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인토롱어서(五人土籠御書)』 ☞음성으로듣기☜
『오인토롱어서(五人土籠御書)』에 「어쨌든 승(僧)을 데리고 계시라. 시로(四郞)가 혼자 있을 일이 안쓰러워서 말하느니라. 금월(今月) 칠일(七日) 사도지방(佐渡地方)으로 가느니라. 당신들은 법화경(法華經)을 일부(一部)씩 독송(讀誦)하셨으므로 내 자신(自身) 및 부모(父母) · 형제(兄弟)의 존망(存亡) 등(等)에 회향(廻向)이 되시리라. 금야(今夜)의 추위에 따라 더욱 내 자신(自身)보다도 마음 아픈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노라. 옥(獄)을 나오시면 명년(明年) 봄 반드시 찾아오시라. 만나고자 하노라. 쇼우전(殿)이 오직 혼자 있는 자(者)를, 곁에 두어달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무분별(無分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죽을 때까지 당신들의 수치(羞恥)니라. 또 다이신아사리(大進阿闍梨)는 내쪽에서 지시(指示)할 일이 허다하며, 또한 당신들의 신상(身上)도 결과(結果)를 확인(確認)시킬 생각으로 머물게 하노라. 상세(詳細)히는 다시 말할 때가 있으리라. 공공근언(恐恐謹言).」 (신편어서 p.479)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은 먼저, 자신이 이번 달(10월) 7일에 사도로 가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실제로 에치(依智)를 떠나신 것은 그 후 3일 뒤인 10월 10일이다.)
그다음에 투옥된 제자들에게, 여러분은 법화경을 위해 법난을 만나 법화경 일부를 몸[신(身)]으로 읽었기[독(讀)] 때문에 그 공덕은 자신뿐만 아니라 존생(存生) · 사망(死亡)의 부모 형제에게도 회향(回向)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오늘 밤 혹독한 추위에 나보다도 옥중의 여러분이 걱정되어 미안하고, 괴로운 마음을 말로 다 할 수 없다. 사면되어 감옥을 나오면 내년 봄, 꼭 사도로 오거라. 만나고자 한다’라고 격려하십니다.
그리고 다이신아자리(大進阿闍梨)는 나에게서 무언가 지시를 받아야 할 것이 많이 있고 또한 여러분의 신상이 어떻게 될지 끝까지 지켜보기 위해서 가마쿠라에 머물도록 했다고 말씀하시고 본초를 마무리하시고 있습니다.
또한 추신(追伸)으로 오인(五人)의 곁에서 수행했던 시로(四郎)가 혼자 남겨지는 것은 측은한 일이므로 치고보(稚児房. 어린 스님)를 데리고 가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본초(本抄)는 1271년 10월 3일, 대성인 성수(聖壽) 50세에 지으신 어서(御書)로 타종(他宗)사원인 교토시(京都市) 묘카쿠지(妙覚寺.묘각사)에 진필(眞筆)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다쓰노구치 법난 이후 사도 유배에 이르는 동안 대성인은 사가미노국 에치(相模国 依智)에 있는 혼마(本間) 저택에 몸을 맡기게 되셨는데, 그곳에서 가마쿠라(鎌倉)의 지하 감옥[토롱(土籠)]에 투옥되어 있던 문하 5인(五人)에게 주신 어소식(御消息)입니다.
이 법난에서는 대성인의 제자 단나(檀那)도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성인어난사(聖人御難事)』에는, 「분에이(文永) 8년 신미년 9월 12일 사도국(佐渡国)으로 유배되었으며, 또한 단두대에 앉았느니라. 그 밖에 제자가 살해되고 칼에 맞았으며, 추방당하고 과태료를 내는 등, 그 수를 알 수 없느니라.」(신편어서 p.1396) 라고 제자 단나 중에 살해되거나 혹은 주군의 집에서 쫓겨나고 영지(領地)에서 추방당한 사람이 많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동안에 율종(律宗)이나 염불자(念佛者)들은 자신들이 일으켰던 가마쿠라에서의 7~8회 방화(放火)와 살인 사건을 모두 대성인 제자의 소행이라며, 사실을 왜곡하여 참언(讒言)하고 막부(幕府)도 또한 이것을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하여 니치렌의 제자들을 가마쿠라에 두어서는 안 된다」(신편어서 p.1062)라고 해서 260여 명을 요주의(要注意) 인물로 기록하였고, 더욱이 「모두 먼 섬으로 귀양보내고 감옥에 있는 제자들은 모두 참수하라.」(신편어서 p.1062)라고 『종종거동어서(種種御振舞御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신니부인답서(新尼御殿御返事)』에는 「가마쿠라에서도 감죄(勘罪)의 때, 천(千) 중(中) 999인이 퇴전(退轉)했는데」(신편어서 p.765)라 쓰시고, 이 법난으로 제자 단나가 천 명 이내 999명까지도 퇴전하는 양상(樣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와중에 대성인님 자신도 감옥에 갇힌 신세이면서도 가마쿠라(鎌倉) 지하 감옥에 투옥된 문하 5인을 염려하며 쓰신 것이 본초입니다.
대고중(對告衆)인 다섯 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니치로(日郞), 닛신(日心)이라는 승려 이외에 재가(在家)의 사카베뉴도(坂部入道), 이자와뉴도(伊沢入道), 토쿠교지뉴도(得業寺入道)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첫댓글 8월 여보은강의에 참석하시는 여러분께서는 연화지를 통해 '법화경 신독(身讀)의 공덕'에 대하여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8월 보은어강 때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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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로(日郞): 재세 당시 제자. 육로승 중 한 사람. 켄쵸(建長) 6년(1245)에 대성인에게 귀의. 닛쇼(日昭) 밑에서 득도했다 .다쓰노구치 법난 때 닛신(日心) 등과 함께 지하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니치렌 대성인 멸후에 닛코상인을 배신하고 대성인 묘소 윤번(輪番)에도 응하지 않고 고안(弘安) 8년(1285년)에는 텐다이샤몬(天台沙門)이라는 이름의 관청에 의견서를 제출하며 대성인의 정의(正意)에 반하는 행동을 하였다. 또한 니치렌 대성인의 백일재(百日齋) 법요에서는 묘소의 입상불을 가지고 하산하였다.
***닛신(日心): 「오인토룡어서(五人土籠御書)」의 5인의 대고중(大告衆)의 한 사람. 다쓰노구치 법난 때 붙잡혀 감옥에 갇힌 5인 중에 한 사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