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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자체이신 하나님과 어린양 21:22~24
22 성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영원한 안전이 보장된 곳 21:25~27
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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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새 예루살렘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이 비쳐 해나 달이 쓸데없습니다. 만국이 그 영광의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은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곳에 들어갑니다.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거짓말을 하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그곳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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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자체이신 하나님과 어린양 21:22~24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신부이자 영원한 도성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영원히 거주할 장소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다는 표현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물리적 성전이 새 예루살렘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이 되시며, 새 예루살렘 전체가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설은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강조합니다. 성전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하나님의 거하심’입니다. 하늘의 도성은 ‘하나님의 거하심’(히브리어로 ‘쉐키나’, 영광의 임재를 뜻함)이 우주적으로 완벽하게 실현되는 곳입니다(21:3). 새 예루살렘은 성전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합니다. 무엇보다 새 예루살렘은 지성소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구약 시대의 지성소가 새 예루살렘 전체로 확대됩니다. 지성소에 제한되던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새 예루살렘에 충만합니다. 하나님 영광의 광채가 충만하니 해나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새 예루살렘성에 성전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내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나타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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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안전이 보장된 곳 21:25~27
거룩한 성의 성문들은 닫히는 일이 없습니다. 이는 위협이나 해가 없는 절대적 안전을 강조합니다. 거룩한 성에는 밤이 없습니다(25절). ‘밤’은 모든 죄와 악을 상징합니다. 성문이 열려 있다는 것은 악한 자나 경건하지 못한 자에게도 개방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탄과 짐승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지고,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만 새 예루살렘에 들어갑니다. 거룩한 성은 영원토록 안전합니다. 모든 악의 세력이 제거되고 하나님의 선하신 통치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후일 예루살렘성에 거할 소망을 품고 현재 내가 더욱 힘쓸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영광으로 가득한 예루살렘성을 바라보며, 눈부시게 변화될 제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모시고 빛 가운데 행하며 그 빛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어린양의 생명책에 제 이름이 기록된 것에 감격하며, 진리의 말씀을 따라가게 하소서.
하나님은 새 예루살렘으로 우리를 초대하시고, 그곳에서 당신의 임재를 누리며, 생명의 충만함 속에서 당신을 예배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지금 내게 허락하신 곳이 하나님과 예수님이 임재하시는 처소가 되도록 만들고, 이곳에서 그분과 더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도록 하자
속되고 가증하고 거짓된 상태로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거룩하고 정결한 삶의 모습을 지켜 나가면서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이 되고, 그에 합당한 삶의 모습을 지켜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바로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곳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고,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교제하는 곳이 되고, 기쁨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예배하는 곳이 되게
요한계시록 21:22~22:5 에덴의 삶을 사십니까?
계시록 말씀이 너무 신나고 흥분된다.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너무 황홀하고 아름다운 곳이였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거하게 될 바로 그곳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사는 내가 가는 그 곳 기대가 된다.
어는 날 계시록 마지막 2장에 걸친 이야기를 딸에게 했다.
그 곳은 아름다운 보석들로 장식이 되어 있고
문들은 진주로 되어 있고, 길 바닥은 황금으로 되어 있고
그 곳에는 눈물이 없고, 죽는 것도 없고, 슬픈 것도 없고, 아픈 것도 없다.
맑은 시냇물도 흐르고 일년 12달 맛있는 과일을 따 먹을 수 있는
생명 나무도 있고 사자하고도 함께 뛰어 놀수 있는 곳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도 있고, 거기에 가기만 하면 네가
왕이 되어서 많은 천사를 심부름 시키수 있는 곳을 이야기 했다.
한 참 듣고 있던 아이가 어떻게 하면 그 곳에 갈수 있냐고
눈을 반짝이며 물어오던 적이 있다.
그리고는 함께 영접 기도를 했던 아름다운 그 밤이 있었다.
계시록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그 밤이 다시 생각난다.
하나님의 완전한 임재가 나타나는 그 곳(22)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는 그 곳(23)
핍박중에도 신앙을 지킨 거룩한 성도가 들어가는 그 곳(24)
성문을 닫지 않고 밤이 없는 그 곳(25)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들어가는 곳(26)
가증한 자나 거짓말 하는 자는 들어오지 못하는 곳(27)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자만 들어 오는 곳(27)
주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처소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예전에 솔로몬이나 스룹바벨이 건축했던 형태의 성전은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영광이 밤낮 비치고 어린 양이 등불이 되실 것이기 때문에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게 될 것입니다
또한 새 예루살렘에는 밤이 없어서 열두 진주문들이 닫히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둘째 사망에 던져져서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21:26~27)
그렇다면 누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될까요?
주께서 그 이름을 시인하시는 자입니다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그렇다면 주께서 누구를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실까요?
사람 앞에서 주를 시인하는 자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10:32~33)
그렇다면 사람 앞에서 주를 시인한다는 것은 뭘까요? 공
개적으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만왕의 왕이심을 믿는다고 공표하는 것입니다
또한 당시에는 나사렛 예수를 주로 믿는 자는 출교하고 사회적으로 매장시켰기 때문에 사람 앞에서 주를 시인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모든 삶과 지위와 재산과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아 전체를 부인하고 오직 생명을 다해 주만 믿으며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가 바로 사람 앞에서 주를 시인하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성도인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2절
새 예루살렘 성은 성전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이 성전이시며, 그가 그 성 어디에도 계시니 예루살렘 성 전체가 지성소이고 성전입니다. 지금 이 땅 어디에도 물리적 성전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공동체가 성전이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지성소입니다. 이제 거룩하고 부정한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내 모든 삶의 영역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 되도록 힘씁시다.
23절
예루살렘 성은 해와 달의 빛이 쓸데없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되시고 어린 양이 등불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빛이 성읍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어린 양의 등불이 삶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교회는 먼저 그 빛 가운데 살고, 또 그 빛을 세상에 비추어야 합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4-27절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해 만국의 왕들이 새 예루살렘 성으로 모여듭니다. 시온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참조. 사 60:1-16). 밤이 없으니 성문은 늘 열려 있고, 열방의 순례자들이 다양한 보화와 보배를 가지고 새 예루살렘 성을 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나 열린 성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짐승에게 속한 자들은 거절당하고, 오직 생명책에 이름을 기록한 이들만 그 영광의 도성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기도
어둠과 저주가 없고 죽음이 없는 나라에서 영영한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하소서.
(계 21:22~22:5절)
- 새 성전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이 임하는 새 예루살렘은 해와 달의 비침이 쓸데없고, 밤이 없는 곳으로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새 예루살렘 성은 온전한 에덴의 복이 성취됩니다.
✔ 우리는 어떤 인생이어야 합니까?
-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빛을 전하는 인생이어야 합니다(22~23절).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는 성막이나 성전의 지성소에 계시는 분으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더 이상 가시적인 성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임재 하셔서 함께 교제를 나누시기 때문(22절)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22절)라고 선언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해와 달의 비침이 쓸데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등불이 되시기 때문(23절)입니다. 이는 곧 이 땅의 그리스도인이 빛의 자녀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아가고 있고, 내 안에 주님이 임재하시기에 이미 나는 부분적으로나마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공급하시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로 채움이 있는 풍성한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어두움이 가득하고, 사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뻐하며, 경배하면서 동시에 생명의 빛을 세상 속에 비추고, 전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어린 양의 등불이 내 삶의 길을 인도해 가심을 오늘도 믿고, 신뢰하며 세상 속으로 생명의 빛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 보혈의 은혜로 존귀한 삶을 누리는 인생이어야 합니다(24~27절).
모든 나라들이 도성의 빛 가운데로 지나며 낮에 성문들을 닫지 않습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더 이상 밤이 없기 때문입니다(24~25절). 시온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그 열린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27절)들어갈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부정한 것들(속된 것, 가증한 것, 거짓말 하는 자)은 존재할 수 없는 거룩한 곳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입은 자들만이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기에 그리고 내 삶에 거룩한 빛을 비추시기에 내 인생의 영적인 밤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때로 예수님이 걸으셨던 것처럼 고난의 삶이 주어지지만 그 길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니기에 인내함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삶의 자리에서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존귀한 자로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그 빛을 따라 용기 있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나는 그 도성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그 도성의 성전이심이라.
그 도성에는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주며,
어린양이 그 도성이 등불이 되심이라.
만국(만국 백성들)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들의 영광을 가지고 그 도성으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만국(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그들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이나
거짓된 일을 행하는 자는 결단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새 예루살렘 성의 성벽과 문은 정금과 보석으로 되어있다.
이런 것들은 세상 사람들이 가장 가치 있게 여기고 그것을 얻기 위해 애를 쓰는데 하늘나라에서는 건축 재료로 쓰이고 길에 깔아 밟고 다니는 하찮은 것으로 취급받고 있다.
이것은 가치의 차이인데 성도는 비록 이 땅에 발 딛고 살더라도 이런 가치관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새 예루살렘성은 어린양의 신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시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신부다운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새 예루살렘의 영광(21:22~27)
새 예루살렘 성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곳에는 해와 달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 천하를 비추고 어린양이 등불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문을 닫을 일도 없습니다. 밤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나라와 족속 중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다닐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부해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자, 사탄의 종노릇을 한 자, 진리를 거스른 자는 이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고 누리는 사람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하나님 나라는 그 이상이기에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인생 전체를 드려도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 묵상 질문: 성안에 없는 것과 있는 것은 무엇이며, 왜 그럴까요?
- 적용 질문: 영광스러운 예루살렘 성을 예비해 주신 하나님께 나는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제 삶이 초라해 보여도 사실은 아름다움과 영광스러움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성전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순결한 신부로 흠 없이 주님 앞에 서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영원히 새롭고 풍성한 삶을 기대하며 살게 하소서.
계시록 21장에 나타나는
새예루살렘 성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다.
이것이 천사가 요한에게 말한 것처럼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가리키는
교회와 성도들을 상징한 것이냐, 아니면 21:10절 이하에서 이어지는 설명처럼 물리적 장소로써 새예루살렘 성의 실재인가 이다. 나는 여기서 두 가지 견해를 다 받아드린다.
어린 양의 신부된 성도들의 공동체로써 완성된 교회의 아름다움을
이 세상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음으로 빛난 진주나 보석들로 장식된
새예루살렘 성전으로 상징함과 동시에 또 이것은 어린 양의 신부된 교회가
살게 되는 하나님의 장막으로써 실재하게 되는 곳으로도 받아드린다.
잘 지어진 집보다 집 지은 이가 중요하고 또 집보다 그 안에 사는 사람이 더 중요한 것처럼
거룩하신 영광의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되는 새예루살렘 성은 장소적 의미에서도
거룩하고 아름다운 곳이어야 함과 동시에 그 안에 들어가 살게 되는 사람들 역시
거룩하고 아름다운 어린 양의 신부 곧 주님의 교회된 성도들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의 말씀에서 빛난 진주나 보석 같은 것들로 꾸며진 성의 모습은
하나님의 집으로 꾸며지고 세워지는성도들의 신앙 인격을 상징함과 동시에
또한 그곳은 그들이 들어가 살게 되는 아름다운 장소의 실재로도 받아드리는데
이는 주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셨다가아버지께 돌아가시면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약속하신
그 말씀에 근거하여서도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에서 새예루살렘성에 대한 것보다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새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성전인데
더 이상 물리적 장소적 의미로써 성전이 필요없이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이
성전이 되심이라는 말씀이며(21:22) 그가 빛이 되시매
더 이상 빛도 필요 없다는 말씀이다(21:23)
그가 성전이시다. 그가 빛 이시다는 이 두 가지 말씀 속에
위에서 제기된 모든 의문들도 풀려진다고 생가하게 되는데
상징과 실제가 이 말씀 속에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성전(22절)”
과거 성전이라고 불렸던 “예배당”은 많은 이들의 눈물의 간구와 말씀의 새롭게 하는 역사가 이어져 산실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주일 성수라는 이름으로 주중의 삶이 어쩔 수 없이 넘어진 상황이었을지라도, 일주일마다 반복적으로 돌아오는 주님의 날에 예배당을 찾아 엎드리고 눈물로 회개하고 결단함으로 삶은 다시 시작되고 믿음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불완전함을 버텨온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공적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선교지에서나 때론 가족들만 예배를 드리는 개척 교회에서는, 그 예배자가 있는 어느 장소든 예배당이 되고, 예배드리는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예배드릴 장소를 쉬이 찾을 수 없던, 핍박의 시대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로 죄악으로 취급받았던 사도 요한의 시대 가운데, 그가 그토록 간절히 찾던 예배의 처소가 새 예루살렘 도성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전이시고, 예배의 주인이신 주 하나님과 어린양의 임재 가운데 거하기 때문입니다. 수가성의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21)”라고
말씀하시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려져야 한다고 여겼던 당시의 굳은 편견을 이미 자신의 임재로 깨뜨리셨습니다. 해와 달이 필요가 없는 그분께서 이제 그림자도 없는 빛이 되셔서 그곳을 밝히고, 생명책에 기록된 자녀들에게 다시는 슬픔도 눈물도 없고, 오직 거룩과 순결과 찬양으로 가득한 그 나라를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도성의 문(25절)”
빛이 사라진 밤에 누가 문을 열어놓고 잠들며,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무리 집안의 소유가 미약할지라도, 대문과 현관, 방문을 열어놓고 밤에 잠들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둑을 맞지 않더라도 우리를 해할 것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 예루살렘의 도성은 모든 왕들과 왕과 땅의 영광으로 채워지고, 그분께서 친히 빛이 되셔서 어둠이 없는 항상 열려 있는 낮으로만 존재합니다. 그 문을 통해 들어오는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자들은 존귀와 영광으로 그곳을 높이고 채우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분께 영원히 찬양하고 높여드리는 일들이 쉬지 않고 계속될 것이며,
우리는 그분 안에서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영원한 안식을 쉬지 않고 누리게 될 것입니다. 쉬어도 쉬어도 피곤한 연휴 같은 시간이 아니라, 찬양하고 영광을 올려드릴수록 기쁨과 감사가 더 커지고, 경외함으로 예배드릴 수록 그분의 인자하심이 더 커지는 시간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이 땅 가운데 유한한 건물, 예배, 사람, 소유, 그리고 수많은 결핍 가운데 넘어지거나 낙심하지 말고, 하늘의 창고에 보물을 채우며 이 땅의 삶을 기쁨과 감사로 감당하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 46:10)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19-21)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고후 11:3-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히 8:5)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고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임재 가운데 모든 근심과 걱정을 태워버리고, 오직 말씀과 성령으로만 채워지는 거룩한 인생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때론 소망이 무너지고, 세상의 어둠이 눈을 가릴지라도, 빛이시며 소망이 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승리의 깃발을 높이는 주님의 담대한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위에 기름 부어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의와 나라를 이루는데 쓰임 받는 거룩한 질그릇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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