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이면 엿장수, 떡장수, 풀빵장수에다 설탕물을 녹여 반질거리는 쇠판에
여러가지 모양을 그려 굳힌 것을 팔거나 구운 오징어를 맞물로 돌아가는 톱니
바퀴로 엷게 늘여 파는 아저씨들이 있는가 하면, 과일과 찐 고구마 처럼 철마
다 달라지는 상품을 들고 나오는 아주머니들이 있는 곳이 영등포 도림동이란
곳이 였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하던 시절의 아이들에게 그보다 더 큰 유혹은 없었다.
저녁이 되면 동네 공동 우물가로 가서 우물물을 퍼서 등에 끼얹어 주는 등목
이란 것을 하는데 아차차차 그것이 그렇게 시원 할 수 가 없었다.
나는 큰누나가 항상 등목을 해줬다. 그리고 발가벗겨서 비누칠을 고루고루하
면서 고추를 씻어 주면서 이놈이 커면 이걸 안보여 주겠지 하던 말이 잊혀지지
가 않는다. 그랬던 그 큰누나는 지금 요양병원에서 벌써 몇년전부터 코로 음식
을 섭취하는 불편한 몸으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식물인간으로 죽지도 살지
도 못한체 그렇게 지내고 있어 마음이 많이 아프다. 🙏
첫댓글 지금 우리집은 도배 하느라고
난리 입니다 님들글에는 오후에
천천히 댓글 달아 드리겠습니다
이제 또 아랫층 내려가 봐야 겠어요
에고, 더운데 고생하시겠네요..필승!!
@남동이 환장 하것시유^^
@남동이
펌프로 시원한 지하수 퍼올려서 등에 끼얹으면 그 즉시 더위가 물러가던
그 시절 그 여름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날 더운에 도배하느라 힘드시겠네요, 잘 마치고 오세요. ^^
그시절의 지하수물 진짜
차고 시월했어요
등목 한 번 하고 나면 아유
살맛 났었지요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래요 등목이 예전에는
최고의 더위식히는 방법이
였지요
감사합니다^^
요새 상수도 물하고 우물물
하고 등목 시원함은 비교가
안됩니다.우물물 주변 화합
모임의 장소 가 되기도 했구요
정겨운 추억들이 많은 장소
였습니다.
근데 여기 병싱에서도 코에
호스 낀채로 운신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은데 참말로 안타
깝더군요.더군다나 누님께선
의식도 없어시더니 정말로
고생이 많어십니다.
그러시군요
우리 큰누님은 코로 음식을
드시고 사람을 몰라 봅니다
차라리 가셨으면 좋겠는데
그놈의 코에 죽 넣는거 참
불만입니다
감사합니다^^
엿과 풀빵, 아이스케끼..
원없이 못 먹어본 게
지금도 한이 되네요.ㅎ
오잉? 그 좋은 것을
드시고 뭔 한이 되시나요?
어디가 불편 하신가요?
감사합니다^^
우물가 의 정경에 취해서 미소 짓다가 갑니다.
여름철 얼음수 처럼 차갑던 우물가 등목 도 이젠 아련한 유년시절의 추억이 되었네요.
그렇습니다
등목이라는 이름 자체도
이제 사라진듯 싶군요
아련한 시절의 추억일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네 누님~~동생이 걱정 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에구 큰누님께서 요양원에 계시군요. 빠른 쾌유를 빕니다 !
그렇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감사합니다^^
울엄니도 몇년고생 하시다가 작년에 가셧지요
알아요 박여사님
명복을 빕니다
(작년이 였나요?
오래 된 것 같은데...)
감사합니다^^
그 옛날, 충청도 산속의 고향마을.
동네 공동우물은 지하수였기에 여름에도 엄청 시원했고,
초막골샘, 옻샘, 참샘이란 샘 역시 바위틈에서 나는 지하수라 한여름에도
한 바가지만 등에다 부으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시원했었죠.
그 시절 누나들이 발가벗겨 씻어줄 때면
꼬추를 안 보일려고 손으로 가리기도 했는데......
그 때가 옛날!
누나들이 씻겨주는데 번데기 같은
고추를 뭘 가릴 것이 있다고 수줍어
했나요 하하하하하하
재미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샤워실이네
목욕탕이 없던시절이니
웃통이라도 벗고
찬물한바가지가
지금의 에어컨 못지않은 여름나기방법이었죠
그세월 다 가고
병원계시다니ㅠ.ㅠ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최고의 에어컨이요
최고의 냉방장치 였지요
그랬던 누님은 지금 병고에
시달리고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감사합니다^^
생각 납니다
푸르던 젊은시절 한요름 뙤약볕에서 논, 밭에 나가 땀흘려 일하고 돌아오면 ~
동네 공동펌프 에서 아내가 등목 해주면 그 시원함 이란 ~~~
아이고 좋지요
그렇게 일 하시다가
노곤한 몸을 등목으로 씻으면
최고이지요
감사합니다^^
아랫동네는 언제 씻었으까이?
하하하하
그게 궁금 하셨나요
등목과 동시에 이루어
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