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맨날 레파토리가 똑같지? 만물 일본설이네?
모 맛 칼럼리스트가 방송에 나와서 '조선은 생선으로 육수를 내는 문화가 없었다. 멸치 육수는 일제시대에 넘어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는데 여러모로 오해받기 딱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약용의 동생 정약전의 '자산어보'와 김해의 '우해이어보'에도 멸치가 등장하는데도 조선시대 멸치를 안 먹었다는 '오해'가 생긴 이유, 모 맛 칼럼리스트가 조선에 생선으로 육수를 내는 문화가 없고, 일제시대에 넘어왔다고 단언하는 이유가 뭘까요? 원인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조선시대의 요리책을 살펴보면 육수는 쇠고기로만 우려 냅니다. 무슨 탕을 끓여도 쇠고기로만 육수를 냅니다. 조선시대의 기록에 생선으로 육수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은 사실이고 세종대왕 이전의 조선 전기에는 멸치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슬람에 등장하는 행어가 멸치가 아닐까 할 정도로 조선 전기에 멸치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조선후기로 가면 멸치나 말린 멸치로 국을 끓여 먹는다는 기록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자산어보에 국,젓갈,포로 먹는다고 하고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난호어목지에도 모래사장에 말려 뭍에 내다파는데 한웅큼에 1전을 받는다는 구체적인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썩어서 거름으로 쓸 정도로 많이 잡혔다고 하는데 조선 전기에는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조선시대 멸치가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이유로 생각 되는 것이 여러개 있습니다. 자산어보에도 멸치를 찬거리로 천하다고 할정도로 취급이 나쁜 생선이었습니다. 작기도 작지만 너무 빨리 썩었습니다. 등푸른 생선인 멸치는 빨리 말리지 않으면 쉽게 상해서 젓갈이라도 담그지 않으면 쓸모가 없는 생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빨리 썩는 문제가 '멸치 아궁이'의 등장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잡아온 멸치를 멸치 아궁이에 쪄서 효소의 활동을 멈추는 것입니다. 찐 멸치를 널어 말리면 우리가 아는 바로 그 마른멸치가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조선 후기에 와서나 쪄서 말리는 기술이 확립된 것 같은데, 그와 별도로 조선 후기에 멸치의 어획량이 크게 늘어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멸치로 육수를 내는 문화가 일본에서 넘어왔다고 하는데, 일본쪽 자료를 찾아보면 마른 멸치를 대중화가 된 것이 메이지 30년경으로 자산어보나 우해이어보가 쓰여진 시기와 비슷합니다.
청어나 정어리처럼 비료로 밖에 못쓸 정도로 많이 잡히던 생선이 어느 순간 딱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 또 갑자기 다시 잡히기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남획이나 수온의 변화 등이 원인이라고 추측되긴 하지만 제대로 된 원인은 아직도 불명입니다. 원래 과메기는 청어로 만들었는데 어획량이 확 줄어들면서 꽁치로 만드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갑자기 청어 어획량이 늘어나서 다시 청어 과메기가 등장하게 됩니다.
개인적인 추측으로 조선 말기에 기술과 발전과 멸치의 어획량의 증가가 겹쳐서 말린 멸치가 대중화 된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찐 다음에 말려서 장거리 유통하기 쉬워졌다는 것도 대중화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마른 멸치의 생산량을 처음으로 기록한 것은 메이지29년(1895년)으로 치바현의 2톤이었습니다. 그전에도 멸치를 잡았지만 쪄서 말리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 26~28년(1892~1894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른 멸치 생산의 피크를 찍었던 1942년에 일본 전국 생산량은 9200톤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어로 마른 멸치를 니보시(煮干し)라고 하는데 이름부터 쪄서 말렸다는 뜻입니다.
멸치 육수가 일본에서 넘어온 문화라는 이야기에 제일 거슬리는 부분은 막상 일본에선 말린 멸치 육수가 대중적이지 않단 말이죠. 일본에서 얼마 전에 말린 멸치 육수 라멘 유행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기본이 좀 묘했습니다. 한국에선 국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린 멸치 육수가 뉴웨이브 라멘의 한축으로 화려하게 부상하는 모습이 낯설더군요.
일본이 말린 생선으로 육수를 내는 문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다랑어를 발효해서 만든 가츠오부시를 주로 쓰고 다른 생선은 드뭅니다. 말릴 멸치보다 가츠오부시와 같은 방법으로 고등어로 만든 사바부시가 오히려 더 대중적인 재료가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생선으로 육수를 내는 문화가 일본에서 넘어왔을지는 몰라도 멸치 육수가 일본에서 넘어왔다는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려운 것이죠.
지금이야 일본 전국 어디를 가도 가츠오부시로 육수를 내지만 일본에서 가츠오부시가 대중화가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일본에서 관동과 관서의 차이를 들 때 관동(도쿄)은 우동 국물이 검고, 관서(오사카)는 우동 국물이 하얗다라고 합니다. '도쿄의 우동은 먹물로 만든다'라는 간사이 사람의 농담이 있을 정도로 도쿄의 우동 국물은 색이 짙은데, 육수의 맛을 간장으로 내기 때문입니다. 오사카는 가츠오부시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기 때문에 우동 국물이 도쿄보다 맑기 마련입니다. 가츠오부시와 다시마 모두 오사카에서 나는 문물은 아니지만 옛날부터 교역로의 중심이었던 오사카는 외지에서 넘어온 가츠오부시와 홋카이도의 다시다도 구하기 쉬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도 생선으로 육수내는 문화가 대중화 된 것은 최근의 일인 셈입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육수의 중심은 쇠고기가 아니라 간장과 된장이었습니다. 쇠고기는 대중적인 재료는 아니었을 테니까요. 그런 우리나라도 최근에 들어서는 기술의 발전과 유통의 발전으로 말린 멸치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참고가 되는 자료가 너무 없습니다. 식문화에 대한 사료가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궁중의례에 대한 자료나 진상품에 대한 기록 여기저기서 추리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자산어보나 우해이어보같은 어보가 큰 도움이 되었지만 유배간 선비의 소일거리였다는 것을 생각하니 참 재밌습니다.
그런데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최근의 연구서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영하 교수의 '음식 전쟁,문화 전쟁'이나 블로그 이웃인 찬별님의 '한국 음식, 그 맛있는 탄생', 그리고 얼마 전에 나온 이한씨의 '요리하는 조선 남자'같은 옛 식문화를 다룬 책들이 보물같이 소중합니다.
출처:마른 멸치 육수는 정말로 일제시대에 넘어온 것일까?
백종원 황교익 비교글 한번에 이해시켜주는 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