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70]
백인숙(白寅淑, 1917~1950)①
백인숙은 1917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안동중학교를 다녔고, 마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자랐습니다. 결혼할 나이가 되자 유교 사상에 젖어있던 그녀의 부모는 늦기 전에 결혼할 것을 강요했고, 이에 백인숙은 “시집가지 않고 예수만 섬기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부모는 딸에게 금족령(禁足令)을 내려서 집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사실상 감금해버렸고, 그로 인해 안동중학교는 그녀를 퇴학 조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인숙은 학교도 못가고 교회도 못가는 상황이 되자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오게 되었고, 마땅히 지낼 곳이 없어 어느 선교사 집에 잠시 기거하게 되었습니다. 1939년 22세 때 태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공부를 마친 후에는 평양여자신학교를 다니고 졸업했으며, 일본으로 건너가서 요코하마 공립신학교를 다니고 졸업 후에 돌아와서는 주기철 목사가 시무하는 평양 산정현교회 여전도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신사참배로 인해 한국교회는 큰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미 1930년대 초부터 신사참배 강요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고, 1930년대 중후반에 미국 북장로교나 남장로교 선교부가 세운 학교들은 적극적으로 거부하면서 폐교당하거나 자진 폐교하기도 했습니다. 그 학교들은 평양에 소재한 숭실전문학교, 숭실중학교, 숭의여자중학교, 서울에 소재한 경신학교와 정신여학교, 대구에 소재한 계성학교와 신명여학교, 선천에 소재한 신성중학교와 보성여학교, 재령에 소재한 명신여학교, 강계에 소재한 영실학교, 전주에 소재한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 광주에 소재한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 목포에 소재한 영흥학교와 정명여학교, 순천에 소재한 매산학교, 그리고 군산에 소재한 영명학교였습니다.
<참고 문헌>
총회순교자기념선교회. “순교자 소개: 백인숙(白寅淑, 1917~1950)”. pck-pcmm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