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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
시편19편
이 시는 내 용상 두단락으로 확실히 구별된다.
첫 단락은 하나님의 창조, 해를 강조한 찬양
둘째 단락은 율법에 대한 고찰
1. 자연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계시 (1-6)
①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1-4중)
하늘과 궁창은 같은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하신 일을 나타낸다.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나타낸다.
하늘은 피조룸 중에 최고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바로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이 계시며 그것은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다고 증거하였다.
자연은 하나님의 영광과 창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타내는가 그것은 언어가 없고 소리가 없으나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다.
② 예로서 해(4하-6)
해는 하늘의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다. 또 해는 이방 세계의 가장 위대한 신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다윗은 그 해도 또한 하나님의 지으신 것으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은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영안이 열리면 이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
2. 율법과 특별계시(7-14)
① 율법의 효능(7-10)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하고 - 영혼의 양식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고 - 사람은 어리석다. 그러기에 당연히 죽음의 길을 알면서도 가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그것을 보는 인간으로 하여 지혜롭게 한다.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
순결하여 눈을 밝게하고 - 하나님의 뜻을 알게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다.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 영원토록 보존된다.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 율법에 대한 마지막 정의, 결론적인 정의
질적인 멸과 양적인 면에서 다 의롭다.
그러므로 정금보다 더 사모하라
꿀보다 더 달다 - 이 세상의 어느것과 비교할 수 없다.
② 정결을 구하는 기도(11-14) - 반석이요 구속자이신 여호와께 기도
주의 말씀을 지키게 하소서(11)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12)
죄 짓지 말게 하소서(13)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게 열납되기를 원한다(14)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시 19편
1. 시 19편은 어떤 시인가?
이 시는 이질적인 두 개의 시가 이어져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한다. 마치 두 개의 전혀 다른 시를 하나로 묶은 듯하다. 첫 번째 부분(1-6)은 자연에 나타난 주의 영광을 노래한다. 시 8편과 유사하게 창조에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에 심취한다. 마치 하이든의 천지창조를 듣는 것과 같다. 실제로 하이든의 천지창조에 사용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는 “찬양시”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두 번째 부분(7-14)은 토라의 영광을 노래한다. 시 1편과 시 119편과 유사하게 토라의 아름다움과 선함을 노래한다. 시인은 주의 율법의 매력에 심취되어있다. 토라를 따라 사는 삶이 지혜로운 삶이라 역설한다. 그래서 이 시는 “지혜시”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고리가 있다. 바로 8절 하반절이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하나님의 계명이 태양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리고 6절을 보면 “해는 하늘 이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해를 피해 숨을 수 없듯이 율법을 피해 숨을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태양이 창공을 주관하는 것처럼 토라는 우리 삶을 주관한다. 태양이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고 또 더위를 주는 것처럼 토라는 생명을 줄 뿐 아니라 우리를 말린다. 태양 없이 이 우주에 생명이 존재할 수 없듯이 율법 없이 참된 인생이 있을 수 없다. 이 둘 사이에는 명백한 연관성이 있다. 그리고 이 둘 다 하나님의 은총이다.
루이스(C. S. Lewis)는 [시편 사색]에서 이 시를 가장 위대한 시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서정시로 꼽고 있다. 이 시에는 시적인 아름다움과 그 사색의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2. 시 19편의 내용은 무엇인가?
1) 짜임새
이 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첫째, 1-6절이다. 이 부분은 천지 창조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우선 1-4a에는 천지에 가득한 찬양소리에 관해 노래한다. 다음으로 4b-6에는 태양을 노래한다. 둘째, 7-13절이다. 이 부분은 토라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우선 7-10에는 인간에게 주신 율법의 영광을 다루고 있다. 다음으로 11-13에는 시인 자신에게 주신 율법의 의미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셋째, 14절이다. 이 부분은 후기이다. 이 시를 하나님께 바친다.
2) 풀이
# 첫째 연/ 천지 창조에 대한 찬양(1-6)
-. 천지에 가득한 찬양소리(1-4a)
* 하늘과 궁창/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우주관에 의하면 저 우주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하늘이고 그 하늘은 푸른 바다와 같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궁창으로 땅 위에 둥글게 퍼져있는 천장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저 하늘의 푸른 바다를 붙들고 있는 접시와 같은 것이다.(창 1:6, 겔 1:22, 시 150:1 등) 이 궁창에 천체를 만들어 매달아 두셨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 하늘과 궁창이 살아있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 손으로 하신 일을 선포한다고 보았다. 그 하늘 위에 좌정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시 29:9)
* 하늘의 찬양/ 1-2에 서로 다른 네 가지 동사가 천지 창조를 찬양한다고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하나는 하늘이 “선포하고”, 둘은 궁창이 “나타내고”, 셋은 날은 “말하고”, 그리고 넷은 밤은 “전한다.”이다. 이 동사들은 모두 하늘의 찬양을 묘사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이어서 궁창이 하나님의 손의 솜씨를 알리고, 또한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이어서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 마치 네 찬양대가 서로 돌아가면서 노래하는 것과 같다. 하늘의 찬양대, 궁창의 찬양대, 낮의 찬양대, 그리고 밤의 찬양대이다. 이것은 저 하늘 전체가 다 찬양대가 되어서 한 목소리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 찬양의 특성/ 3을 보면 세 가지 부정이 나온다. 하나는 언어가 없다. 둘은 말씀도 없다. 그리고 셋은 들리는 소리도 없다. 온 우주에 가득한 천지 창조의 특성이다. 말도 없고, 어떤 직접적인 메시지도 없고, 게다가 소리까지 없다. 즉 천지 창조에 대한 찬양은 인간이 귀로 들을 수 없다. 인간이 만든 소리로 전파되는 음성학적, 음악적 찬양이 아니다. 마음에 울려퍼지는 소리요 영혼의 울림이다. 그렇지만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들은 누구라도 들을 수 있는 강력한 소리이다
-. 태양에 대한 노래(4b-6)
* 해/ 이제 찬양이 태양에 초점을 맞춘다. 저 하늘에 있는 존재 가운데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걸작 중의 걸작이 바로 태양이기 때문이다. 사실 고대인들은 태양을 신으로 추앙했다.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절대 강국 애굽과 메소포타미아 모두 태양은 신중의 신이었다. 그래서 바로와 왕은 모두 이 태양의 아들이었다. 바벨론 신화에서 태양은 매일 아침 높은 언덕에서 솟아나 빛나는 하늘의 큰 문을 연다. 애굽의 태양 숭배 역시 매일 아침 태양은 오벨리스크 꼭대기를 때리며 나타나 온 우주를 통치한다.
그러나 본 시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태양은 단지 하나님의 손으로 만든 작품 중의 하나이다. 태양은 의인화되었지 신격화되지는 않는다. 우선 하나님께서 태양을 위해 장막을 세웠다고 말씀했다. 태양이 밤에 잠깐 쉬는 곳으로 장막을 두셨다고 시적으로 노래했다. 애굽의 헬리오 폴리스 즉 태양의 신전이나 헤칼 즉 궁전이 아니다. 사람이 광야에서 기거하는 장막일 뿐이다. 즉 태양이 신이나 신의 아들 왕이 아니고 다만 사람과 같은 피조물일 뿐이다. 게다가 태양은 마치 갓 결혼한 신랑과 같고, 자기 길을 달리는 용사와 같다.
그런데 이 태양은 낮 동안에 하늘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달리면서 모든 것에게 열을 발산해 준다. 더 나아가 태양은 숨은 것을 드러내고 모든 것을 폭로한다. 이 태양의 우주에서의 특별한 역할이 다음 연의 율법의 역할과 잇다있다.
# 둘째 연/ 토라에 대한 찬양(7-13)
-. 인간에게 주신 토라(7-10)
* 토라의 특성/ 7-9에서는 토라의 특성과 그 영향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여기에 여섯 가지 토라의 특성이 열거된다. 첫째,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킨다. 말씀이 영의 양식과 같아서 생명력을 공급하여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둘째,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한다. 말씀이 삶의 원칙을 증거해 주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들을 현명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셋째,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한다. 말씀 안에는 생명의 교훈이 담겨 있기 때문에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깨달음의 기쁨을 준다는 것이다. 넷째,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신다. 말씀이 삶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주어 인생이 무엇인지 바로 보게 해 준다는 것이다. 다섯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른다. 말씀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결한 삶을 살게 해 주고 이것이 인생의 영원한 기초가 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여섯째,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롭다. 말씀이 확실하여 믿을 만하고 의롭다는 것이다.
* 토라의 가치/ 10절을 보면 토라는 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고 꿀보다 더 달다고 한다. 금은 인간이 추구하는 보물을 대표하는 것으로 “가치”를 상징한다. 그리고 꿀은 인간이 먹고 싶어하는 달콤한 음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상징한다. 그런데 토라는 인간이 추구하는 그 모든 가치보다 더 귀하고, 또한 인간이 추구하는 그 모든 즐거움보다 더 즐거움을 준다. 다시 말하면 토라가 궁극적 가치요 최고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 내게 주신 토라(11-13)
* 종의 깨달음/ 11절을 보면 토라가 시인에게 경고를 한다. 그 토라가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깊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놀라고 영적인 귀가 열린다.
* 종의 애가/ 12-13을 보면 찬양이 애가로 바뀐다. 토라의 경고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깊은 깨달음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선 자신의 부족함이 뼈저리게 느껴져서 애통해 한다. 다음으로 자신을 망가뜨리는 두 가지를 발견하고 애통해 한다. 하나는 숨은 허물이다. 이것은 비의도적인 잘못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고의로 지은 죄이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지은 죄를 말한다.
시인은 간절히 기도를 드린다. 이것들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달라는 것이다. 이 죄들을 용서해 주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즉 용서와 보호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죄에서 자유롭게 해 달라는 것이다.
# 셋째 연/ 후기 - 헌사(14)
*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은 엄숙한 헌신의 형식이다. 이 양식은 고대 희생제물을 드릴 때 사용되는 조문 형식이다. 즉 시인은 자신의 시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희생 제사 이후 그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기를 바라듯 이 시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즉 이 시의 모든 찬양과 기도가 다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3. 시 19편은 어떻게 묵상할 수 있을까?
1) 천지 창조를 찬양하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천지는 그 자체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상태이다. 온 만물이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우선 마음의 귀를 열어 그 찬양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온 만물이 찬양하는 그 소리를 우리 인간이 꺾어서는 안되겠다. 그 찬양소리가 비명 소리로 바뀌고 하나님께 대한 탄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우리도 함께 동참하여 찬양할 수 있어야 하겠다.
2) 말씀을 귀하게 여기자
시인은 말씀의 능력을 보았다. 여섯 가지 특성을 통해 말씀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답게 세움을 보았다. 그러면서 그 말씀에 대한 가치를 깊이 깨닫는다. 그 어떤 것보다 귀한 것이 말씀임을 깊이 깨닫는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까이 함의 즐거움을 깊이 느낀다. 그래서 말씀을 대할 때 최고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3) 헌신의 소원을 드리자.
시인은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하나님께 열납 되기를 소원한다. 우리의 말을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만하게 갈고 다듬어야 하겠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