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는 아름답습니다! - 《기전여학교 교장 랭킨 선교사 편지》에서
1892년 가을, 조선에 도착한 전킨 선교사가 1902년 1월 2일에 전주에서 소천하였다. 대부분의 기록들이 그의 죽음을 성탄절 행사와 전주천에서 얼음을 잘라서 창고에 쌓느라 과로한 것이 원인이 되어 고열과 폐렴으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전하고 있다. 나로서는 그토록 바쁜 시간에 과로하면서 까지 얼음을 저장하는 그의 행위가 이해 되지 않았다. 막연히 그가 미국의 식습관을 한국에서도 계속하기 위하여 그랬을 것으로 생각하며 유감스러워 하였다. 마치 한국인들이 외국에 살면서 김치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
그런데 《기전여학교 교장 랭킨 선교사 편지》78쪽에서 전킨 선교사가 얼음을 보관한 이유는 여름에 아기에게 신선한 우유를 먹이기 위해서 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얼음을 저장한 것은 여름 철의 호화로운 별식을 위한 것이 아니고 아기의 건강을 위해서 였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1907년 2월에 교육 전무인 선교사로 조선 땅에 도착한 랭킨은 기전여학교 2대 교장으로 재임 중 1911년 8월 13일,조선에 도착한 지 4년 만에 병으로 순직하였다.
아래는 1907년 2월 20일 편지에서 전주 관련 기록을 발췌한 것이다.
1907년 7월 20일 [한국,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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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아름답습니다. 도시가 아름답다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짚으로 된 지붕을 가진 진흙 집들의 흔한 덩어리들 입니다. 그런데 경치는 정말 웅장합니다! 우리집에서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웅장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눈으로 하얗게 된 높고 큰 산들이 사면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일출과 일몰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합니다. 오늘 약간의 햇볕과 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눈이 너무 많이 내리고 있어서 "제가 있는 산"과 좌측에 있는 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전주는 조선 왕국에서 다섯 번째의 도시인데 성벽으로 둘러져 있습니다. 우리 선교부는 성벽 바로 바깥의 동산들 위에 있습니다. 우리는 상당히 큰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집은 로마의 양식을 따라서 하나의 동산에 한 채씩 건축되었습니다. 테이트 여선교사님과 제가 있을 우리 집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26쪽에서
1907년 3월 29일 [한국,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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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으로 넘어오는 여정은 좋았으며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저는 군산에서 저의 친구인 불 부인(Mrs.Bull)을 만나 3일간 있었습니다. 40마일 되는 전주까지의 길은 가마를 탔습니다. 얼마나 흥미로웠는지 상상이 되실 거예요. 해안가에 있는 잇닿은 낮은 산들을 넘은 다음, 우리는 대부분의 날을 큰 평야에서 보냈는데, 길은 논 사이의 두렁을 걸어서 가는 길이었답니다. 논은 꽁꽁 얼어있었고 눈으로 덮여있었어요. 오후에 우리는 다시 산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고 어두워져서야 우리 선교부가 지어져 있는 조그마한 산에 올랐습니다. 이곳 주변은 아름답습니다. 사면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산은 장엄합니다. 저는 항상 산을 좋아했었는데 아주 기쁘게도 마침내 산들을 저의 집이라고 부르게 되었네요.
전주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아주 큰 도시입니다. 왕국에서 다섯 번째 도시인데 저희는 서문 바로 밖에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는데 여러 면에서 불쌍한 한국인들을
치욕스럽게 대하고 있습니다." 38쪽에서
1907년 4월 30일 [한국,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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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모든 것들이 아름답습니다. 조팝나무, 라일락, 진달래가 사방에 야생 상태로 피어있습니다. 여기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식물이 있는데, 꽃은 송이로 되어있고 조그마한 배꽃 또는 꽃사과를 아주 많이 닮았어요. 야생 제비꽃이 아주 흔합니다. 향은 없지만 아주 크고요 흰색부터 짙은 보라색까지 다양하며 흰색부터 짙은 마젠타 색까지 로열 핑크 색조를 가지고 있답니다. 저는 이렇게 빨간 제비꽃을 전에 본 적이 없어요. 여름에 복숭아씨 몇 개를 보내드릴 거예요. 복숭아 열매는 별 것 없지만 꽃은 아주 아름답고요. 아주 오래 가고요. 매우 크답니다. 아몬드 꽃보다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포사이드 의료선교사 집의 뜰에 있는 분홍색 복숭아 나무를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저 그림입니다. 저는 흰 꽃을 더 좋아하지만요. 새 잎이 있어서 나무들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넓은 보리밭은 머리를 내밀고 있고 두 개의 아름다운 녹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선교부는 아름다운 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모든 면에서 일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50쪽에서
전주지역 교회들의 무관심과 근시안으로 화산에 자리하였던 전주 선교부 본부의 건물이 팔리면서 선교부 터가 유야무야해졌지만 그 위대한 헌신의 역사가 잊혀진다고 팩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분명 전주 근대 문명은 화산에 자리잡은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시작 되었다. 그들은 신흥학교, 기전학교를 세웠으며 예수병원을 건립하였다. 무엇보다 그들은 양반과 상놈, 남자와 여자, 어른들과 어린이들의 차별과 불평등이 상식화 된 세계 만인 평등사상을 심고, 미신과 잡다한 귀신에 짓눌린 세상, 유교의 교조화로 비인간화 된 세상에 무한한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오늘의 전주의 터를 닦았다.
예수병원 측에서 정비한 선교사 묘지에 두 번 다녀왔는데 아는 만큼 보는 것이라 랭킨 선교사의 묘를 보았지만 건성으로 보았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지의 나라에 와서 최후의 4년을 아낌없이 바친 랭킨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가!! 땅에 떨어져 썩어진 밀알을 보며 나의 삶이 그에게 잇대어 있음을 느낀다.
이 가을에 묘역에 찾아가 감사를 드리며 그와 함께 계속 1907년에서 1911년까지
전주 시간여행을 하고싶다.
2024년 9월 22일 묘시
우담초라하니
첫댓글 선교사님들의 헌신과 그 시대 전주의 풍경을 상항해보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