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겁다. 지난 주말 그와 오합지졸 아마추어 합창단이 만든 작은 기적은, 오랜만에 TV 시청자들을 흠뻑 울렸다. KBS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 합창단을 지휘한 음악감독 박칼린(43)이다. 소통과 신뢰 속에 남격 합창단은 마침내 ‘하모니’를 이뤘고, 대회가 열린 마지막 방송은 눈물바다가 됐다. ‘칼린쌤’이 보여준 강한 카리스마와 엄하면서도 따뜻한 리더십은 ‘박칼린’ 학습 열풍으로까지 이어졌다.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자랐다. 1995년 28세에 뮤지컬 ‘명성황후’ 음악감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이후 국내 뮤지컬 산업의 시스템 구축에 일조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청담동 킥뮤지컬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강의하는 뮤지컬 아카데미다. 인터뷰 당일은 그가 음악 수퍼바이저로 참여한 뮤지컬 ‘틱틱붐’ 개막일이기도 했다. 다만 이번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간 간직해온 몇 가지 철학이 살아남은 걸 확인하게 돼 기쁘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한다는 거, 사람과 사람의 관계, 진심은 언제든 통한다 같은 것들 등등.” ‘사전 구성도 없고 아무 요구도 않겠다. 이건 예능이 아니고 다큐’라고 답하더라. 첫 미팅 3시간 중 2시간은 그에 대한 확답을 듣는 거였다. ” 사람들을 잘 살폈다. 어떻게 짝을 맺어주면 분위기를 흐리지 않으면서 전체를 잡을 수 있을지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코미디 때문에, 아니면 자기를 알리려 튀고 까부는 모습이 사라졌다. 내가 못하면 남에게 피해가 가는구나, 상대가 연습을 많이 해오니까 나도 열심히 해와야겠다, 이런 믿음이 생긴 거다. 내게 ‘남격’은 그저 방송프로가 아니다. 내가 감독한 하나의 작품이다.” 소통과 신뢰, 자율을 강조하는 동시에 각자의 책임감을 일깨우고, 엄격했다가 ‘사랑합니다’ ‘I 믿 You(나는 너를 믿는다)’라며 끌어안기도 하고. 뮤지컬은 모든 것을 최소로 압축한 장르다. 연주자 수만 해도 오케스트라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다. 빠져도 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모두가 똑같이 중요하다. 배우들에게 늘 스태프를 소중히 여기라고 말한다. 나도 직원들을 직원이라고 안 부르고 군단이라고 부른다. 평소 선생님, 이러면서 굽실거리는 사람들은 잘 안 쓴다.” 남이 만들어주는 자리다. 리더의 역할은 사람들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사람들을 잘 배분하는 거다. 20년 일하면서 사람 보는 눈이 생긴 것 같다. 오디션도 3분이면 끝이다. ‘남격’에서도 그랬지만 실제 오디션 때도 기술보다 인격·인성을 본다. 사람이 안 돼 있으면 아무리 실력 있어도 결과가 안 좋다. 나는 목표를 정하면 밖에서 어떤 게 날아와도 무시한다. 필요 없는 것을 모르는 척하는 힘이 있다.”(웃음) 모든 게 실력대로, 실력순이었다. 부모님이지만 틀렸다고 생각하면 서슴없이 얘기하게 하셨고, 어떤 일이든 충분히 미리 설명해주셨다. 충분한 설명을 들으니 매사 불평이 없었고, 세상에 말로 해서 안 될 일이 없다는 믿음도 생겼다. 그렇지 않은가. 진심으로 말로 소통해서 안 되는 일이 있는가.” 해외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라는데. 뮤지컬 음악감독 안 하는 것 같은 풍토가 돼버렸다. 물론 최근에는 바뀌었지만.” 그땐 뮤지컬 배우들이 노래 레슨 받는 것도 없었다. 그저 끼 있고 노래 좀 한다 싶으면 뮤지컬 배우 하는 줄 알던 시절이니까. 어린 여자가 이런 시스템을 만들려 하니까 반발이 심했다. 난 차별 같은 건 전혀 경험 못하고 자랐는데 그때 한국사회에서 나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값어치인지 절감했다.” 다녀서 얻은 별명이다. 한동안 나는 ‘필요하기는 하지만, 껄끄럽고, 그렇다고 자를 수도 없는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남격’ 마지막 회에 단원들과 함께 울 때 자막으로 나갔던 ‘그간 이방인으로 느꼈던 설움’이라는 게 그런 뜻이다. 혼혈이란 점은 특별한 한계가 되지 않았다.” 오케스트라에서는 첼로주자였는데 지휘자 선생님은 잠깐 자리를 비우면 꼭 내게 지휘봉을 맡기시곤 했다. 어려서 농구·승마도 했다. 팀을 짜서 소 500마리를 몰아본 적도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 종합예술대학을 거쳐 서울대 국악과 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들었다. 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도전하는 게 좋다. 차기작으로는 정말 맘 맞는 사람들끼리, 남의 돈 안 쓰고, 아주 작은 규모로, 일 하는 게 곧 노는 것인, 그런 휴식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 역할분배 등이 흥미로울 것이다.” |
출처: 길잡이별 원문보기 글쓴이: 길잡이별
첫댓글 소문만 무성하고 한번도 못만났네요. 박칼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