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56이세진
맑은 날에는 더욱 산에 가야 – 운악산(토봉,동봉,서봉,아기봉)
1. 운악산 병풍바위
경기 5악으로 일컬어오는 산으로는 제일 높은 화악산(1,468.3m)을 비롯하여, 관악산(632m) ㆍ 감악산(675m) ㆍ
송악산 ㆍ 운악산(945m)을 꼽는데 운악산은 오악 중에서도 수려한 산이다.
운악산(雲岳山)은 가평군 하면과 포천군 화현면의 경계에 있는 암산이며, 정상인 만경대를 중심으로 남쪽(철암재)
으로 뻗은 능선은 비교적 완만하나, 동쪽 능선은 입석대 ㆍ 미륵바위 ㆍ 눈썹바위 ㆍ 대슬랩의 암봉과 병풍바위를
비롯하여 20m의 바위벽에 직립한 쇠사다리가 아슬아슬하다.
청학대에서 서편으로 뻗은 길은 급경사의 험준한 바위 능선 길이고, 기둥바위 북쪽으로 뻗은 능선에는 성벽 같은
바윗길이 계속된다.
―― 김형수, 『韓國400山行記』의 ‘운악산(雲岳山) 개관’에서
▶ 산행일시 : 2025년 10월 8일(수), 맑음
▶ 산행인원 : 4명(악수,메아리,하운,도자)
▶ 산행코스 : 현등사 일주문,눈썹바위,출렁다리,토봉,입석대,만경대,운악산 동봉(비로봉),서봉,아기봉(아기바위,
기둥바위),702m봉,숯고개,600m봉,장로회신학대 경건훈련원,화현2리
▶ 산행거리 : 도상 8.4km
▶ 산행시간 : 7시간 45분(08 : 52 ~ 16 : 37)
▶ 갈 때 : 청평역에 내려 43번 현리 가는 버스 타고, 현리에서 택시 타고 현등사 입구 동구로 감
▶ 올 때 : 화현2리 버스승강장에서 7-1번 버스 타고 일동으로 가서, 저녁 먹고 택시 타고 동서울로 옴
▶ 구간별 시간
08 : 10 – 청평역
08 : 35 – 현리터미널
08 : 52 – 현등사 입구 동구, 현등사 일주문, 산행시작
09 : 03 – 갈림길, 오른쪽이 눈썹바위 쪽 청룡능선, 운악산 정상 2.6km
09 : 14 – 출렁다리
09 : 37 – 눈썹바위, 휴식( ~ 09 : 50)
10 : 04 – 능선
10 : 22 – 토봉(726m), 휴식( ~ 10 : 35)
11 : 32 – 만경대
11 : 38 – 운악산 동봉(비로봉, 937.5m)
11 : 49 – 운악산 서봉(935.5m)
12 : 20 – 아기봉(아기바위, 기둥바위, 820m), 점심( ~ 13 : 00)
13 : 20 – 능선, 구름다리 설치공사 현장
13 : 50 – 702m봉
14 : 00 – 숯고개
14 : 50 – 600m봉, 서쪽 지능선으로 하산
16 : 15 – 장로회신학대학교 경건훈련원(구 성은수도원), 상돌배기골
16 : 37 – 화현2리 버스승강장, 산행종료
2. 산행사진
요즘 내리는 비는 가을비라기보다 가을장마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수확철인 농사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비다. 그래서 혹시 장마가 수마(水魔)에서처럼 ‘장마(長魔)’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부쩍 들었다. 그 어원을 찾
아보았다. ‘장마’가 순우리말이라는 설과 ‘댱마’에서 유래했으며, ‘댱’은 ‘길다’는 뜻의 한자 ‘장(長)’이고, ‘마’는 ‘비
(물)’를 의미하는 우리말의 합성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중국, 일본에서는 ‘매우(梅雨)’라고 한다.
매실이 익을 무렵에 내리는 비라고 한다.
한글을 쓰지 않던 옛사람들은 장마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매우(梅雨) 외에도 요(潦), 림(霖), 고우(苦雨) 등으로 상황에 따라 적절히 썼다. 그때도 가을장마가 달갑지는 않았
다. 계곡 장유(谿谷 張維, 1587~1638)는 「가을장마를 읊은 부(秋霖賦)」라는 장시를 짓기도 했다. 그 일부분이다.
아, 자연의 조화 질서를 잃어 欸玄鈞之愆化兮
음기가 새는데도 수습을 못해 陰氣洩而莫收
과도하게 비가 내려 피해 주는데 雨澤淫而爲沴兮
시절은 맑은 가을 팔월이라 時玆屬乎淸秋
(…)
가을엔 어찌하여 장마로 괴로움 당하는가 秋何爲而霪葘
불쌍하다 우리 백성 고달픈 생활 해 왔는데 哀我民之孔囏兮
지금 또 이렇게 재앙을 내리는가 遘玆辰之降害
뜬구름 쳐다보며 맑은 날씨 기원해도 仰浮雲以願霽兮
산꾼이 날씨를 탓할까마는 비 오는 날보다 맑은 날이 백번 좋다. 맑은 날에는 더욱 산을 간다. 연이틀 비가 오다
오늘은 거짓말처럼 맑다. 배낭 메고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사뭇 가볍다.
오늘 이른 아침 8호선 별내역에서 경춘선으로 환승할 때의 일이다. 지하에서 지상 2층 승강장까지 6개 층이 되는
것 같다. 역사 내 양쪽을 오가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거나 직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한다.
나는 내리자마자 엘리베이터 앞이라 바로 탈 수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고 하는데 몇
사람이 타려고 뛰어오고 있었다. 열림 버튼을 누르면 그들도 탈 수 있었다. 누군가 열림 버튼을 누르지 말고 그대로
두자고 한다. 열림 버튼을 누를 경우 엘리베이터 운행이 지체되어 춘천 가는 전철을 놓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번
열차를 타지 못한다면 24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들은 아슬아슬하게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다. 그들의 탄식이 들리
는 것 같다. 우울한 아침이다.
현리터미널에서 운악산 들머리인 하판리 동구주차장 가는 버스를 타려면 30분쯤 기다려야 한다. 시간이 돈이고
또한 1/N이면 소도 잡아먹는다고 했다. 택시 탄다. 택시기사님은 동구주차장을 훨씬 지난 현등사 일주문 바로 앞까
지 간다. 서로 좋다. 일주문을 지나면 오른쪽에 삼충단(三忠壇)이 있다. 구한말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의병운동과 민족의식 개혁에 주도적 역할을 전개해 온 최익현, 조병세, 민영환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제단(祭
壇)이다.
삼충단 지나고 완만한 오르막이다. 오른쪽 도랑에 승용차 한 대 오른쪽 바퀴가 빠졌다. 도랑이 깊다. 아마 좁은 도로
에 앞에서 오는 차를 비키려다 사고가 난 것 같다. 저걸 빼내려면 모르긴 해도 수 십 만원은 들 것이다. 좀 더 오르면
┣자 갈림길과 만난다. 직진은 절고개를 경유해서 정상에 오르고, 오른쪽은 눈썹바위를 지나 바윗길을 오르내리는
청룡능선 길이다. 직진이 오르기가 수월한 대신 0.5km 정도 더 길다. 우리는 오른쪽의 조망 좋은 청룡능선 바윗길
을 간다.
오늘 한낮 기온은 27도까지 오를 거라고 했다. 아침부터 덥다. 더구나 가파른 오르막리라 땀이 비를 대신한다. 사면
길게 올라 지능선 숲길이다. 출렁다리에 오른다. 길이 210m, 폭 1.5m, 높이 50m라고 한다. 무료다. 다리 중간까지
걸어 가본다. 운악산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프랑스 작가 모파상이 그랬다. 그는 파리 시내에 에펠탑을 세우는 것을 파리의 아름다운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맹렬히 반대했다고 한다. 에펠탑이 완성된 후에 모파상은 파리 시내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곳인 에펠탑
내부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내가 그 짝이다.
3. 출렁다리. 길이 210m, 폭 1.5m, 높이 50m라고 한다.
4. 출렁다리 중간에서 바라본 운악산 전경
5. 연인산
6. 눈썹바위. 한 총각의 비극적인 사랑이 서려 있다
7. 멀리 가운데는 화야산
8. 명지산
9. 운악산 남릉, 오른쪽에 남근바위가 보인다
10. 멀리 가운데는 천마산, 그 앞 왼쪽은 서리산
11. 병풍바위
눈썹바위까지는 비교적 부드러운 숲속길이다. 산행시작한 지 출렁다리에서 잠시 주춤한 시간을 포함하여 눈썹바위
까지 45분이 걸린다. 첫 휴식한다. 눈썹바위는 직등할 수 없고 왼쪽 사면의 슬랩으로 돌아가야 한다. 눈썹바위 안내
문이다.
“옛날에 한 총각이 계곡에서 목욕하는 선녀들을 보고는 치마를 하나 훔쳤다. 총각은 치마가 없어 하늘에 오르지
못한 선녀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선녀는 치마를 입지 않아 따라갈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말에 총각
은 덜컥 치마를 내주었고, 치마를 입은 선녀는 곧 돌아오겠다며 하늘로 올라갔다. 총각은 선녀 말을 믿고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이 바위가 되었다.”
바윗길이 시작된다. 슬랩에는 핸드레일을 설치하였다. 한 피치 오르고 걸음걸음이 경점이다. 멀리는 화야산, 뾰루
봉, 호명산이 가깝게는 명지산, 연인산, 매봉, 깃대봉, 운두산, 축령산이 반갑다. 전에 없던 데크계단도 설치하였다.
가파르고 높고 길다. 바위 타듯 오른다. 배낭을 메고 오는 스님 한 분과 마주친다. 배낭이 열려 있다. 그것을 알려주
었더니 스님은 산기운을 배낭에 담으려고 열고 간다나. 옆의 다른 등산객이 말하기를 실은 능이를 따러 가는 길이라
고 한다.
삿갓모양의 고인돌바위(?) 지나고 암릉 길게 오르면 토봉(725m)이다. 운악산의 대부분이 암릉 암봉인데 반해
725봉은 누런 황토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토봉이라 부르는 듯하다. 토봉 내리는 데크계단은 전경이 화려한다. 미륵
바위와 병풍바위를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어서다. 가평8경 중 운악망경이 제6경인데 그 이유가 바로 이 경치가
아닐까 한다. 이 병풍바위는 사시사철 아름답다. 병풍바위 안내문이다.
“인도승을 내친 바위. 옛날 신라 법흥왕(514년) 때 인도승 마라하미가 이 산을 오르다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바위
와 맞닥뜨렸는데 정신이 헛갈리고 사리를 분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부처님의 뜻이라 여겨 바위를
오르기 시작하였으나 자꾸만 미끄러졌다. 마치 바위가 오르지 말라고 내치는 듯했다. 결국 마라하미는 바위를 오르
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고행을 하다 죽었다고 한다.”
1963년 9월 15일자 조선일보의 “登仙의 길 5里 걸음, 雲岳山 품속에 奧妙한 幽景자랑, 懸燈寺”라는 제하의 기사가
극찬만은 아닌 것 같다.
“下板里에서 寺境까지 五里 좀 더 되는 길은 유거한적(幽遽閑寂)의 선경이다. 登山路가 아니라 그대로 登仙路의
느낌이다.
寺景의 아름다움은 말할 여지가 없고 寺蹟이 또한 놀랍다.
이 절의 歷史는 멀리 一千四百年 前 新羅 第二十二代 法興王 때로 올라간다. 이때 印度에서 摩羅阿彌라는 僧이
傳敎次 新羅에 찾아오니 王은 그를 위하여 雲岳山 속에 절을 세우게 했던 것이 오늘의 懸燈寺이다.
(…) 海拔 千미터에 가까운 雲岳山의 精氣가 뻗친 높은 봉우리 아래 大伽藍을 이루고 있어 그 建物의 壯과 山峯의
美水石의 妙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절 뒤쪽의 千仞削壁도 絶景이려니와 松籟 속에서 지내는 산새들의 울음
소리 속에 老僧의 念佛소리는 無意識中에 自身의 頭髮의 有無를 따지게 한다.”
어느 해인가 하산할 때 현등사를 들렸었다. 늦가을 그때 앳된 여승이 한쪽 절집 양광 가득한 마루에 앉아 태블릿 PC
로 속세를 들여다보며 천진하게 웃고 있던 모습이 생각난다.
데크계단 내려 바닥 친 안부를 지나고 바윗길 올라 미륵바위 전망대다. 고개 들면 국망봉과 귀목봉, 화악산, 명지산,
연인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병풍바위는 옆 모습도 아름답다. 곁눈질하며 바윗길 오르고 사면 길게 돌아 지능선
을 갈아탄다. 운악산 정상 360m. 청룡능선 바윗길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핸드레일과 데크계단을 설치하여
아무런 재미없다. 지난날 오르내렸던 20m 바위벽에 직립한 쇠사다리(유물로 남겨두었다)를 내려다보며 그때를
추억한다.
만경대 데크전망대에서는 만경을 망경한다. 천마산 왼쪽 너머로는 예봉산, 검단산, 무갑산이, 오른쪽으로는 청계산,
불암산이 보인다. 만경대에서 슬랩 덮은 데크계단 잠깐 내렸다가 한차례 데크계단 오르면 운악산 동봉이다. 음각한
정상 표지석의 ‘雲嶽山毘盧峯’이 멋지다. 탁본 뜨고 싶은 글씨다. 정상 한쪽에서 아이스크림과 막걸리를 파는 좌판
이 소리 높여 호객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나 역시 모르는 체하고 간다마는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곧장 서봉을 향한다. 0.33km. 평지나 다름없는 숲속길이다. 동봉에는 정상 표지석을 포천시와 가평군에서 각각
세웠는데 서봉에는 포천시에서만 세웠다. 서봉에서 서쪽으로 50m 떨어진 망경대는 굳이 들르지 않는다. 정상 주변
은 전과 다르게 키 큰 나무들이 지난겨울 폭설에 꺾였는지 아니면 일부러 쳐냈는지 사방 조망이 훤히 트인다.
긴 데크계단 내려 아기봉을 향한다. 야트막한 안부 ┫자 갈림길 지나고 인적이 눈에 띄게 줄었다.
12. 병풍바위
13. 왼쪽은 귀목봉, 오른쪽은 명지산, 그 뒤는 화악산
14. 미륵바위, 뒤는 연인산 연릉
15. 천마산 왼쪽 뒤로 예봉산, 검단산, 무갑산이 보이고, 오른쪽 뒤는 청계산이다
16. 왼쪽 멀리 뒤쪽은 화악산
17. 연인산 연릉 뒤로 왼쪽은 노적봉이고 오른쪽은 칼봉산이다
18. 왼쪽 멀리는 국망봉, 오른쪽 산골마을은 상판리
19. 운악산 동봉 정상
한 산악인의 추모비가 있는 아기봉(아기바위, 기둥바위)을 지나고 평평한 숲 그늘에서 자리 펴고 점심밥 먹는다.
산행 중 가장 즐거운 한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도자 님이 술을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여 함께 대작하지 못하
겠다는 것. 한북정맥 운악산 난구간을 간다. 다시 ┫자 갈림길과 만난다. 직진은 운악산 구름다리 설치공사 중이라
고 금줄 치고 막았다. 어쩌면 왼쪽 사면 도는 길을 별도로 마련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왼쪽 지능선으로 난 인적 따라
내린다.
그런데 왼쪽은 아예 하산길이다. 뒤돌아 올라 금줄을 넘는다. 얼마 안 가 왼쪽 가파른 사면에 밧줄 달린 내리막길이
나온다. 직진은 공사현장(사라키바위 서벽에는 잔도를 설치한다)이기도 하지만 맨손으로 오르내릴 수 없는 직벽구
간이 있는 암릉임을 안다. 왼쪽 옅은 지능선을 내리다가 오른쪽 사면을 트래버스 한다. 워낙 가파른 사면이라 굵은
밧줄이 내내 달려 있다. 뚝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기를 세 번이다. 막판 한 피치 슬랩 기어오르면 천막 한 동과 여러
구조물이 널려 있는 구름다리 설치공사 본부다.
천막 옆을 돌아 능선을 간다. 바윗길은 아니지만 나이프 릿지 다름이 아니다. 좁다란 길에 양쪽 사면은 낭떠러지다.
바윗길이 나오면 자세 낮추고 살금살금 지난다. 길게 내렸다가 오르는 702m봉이 암봉이다. 가파른 슬랩을 밧줄 잡
고 오르고 내릴 때는 오른쪽 사면을 돈다. 밧줄이 보이는 데가 나오면 저절로 긴장한다. 내리기가 무척 조심스럽다.
숯고개 지나면 험로는 끝난다. 비록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만만치 않지만 부드럽다.
비로소 등로 주변에 눈을 돌린다. 언제나 그렇듯 메아리 님의 눈이 가장 먼저 밝다. 노루궁뎅이버섯이다. 손닿는 데
있다. 너도나도 주변을 살핀다. 여기저기에서 노루궁뎅이가 뒤뚱거린다. 부디 눈을 높이지 말고, 멀리 보지도 말자
고 다짐한다. 등로 주변만 살핀다. 또한 허리 굽히면 낙엽과 함께 가지버섯이 흔하다. 막 줍는다. 가지버섯은 마사토
가 아닌 부엽토 비옥한 땅에서 자란다. 건조하면 갓이 회백색이다가 물기가 있으면 가지색으로 변한다.
버섯 갓은 약간 끈적끈적하여 낙엽 부스러기가 묻어 있기 마련이다. 마른 갓에서는 이를 털어내기 어렵고 물에 적셔
버섯이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씻어내야 한다. 집에 가지고 갔더니 아내가 그렇게 손질해야 먹을 수 있다는 것
을 알려준다. 내가 무심했다. 이날 산행을 마치고 일동 음식점에서 우리가 삼겹살 불판에 구워먹을 그 많은 가지버
섯을 하운 님 혼자서 손질했다니 뒤늦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열 걸음이 멀다 하고 노루궁뎅이가 유혹한다. 이래서는 오늘 산행이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 내심으로는 원통산과
돼지산을 넘고 걸어서 일동까지 가려고 했는데 가망 없이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는 어느덧 시간이 부족하고, 배낭이
버섯으로 너무 무거워졌다. 그만 하산하기로 한다. 이때는 좌우사면을 곁눈질이나 기웃거리지 말고 똑바로 앞만
보고 갈 것을 당부한다. 600m봉 왼쪽(서쪽) 지능선을 잡는다. 인적은 수적(獸跡)과 분간하기 어렵게 흐릿하다.
옅은 지능선을 갈아타기 여러 번이다. 계곡 물소리 들리고 습지의 키 큰 갈대숲 헤치고 산속 고색의 건물에 다가간
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경건훈련원이다. 전에는 은성수도원이었다고 한다. 훈련원 구내에 沈默. 隱聖. 일편단심으로
나를 찾으면 만나리라 등의 표지가 보인다. 이 훈련원 강당에 다음과 같은 수도자의 기본자세가 붙여 있다고 한다.
수도자가 멀리 있는 별스런 사람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따라 내가 바로 수도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
ㅇ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모든 물건 존재를 소중히 여기며
ㅇ 천지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찬미하고
ㅇ 부귀영화를 덧없는 것으로 생각해 관망하고 즐기며
ㅇ 건강이나 병고도 인생 최후의 장식으로 생각하며
ㅇ 정숙과 여러 덕으로 내면을 장식하라
일동 시내 우리가 자주 가던 음식점은 연휴 휴업이다. 대부분 음식점이 휴업이다. 외곽 한 음식점이 열었다. 우리가
첫 손님이다. 저녁시간이 아직 이르기도 했다. 어쨌거나 우리 오고 나서 많은 손님들로 북적이니 마치 우리가 손님
을 몰고 온 것 같다. 노루궁뎅이버섯과 가지버섯을 삼겹살 불판에 구우니 삼겹살보다 버섯이 먼저 없어진다. 미주
반주로 얼근하여 일어난다. 우리는 산행을 마치고 저녁 먹을 때에는 일부러 서울 갈 버스시간을 미리 알아보지 않는
다. 혹 시간에 쫓겨 맛난 뒤풀이를 그르칠지 모르므로.
도자 님과 나는 동서울로 간다. 터미널로 가는데 웬 남자가 부른다. 서울 가시는 것 같은데 3만원에 가시지 않겠느
냐고 묻는다. 어리둥절하여 머뭇거리자 서울 가는 시외버스는 1시간 후에나 오고, 자기는 서울을 빈 택시로 가야
하는데 그럴 바에는 3만원(1/N이면 15,000원이다)에 모시겠다고 한다. 동서울 가는 시외버스 요금은 8,200원이다.
시간이 돈이다. 택시 타고 간다. 택시기사님의 낚시 입담이 고급스럽다. 낚시 얘기 듣느라(상당부분 뻥이겠지만)
지루한 줄 모르고 금방 동서울이다.
20. 멀리는 북한산과 도봉산
21. 중간 가운데는 개주산, 오른쪽은 주금산, 그 뒤는 철마산
22. 천마산 왼쪽 뒤로 예봉산, 검단산, 무갑산이 보이고, 오른쪽 뒤는 청계산이다
23. 운악산 북릉, 구름다리 설치공사 중이다. 사라키바위 서벽에는 잔도를 내고 있다.
25. 왼쪽 멀리 불암산 뒤로 남산 타워가 보인다.
26. 왼쪽 뒤는 칼봉산, 그 앞 오른쪽은 매봉
27. 노루궁뎅이버섯, 잦은 비로 풍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