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결혼식장에 남루한 잠바를 입고 오신 형님을 보고나서 양복, 와이셔츠, 구두를 사드렸다.
가난하고 능력이 부족한 형제를 돕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뜻에서 이글을 쓴다.
2026.10.3일 이경용 씀.
지난날(2020.2월) 셋째형의 딸 결혼식장에 남루한 잠바를 입고 오신 둘째형을 보고난 뒤에 동생 이경용의 마음은 착잡하였다.
그 뒤로 하남시의 신세계백화점에 형을 데리고 가서 양복1벌, 와이셔츠 2개, 구두를 사드렸다.
백화점에 함께 갔던 이경용의 아내는 아주버님(남편의 형님)의 얼굴과 체형에 맞는 색깔의 양복과 구두를 고르는데 도움을 주었다.
명절과 부모님 제사 날에 이경용집에 오라는 문자를 보내고, 형 계좌로 돈을 입금한다는 문자 등을 수없이
보내어도 답장이 전혀 없었던 둘째형에게 전화를 해서
왜 지금까지 한 번도 답장을 안 하시냐?고 물으니 문자를 보낼 줄 모른다고 하였다.
둘째 형은 직업이 막 노동일이다. 어려서 공부를 안 하고 놀기를 좋아하였으며 1969, 4월 초에 집안이 망하자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하였고, 셋째 형만 혼자서 학교(중2~고3)를 계속 다녔다.
둘째형은 시골 과수원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서울에 상경하여 자전거배달, 막 노동일을 하면서 딸2명을 대학까지 보냈다.
형님께서 막 노동일로 어렵게 살아가니 잘 살게끔 수많은 도움을 주었던 동생 이경용이다.
이경용은 초등학교만 졸업(1969.2월)한 뒤에 무식하게 살 수 없어서
①식당일을 하면서 한문 5천자를 혼자 독파하였으며 ②밤에 공부하여 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
80대의 장모님도 문자를 보내시는데, 3살 위의 형님이 카톡과 문자를 전혀 보내줄 모르는 것에
당혹, 실망, 안타까움 등으로 마음이 착잡하였다.
공부를 못하고 능력이 부족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형, 누나, 동생 3명을 보면 마음이 아파서 수없이 도와주며 살아왔다.
요즘 인공지능(AI)시대에 카톡을 못하고 문자메시지도 하지 못하는 형을 생각하면서
71세의 이경용이가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겪어보니,
① 주변에 부자(여유 있게 사는 사람)로 살면서 못 배우고 능력이 부족하여 가난하게 살아가는 형제를 전혀 돕지 않는 사람들과
② 부자(상대적 부자)이면서 밥값 술값을 거의 내지 않고 맨날 공짜로 얻어먹기만 하면서 아주 이기적으로
탐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선행을 하지 않음)에게 이글이 큰 교훈이 되길 바랍니다.
※. 오늘(2026.10.3.일), 1달에 수천만원의 월세수입이 들어오는 큰 빌딩을 가진 작은 아버지(나이 80대)가
조카 자녀의 결혼식에 축의금 5만원(뷔페 식사비 8만원)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돈에 환장한 탐욕은 십악(十惡)의 하나이며, 탐욕스런 사람은 멀리 해야 건강에 이롭다.
가난한 형제에게 양복, 구두도 사줄 수 있는 사랑하는 마음, 베푸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2026.10.3일 이경용 씀.
============================
외숙모님이 56년 전(1970년도)에, 15살의 이경용한테 새 신발을 사준 이야기이다.
영등포 시장 앞을 지나가거나, 영등포 시장 이야기를 들으면 외숙모님이 새 신발을 사준 기억이 떠오른다.
이경용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정미소 집이라고 부자소리를 들었으나, 갑자기 망하여, 학교를 못 다니고
서울 상계동에서 어머님과 단 둘이서 식당을 하고 있을 때였다.
1970년 봄에 이길순 어머니(46세)는 6.25전쟁 때, 죽은 남동생의 아내(45세)가 일을 하던 영등포 시장으로
15살의 넷째 아들 이경용을 데리고 갔었다.
왕대포의 선술집에서 바쁘게 일을 하던 외숙모님은 손위 시누이(남편의 누나)인 어머니를 보시더니, 너무 반갑게 맞아주셨으며,
나이가 어린 15살인 이경용의 신발이 너무 보기에 안 좋았는지 밑바닥의 험한 일(왕대포 막걸리 선술집)을 하시다가
일을 중단하시고 가게에 가서 새 신발을 사주셨던 외숙모님이셨다.
왕자표 고급 운동화였으며, 크게 감동을 받은 15살의 이경용은 56년의 세월이 흘러서 현재 71세이지만,
그 당시 외숙모님의 나이가 45세로, 젊고 예뻤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훗날, 그 은혜(새 신발)를 고맙게 생각하여 충남 대전에서 85세로 세상을 뜨신 외숙모님의 장례식장(2010.1.5.일)도
찾아갔던 이경용부부였다.
외숙모님이 15살의 이경용한테 새 신발을 사 준 고마움을 71세인 현재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참된 사람(진실하고 올바름)은 받은 은혜의 고마움을 깨달은 만큼 베푸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훗날 둘째형한테 “고급 구두의 신발을 사주고 양복도 사주는 것”이다.
2026.10.3.일 씀.
===============================
외숙모님의 기구하고 힘들었던 인생여정을 둘러본다.
외삼촌 이선우(1929년생). 외숙모 김덕림(1926년생)은 나주 왕곡면 초등학교 부부교사였다.
1940년대에는 중고등학교 졸업학력으로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되거나 교사자격을 취득하였다.
외삼촌 부부는 1945년도에 결혼할 때, 17살. 20살이었고 딸 이정임을 1947년도에 낳아 기르다가
6.25전쟁 중이던 1953년도에 25살의 남편을 잃은 외숙모님이시다.
56세의 외할머니(1898년생)는
①35살에 과부가 되었는데 함께 살던 며느리가 ②28살에 과부가 되었으니, 한집에서
③2명의 과부와 어린 손녀와 같이 여자 3명이 살면서 외할머니는 신세한탄을 크게 하셨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외손자 이경용이 태어났던 1956년도에
10살이던 친 손녀 이정임의 손을 잡고, 딸집인 정미소 집에 왔으며 31살의 며느리는 재혼을 시켜서 분가하였다.
외숙모님은 재혼할 때, 전남 나주 영산포 남교동 정미소 공장의 이웃에 사셨으며 딸. 아들. 아들 3명의 자식을 더 낳으셨다.
재혼한 뒤에 남편이 사망하자 외숙모님은 혼자 3명의 어린 자식을 키울 수가 없어서,
1964년 경(이경용 9살 때)에 어린 아들 2명을 고아원에 보내면서 외숙모님은 시누이(첫 남편의 누나)인 어머님과 함께
피눈물을 쏟으셨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던 “외숙모님을 꼭 닮았던 아들 2명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71세의 이경용이다.
8살의 어린 딸 김명자(1957년생) 1명만을 데리고, 서울 영등포 시장에서 왕대포 선술집을 하던 친 언니 집에서 일을 하셨던 외숙모님이시다.
이경용이 초등학교 5학년(1967년도) 때, 서울에서 전남 영산포에 잠시 내려왔던 명자(초등4년)와 둘이서
친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웃으며 보냈던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서울 물을 먹은 명자는 시골스런 촌티가 하나도 없었으며, 얼굴이 하얗고 너무 예뻤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여자와 둘이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눈 것은 명자가 처음이었고,
부끄럼이 너무 많아서 여자 가까이 가 본적이 없었던 초등학생 시절의 이경용이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검정고시를 공부했던 이경용과 달리 명자는 엄마가 왕대포 선술집을 하였지만 정식 중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훗날 외숙모님은 딸을 시집보낸 후에 사위와 함께 살았으며,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서 이불을 만들어 팔던 곳에
이경용부부가 찾아갔더니 외숙모님과 명자가 너무 반갑게 맞아주었다.
외숙모님은 함께 살던 사위, 딸이 이사를 간 곳인 대전에서 살다가 85세(2010년)로 운명하셨으며,
장례식장에서 만난 외숙모님의 아들 2명(고아원에서 지냄)은 신분이 목사라 하였으며,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서 대충 4살, 6살이었던 어린 날의 얼굴 모습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경기도 하남시에 살던 이경용은 86세의 어머님을 모시고 충남 대전의 외숙모님 장례식장을 찾아갔었다.
외숙모님은 살아생전에 며느리 역할을 다 하시려고
외할머님을 모시고 살던 이경용 부부의 서울 묵동의 단독주택에도 찾아오셨다.
외할머님한테 “어머님 절을 받으셔요” 하며 큰절을 올렸던 착한 며느리였던 외숙모님이셨다.
71세의 이경용은 외숙모님의 기구하고 힘든 인생여정을 둘러보았다.
외할머니, 어머니, 외숙모님을 사랑했으며, 지금은 전부 세상을 뜨시고 안 계신다.
어머님이 95세 때, 엉덩이 고관절이 부러져서 수술하였고, 재활치료를 한 뒤에 넷째아들 집에서 함께 살자고 하니,
어머님은 “쨍하고 해 뜰 날, 돌아 온 단다.”는 노래를 부르며 너무 좋아하셨다.
어머님은 100세까지 사시다가 2년 전(2024.3.17.일)에 세상을 뜨셨다.
어머님을 34년간 모셔준 아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한다.
삶이 힘들어도 매일 매일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요즘, 초등학교 3학년인 손자 현성이와 둘이서 냇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으러 가면 71세의 이경용 할아버지와 10세의 손자는
신이 나고 너무 즐겁다. 손자가 전화로 할아버지 사랑해요, 할아버지도 현성이를 사랑한다.고 하면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진다.
손자를 승용차에 태워서 둘이 가면 손자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어서 너무 재미있다.
71세가 아니라, 10살의 어린 동심으로 젖어든다.
인생의 맛이고 즐거움이다.
2026.10.8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