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행2:13)."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시자
먼저 제자들을 성령 충만하게 하셔서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성령의 방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과 다르게
성령 충만을 받아 성령의 방언을 하는 제자들을 본 자들 중 다른 이들은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며 크게 조롱하고 비방을 했다고 성경은 기록을 합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 부터 올라와
오순절의 성령 강림의 현장에서
제자들이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을
각기 자기 지방언어로 들었다고 진술하는 것과 상반되게
다른 이들은 새 술에 취해 혀꼬부라진 이상한 소리나 한다고 조롱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제자들이 성령 충만을 받아서 방언을 말하는
그 외적인 모습을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의 시각으로 살펴 보려고 합니다.
(어차피 그 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한 자들이 보는 것은
눈에 보이는 외적 모습과 신경정신적 인간적 자의적 해석 밖에 없을 것이므로)
경건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을 보고
경외심으로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한 것과는 정반대로
왜 이들은 제자들이 낮술에 취했다고 조롱을 했을까요?
행2:13 말씀에 사용된 원어적 의미를 살펴보면
오순절 날 제자들의 성령충만한 모습과
그들이 성령의 방언을 할 때 입술의 발성하는 모습을
좀 더 실감나게 그려볼 수 있게 됩니다.
성령 받지 못했던 자들이 바라본 제자들의 모습은 이러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행2:13)."
이 말씀에서 그 어떤 이들은
제자들을 조롱을 했는데,
그 조롱하다에 해당되는 헬라어 원어는
<디아클류아쪼>입니다.
이 말은 조롱의 끝판왕을 보이다라는 뜻입니다.
<클류아쪼>에 <디아>를 붙여서
제자들의 행동 하나 하나
제자들의 말 하나 하나마다
비방하며 따지며 조롱했다는 말입니다.
이 카페의 토착왜구 섬소년이나 많은 이들이
성령의 은사가 나타남을 두고 조롱하는 모습을 보면 이해가 되는 단어입니다.
도대체 제자들이 어떤 모습과 어떤 말들이
그들의 반감을 사고 비방 거리가 되고 조롱 거리가 되었을까요?
그들은 제자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라고 말을 했는데,
여기 <새 술>의 원어는 <글류코스>로서 <포도주>를 뜻하며
<취하였다>는 말씀에 사용된 원어는 <메스토오 에이시>로서
<만취하다. 가득차다. 꼭지까지 가득차다.> 라는 뜻입니다.
만취하여 고주망태가 된 사람들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거기에 또 혀꼬부라지는 웅얼거리는 소리를 하는 사람을 본적이 있다면
이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조금 쉬울 것입니다.
완전히 만취된 자가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고
어눌하고 혀가 꼬부라지고 중언부언하는 소리를 내는 사람을 보는 듯 했다는 뜻입니다.
완전히 취해서 고주망태처럼 보였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니,
제자들이 완전히 술에 만취해서 완전 꼭지가 돌아버린 사람의
자세가 흐트러지고
어눌하게 횡설 수설하는 소리로 들렸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불을 받아 성령이 충만한 상태가 되니
얼굴이 붉어지고 입신 상태가 되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데다가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하고 하는 것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어눌하고 부정확한 발음으로 반복해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침부터 새 술에 취해 꼴 좋다 라고
놀리며 비방하며 조롱을 해 댄 것입니다.
이 모습은 성령 충만을 받아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알 수 없는 단음절의 말을 반복하는 성령의 방언을 말할 때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이 무아지경의 상태를 입신 상태라고 하는데,
성령으로 그 영으로는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중에
그 육체의 입술은 술 주정하는 사람의 횡설수설하는 소리처럼 발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제자들의 이러한 입술의 발성이 외국어인 줄 몰랐기 때문에
술취한 자의 소리처럼 들었다라고 주장을 하는데,
아무리 외국어를 모른다 해도 그렇지
외국어를 말하는 것과
고주망태 술주정 소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도 성령의 방언을 하면,
방언을 모르는 무식한 자이거나
성령을 받지 못한 믿음없는 자에게는
오로지 낮 술에 취해 꼭지까지 돌아버린 사람처럼
그 흐트러진 모습과
그 횡설 수설하는 소리가
미친 자의 모습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 비류들과 같이
손가락질 해대며 비방하고 조롱하는 짓을 지치지 않고
그 끝을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디아클류아쪼>, 조롱의 끝판왕을 보여 주는 것이죠!
이는 성령의 없음이므로 인하여 그 영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육의 모습과 육체의 행동을 보고 말하는 것이라
뭐라고 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옛날 그 비류들은
사도 베드로의 설명을 듣고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믿어 제자가 되었건만,
오늘 날 비류들은 아무리 설명을 해 줘도
어찌 고집도 그리 쎄고
말씀을 뒤엎으면서까지
결단코 믿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조롱을 해대는 것을 보면
불쌍해 보이기 까지 합니다.
영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아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성령의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큰 일을 함께 찬양하는 성도들이 있는 반면에
영을 부정하며 성령의 새 방언을 인간의 외국어인 양 끌어내리며
성령의 방언을 조롱하는 자들 사이에
너무나 큰 영적 비밀의 간극이 있다는 것은 실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으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성도들의
더욱 간절한 기도와 간구로
그들의 영안이 열려
함께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며 예배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질 수 있기를
다시금 성령님께 부탁드려 봅니다.
첫댓글 소~~설을 써라~
그렇게 소설을 잘 쓰는데 니 목사는 너를 왜~~내쳤냐???
ㅋㅋㅋㅋ
하나님의 말씀이 소설같지?
그게 신경신학의 한계니라.
그런데 너와같이 육체에 있는 자들의 이야기인데도
거부하냐?
너 이넘의 왜구자슥!
반대를 위한 반대지? ㅋㅋㅋㅋㅋ
왜래야!
소설이라고 위안삼기 전에
왜?
행2장 오순절날 성령님이 강림하시는 현장에서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들리는 말과
<다른 이들>에게 들리는 말이 달랐는지를
신경신학 관점에서 설명해 보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