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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逆麟)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이라는 뜻으로, 건드리면 반드시 살해됨 또는 군주가 노여워하는 군주만의 약점 또는 노여움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逆 : 거스릴 역(辶/6)
鱗 : 비늘 린(魚/12)
출전 : 한비자(韓非子)의 세난편(說難篇)
동서에 걸쳐 신화나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 용은 신성한 힘을 지닌 상서로운 존재로 여겨져 왔다. 용과 관련된 성어도 많아 용두사미(龍頭蛇尾), 용호상박(龍虎相搏) 등이 있다.
기린, 봉황, 거북과 함께 사령(四靈)이라 칭하며 신령스런 동물 증의 으뜸가는 용은 왕을 비유하여 용안(龍顔), 용포(龍袍), 용상(龍床) 등으로 높여 부른다.
그런데 거꾸로 난 용의 비늘 역린(逆鱗)은 모두 81개 중 목 아래에 단 1개 있다고 한다.
이것의 뜻이 임금의 노여움을 가리키게 된 것은 중국 (戰國時代) 말기의 법가 한비(韓非)가 쓴 한비자(韓非子) 이후부터다.
당시에는 지혜로운 자들이 너도나도 군주를 설득하여 벼슬을 얻으려 했는데 등용되기란 그야말로 등용문(登龍門) 넘기였다.
군주라 해서 모두 성인이 아닌 만큼 보통 사람과 같이 약점이 있었다. 유세 중에 잘못 왕의 치명적 잘못을 건드리게 되면 목이 달아날 판이고, 좋은 점만 주워 섬기면 벼슬 얻기 위해 아부한다고 여긴다.
여러 가지 그 어려움을 모은 것이 세난(說難)편이다. 說는 물론 ‘말씀 설’이지만 유세(遊說) 때와 같이 이 때는 ‘달랠 세’이다. 그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용이라는 동물은 유순하여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목 밑에 한 자쯤 되는 거꾸로 난 비늘, 바로 역린이 있는데 만약 사람이 그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其喉下有逆鱗徑尺, 若人有嬰之者, 則必殺人.
군주에게도 이 역린이 있으므로 유세하려는 자는 그것을 건드리지 않아야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오늘날 역린(逆鱗)이 꼭 군주가 아니더라도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려 화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까지 쓰이긴 하지만 왕조시대도 아니고 진노(震怒)와 함께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옳다.
역린(逆鱗)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이란 뜻으로, 건드리면 분개할 만한 치명적인 약점을 이르는 말이다.
유세가가 대신을 논하면 군주는 이간질로 여기고, 하급 관리를 논하면 권력을 팔아 사사로이 은혜를 베풀려는 것으로 여기고, 군주의 총애를 받는 자를 논하면 그의 힘을 빌리려는 것으로 여기고, 군주가 미워하는 자를 논하면 군주 자신을 떠보려는 것으로 여긴다.
유가와 법가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은 사상가 한비는 한비자 세난(說難)과 난언(難言)에서 말의 어려움을 실감나게 들려준다.
그에 따르면 유세(遊說)가 어려운 것은 내 지식으로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유세가 진짜 어려운 건 상대의 의중을 헤아려 거기에 내 말을 맞추는 일이다.
한비는 그러면서 용 얘기를 꺼냈다. “무릇 용이란 짐승은 잘만 길들이면 등에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다. 하지만 턱밑에 한 자쯤 거꾸로 난 비늘(逆鱗)이 있는데, 이걸 건드리면 누구나 죽임을 당한다. 유세하는 자가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목숨을 잃지 않고 유세도 절반쯤은 먹힌 셈이다.”
한비는 최고의 화술은 수려한 언변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는 독심(讀心)임을 강조한다. 유세의 핵심은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인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않고 감싸는 것이라 한다.
동양인, 특히 한국인이 좋아하는 용이 나왔으니 용에 관한 얘기를 덧붙인다.
옛날 중국의 어떤 사람이 천만금을 주고 용 잡는 기술을 완벽히 익혔다. 한데 세상에 나와 용을 잡으려니 용이 없었다. 겉은 그럴듯해도 정작 쓰임새가 없는 것을 이르는 도룡술(屠龍術)의 배경이 된 얘기다.
대선 시즌의 단골 메뉴 잠룡(潛龍)은 '주역'이 출처다. 잠룡은 물에 잠겨 아직 날 준비가 안 된 용이고, 현룡(見龍)은 물속에서 내공을 갖춰 날 채비를 하는 용이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인품이다. 입으로 타인의 상처를 헤집지 마라. 손자는 “적을 포위해도 한쪽은 열어두라”고 했다. 입은 약으로 써라. 역린을 가려주는 붕대로, 상처를 치유하는 연고로 써라.
역린(逆麟)
임금의 노여움을 이르는 말이다. 용(龍)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용(龍)이 크게 노(怒)하여 건드린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한비자(韓非子)의 세난편(說難篇)에서 유래(由來)한다.
전국시대의 유명한 법가사상가 가운데 한비자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쓴 글을 접한 진시황이 “그를 만날 수만 있다면 한이 없겠다”라고 할 만큼 뛰어난 인물이었다.
지금도 그가 쓴 글이 전하고 있는데, 책 이름은 한비자이다. 그 가운데 역린과 관련된 글이 있는데, 글의 소제목은 세난(說難)이다. ‘유세의 어려움’이란 뜻이다. 글이 워낙 뛰어나니까 조금 길게 인용해 보자.
정나라 무공(武公)이 호(胡)를 치고자 하였다. 그는 공주를 호의 군주에게 시집보낸 후 신하들을 모아 놓고 물었다. “나는 이제 전쟁을 벌여 영토를 확장하고자 하는데, 어느 나라를 쳤으면 좋겠는가?”
그러자 관기사란 신하가 말하였다. “호를 쳐야 합니다.” 이에 무공은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호는 우리와 형제국이다. 그런데 그를 치라니!”
그러면서 관기사를 사형에 처하였다. 이 말을 전해 들은 호나라 군주는 마음 놓고 정나라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했다. 정은 그 기회를 이용해 호를 공략, 쉽게 정복할 수 있었다.
송나라에 부자 하나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큰 비가 내려 담이 무너졌다. 그러자 그의 아들이 말했다. “담을 고치지 않으면 도둑이 들지 모릅니다.”
잠시 후 이웃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했다. “빨리 고치십시오. 도둑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밤 도둑이 들었다. 그러자 부자는 자신의 아들에 대해서는 판단력이 뛰어나다고 여긴 반면 충고를 해 준 이웃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었다.
관기사와 이웃사람의 말은 모두 맞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말 때문에 화를 입었으니 사실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옛날 미자하란 미소년이 위(衛)나라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의 병이 위중하다는 말을 들은 미자하는 임금의 명을 사칭하여 임금의 수레를 타고 집에 다녀왔다.
위나라 법에 따르면 이는 다리 절단에 해당하는 죄였다. 그러나 후에 이 사실을 안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미자하의 효성이 얼마나 지극한가! 그는 자신의 다리보다 어머니를 더 중하게 여겼도다.”
또 어느 날인가는 임금이 복숭아밭에 산책을 갔는데 복숭아 하나를 먹던 미자하가 나머지를 왕에게 바쳤다.
그러자 왕이 말했다. “미자하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구나. 자신이 먹던 것이란 사실조차 잊고 내게 바치다니!”
그 후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용모가 쇠하고 임금의 사랑 또한 식게 되었다. 그러자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미자하는 내 명령을 사칭하고 내 수레를 훔쳐 탔을 뿐 아니라 제가 먹던 복숭아를 나에게 준 녀석이다. 용서할 수 없다.”
미자하의 행동은 처음과 나중이 다르지 않았으나 처음에는 칭찬을 받았고 후에는 벌을 받았으니 이는 군주의 사랑이 변한 까닭이다.
신하가 군주의 총애를 받을 때는 그의 지혜 또한 군주의 마음에 들 것이지만 총애가 사라지고 나면 뛰어난 지혜마저도 벌을 받게 된다. 왕에게 유세를 하고자 할 때는 우선 왕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용은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목에는 역린(逆鱗)이라 해서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그것을 만지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된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으니 그에게 유세하고자 하는 자는 역린을 건드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유세는 대체로 성공할 것이다.
사회지도층, 그리고 역린(逆麟)
중국고서 ‘한비자’에 역린(逆麟)이라는 말이 나온다. 역린이란 용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척 정도의 비늘들을 일컫는 말이다. 아시아권에서는 용(龍) 봉(鳳), 인(麟), 귀(龜)를 사령(四靈)이라 하여 권위와 존엄의 상징으로 신앙해 왔다. 그리고 용은 그 넷 중의 으뜸이다.
하지만 한비자에 따르면, 그 용도 사람이 하기에 따라서 능히 훈련이 가능하고 그 등을 타고 다닐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용의 등을 탈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으니 이는 결코 용의 역린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린을 건드리는 순간, 용은 고개를 돌려 등에 앉은 자를 물어 죽여 버리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사회지도층'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다. 독립적으로 활용되는 다른 어휘들과는 달리 '지도층'이란 이 말은 갑과 을이 존재한다는 분명한 가정 하에 통용되는 말이다. 즉 누군가는 지도를 하는 입장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해 안 되는 단어이고 불쾌한 단어이다.
이해 안 되는 것은 이 용어가 어떤 합리적인 발생 근거를 가졌는지 불분명한 점이고, 불쾌한 것은 누구도 나를 지도해 달라 부탁하지 않았건만 각종 매체에서 툭하면 지도층이란 말을 운운한다는 것이다. 즉, 교육 잘 받고 윤리적으로 생활하는 대부분의 멀쩡한 국민들을 일방적으로 지도받아 마땅한 우민 취급을 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단어를 몹시 싫어한다. 뿐만 아니라 이 단어가 지닌 폭력성에 알러지가 돋을 지경이다. 그 기원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일학년의 늦은 여름날이었다. 그날 점심시간, 우리 반은 눌러왔던 불만을 폭발시키고 말았다. 폭발기제는 부반장의 '상습컨닝'이었다. 웅성대는 소요를 시작으로 급기야 5교시 수업을 보이콧하기에 이르렀다. 수업을 하러 들어왔다 놀란 눈으로 교무실로 돌아가신 미술선생님, 그리고 그날의 종례시간, 그 날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종례에 들어온 담임은 컨닝의 증거를 대라고 했다. 담당교과가 체육이었던 그의 손에는 밀대자루가 들려 있었다. 그 시퍼런 서슬에 당당하게 대답할 열네 살 여자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담임은 시험 치는 대열로 자리배열을 다시해서 앉으라 했고, 컨닝 당사자 주변에 앉았던 아이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운 뒤 증거를 대라고 했다.
아이들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바로 오른편에 앉았던 내 차례가 되었다. 어디서 용기가 났던지 나는 분명하게 대답을 했다. 부반장 Y가 손바닥에 번호를 적어서 물어왔다고, 그리고 그 문제는 빨래를 삶을 때 뚜껑을 닫는 이유를 물었던 가정시험문제였다고.
그때 나를 훑어 내리던 담임의 눈길, 사람의 얼굴에 박혀 있던 뱀의 눈길, 그 소름끼치는 째려봄. 그러나 그것으로 그친 나는 다행이었다. 그날 컨닝 증거를 대지 못했던 아이들과 소요에 앞장섰던 아이들은 매타작을 당했다.
그날, 반 아이들 전체가 울었다. 파랗게 젖어 드는 서러움을 참아 내던 나도 결국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부당한 야단을 맞는 것이 서러웠고, 매를 맞는 친구들의 모습이 서러웠다. 그러나 그 파랗고 물컹한 서러움의 덩이가 목젖을 넘어 나오도록 길을 터준 것은 그것들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고위세관원이었던 Y에 대한 담임의 일방적인 비호도 아니었다. 그것은 Y뒤에 앉았던 현자라는 친구가 담임으로부터 들었던 억지였다. 뒤에 앉은 너야말로 Y를 컨닝 한 게 분명하다는 어이없는 억지였고, 성적이 비슷하다는 것을 이유로 대던 어처구니없는 그 억지였다.
지옥 같던 종례가 파하고 야채장사의 딸이었던 현자와 산지기의 딸이었던 나는 어둠살이 내려앉는 길을 오래 걸었다. 버스로 예닐곱 개의 정류장이 되는 먼 길이었다. 그날 현자는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말했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서 앞으로는 이런 억울한 말을 듣지 않겠다고. 그러나 입술을 꼭꼭 깨물며 걷던 나는 엉뚱한 다짐을 두었다. 저 따위 선생의 지도는 받지 않겠다고.
이후, 현자는 정말 공부에 몰두했고 서울대를 졸업하고 당시로는 꿈같은 일인 프랑스로, 파리로 떠났다. 그에 반해, 나는 그 즈음 부터 일기를 썼다. 내 서러움과 억울함을 백지에 대고 낱낱이 고발하는 것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조용히 삐딱한' 학생이 되어갔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내가 어릴 때 겪었던 불평등과 내가 당했던 불합리가 사회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이제는 일정부분 이해를 하고, 불만이 생겨나기라도 하면 스스로에게 적당한 타협을 제시한다. 동석고금 사람 사는 세상 불의가 없을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이념이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또 때로는 필요악도 존재해야 하며 세상의 정의는 시간이 지나야 정확히 판별되는 것이라고.
그런데 이렇게 기특하게 잘 참고 있다가도 '사회지도층'이란 말만 들리면 발칵 화가 돋는다. 휴지 한 조각 못 버리는 윤리의식으로 무장을 하고, 북적대는 모임에서 남의 뒷담화라도 하였다 치면 몇날 며칠 양심 저림에 시달리는 사람을 두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지도하겠다는 것인지. 더 용납 못할 것은 이른바 지도층으로 불리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다.
병역기피, 세금탈루, 자산유출, 원정출산, 뇌물수수 그리고 성범죄에 상습적인 거짓말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피지도층보다 지도받을 일이 훨씬 많아 보인다. 그러니 선량한 국민이 그런 부도덕한 이들로부터 무슨 지도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집단우울증 내지는 집단화병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해, 물꽃이 되어버린 수백의 어린 생명들로 인해 우울의 깊이는 심연으로 떨어졌고 캘수록 드러나는 부패에 화병의 강도는 가파르게 치솟았다. 근자에는 명문대학 유명교수들의 상습 성추행 사건에다, 항공재벌 자녀들의 오만한 해프닝 이른바 ‘슈퍼갑질’이라 불리는 일련을 사태까지 목도하고 있다. 정말이지 허파에서 연기가 치솟고, 염통이 파편이 될 지경이다.
그런데 의식 없는 일부 매체와 일부 기자들은 이런 상황 하에서도 사회지도층이란 용어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모르겠다. 그들은 정말 누군가의 지도 아래 기사를 써 왔는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럴 의사, 부도덕한 그들에게 지도를 받을 의사가 전혀 없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자신들의 말이 국민들의 마지막 자존심, 즉 역린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물론 역린이라는 말에서 용은 왕을 지칭하며, 그 존엄을 훼손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 원래의 의미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주인은 왕이 아닌 백성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사회적 질서를 약속하고 순하게 그 길을 간다. 등이 뻐근하도록 짐을 지고도 불평 없이 제 길을 간다.
그러나 그들의 목덜미에도 역린은 돋아 있다. 등에 탄 무엇을 물어죽일 힘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역사를 통해서 배워왔고, 세상 이곳저곳에서 보아왔다. 그러니 말을 할 자격을 얻었다하여 함부로 말 할 것이 아니며, 적합하지 않는 용어는 퇴출됨이 마땅하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이 무례한 단어를 폐기하면 대체할 용어가 없다 하고. 그러나 나름으로는 상위층이란 단어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상위층이란 말은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단어가 아니다. 그저 자신이 뭔가 더 가졌거나, 상대에 비해 위치가 높다는 단순한 의미이다. 이를 통해 타인에게 힘을 행사하겠다는 강압적인 뉘앙스는 없는 말이다.
아무리 평생교육의 시대라 하지만 국민 모두가 자발적인 학생은 아니다. 게다가 배울 바 없는 이들에게 덮어놓고 지도받겠다는 이도 짐작 건데 아마 없을 것이다. 아울러 삐딱한 나는 더더욱 그럴 생각이 없다. 그러고 보니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열네 살에 시작한 나의 고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열네 살에 시작한 나의 삐딱함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모양이다. 옛말 틀린 것 없는 세상이다.
용수철(龍鬚鐵)과 역린(逆鱗)
용은 상상 속의 동물이다. 12간지 열두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실재하지 않는 동물이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면서도 그 어떤 동물보다도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동물이 바로 용이다.
아무도 본 일이 없으면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낙타 머리에 사슴의 뿔을 달고, 토끼의 눈에 소의 귀를 가졌다. 목덜미는 뱀이고, 배는 이무기와 같다. 물고기 비늘에 호랑이의 발, 매의 발톱을 가진 동물이다.
용은 온몸이 모두 81개의 비늘로 덮여 있다. 구리 쟁반을 울리듯 우렁찬 소리를 낸다. 입 주위에는 탄력 있는 꼬불꼬불한 긴 수염이 나 있다. 턱 밑에는 신비한 능력을 갖춘 여의주(如意珠)가 있다. 이 구슬에서 무궁무진한 신통력이 나와 마음대로 조화를 부린다.
옛 사람들은 용이 물과 구름을 만들어 낸다고 믿었다. 용이 땅 속에 들어가 생물을 만들고, 생물의 기운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을 만든다고 생각하였다. 구름을 박차고 하늘로 오르는 용을 가장 신령스럽고 존귀한 이미지로 받아들였다. 용은 언제나 임금을 상징하였다.
임금이 입는 옷은 곤룡포(袞龍袍)라고 하고, 임금의 얼굴은 용안(龍顔)이라 하였다. 임금이 타는 수레는 용어(龍馭), 임금이 앉는 의자는 용상(龍床)이라고 하였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노래'라는 뜻이다.
용의 신체 부위와 관련해 만들어진 말도 많다. 용수철(龍鬚鐵)은 용의 수염처럼 탄력 있는 쇠붙이다. 용의 수염은 꼬불꼬불하면서 강한 탄성을 지녔다. 그래서 동그랗게 말아 올라가 충격을 완충시켜 주는 철선(鐵線)을 용수철이라고 이름 붙였다.
역린(逆鱗)이라는 말도 있다. 린(鱗)은 물고기나 동물의 비늘이고, 역린(逆鱗)은 결을 거슬러 난 비늘이다. 용의 턱 아래에는 다른 비늘과 반대 방향으로 난 역린이 있다고 한다.
용은 성격이 온순해서 길들여 탈 수가 있다. 다만 실수로 이 역린을 건드리면 용은 성을 내어 그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역린은 신하가 잘못을 범해 임금의 노여움을 사는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어변성룡(魚變成龍)과 용문점액(龍門點額)
어변성룡(魚變成龍)이라는 말은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었다는 뜻이다. 노력 끝에 전과는 완전히 다른 훌륭한 사람이 된 것을 비유하는데, 보통은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길에 들어선 것을 가리킨다. 이 말은 잘 알려진 등용문(登龍門)의 고사에서 나왔다.
등용문(登龍門)은 말 그대로 용문(龍門)을 오른다는 뜻이다. 용문은 황하(黃河) 상류에 있는 협곡 이름이다. 이곳은 여울이 매우 세차고 빨라 웬만큼 큰 물고기도 여간해서는 상류로 거슬러 오르지 못한다.
하지만 일단 이곳을 오르기만 하면 용으로 변해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등용문은 힘겨운 난관을 뚫고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쓴다.
용문을 오르기만 하면 이전의 물고기는 용으로 변하여 하늘로 솟구쳐 날아오르지만, 오르지 못한 물고기는 점액(點額), 즉 이마[額]에 점이 찍힌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용문을 솟아 오르려다가 떨어질 때 바위에 이마를 부딪쳐 큰 상처를 입고 하류로 떠내려 가는 것을 말한다. 점액은 과거에 낙방한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같은 노력을 하였는데 하나는 용문을 올라 용이 되고, 하나는 바위에 부딪쳐 상처를 입고 하류로 떠내려간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과 낙방한 사람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지만,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한 사람은 하류의 더러운 물에서 놀고, 한 사람은 상류의 맑고 깊은 물에서 놀게 된다.
▶️ 逆(거스릴 역)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屰(역)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屰(역)은 大(대)를 거꾸로 한 모양으로 물건(物件)을 거꾸로 하다, 거스르는 일, 이에 止(지) 또는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 또는 책받침(辶)部를 붙여 逆(역)자가 되었다. 止(지), 두인변(彳)部, 책받침(辶)部는 모두 거동(擧動)한다는 뜻을 더한다. ❷회의문자로 逆자는 '거스르다'나 '거역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逆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屰(거스를 역)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屰자는 사람을 거꾸로 뒤집어 그린 것으로 '거스르다'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거스르다'라는 뜻을 가진 屰자에 辶자를 결합한 逆자는 '길을 거스르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逆자는 '역행(逆行)'과 같이 길을 거꾸로 나아감을 뜻하게 됐지만, 지금은 '거역(拒逆)'이나 '역전(逆轉)'과 같이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거꾸로'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참고로 갑골문에서는 逆자가 원형 그대로 등장했었지만, 후에 屰자만 따로 분리되어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 '거스르다'라는 의미를 전달하기도 한다. 그래서 逆(역)은 (1)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서 거꾸로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말 (2)A의 B에 대한 관계를 기준으로 하였을 때 그 거꾸로 되는 B의 A에 대(對)한 관계 (3)어떤 정리의 가설(假設)과 종결을 뒤바꾸어 얻은 정리. 정리가 진(眞)이라도 역은 반드시 진(眞)은 아님. 역정리(逆定理) 등의 뜻으로 ①거스르다, 거역(拒逆)하다 ②거절(拒絶)하다 ③어기다(지키지 아니하고 거스르다), 어긋나다 ④배반(背反)하다 ⑤어지러워지다 ⑥맞다, 맞이하다, 마중하다 ⑦만나다, 합류(合流)하다 ⑧돌다, 선회(旋回)하다 ⑨물리치다 ⑩상주(上奏)하다, 상서(上書)하다 ⑪생각하다 ⑫헤아리다 ⑬수족이 차다 ⑭죄(罪), 허물 ⑮불운(不運), 불행(不幸) ⑯반란(叛亂), 반역자(反逆者) ⑰거꾸로 ⑱미리, 사전(事前)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거스를 패(悖),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충성 충(忠), 순할 순(順)이다. 용례로는 형세가 뒤집힘 또는 거꾸로 돎을 역전(逆轉), 거꾸로 나아감이나 순서를 바꾸어 행함을 역행(逆行), 자기가 가는 방향에서 마주 불어오는 바람을 역풍(逆風), 어떤 주의나 주장에 반대되는 이론을 역설(逆說), 공격해 오는 상대를 이편에서 거꾸로 공격함을 역습(逆襲),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불행한 경우나 환경을 역경(逆境), 역습하여 싸움을 역전(逆戰), 거꾸로 흐름 또는 거꾸로 흐르는 물을 역류(逆流), 자기편을 치려고 향하여 오는 군사나 비행기를 맞받아 침을 역격(逆擊), 토할 듯 메스꺼운 느낌을 역기(逆氣), 몹시 언짢거나 못마땅하게 여겨 내는 성으로 주로 윗사람에게 쓰는 말을 역정(逆情), 일이 나쁜 방향으로 되어 가는 상태를 역조(逆調), 바람과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조류를 역조(逆潮), 이치에 맞지 아니함을 역리(逆理), 거꾸로 된 차례를 역순(逆順), 공격을 받다가 역으로 맞받아 하는 공격을 역공(逆攻), 반역을 꾀함 또는 그 꾀를 역모(逆謀), 역풍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물결을 역랑(逆浪), 되짚어 돌아오는 길로 역경에서 헤매는 고난의 길을 역로(逆路), 어그러진 인륜을 역륜(逆倫), 거슬러 흐르는 물 또는 그 흐름을 역수(逆水), 윗사람의 명령이나 뜻을 어김을 거역(拒逆), 배반하여 반역을 꾀함을 반역(反逆), 반역을 꾀함을 난역(亂逆), 벗으로서 뜻이 맞아 허물없이 친함을 막역(莫逆), 나라에 반역이 되는 일에 붙좇음을 부역(附逆), 속이 메스꺼워 토하고 싶은 느낌을 구역(嘔逆), 세상이란 여관과 같다는 뜻으로 세상의 덧없음을 일컫는 말을 역려건곤(逆旅乾坤),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로 빼앗고 도리에 순종하여 지킨다는 말을 역취순수(逆取順守), 지나가는 길손과 같이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으로 세상은 여관과 같고 인생은 나그네와 같다는 말을 역려과객(逆旅過客), 귀에 거슬리는 말 곧 신랄한 충고의 말을 역이지언(逆耳之言), 바람을 안고 물결을 거슬러 간다는 말을 역풍역수(逆風逆水), 비길 데 없이 악독하고 도리에 어긋난다는 말을 악역무도(惡逆無道), 오랜 세월을 통해 그 유계가 없을 만큼 끔찍한 역적을 일컫는 말을 만고역적(萬古逆賊), 배움이란 마치 물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말을 학여역수(學如逆水), 마음이 맞아 서로 거스르는 일이 없는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친밀한 벗을 일컫는 말을 막역지우(莫逆之友),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뜻으로 바르게 타이르는 말일수록 듣기 싫어함을 이르는 말을 충언역이(忠言逆耳), 차례를 거꾸로 시행한다는 뜻으로 곧 도리에 순종하지 않고 일을 행하며 상도를 벗어나서 일을 억지로 한다는 말을 도행역시(倒行逆施) 등에 쓰인다.
▶️ 鱗(비늘 린/인)은 형성문자로 魿(린)과 동자(同字), 鳞(린)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물고기 어(魚; 물고기)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粦(린)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鱗(린)은 ①비늘 ②물고기, 어류(魚類) ③비늘이 있는 동물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비늘과 껍데기를 인갑(鱗甲), 자연 변태로 비늘같이 된 잎을 인엽(鱗葉), 비늘이 잇닿은 것처럼 차례로 잇닿음을 인차(鱗次), 물고기의 비늘처럼 다닥다닥 들붙음을 인착(鱗着), 비늘이 있는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인충(鱗蟲), 생물체의 겉면을 덮고 있는 비늘 모양의 조각을 인편(鱗片), 비늘과 같은 모양을 인형(鱗形), 비늘 모양의 형상을 인상(鱗狀), 비늘처럼 나란히 줄지어 있는 무늬를 인문(鱗紋), 물속에 깊이 잠겨 있는 물고기를 잠린(潛鱗), 물고기의 비늘을 어린(魚鱗), 파충류나 조류에서 볼 수 있는 비늘을 각린(角鱗), 가물치를 달리 이르는 말을 오린(烏鱗), 털을 가진 짐승과 물고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모린(毛鱗), 물고기나 잔 비늘을 세린(細鱗), 작은 비늘이나 잔비늘을 소린(小鱗), 마치 물고기의 비늘처럼 생긴 늙은 소나무의 겉껍질을 송린(松鱗), 비늘 모양의 무늬가 있는 비단을 순린(純鱗), 둥근 비늘을 원린(圓鱗), 은빛 나는 비늘을 은린(銀鱗), 물고기의 비늘을 떼어 버림을 탈린(脫鱗), 표면이 단단하며 광택이 있는 네모난 판자 모양의 물고기 비늘을 경린(硬鱗), 아름다운 물고기를 금린(錦鱗), 용의 비늘 또는 그러한 모양의 것을 용린(龍鱗), 한 조각의 비늘이란 뜻으로 사물의 아주 작은 일부분을 편린(片鱗),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이라는 뜻으로 건드리면 반드시 살해됨 또는 임금님의 노여움을 역린(逆鱗), 비늘 있는 고기는 물 속에 잠기고 날개 있는 새는 공중에 낢을 인잠우상(鱗潛羽翔), 비단 비늘에 옥으로 된 자라는 뜻으로 한 자 가량 되는 물고기를 아름답게 형용해 이르는 말을 금린옥척(錦鱗玉尺), 비늘을 맑은 물에 씻는다는 뜻으로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탁린청류(濯鱗淸流)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