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공생애 데뷔식(눅3:15-22)
갈등
1.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가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 드렸고 이뤄지기를 기다립니다. 기도 제목에 따라 빨리 응답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좀 더 시간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 제목을 때를 따라서 응답을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렸다고 해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가요. 오늘 본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엇을 기다렸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메시야를 기다렸어요. 그리스도는 헬라어이고, 메시야는 히브리어입니다. 구세주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 당시 메시야 대망 사상이 무르익었습니다. 왜 그때 사람들은 그렇게 메시야를 기다렸을까요? 예수님이 나시기 전후의 이스라엘 형편은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통치하며 평화-Pax Romana(로마의 평화)를 외쳤지만, 그것은 로마의 강력한 힘에 의한 세계질서를 말할 뿐이었어요. 훗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여행과 안전을 보장해주는(도로 및 선박 교통망 등) 긍정적인 면이 있었지만, 로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평화를 주지 못했어요. 오랜 세월-얼마나 더 로마의 식민통치에 시달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고달픈 세월을 보내야만 했어요. 우리나라 정부가 일본과 관계를 회복해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은 과거 일본의 만행 때문이에요.
2. 우리 어른들이 일본에게 얼마나 수탈을 당했는지, 해방 후 77년이 지나도 두 나라의 관계 회복은 숙제로만 남았습니다. 이런 한일 관계를 보면, 당시 이스라엘의 형편이 어땠을지 가늠해볼 수 있어요. 일제 강점기, 이육사는 그의 시 광야에서“白馬타고 오는 超人이 있어 이 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노래했어요. 일제의 강압이 최고조에 이르던 때(1935년 이후) 우리 민족을 구원할 초인을 기대하며 노래했던 이육사는 1944년 1월, 북경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시는 1945년 말 해방 이후에 동생이 자유신문에 발표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고통과 절망 속에서 메시야를 기다렸는데, 이때 등장한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요한의 등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뜨기 시작했어요. 그의 출신이나 능력, 외모를 보고 기대한 것이 아니었어요.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제사장이었지만 그렇게 자랑할만한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기적을 행하지도 않았고, 그는 가공하지도 않은 낙타 털옷을 입고 음식으로는 메뚜기나 석청(야생 꿀)이나 먹고 살았습니다. 요한은 그렇게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그가 외치는 설교는 매우 거칠어 듣기가 쉽지 않았어요. 마3:7-8,“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3.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다가오자 요한이 한 말이에요. 그들은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대표했던 사람들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회개를 외치는 설교를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것도 부드러운 언어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고, 요한처럼 적나라하게 거친 언어를 쏟아붓는다면 사람들이 다 떠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전국에서 요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기 위해 광야로 몰려왔어요. 세례 요한은 과연 누구였고 유대인들은 왜 그에게 와서 세례를 받았을까요? 요한이 당시 일으킨 영적인 영향은 어느 정도였으며, 그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요?
갈등 심화
4. 요한의 활동 운동 가운데 하나는 그의 이름에도 있듯이 세례를 베푼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유대 군중들에게 회개를 외치는 설교를 하였고, 그의 설교를 듣는 이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어요. 이전에는 세례가 없었고, 구약 시대에는 정결례가 있었어요. 손을 씻고 발을 씻고 때로는 전신을 씻는 것입니다. 정결례는 스스로 씻는 것이지만, 세례는 특별한 사람만이 집례할 수 있어요. 정결례는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세례는 평생 한 번 받는 것입니다. 요한은 제사장의 아들로, 그도 아버지를 이어서 제사장입니다.
그가 제사장 가문 출신이라고 하지만, 이때까지 세례를 주는 이는 없었어요.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경우에 드물게 세례를 행했습니다. 요한은 이때 세례를 주기 시작했고, 유대인들은 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전국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요한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요한이 베푸는 세례의 자리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어요. 예수님은 요한에게 자기에게도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셨어요. 요한은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주님께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주님이 제게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까?
5. 요한은 거절하였지만, 주님은 이렇게 해서 모든 의를 이루라고-순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3:15) 결국 요한이 거절하지 못하고, 주님께 세례를 주었어요.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자신도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어떤 관계였는가요? 요한과 예수님이 모두 세례를 베풀었는데, 두 세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의미는 또 무엇일까요?
실마리
6. 세례 요한의 출현은 여러 가지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400년간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어요.(영적인 암흑기-중간기) 400년 만에 하나님의 소리가 요한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선포되었어요.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소리였어요. 누구도 요한이 선지자인 것을 부정하지 못했습니다. 요한이 죽은 이후에도 그의 영향력은 오래갔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외쳤어요. 요한은 구체적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설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회개를 선포하는 요한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요한은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주고,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마치 학생들이 선생님과 질의응답을 하는 것 같이요. 일반인들만이 아니라 세리들도 군인들도 와서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물었습니다. 요한은 세리들에게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군인들에게는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고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하게 여기라고 말했어요.(10-14절)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참 회개가 무엇인지 잘 들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요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들이 요한의 영적인 권위를 인정했다는 증거입니다. 이때 긴장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7. 유대 종교인들이 요한을 통해서 이뤄지는 새 운동을 관찰하고 요한이 누구인지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요1:19-28에 보면 기득권을 누리던 유대 종교인들이 사람들을 보내어 요한에게 청문회를 하듯이 집요하게 물었습니다.“너는 누구냐?”요한은“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했어요. 요한이 그리스도-메시야가 아니라고 하자, 그들의 마음이 급해지면서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고 요청했어요. 요한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이 사람들의 애타는 마음 가운데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요한이 나는 메시야가 아니라고 부정함에도 불구하고요.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야 공생애 데뷔식을 가졌어요.
요한은 네가 누구냐는 질문에 숨기지 않고 자신은 사40:3에 예언한,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답했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이 너는 그리스도가 아닌데 세례를 왜 주느냐고 물었어요. 이때 요한이 오늘 본문 16절,“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은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요한은 자신과 예수님이 어떻게 다르고, 자신이 베푸는 세례와 주님이 베푸실 세례가 어떻게 다른지 분명하게 전해주었어요.
8. 요한은 자신이 주님의 신발 끈을 섬기는 노예만도 못하다고, 나와 주님은 비교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신분의 차이에요.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요한은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메시야가 아닌가 생각하게 할 만큼 큰 인물이었고, 주님은 이제 공생애 시작을 앞둔 상황이었지만 자기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어요. 안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성과 역할을 분명하게 했습니다. 참으로 겸손했던 인물입니다. 예수님도 그를 인정하시며, 여인이 낳은 자 가운데 최고의 인물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유대 종교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했습니다. 이것이 자기의 역할임을 분명히 했어요. 유대 종교인들이 당신이 누구냐고 물을 때, 그는 첫 대답이 나는 메시야가 아니라고 부정했어요. 그들이 묻는 의도를 알고 처음부터 선을 긋고 대답을 분명히 했습니다. 자신이 베푸는 세례는 물세례에 불과하고, 예수님이 베푸시는 세례는 성령 세례라고 선언했습니다.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곧 성령 세례를 말해요. 참 세례는 물세례가 아니고 성령 세례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은사와 달라요. 사람들이 성령 세례와 성령의 은사를 구분하지 못해요. 오순절 교단의 신학적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복음 제시
9.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요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겸손히 세례를 받으셨어요. 주님은 요한에게,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모든 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주님은 생후 8일 만에 율법대로 할례를 받으셨고,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요한에게 세례도 받으셨어요. 주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율법에 순종하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본인이 먼저 율법을 따르시고, 다른 사람들도 율법을 지킬 것을 권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주님은 참된 스승이십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의 세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1:31,“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요한은 예수님이 자기에게 오시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 앞에서,“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선언했어요. 주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이스라엘에게 공식적으로 나타나시는 공생애 데뷔식이었습니다. 요한은 계속해서 자신이 주님을 알지 못하였다고 반복하며 이렇게 말했어요.“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요1:33)
10. 요한의 증언과 같이 오늘 본문 22절,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님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이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어요.“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하나님은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게 하시며, 그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 세계에 선포하셨습니다. 요한도,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다고 합니다.(요1:34) 이렇게 해서 세례 요한이 메시야가 아니고, 예수님이 메시야로 오셔서 공생애가 시작되는 대관식(공생애 데뷔)이 아름답게 이뤄졌습니다.
기대
11. 오늘은 예수님의 수세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 공식적으로 나타나신 날(Epiphany)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요. 세례 요한이 멋지게 주님의 대관식을 준비했습니다. 요한의 모습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침착하고 절제할 수 있을까? 깜짝깜짝 놀랍니다. 요한의 멋진 모습을 읽을 때마다 이 땅에서 요한과 달리 교만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갑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셨는데, 허망한 삶이 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며,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세례 요한과 같이 멋지게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다 일어나 찬송하며 이렇게 살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오늘 찬양: 예수 따라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