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은 서울예고를 나왔는데 가정 형편 상 1학년을 마치고는 학교를 다닐 상황이 아니었지만 상이군경의 자녀는 합업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규정으로 졸업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학교를 다닌 부인 한성숙과는 학창시절에는 잘 아는 사이는 아이었다고 하며 오히려 쌍둥이 언니인 한성순과는 친분이 있었다고 하며 졸업 후 학교 동창 모임에서 한성숙을 재회한 송창식은 사랑 고백을 하고 보름 뒤 부산 처가를 찾아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통보하고 이듬해 결혼 한다.
결혼은 하였는데 향토예비군훈련에 참석하지 않아 향군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하게 되자 창졸 간에 옥바라지를 하게 된 한성숙. 이때 송창식은 옥방에서 노래를 만들었고 이 곡의 마무리를 부인에게 부탁한다. 한성숙은 송창식이 쓴 가사를 다시 다듬었고 작사가는 한성숙이 된다. 음반을 발표할 때 이 곡의 작곡가는 송결로 발표되는데 송결은 부부의 사랑의 결실 첫 아들 이름이다.
이미 언급했지만 1978년 발표한 앨범 "사랑이야/토함산"은 조금은 특별한 앨범이다. 이 앨범에서 사랑 받은 곡은 "사랑이야" 외에 "토함산", "나의 기타이야기", "돌돌이와 석순이", "병사의 향수" 등이고 음반의 가수의 곡이 한성숙 작사, 송결 작곡으로 되어 있는 이유는 앞서 말한대로 송창식의 옥중 작업을 한성숙이 마무리한 것과 아들을 갖게 된 것을 기념한 것이 큰 이유였다,
이 음반은 세션맨들의 연주로 곡을 녹음했는데 "석기시대"와 "프랑코 로마노 그룹"이 참여했는데 석기시대는 "동방의 불빛"을 게승한 연주그룹이었고 프랑코 로마노 그룹은 나미가 한국에서 데뷔할 때 "낸 음반 "나미와 머슴아"들의 머슴아들이다.
이 음반에서 주목받은 곡 중 "토함산"은 1978년 MBC 서울 국제가요제에 참가했던 곡이기도 하여 본선에 진출하여 우수 가창상을 수상한 곡이기도 하다.
송창식은 서울예고에서 음악을 전공하며 성악 발성을 익혔고 젊어서는 발성과 음색만으로도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 목을 혹사하는 바람에 성대결절 수술을 두 차례 받으면서도 지금의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기도 하다.
토함산에 올랐어라
해를 안고 앉았어라
가슴 속에 품었어라
세월도 아픔도 품어 버렸어라
터져 부서질 듯 미소짓는 님의 얼굴에도
천 년의 풍파 세월 담겼어라
바람 속에 실렸어라
흙이 되어 남았어라
님들의 하신 양 가슴 속에
사무쳐서 좋았어라
아 하
한 발 두 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흘려 올라라
그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년의 두께로 떠바쳐라
산산히 가루져 공중에 흩어진
아침 그 빛을 기다려
하늘을 우러러 미소로 웃는 돌이 되거라
힘차게 뻗었어라
하늘 향해 벌렸어라
팔을 든 채 이대로 또
다시 천년을 더 하겠어라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찾는 님 하나 있어
천 년 더한 이 가슴을 딛고서게
아 하
한발 두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흘려 올라라
그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 년의 두께로 떠바쳐라
산산히 가루져 공중에
흩어진 아침 그 빛을 기다려
하늘을 우러러 미소로 웃는 돌이 되거라
한 발 두 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흘려 올라라
그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 년의 두께로 떠바쳐라
산산히 가루져 공중에
흩어진 아침 그 빛을 기다려
하늘을 우러러 미소로 웃는 돌이 되거라
첫댓글 경주여행의 여운이 남는 송창식 노래이네요
함께한 시간은 이제
추억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