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상반기 국내 제조사가 경쟁하는 내수 승용차 시장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만5,242대가 덜 팔렸다. 수치로 비교하면 64만5,522대(2017년 상반기)와 68만764대(2016년 상반기), 약 5.2% 하락한 수치지만 지난해 이맘때 개별소비세 인하 혜택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꽤 선방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의 분위기는 1년여 만에 꽤 많이 달라졌다. 차급(segment)별 판매 분포가 이를 말해준다.
크게는 소형(B 세그먼트)과 준대형(E 세그먼트) 시장 규모만 커졌고, 그 밖의 모든 차급 시장은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소형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909대가 더 팔렸고 준대형 시장은 3만9,721대나 늘어났다. 반면 경형(A 세그먼트)과 준중형(C 세그먼트), 중형(D 세그먼트)는 각각 1만5,000여대와 3만7,271대, 1만2,301대씩 감소했다. 판매대수가 가장 적지만 가격대는 가장 높은 대형(F 세그먼트) 승용차 시장은 무려 1만1,282대나 줄었다.
소형 시장은 일반 소형차가 87.1% 하락했지만 소형 SUV 판매가 12.5% 늘어나면서 성장을 견인했다. 판매대수도 대당 마진이 높은 소형 SUV(5만3,732대)가 상대적으로 마진이 적은 일반 소형차(5,808대)보다 많아 제조사 입장에선 이전보다 훨씬 ‘건강한’ 시장으로 거듭났다. 향후에도 코나, 스토닉 등 신규 모델의 가세로 B SUV 시장의 분위기는 한층 활기차질 전망이다.
하지만 마냥 반가워할 일만도 아니다. 기존 준중형 시장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준중형은 내수에서 25% 가량의 비중을 차지한다. 규모 면에선 중형(약 34~35%) 다음 가는 큰 시장이다. 여기에 큰 차 선호도가 높은 국내 소비자 성향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엔트리카 시장이라고 할 수 있어 국내 제조사에겐 매우 중요한 무대다. 그런 준중형차 시장 비중이 올 상반기 21.5%까지 떨어졌다.
이 세그먼트에 속한 거의 모든 차종이 판매 부진에 시달린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판매량이 가장 많은 아반떼(-1만171대)를 필두로 SUV 부문의 투싼과 스포티지도 각각 1만53대, 6,822대씩 판매가 줄었다. 쉐보레 크루즈(+1,016대)와 현대 i30(+1,238대), 기아 쏘울(+117대) 등의 판매가 늘었지만 시장 판세를 바꿀 만큼 영향력 있는 규모로 보긴 어려웠다. C 세그먼트 승용 전체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2.4% 줄었고 SUV의 경우 36.4%나 하락했다. 제조사들은 시작가격을 낮추거나 고객 성향을 반영한 맞춤형 트림 제품을 출시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C 세그먼트 시장은 좀처럼 반등할 조짐이 없다.
정반대인 시장도 있었다. 준대형(E 세그먼트) 부문이었다. 승용과 SUV가 모두 성장한 곳은 모든 차급을 통틀어 E 세그먼트가 유일했다. 승용의 경우 12만5,512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8만9,183대)에 비해 3만6,329대나 늘었다. E 세그먼트 승용 시장의 성장 견인차는, 짐작하다시피 현대 그랜저(IG)였다. 상반기에만 7만518대가 팔렸고 구형(HG)까지 합치면 그랜저 판매량은 7만2,666대까지 올라간다. 제네시스 G80 판매량도 2만978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81대 늘었다. 기아 K7의 경우 지난해(2만8,890대)에 비해 판매가 10.8% 줄었다. 하지만 그랜저 IG가 맹위를 떨치는 현실을 감안하면 판매 추이는 꽤 꾸준하다고 볼 수 있다.
E 세그먼트 승용차 부문은 앞서 언급한 현대차그룹 3개 차종(그랜저-K7-G80)이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 판매량(12만5,512대) 중 93.6%(11만7,570대)나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다. 여기에 석 대의 트림별 모델이 3000만원~5500만원 가격대에 촘촘하게 자리하며 타 경쟁모델의 침투(?)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상세하게는 3000만원 초반~3400만원대의 2.4리터 4기통 가솔린의 경우 그랜저(2만3,924대)와 K7(1만1,119대)이, 3500만~4000만원의 3.0리터 V6 가솔린은 그랜저(2만1,737대)가, 4800만~5500만원대의 3.3리터 V6 가솔린은 G80(1만8,613대)이 장악하고 있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독립 등으로 고부가가치 제품군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힘써온 현대차그룹의 전략은, 적어도 국내 E 세그먼트 부문에서는, 그리고 아직까지는 잘 먹히고 있다.
E 세그먼트 SUV 부문의 경우 지난해 개선된 모델이 나온 기아 모하비(8,729대, +1,038대)와 신형 쌍용 렉스턴(6,562대, +4,089대) 등 신모델이 분위기를 주도하며 전년 동기(1만6083대) 대비 21.1%(1만9,475대, +3,392대)의 성장을 맛봤다.
중요한 점은 E 세그먼트 성장의 기운이 ‘아래로 임한 신모델’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이다. 즉 젊은 소비자를 겨냥해 D 세그먼트 가격대까지 내려온 그랜저 IG와 K7, G4 렉스턴 등이 판매를 주도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D 세그먼트 시장의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전체 시장에서 D 세그먼트 차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하다(약 34.6%). 하지만 올 상반기까지 전체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만2,300여대 줄었고, 주요 모델(쏘나타, SM6, 싼타페, 쏘렌토)도 큰 반등 없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 문제다.
쏘나타의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 4만4,548대(YF, LF 합계)에서 4만2,037대로 2,511대 줄었고, SM6는 2만7,211대에서 2만3,917대로 3,294대 감소했다. D 세그먼트 SUV 모델의 경우 하락세가 더 심각해서 싼타페의 경우 4만1,178대에서 2만7,403대로 50.3%나 떨어졌고, 쏘렌토는 4만3,911대에서 3만3,600대로 30.7% 감소했다. 지난해보다 7,129대 더 팔린 말리부(1만9,700대), 지난 5월부터 시판에 들어간 스팅어(1,692대)와 C 세그먼트에서 D 세그먼트로 스스로 격상한 르노삼성 QM6(1만3,920대)의 합류가 없었다면 D 세그먼트 시장은 훨씬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을 것이다.
또 하나 놓쳐선 안 될 상반기 시장 흐름은 F 세그먼트, 즉 대형 고급차 부문의 하락세다. 전체 판매량이 지난해 상반기(1만9,221대)보다 1만1,282대나 줄어 7,939대에 머물렀는데 감소폭이 무려 142.1%에 이른다. 눈에 띄는 건 역시 제네시스 EQ900의 부진이다. 올 상반기까지 6,735대 판매로 지난해 같은 기간 판매량(1만7,114대)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주력 모델인 3.8 모델 판매량은 4,910대에 그쳤고 3.3과 5.0 모델 판매량은 각각 900대, 925대에 머물렀다.
반면 수입차 시장에선 EQ900 주력 모델(3.8)과 비슷한 가격대(7000만~1억원) 제품들의 판매량 합계가 지난해 상반기 1만8,225대에서 올해 같은 기간 2만6,770대로 8,545대나 늘어났다. 전체 수입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6%에서 22.6%로 크게 올랐다. 이는 최근 5년 중 가장 높은 점유율이기도 하다. 상반기 베스트셀링 톱 10에도 벤츠 E 220d(4,917대)와 E 300 4매틱(3,639대)와 E 300(3,258대), BMW 520d(2,808대) 등 6,000만원 중반~8,000만원 초반 가격대의 제품이 다수 포진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