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게가 아니라 대나무처럼 생긴 게
글 _ 이주희
우리나라에는 사는 약 180여종의 게 가운데 가장 크고 담백한 맛이 으뜸인 것이 바로 대게다. 우리나라 동해와 일본의 동쪽 연안, 캄차카반도, 알래스카, 그린란드 등 수심이 깊고 차가운 바다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 대게를 잡는 시기는 12월에서 이듬해 5월까지다. 이 시기는 베링해와 알래스카의 대게가 동해를 거쳐 남해까지 이동하는 시기로 살이 꽉 차고 가장 맛이 좋을 때다. 어획기간이 끝나가는 4월 초에 대게로 유명한 경북 영덕에서는 한바탕 대게축제가 열리고 6월에서 11월까지는 자원보호를 위해 대게를 잡는 것이 금지된다.
대게 생산량은 1930년대 최고를 맞았고 1950년대까지 생산량이 유지되다가 1960년대를 기점으로 크게 줄었다. 그래서 금어기간을 정한 것 외에 자원보호를 위해 등껍질 폭이 9센티미터가 안 되는 개체와 암컷은 잡을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암컷은 성숙할 때까지 자라는 데 몇 년이 걸리고 공교롭게도 대게를 잡는 기간이 산란기이라 더욱 엄격히 보호하고 있다. 대게는 예부터 경북 영덕에서 많이 잡혀 흔히 영덕게, 참영덕게, 영덕대게라고 부르고, 그 외에 속에 살이 꽉 찬 것이 단단한 박달나무 같다고 해서 박달대게라고도 부른다. 수컷보다 작은 암컷은 크기가 찐빵만하다고해서 빵게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게라는 이름의 유래와 영덕대게
대게는 영덕대게로 불릴 만큼 영덕 지방이 특산품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하나는 고려시대 지금의 영덕군 영해면 지역을 순시하던 태조의 술안주로 진상되면서 영덕대게가 알려졌다는 설과 조선 초 영덕 지방 특산품으로 대게를 진상한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 유래와 관련해서는 ‘대게’라는 이름이 어떻게 유래했는지도 전한다. 게는 교양 있게 먹기 참 어려운 음식이다. 대게가 임금 수랏상에 올랐을 때 대게를 먹는 임금의 모습이 임금의 권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해 신하들은 다음부터 대게를 상에 올리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대게의 맛을 잊을 수 없었던 임금이 대게를 찾아오라고 명을 내렸다. 대게를 찾던 신하는 영덕군 축산면 죽도에서 한 어부가 잡은 대게를 찾는다.
신하는 어부에게 게의 이름을 물었으나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신하는 크고 이상하다는 뜻으로 언기어(彦基魚)라고 이름 지었다. 나중에, 대나무와 같고 몸에 침 같은 돌기가 있어 죽침언기어(竹針彦基魚), 다리가 대나무 같고 마디가 6개라 죽육촌어(竹六寸魚)라고 부르자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대게를 구했다는 곳이 죽도(竹島)이고, 생김새도 대나무 닮아서 결국 대 죽(竹)에 게 해(蟹)자를 써서 ‘죽해(竹蟹)’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라 근거가 확실하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대게라는 말이 큰 게라는 뜻이 아니라 가늘고 마디가 있는 다리가 마치 대나무 같아서 붙은 이름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죽도라는 곳은 실제 섬이 아니라 현재 영덕대게 산지로 유명한 영덕군 축산면 차유마을 옆에 바다로 튀어나와 마치 섬처럼 보이는 죽도산(竹島山)이라는 작은 산이다.
일본어로 대게를 즈와이가니(ずわいがに, 楚蟹)라고 부른다. 즈와이라는 말은 스와에(すわえ)라는 말이 변한 것이다. 스와에는 가늘고 곧은 나뭇가지를 뜻한다. 대게의 다리가 가늘고 곧아서 붙은 이름이니 대게라는 우리말과 의미가 통한다.
게라는 말의 어원
그렇다면 ‘게’라는 말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아쉽게도 그 어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중세국어 문헌에 이미 ‘게’로 적고 있고 이후로 소리 변화가 없어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말로 여겨진다. 다만 국어학자 서정범은 게는 ‘거이’의 준말이며 ‘걷>걸>걸이>걸이>거이>게’로 변화했다고 본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어로 게를 카니(かに)라고 하는데, 우리말과 소리가 비슷한 점으로 볼 때 같은 뿌리를 가진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1908년에 편찬된 <동언고략(東言攷略)> 책에는 게라는 말이 ‘꿇어앉다’ 또는 ‘게의 발’을 는 뜻의 한자 ‘궤(跪)’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책은 옛이야기나 민간에 떠도는 말을 근거로 우리말의 어원을 한자어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강해 해설 대부분이 억지스러운 점이 많아 신빙성이 떨어진다.
한편 대나무를 뜻하는 우리말 ‘대’의 유래와 관련해 이른 한자에서 유래했다는 보는 견해와 순 우리말이라는 견해로 크게 갈린다. 그 중에 대를 한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는 대나무를 뜻하는 한자 죽(竹)의 옛 발음에 주목한다. 대나무가 많이 자라는 중국 남부 지역에서는 고대에 죽(竹)을 ‘덱(tek)’으로 소리 냈다. 이를 근거로 ‘덱’에서 ‘ㄱ’ 받침이 빠져 우리말 ‘대(竹)’가 되었고, 일본으로 건너가서는 ‘다케(竹)’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문헌기록 속의 대게
한자로 대게를 죽해(竹蟹), 대해(大蟹), 발해(拔蟹) 등으로 쓴다. 그러나 생물학적인 분류체계가 확립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대부분 생물의 이름을 형태나 여러 상황을 기준으로 이름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에 함경도 경원지역의 특산품으로 붉은 게 즉 ‘자해(紫蟹)’를 언급하고 있다. 함경도에서 날 수 있는 게라면 대게 아니면 대게와 친척뻘인 홍게(붉은대게)일 가능성이 크다. 1530년에 편찬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자해(紫蟹)가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에서만 난다고 하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게를 뜻하는 한자 해(蟹)는 칼(刀)로 소(牛)를 뼈대(角)만 남도록 해체한다는 뜻을 가진 풀 ‘해(解)’에 벌레나 작은 동물을 뜻하는 ‘충(虫)’이 합친 글자다. 즉 게는 허물을 벗은(解) 벌레(虫)라는 속뜻을 가진다. <동의보감>에서도 게가 늦여름과 초가을에 허물을 벗기 때문에 ‘해(蟹)’자를 쓴다고 적고 있다. 1614년에 나온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게 껍질은 손으로 벗길 수 있어 쪼갤 ‘해(蟹)’로 표현한다고 적고 있다. 이래나 저래나 게는 벗는 것과 관련 있다.
울진 사람들은 대게의 본고장은 영덕이 아니라 울진이라고 한다. 실제로 울진에서 잡히는 대게도 영덕 못지않은 최상품이다. 울진보다 영덕이 대게 명산지로 유명해진 것은 지리적인 요인이 한 몫 한 것 같다. 대게 잡이가 성업이던 1930년대, 동해안 지역의 교통수단이 원활하지 못해 대도시로 공급되는 해산물이 상대적으로 교통이 편리한 영덕에 집하되었다가 반출되었다. 따라서 자연스레 영덕이 대게로 유명해진 것이다. 대게의 원조가 영덕이나 울진이나 하는 논쟁은 어쩌면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영덕과 울진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실제로 하나의 행정구역을 묶여 있던 시절도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