어 다녔다.
이 산 기슭 대석마을이 고향인 아내가 들려 주는 천성산 자락에 얽힌 이야기는 신비하고 재미있었다.
천 명의 성인과 원효와 연관된 산이름 유래와 여러 가지 전설, 대석못 이무기 이야기, 군작전도로 공사
중에 가로 막은 큰 바위를 제거하려는데, 책임자 꿈에 산신령같은 도인이 니타나서 '이틀만 말미를
달라.' 하였으나 무시하고 폭파했더니, 그곳에 엄청나게 크고 굵은 흰뱀이 산산조각 나있었다. 몇 년 후,
출근하는 사람을 태운 지엠씨 트럭이 그 지점에서 낭떠러지로 굴러 전원이 사망한 이야기. 일천배에
한가지 소원을 이룬다는 전설을 믿고 행해서 복을 받은 사람들이 많은 소원명소 원효암 등 이었다.
나도 경험한 신기한 원효암 '천광석불' 비화에 대해 말하고 싶다. 원효암은 처가와 아주 오랜 인연이
있는 암자였다. 처음 들렀을 때 편안한 느낌과 내집처럼 익숙한 분위기에 묘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수시로 들렀다. 그러다 노사분규로 인해 한동안 산을 가지 못하다가 두 달 간의 파업을
끝내고자 찬반투표를 하기 위해 회사 가려고 집을 나서던, 1991년 7월 20일 오후. 정상부에 짙은
먹구름이 생기더니 순식간에 하늘 전체에 덮이면서 깜깜해졌다. 비는 오지 않고 천둥 번개가 오랫동안
무시무시하게 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같았다. 공장 재가동 준비로 바빠서 산을 계속 가지
못했는데, 어느 날 전국 각지에서 관광버스가 주말마다 우리 동네로 줄지어 와서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궁금해서 물어 보니 "원효암 뒷쪽 바위에 벼락이 떨어져서 부처상이 새겨졌다." 라고 하였다.
다음 날 가니 주지스님이 망원경을 건네 주며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벼락 맞아 떨어져 나간 큰바위의 속살이 허옇게
드러난 부분이 마치 장삼을 걸치고 앉아 있는 부처 형상 같았다.
주지스님은 통도사 방장 월하의 운전기사 출신의 사판스님이었다. 발령 받고서 "이런 골짜기 암자로
보냈느냐?" 하소연 했더니 월하 왈, "조만간 좋은 일 있을거다." 해서 암자의 불편한 점들을 하나씩
개선해 나갔다. 부족한 식수 문제는 소방서와 협조하여 해결했고, 군부대와 협의해서 민간인 차량도
군작전도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 열성이 감응을 얻어서, 전국 불자에 알려진 큰 경사가
생겼던 것이다. 많은 보시로 백팔계단을 조성하여 월하가 작명해 준 '천광약사여래불'을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바위가 많은 곳에 흙이 있거나, 흙이 많은 곳에 바위가 있으면 그곳이 명당이라 하였다. 대부분 암자가
그렇듯 원효암(750m)도 그런 자리에 있다. 또, 바위 많은 곳은 기도빨이 세서 바라는 바를 이루기가
수월하다고 한다. 우리 가족도 가피를 입어 기억에 남는 큰 일 몇가지를 성취하였다.
원효의 설화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천성산은 우리나라에서 새해 일출이 가장 빨라 해맞이 명소로도
유명하다. 봄이면 철쭉과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어 피어 나서 주위의 푸르름과 대비되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소금강이라 불리우는 내원사 계곡과 홍룡사, 용주사, 무지개폭포 등지의 계곡과 신록이
무더위를 식혀 줄 것이다. 드넓은 화엄벌의 은빛을 품은 갈색의 억새가 가을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은
장관이다. 천성산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결코 장엄한 산 못지않고 영험함을 간직하고 있다.
나를 살리고 건강하게 만든 이 산을 사랑하고 있기에,
다른 모든 산도 좋아하고 사랑한다.
8구간 산행기록 남긴다.
지기재 ㅡ 신의터재 ㅡ 윤지미산 ㅡ 화령재.
거리; 약 16 km. 시간; 5시간. 출발- 09시 40분,, 도착- 14시 30분..
진입로에 하얀 눈이 얇게라도 깔려 있기에 내이름을 적었다. 산속에는 더 많은 눈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눈을 좋아하는 유도사는 신이났다. 그러나 눈은 거의 없다시피 하여 실망.. 하지만 위험하지
않은 산행이 되어 다행이었다. 나는 상상하며 걸었다. 낙엽을 눈으로, 부시럭 소리는 뽀드득으로,,,
산행중 잡다한 생각들,,, 스쳐 지나가는 단어를 붙잡아 추려 보았다.
흰눈 쌓인 대간길 한걸음씩 내 작은 발걸음 옮긴다
노인의 영혼이 하얗게 물들도록 새하얀 산길을 걷고 걸어서
순수한 청춘이 되고 싶어라
뽀득 뽀드득 뽀득
바삐 저 멀리 그곳으로 젊어진 마음이 달려가 보니
아 ㅡ 님은 보이지 않고 표지석만 덩그마니 서있네
그 여운이 남긴 님의 자취를 따라 나, 이제 흰눈되어
영원히 남을 발자욱 찍으며 산길 가고 있다
낙동산악회와 인연 되신 모든 분들,,, 설 잘 보내시길,, 건강하고 행운이 항상 깃들기를 바라며,, 안녕.
첫댓글 재밌네요
산을 사랑하게 되신 이유도 충분 하시고요 베푸시는삶 또한 보살 이십니다
글도 읽기 쉽고 이해되기 쉬워 감사합니다
글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마음대로 넘나 드는 마법과도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홍아,님.!
분명 재미있으리라
자신했어요.
나를 조금씩
보여주고싶어요
읽어주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댓글도,
✍️☕️
유도사님, 천성산(千聖山)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유도사님의 발걸음이 머무는
모든 산길에 늘 가피(加被)가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왕서방,님.!
그렇죠,, 행운의
사나이가 가니까요. 앞으로 계속
좋을 것입니다.
아잇~~유도사님 산행기
자꾸만 기다려지게 하네요.잼나는 설화와 경험담
잘 읽었어용. 앞으로 얼마나 더 재미보따리를 풀어주실건지 기대만땅입니다ㅎㅎ.
청보리,님.!
할배의 옛날얘기.
재미있지요.?!
기대하고,고대하고, 파마하시라.!
기대에 못미쳐도 양해요.
천성산 사랑이나 백두대간 사랑이나
사랑을 비교할 수 있을까요
유도사님의 세심한 관조로 서사를 들춰주셔서 독자는 생경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쏘꿈,님.!
산을 사랑함은
자연스레 내 삶
과 연결된 영양소. 같은
감정입니다. 또
산과 관련된 사람. 직업 등
모든 것을 사랑
합니다. 계속 좋아할 거예요.
우리 동네에도 전설이
있었는데
부산 마산 연결 고속도로 공사중
포클레인이 어느 소나무 앞에만 가면 멈췄던 사례.
지금은 없슴
승승장구,님.!
세상에는 희안한 일이
많이 있더라고요.
내가 아는 신기한 얘기, 또
들려줄께요.
유도사형님께서 왜 그토록 천성산을 즐겨 찿으셨는지 이해가 되네요.
특별한 인연과 사연이 있었네요.
원효암에서 바라보는 조망 정말 일품이지요.
저도 몇번 가보았는데 조만간에 또 가보고 싶네요
이제 제1봉이 개방 되었나요?.
금줄을 넘어 한번 1봉에 가본적이 있지만
늘 1봉을 갈 수 없는 아쉬움이 남더군요.
살짝 오다만 눈을 보면서도 동심으로 돌아가,
멋진 시를 남기시는 형님의 풍부한 시적 감성,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설 연휴 잘 보내시고, 건강하신 모습으로
다음 산행때 뵙겠습니다.
산사랑제이,님.!
군부대 철수함.
완전개방. 차로
원효암 코앞에
갈수있슴니다.
해맞이때는
지사.국회의원.
시장, 등 총출동
떡국 줌니다.
천광석불. 이란
제목으로 소설
쓸 예정.,초안
써눟음.
유도사 님이 풀어내는 전설과 과거와 현재를 잇는 구수한 이야기 보따리.
멋진 시 한 수까지 읽을 거리가 풍부합니다.
수고 많았고, 대원들을 위한 찬조에 고맙습니다.
한길,행님.!
행님이야말로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처럼 우리들의 현재를 남겨
주는, 진짜 뜻
깊은 봉사를
하는것임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