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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문을 여는 사람
호세아서 2:21~23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저는 인터넷에서 젊은이들이 짝을 찾는 프로그램을 종종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남녀가 마음을 열게 하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관한 반응을 긍정적으로 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린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이야기에도 호응하며 관심을 가지고 재미있어하는 상대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도 어린아이를 기르면서 행복했던 적은 아이들이 행복한 반응을 보일 때였습니다. 두 딸 중에 가장 반응이 크게 보이는 아이는 큰딸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젖을 먹을 때도 웅얼거리며 맛을 즐기며 먹고, 커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아우 맛있어!”라는 감탄사를 연신하는 것입니다. 그런 딸에 대하여 맏사위는 어떤지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네는 다혜의 어떤 점이 좋아서 결혼했어?”라는 질문에 사위는 제일 먼저 꼽은 것이 Reaction이 좋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행하시는 일에 대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마음을 여시고 그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고 복되게 하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감사하며 기쁨으로 받아들이면 그 마음에 품고 있는 소원을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 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하였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품고 감사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셔서 메마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사할 줄도 기뻐할 줄도 모르는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이 없는 사람은 그에게 있는 것조차 빼앗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모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내려온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을 누리는 사람의 특징은 하늘의 문을 여는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 호 2: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응하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나’는 ‘듣다’, ‘응답하다’(사 58:9)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의 기도를 듣고 은총과 축복을 내리심으로써 응답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우리고 응답하셔서 온전한 회복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응답하시니 하늘이 움직이고 땅이 반응하여 하나님의 복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호 2: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은 풍성한 수확을 위해 땅에 호소하고, 땅은 비를 내려달라고 하늘에 호소하며, 하늘은 창조주 하나님께 땅이 기름지도록 호소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하늘에게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게,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게 응답하여 수확이 풍성하도록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신 28:12).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마음을 여시고 응답하시는 복을 누리려면 내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반응하여야 합니다.
첫째는 두 마음에서 돌이켜 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호 2:21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 날’이라는 것은 지난 시간에 나눈 호 2: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는 말씀에서 보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돌이키고 나올 때 하나님께 자신을 낮추고 장가 들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고 있는 바알과 아세라 신을 그대로 섬기면서 양다리를 걸친 채 하나님과 하나됨의 신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Netflex에서 방영하고 있는 <돌싱 N 모솔>이라는 영상을 시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참여한 여성은 한 남자와 결혼하였다 이혼한 사람들로 이뤄졌고, 남성은 한번도 여자와 진지하게 연애를 한번도 해 보지 않은 그룹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사랑의 힘이 어떠한지를 보이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한 남성 출연자가 정초하고 아름다운 돌싱 여인에게 흠뻑 마음이 빼앗겼습니다. 거침없이 자기의 감정을 쏟아내는 남성에게 여자가 “내가 돌싱인 것을 알고 나왔죠?”라는 질문과 함께 “만약에 내게 아이가 셋이 딸린 것을 알고 있더라도 그 마음 그대로 나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하 모솔 남성은 거침없이 대답했습니다. “설령 부모님이 거절하더라도 나는 설득하여 아이들도 내 아이처럼 기르며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들의 관계가 호세아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렇지만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속한 우상에 빠져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뜨거워 그 모든 것을 덮고 사랑하여 흔쾌한 마음으로 장가를 들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마음의 문을 열고 하늘에 속한 좋은 것으로 채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의 문이 열릴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에서 벗어나 하나님 한 분에게 마음을 드릴 때입니다. 이런 영적 의미는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늘의 문을 여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 세상에서 내가 쥐고 있었던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힘써야 하는 것은 내 것으로 가득 채우려는 욕심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내 노력으로 선함을 유지하고 나의 애씀으로 착함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하고 그 사랑이 나를 지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는 것에 눌려 있으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땅에 속한 자로 주저앉고 더는 진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을 포기하고 세상에 보내셔서 그 생명을 잃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명성을 얻고, 세상에서 자랑할 것이 많이 가지고 싶고,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인기를 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우상 숭배인데 이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삼상 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나를 내려 놓을 때 하나님은 마음을 여시고 하늘에 속한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세상에 대한 욕심으로 된 것이라면 이것을 포기하십시오! 하나님이 때를 따라 각자 택하신 자들에게 부하게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심을 믿고 나오십시오! 이것이 하늘의 문을 여는 비결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자신을 살피고 깨끗하게 하는 회개가 하늘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성막에는 물두멍이 있습니다. 이 물두멍 재료는 놋인데, 그 놋은 회막문에서 수종 들던 여인들이 봉헌한 거울로 만들어졌습니다(출 38:8 하반절). 그 거울은 과거에 여인들이 외모를 꾸미고 단장하는 데 사용되었으나, 이제는 제사장들이 수족을 씻어 정결케 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물두멍의 표면은 제사장들을 비추는 거울로도 사용되어 거울을 통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 자신의 흠을 발견하고 바로 잡았을 것입니다. 물두멍이 보는 거울 역할을 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함에 비추어 흠도 없이 점도 없이 다듬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살피며 회개하고 돌이켜 거룩함을 이루는 것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율법에 비친 자신은 절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기준으로 하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게 되려면 율법이 정하고 있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하여 모두를 알고 있어야 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지켜야 합니다. 단 하나를 어기더라도 온 율법을 어기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율법에서는 자유가 없습니다. 절망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혹간 스스로 율법을 온전히 지켰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 대하여 성경은 단호하게 외식하는 자요. 죽은 자의 무덤에 회칠한 자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마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회개는 가던 길을 먼추고 되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추구하고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성령께서 택하신 자녀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작은 감동을 주어서 회개하도록 하십니다.
한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서 계산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계산서를 보니 파전을 먹었는데 그것이 빠져버렸습니다. 차를 타고 한참 오다가 이것을 발견했습니다. 제 마음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자기네들의 실수인데 되돌아가서 이것을 알려주고 돈을 더 내야 하나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네 안에서 성령의 자그마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네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인데 이것을 무시하면 되겠느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던 길을 되돌아가서 계산을 제대로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내가 고의가 있든 아니면 내 잘못이 아니더라고 마음을 돌이켜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이런 회개가 이뤄질 때 하나님은 마음을 여시고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내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날 때 하늘의 문이 열려집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구하는 것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 안에 드러나고 있는지를 보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착하게 살았고 덕을 쌓는 일에 열심히 살았더라도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지 않고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반영체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살 때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반영체가 되기 위하여 날마다 스스로 돌아보고 믿음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의 노력으로 수고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육신으로 계실 때 성령이 함께 계셨고, 성령 안에서 하늘의 문이 항상 열려져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고 그 뜻에 자신을 드려 순종하여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비쳐져서 드러내기 위하여 내 심령이 깨끗해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목적은 부르시고 택함을 받은 믿음의 성도에게서 아버지의 형상, 즉 영광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반영(反影)체가 되었습니다. 잠 27:2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스스로 외칠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드러나는 하나님의 아름다움 영광을 바라보면서 서로 노래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
거울이 더러우면 바르게 비칠 수 없습니다. 또한, 거울이 울퉁불퉁하면 바른 모습이 투영될 수 없습니다. 깨끗하고 평면을 유지해야 본래의 형태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는 일시적으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의 피로 우리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인 완전한 인격체로 이루게 하셨습니다.
내게서 예수님의 형상이 나타날 때 하늘이 열리고 천군 천사가 영광의 노래를 부르시며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하여 지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안에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나게 될까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이 그리고 가장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새는 ‘알바트로스’라고 합니다. 이렇게 높이 멀리 날아갈 수 있는 비결에 대하여 어느 조류학자는 알바트로스의 뼈의 구조에서 찾았습니다. 알바트로스의 뼈는 그 속이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알바트로스는 높이, 빨리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 담긴 욕심을 버리고 내가 걸었던 기대가 어그러졌을 때 다가오는 실망을 회개하는 것이 영혼을 가볍게 하는 비결입니다. 내 영혼이 가볍게 되어야 하늘을 향하여 날아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타는 비행기는 보통 고도 10km에서 13km(약 33,000~43,000피트) 사이를 비행합니다.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구름을 볼 수 있지만 땅에는 비가 내리고 있어도 비행기 안에서 위를 보면 구름 한점 없는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호 2: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심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자라’은 ‘씨를 뿌린다’는 뜻으로 이스라엘을 새롭게 회복시킨다는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새로운 축복을 반영하기도 한 것입니다. 먼저는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으로 우리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계시는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향하여 소망이 끌어올려 하늘에 속한 마음을 지닐 때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바른 기도를 드리므로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