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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에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 또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3. 내가 너희를 기억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4. 너희 모두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항상 기뻐하며 간구함은 5. 첫날부터 지금까지 너희가 복음 안에서 교제하였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이것을 나는 확신하노라.”
빌립보서는 옥중 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복음 안에서 바로 서기를 바라면서 이 서신을 보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옥중에서도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늘 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만 읽어 보아도 사도 바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성도라면 당연히 사도 바울과 같이 영혼을 사모하고 또 구원을 위해 힘써 일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어떤 환경과 처지에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성도라면 당연히 이 일을 위해 힘써 일해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이방인들이 이집트와 같이 강한 세상 신을 섬기고 있을 때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생명조차도 아까워하지 않고 전도를 하면서 옥에 갇히는 일을 여러 번 당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사도 바울은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오직 복음을 전파하는데 자기 모든 것을 다 쏟았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전도를 하다가 지금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자기가 전도해서 세워진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또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이 서신을 보내는 것입니다.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바울이 옥중에 갇혀 있을 때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은 많은 실망을 하고 또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구약 성경을 보면 선지자들을 위험에서 건져 내셨는데 지금 사도바울은 이 옥에 갇혀 있다가 사형을 당하게 될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로서는 실망을 하고 또 의심을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빌립보의 성도들의 마음을 헤아려서 빌립보서를 기록해서 서신으로 보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든든히 서게 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처음부터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3. 내가 너희를 기억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신약 성경에 나오는 교회들이 많이 있지만 빌립보 교회는 하나님의 기쁨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서 사도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표현을 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빌립보 교회를 세워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무리 복음을 잘 전파했을지라도 다른 교회들은 거의 이단들이 들어와 교회 공동체가 혼란을 겪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로 그랬고, 갈라디아 교회는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었으며 에베소 교회도 요한계시록에 보면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교회 공동체들이 아직 사도들이 살아 있는 시대인데도 이단 사상에 미혹이 되어 가고 있는데 빌립보 교회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빌립보 교회도 다른 교회 공동체나 마찬가지로 이단 사상에 의해 교회가 어지러워 졌을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가 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인도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감사를 해야 하는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 육체가 잘되는 그것을 보며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바로 서 있는 빌립보 교회를 보면서 사도 바울이 감사를 한 것같이 우리도 역시 믿음으로 서 있는 성도들을 보면서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변해 버렸습니다. 아니 복음이 변질이 되어 버려 믿음 안에 있는 것을 감사하기 보다는 오히려 육체가 잘되는 것을 보면서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들을 보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기쁨이 되는 교인들을 보면서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 1절에 보면 감독과 집사들과 성도들에게 보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감독과 집사와 성도는 디모데전서에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있는 성도와 감독과 집사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의 비밀을 가르쳐 주시고 구원을 얻게 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복음의 비밀을 모른다면?
내가 백 명을 전도하면 무엇 합니까? 그들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지 못했다면 그들은 세상사람 보다도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보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믿음의 비밀을 알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 구원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나 목회자나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목회자는 성도들이 육체적으로 잘되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기 보다는 그들이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된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합니다. 내가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 전도를 하면 무엇 합니까? 그가 복음의 비밀을 모른다면 하나님께서 전혀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전도한 그 사람도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해 진 사람을 성도라 칭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선을 행하거나 의를 행해서 내 겉모습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죄 사함을 얻어 거룩해진 사람이 성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볼 때 바로 그런 성도들이 교제하는 교회였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선하고 의로워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복음을 그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선을 행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지 내가 거룩해 지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거룩해 지기 위해서 그런 행위들을 한다면 그는 성화주의자가 되어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거절하고 말 것입니다.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당 안에 다수가 있지만 성도가 되는 사람의 수는 적다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단은 너무도 지혜로워서 사람이 그 지혜를 당할 수 없는데 빌립보 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으로 성도라 부르심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내가 전도를 했는데 그가 지옥에 간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수고의 땀을 흘려서 복음을 듣게 했는데 그가 믿음의 비밀을 깨닫지 못해 만의 하나 지옥에 간다고 생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런 사람을 지목하여서 고린도전서3장에 그는 구원을 받으나 불 가운데서 얻는 것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수고를 했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고 이단에 빠진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마음이 불 가운데서 구원을 받는 것과 같이 찹찹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모든 성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보니 사도 바울은 너무도 감사한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의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내 수고는 헛수고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내가 전도를 한 사람마다 모두 천국에 갈 수 있는 성도가 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바라보는 빌립보 교회가 그랬다는 말씀입니다.
“4. 너희 모두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항상 기뻐하며 간구함은”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간구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뿐만 아니라 자기가 전도를 해서 세워진 교회를 위해서 사도 바울은 늘 기도를 했습니다. 정말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기쁨으로 간구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마음에 기쁨을 두고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말씀은 그들의 구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기뻐하신 것 같이 사도 바울의 마음도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을 했기 때문에 기쁨으로 간구할 수 있었습니다.
구원에 확신이 있어야 기뻐할 수 있습니다. 만약 구원에 확신이 없다면 절대로 기쁜 마음에서 기도할 수 없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바울이 볼 때 믿음으로 든든히 서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마음에 기쁨이 있었던 것입니다. 최고의 기쁨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사업이 잘되고 재물을 많이 벌고 좋은 대학을 가고 성공을 하는 것이 기쁨입니까? 그렇다면 아직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 모든 것은 육적인 것이지 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육신이 잘되는 것을 보고 마음에 기쁨을 얻는 사람은 아직 영적인 기쁨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교회 공동체에 나와서도 하늘의 신령한 기쁨을 누리려 하기 보다는 그저 세상의 기쁨에 만족을 하고 그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내 육체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성령께서 감동하여 주심으로 내가 성도가 된 그것으로 희락을 누리는 것이 바로 영적인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해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했습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교회 목사들은 성도가 육체적으로 잘 되는 것으로 기뻐할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구원을 받는 그것으로 기쁨을 삼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간구해야 하고 또 그것을 확신하면서 마음에 기쁨을 삼아야 합니다.
“5. 첫날부터 지금까지 너희가 복음 안에서 교제하였기 때문이라.”
왜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또 그들을 위해 간구할 때 마다 마음에 기쁨이 넘쳤느냐면 그들이 처음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교제를 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복음 안에서 교제를 했습니다. 복음으로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행위로 교제하기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무엇으로 교제하는지 조차 분별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던지 교회에 나온 것으로 마치 복음 안에서 교제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당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오직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는 성도고 다른 한 사람은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있거나 이단 사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실제 그들은 모두다 자기들이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제는 서로 사귀어 가까이 지내는 것을 교제라 합니다. 내가 누구와 사귀고 있는 가를 정확하게 분별을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도 율법과 사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영적인 간음을 하는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은사와 사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신비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자기 육체의 경건을 위해 사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성화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복음으로 교제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교제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 교제를 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를 했고 또 그들을 위해 간구할 때마다 기쁨이 넘쳤던 것입니다.
내 친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친구라 하셨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친구만 사귀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또 다른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다른 남편인 율법도 사귀어야 하고 또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가볍게 여기고 은사를 추구하면서 신비주의와 사귀어야 하고 행위를 좋게 하기 위해서 성화주의와 사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것이 참 좋을 수 있습니다. 아니 사람들의 눈에는 너무도 좋게 보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도 그런 것을 사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친구를 잘 사귀면 친구로 인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친구를 발 못 사귀면 이용만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9절에 “9. 너희를 부르사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친구 되기를 원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하면 충분한데도 사람들은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지를 못하기 때문에 율법과도 사귀어야 하고 또 세속적인 것을 교회 안에 끌어 들여와 사귀려고 합니다. 율법과 잘 사귀면 너무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자꾸 보이는 것과 사귀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하면 되는데도 충분히 천국에 갈 수 있는데도 또 다른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면 됩니다. 그분 안에는 모든 지혜와 모든 보화가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하나만으로 충분히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천국을 가고도 남는데도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은 다른 친구를 사귀려고 하다가 심지어는 세속적인 것을 교회 안으로 끌어 들이고 있습니다.
율법에 친해지면 망합니다.
이스라엘이 누구와 사귀다가 망했습니까?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셨는데도 사람들은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이스라엘이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친구를 사귀지 않으면 혹시나 천국에 가지 못할까 불안하기 때문에 여러 친구들을 사귀려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빌립보 교회에 있는 성도들과 감독과 집사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고 또 그들을 위해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6.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이것을 나는 확신하노라.”
복음으로 교제하는 빌립보 교회에 대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너희를 인도하실 것을 확신한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으로 교제하는 빌립보 교회를 사도 바울이 확신을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강력한 말씀입니까? 여러분이 천국에 들어갈 것을 나는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확신을 하느냐면 이 일을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속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실패를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모든 사람은 실패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실수를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믿었기 때문에 복음으로 교제를 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해 주신다고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자기가 전도를 해서 빌립보 교회를 세웠지만 그 교회를 구원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반드시 완성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내가 하면 실패를 합니다.
사람은 모조건 실패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내가 연약해서 할 수 없는 그것을 주님께서 이르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못 이루신 것이 있습니까? 약속을 하신 것은 반드시 그 약속대로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하려고 하다가 실패를 하고 맙니다. 이스라엘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려고 노력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꾸 세상을 보면서 요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과 같이 복음으로 교제를 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냥 예수와 교제만 하면 되는데 자꾸 눈으로 보기 때문에 예수 이외에도 친구를 사귀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누가 구원하셨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가 알아서 하나님을 찾아 가나안으로 왔습니까? 갈 길을 모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인도하시고 또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아브라함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완성하신 것입니다. 야곱을 누가 구원하셨습니까? 그가 무엇을 잘 해서 장자의 복을 받았습니까? 야곱이 태어나기 전부터 리브가에게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야곱이 무엇을 잘 해서 장자의 축복을 받고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께서 그리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잘 나서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세움을 받았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10절에 “10.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우리는 사도 바울 하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도바울 역시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았다면 사도바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사도바울 속에서 선한 일을 시작 하신 이가 그가 모든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지 사도바울의 의지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사도바울의 인간적인 수고를 제가 폄하하고자 드리는 말씀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성도로서 감독으로서 집사로서 믿음의 비밀을 알고 복음으로 교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착한 일을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위해 수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리 하시지 않았다면 사도 바울의 수고는 헛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너무 잘 아는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교제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에 선한 일을 하시고 그것을 완성하신 것은 오직 빌립보 교회는 복음으로 교제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기를 좋아 했고 그것이 바로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내가 사귀어야 하는 이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친구로 사귀려 하기 보다는 자기 육체의 모양을 내면서 더욱 친근하게 사귀고 있습니다. 마치 그것이 하나님을 말씀 믿는 것으로 오해를 하면서 더욱 깊게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세요.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성도는 확신을 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시는 이로 인하여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귀기를 좋아합니다. 사람은 무조건 실패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신 그것을 마음으로 믿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에게는 주님께서 선한 일을 완성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과 교제하기를 힘쓰세요. 그렇게 하는 성도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우리를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인치시고 내 구원을 하나님께서 완성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