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 꽃 피는 2006년 4월 22일 충북 단양군에 있는 최대의 대승명지인 구인사에 가 보기 위하여 군인공제회 제일식품 직원들과 함께 직장차량으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북단양 IC에서 나와 구인사로 가는데 좌우측 도로변에는 벚꽃나무가 만개하여 보기가 가장 좋은 시기였으며 옛날에 이곳에서 고구려의 온달장군이 전쟁 중 전사한 곳이라고 한다.
벚꽃이 아름다워 중간에 차량에서 내려서 구인사까지 걸어가면서 배경이 좋은 곳에서는 사진도 몇장 찍으며 올라갔다. 구인사 입구에는 사람의 힘으로는 옮 길수 없는 정말 큰 바위가 서 있는데 “대한불교 천태종 총본산 소백산 구인사” 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한불교에는 가장 큰 조계사, 천태종, 원불교 등등으로 나뉘는데, 이곳은 천태종 총본산으로 8,000여평의 넓은 계곡에 50여동의 불교 시설물들이 큰 산과 산의 계곡 사이를 복개하듯이 들어 선 것이다. 그렇게도 매섭고 혹독했던 겨울은 물러가고, 눈들로 뒤 덮였던 산과 들은 새싹들로 푸르고 아름다운 금수강산으로 변하였다.
불교 신도들은 날씨가 풀려서인지 수많은 신도들이 불교 바지 저고리를 입고 수행하기 위하여 구인사로 몰려들고 있었다. 들리기로는 동서울터미널에서 시간당 1대씩 고속버스가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불교건물 숲들을 지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에는 천태종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상월원각대조사”라는 분이 “석가모니” 자세의 금색 불상으로 모셔져 있었고, 그 앞에서 불교 신도들은 헌금하고 소원을 기원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 위에 있는 산 정상에 올라가는데 세멘트로 포장이 오솔길처럼 잘 닦아져 있었다. 잘 포장된 산 정상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궁굼해 하며 올라가는데, 자기 이름표를 부착한 신도들이 저마다 도를 닦는 모습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올라가고, 내려오곤 하였다. 그 길은 마음의 수양을 닦는 도로였던 것 같았고, 그 산 정상에는 “상월원각대조사”의 시신을 모신 묘가 있었다.
궁굼한 것은 그 높은 산 정상에 까지 어떻게 시신을 운반하였을까? 하고 궁굼했다. 모셔진 묘 끝에는 큰 솔나무가 정자처럼 서 있는 흔히 하는 말로 최고의 명당자리처럼 보였고, 이곳 정상에서 반대쪽을 굽어 보니 주봉인 신선봉에서 9봉우리가 장엄하게 일렬로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고 봉우리 사이에는 마치 하늘로 통하는 대문이 나 있는 듯해서 “구봉팔문”이라고 부르고 있었으며, 또 연꽃같은 여러 산봉우리가 솟아 있으므로 이곳을 연화지라고 부르기도 하는 곳이다. 불교 신도는 아니지만, 장엄하게 잘 지어진 이러한 구인사를 한번쯤 들려 보도록 추천하고 싶다.
명산승지 구인사를 내려와서 냇가도 있고 넓은 들에 나와 직원들이 함께 준비해 간 음식들을 내 놓고 깔판을 깔고 점심식사를 하는데 밥맛이 아주 좋았다. 이렇게 직원들과 함께 하는 식사가 맛이 있어서 토요일이면 서울의 집에 가야 하는데, 제일식품 부하직원들과 함께 월 1회 하는 등산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오후에는 동강의 신비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영월군에 있는 비운의 조선6대 임금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에 갔다. 단종은 문종의 외아들로 세종23년(1441년)에 태어나 12세인 1452년 조선 제6대 임금에 올랐으나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3년만에 왕위에서 물러났다. 그 후 1457년, 세조에 의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어 생활하였던 곳이다.
그해 10월24일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다. 청량포는 삼면이 깊은 강으로 휘어 감기는 섬으로 뒤에는 깍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어린 나이로는 도저히 탈출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곳에는 단종이 귀향 왔을 당시 머물며 나무 위에서 앉아 놀았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600년된 소나무가 있고, 단종이 자주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노산대 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단종이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멀리 한양쪽을 바라보며 주위에 흩어져 있는 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망향탑도 있다.
지금도 장릉에 가면 단종의 능이 있으며, 장릉 주위의 소나무는 모두 능을 향해 절을 하듯 굽어있어 경이로움을 더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왕족이 아니었다면 더 오랫동안도 살 수 있을 수도 있었는데 문종의 외아들 이었기에 3년동안 왕위에 올랐지만 숙부(세조)에 의하여 왕위를 빼앗기고, 목숨까지도 내 놓아야 하는 안타까운 삶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차량을 생산하는 자동차회장의 구속등의 뉴스를 접하며, 우리들도 현재의 주어진 여건이 부족하고 불만족스럽더라도 현재의 여건에서 최선을 다 하고, 매사에 감사하며 남은 여생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