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에 앞서서 간략한 설명
(이름. 생몰년도 [제위기간])
ex)헤세니우스 황제(Hessenius, Amugenius 2001 ~ [2001 ~])
※처음부분에 석고상이 많이 나오니 유심히 보도록 합시다.
- 들어가면서 -
.이번에 왜 부자황제 열전을 기획하게 됬는가 하면, 로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전까지 계승법이 애매모호해서 부자간의 계승이 흔치 않다는 점이 흥미로워서였다. 그 이유는 아마 제대로 말하자면 로마는 제대로된 군주정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황제는 어찌보면 원로원에서 지명한 먼치킨급의 권능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후계자 선정은 황제가 관여하기에 사실상 황제 마음가는 인물이 곧 황제이긴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아니니 말이다. 거기에 제정 로마는 특유의 전통인지 서로가 서로를 통수를 토닥토닥해주는 풍습이 있어서 3대를 넘게 세습하는 황가는 찾기가 도통 쉬운 일이 아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전까지는 아예 4대를 넘어가는 경우는 없으니 말이다. 이러하기에 흔치 않는 황가들중에서 몇 개만을 엄선하여 최대한 읽기 쉽게(?) 풀어 써보는 것이다.
이번에는 가볍게 가면서도 깊이 있게 써보려하니 여러분들의 세심한 배려를 염치 없지만 부탁하는 것이다.
1장. 플라비우스 황가
1대 아버지 - 베스파시아누스 황제(Vespasianus, Titus Flavius. 9 ~ 79 [69 -79])
2대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장남 - 티투스 황제(Titus, Flavius Vespasinus. 39 ~ 81, [79 - 81])
3대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차남(?) - 도미티아누스(Domitianus,Titus Flavius. 51 ~ 96 [81 - 96])
(분명히 동생놈은 엄마를 닮았을 것이 틀림없다)
(아니면 다리밑에서..?)
- 이 시대의 배경과 황제들 대한 설명 -
우리가 잘아는 (검은고양이)네로황제(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37 ~ 68 [54 - 68])가 폭정을 벌이다가 살해당한후 근위대에 의해서 갈바 황제(Galba, Servius Sulpicius. BC 3 ~ 69 [68 - 69])가 황제로 선출된다
근데 그를 뽑아준 오토(Otho, Marcus Salvius. 32 ~ 69 [69])라는 사람이 그를 뒤통수를 후려쳤다. 갈바는 뭐 할틈도 없이 자기를 추대한 근위대에게 살해당했다.
(통수를 맞으신 갈바 황제)
근데 1년도 안지나서 비텔리우스(Vitellius, Aulus. 15 ~ 69 [69])라는 지휘관이 남부라인강 군단을 군대를 끌고 와서 통수를 갈겼다. 오토 황제는 당황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업자득을 행하신(?) 오토 황제)
이제 비텔리우스 시대인가 했더니 이번에는 베스파시아누스라는 유대 반란진압 지휘관이 쩌어멀리 유대 지방에서 군단을 끌고와서 이미 두 번 때린 통수를 한 번 더 갈겼다. 서방군단과 동방군단은 사이좋게 누가 더 쎈지를 비교하기 위해서 한대씩 주고받았다.
결과는 동방물만을 선호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동방군단이 서양물만을 선호해오던(?) 비텔리우스의 군단을 깔끔히 이겨버렸다. 그리고 비텔리우스는 그대로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고 체포후 처형되었다.
(석고상은 많이 정직한듯 하다. 턱살이 많으신 비텔리우스 황제)
다행히도 베스파시아누스와 동방군단의 동방물에 다들 쫄았는지 아무도 쿠떼따를 일으키지 않았고, 능력이 있었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서 로마는 어찌어찌하여 오랫동안 지속되던 폭정과 내전에서 벗어나게 된다.
참고로 이시대는 군인황제시기도 아니면서 쿠테타가 한해에 가장 많이 일어난 시기이다.
어찌어찌 황제가 되서 나라를 잘 다스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게 감명받은 원로원은 다음 황제를 선제의 아들인 티투스를 지명했다*. 그들은 부전자전을 예상하고 지명했을수도 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선제와 공동통치를 했으며, 호민관의 직위까지 겸했기에 그는 사실상 이미 지명된 후계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황제를 호명하는 것은 원로원의 몫이니...)
(**:원로원에서 찬성의 목소리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유대 반란진압의 문제를 문제삼아서 그가 암군 될 것이다라는 우려를 원로원에서 표출하기도 했다.)
다행히 원로원의 추측은 거의 정확했다. 그는 아버지를 닮아서 유능했고 오래전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유대 반란도 총지휘를 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치세때 병크가 너무 많이 터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병크가 그의 탓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베스비우스 화산의 폭발과 폼페이시의 몰락과 로마시에서 전염병이 유행하여 큰 문제가 생겼으나, 그의 발빠른 대처와 이재민구호정책으로 그는 「인류의 총아」라는 칭호를 얻기까지 했다.
로마를 갔다와본 사람들은 알지만, 로마에는「티투스 개선문」이라고 하는 개선문이 존재한다. 이 개선문이 바로 여기서 나오는 티투스 황제가 세운 개선문이다. 그는 그밖에도 로마시민들을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붙힌 욕탕부터 투기장등을 세워서 볼거리를 늘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통치하다가 사망하고 만다. 그의 사인은 열병인듯 하다. 그는 즉위와 동시에 수많은 역경을 처리하느라 바빴는데, 재위기간이 겨우 2년이라서 사실상 그는 황제라는 특권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채, 제대로 쉬지도 못한채 죽은셈이다.
유능했던 티투스 황제가 죽자 이번에는 원로원은 그의 동생인 도미티아누스를 황제로 선출한다. 이번에도 아버지와 형이 이런데 동생도 괜찮지 않나하는 마음이 아닐지 웃으며 생각해본다. (아마도...?)
석상을 본 분들은 느겼겠지만 아버지와 형에 비해서는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확실히 귀족풍이 많이 느껴진다고 볼수 있다.(얼굴이 알려ㅈ...)
하지만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치세는 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일단 형과 달리 그는 행정업무나 전쟁 지휘 경험이 제로였다.
15년이라는 치세동안 그는 브리타니아부터 다키아까지 여러 제국의 변방을 수호하고 확장하려 했음에도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으며, 오히려 제국을 먹칠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었다. 거기에 아직 껍데기나마 공화정이 남아있는 로마에서 그는 황제를 신처럼 대우받는 것을 원하며 황제의 절대권을 내세웠고 이것과 황제의 자질에 대한 문제가 곂쳐져서 원로원과의 사이는 매우 나뻐졌다고 한다.
결국 치세후반에는 원로원과의 마찰이 폭정으로 이어졌고, 그는 아내인 황후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그가 죽고 난뒤 네르바(Nerva, Marcus Ulpius Crinitus. 52 ~ 117 [98 - 117])라는 유덕한 인물이 황제가 되는데, 그가 바로 트라야누스 황제(Trajanus, Publius Aelius. 76 ~ 138 [117 - 138])의 양부이자 오현제의 첫번째 황제다.
(후계자를 고를때 '유능한 양자를 얻자' 라는 아주 훌룡한 선택을 한 황제이다. 네르바 황제)
덤 - 티투스 황제가 탈무드에서 나오는 디도 장군이라고 한다.
참고 - 로마제국 쇠망사 2007, 두산백과, 영문위키, 다음백과
후기및 잡담 - 네로는 뭐이리 호칭이 많은지... 정말 여러모로 폭군다운 이름이였다. 개인적인 사유가 몇 개 곂쳐서 다 직접 쓴거라 귀차니즘이 스믈스믈 튀어나오는 것을 겨우 참아내며 쓴 듯 하다. 그러니 부디 잘 읽어줬으면 한다.
다음편 - 역사순에 의거하고 양자관계는 제외하면 원래는 코모두스지만, 코모두스는 이미 다른 곳에서 써먹었고 있기에 다음편은 세베루스 황제와 그의 아들인 카라칼라, 게타 황제다.
첫댓글 개판이군
통수를 너무 자주 보듬어줘서 처음엔 군인황제시대인줄 알았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