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대망의 개막전. 시민의 구장에서 놀위치를 맞아들였다. 놀위치라면 내가 언젠가 맡아본 팀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꿈속에서였나? 음... 여하튼 스트라이커 폴 맥베이와 마크 리버즈는 절대 얕볼 수 없는 선수들이었다.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원정경기라서 긴장했는지 적은 5-3-2 수비 전술을 들고 나왔다. 투톱이 수비의 시선을 끌때 중앙 미드필더 필립 멀린이 중앙 돌파를 시도할 작정인듯 했다. 저놈들.. 멀린의 능력치를 알고는 있는건가? -_-
전반 13분, 도슨이 올린 오른쪽 코너킥을 브리냘 거널슨이 헤딩으로 받아 넣는다. 세트 플레이를 신경써서 짜준 보람이 있군. 젊은 선수들이 새 지옥훈련에 적응을 못하고 줄줄이 뻘건 줄을 긋고 있는 마당에 도슨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다행히 어시스트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전반 32분. 거널슨이 가운데로 길게 연결해준 공을 데이비드 존슨이 받으려는 찰나 플레밍이 그를 민다. 심판이 정확하게 보고 페널티 킥을 선언. 생각보다 거널슨이 게임을 풀어나가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았다. 포라린슨은 페널티 킥을 쉽게 차 넣었다. 아이슬랜드는 신기한 나라다.
후반이 시작하고 상대는 3-5-2의 공격적인 전술로 바뀌어 있다. 그러나 오늘 중앙 미드필더 멀린의 활약은 가히 노팅엄의 스파이라 해도 모자라지 않을 상황. 자로 잰 듯한 그의 백패스는 역습에 다급한 우리 수비들에겐 겨울에 내리쬐는 한줄기 따스한 햇살과도 같았다... 라는 둥의 방심을 하고 있던 찰나, 우리 팀 수비수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너무나 순식간에 멀린 - 프랜시스 - 멕베이로 이어지는 삼각패스에 우리 수비진이 그대로 무너지면서 한골을 헌납한다.
후반 64분. 골키퍼와 일대일의 찬스에서 포라린슨의 헤딩슛을 로버트 그린 골키퍼가 쳐낸다. 그러나 이어진 코너킥 찬스에서 흘러나온 볼을 다시 데이비드 존슨이 길게 연결 포라린슨이 감각적인 헤딩으로 공의 방향을 살짝 틀어 골을 성공시킨다. 역시 코너킥이야 말로 축구의 꽃이자 노른자...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다. 2만 5천 관중은 모두 기립박수를 쳤다. 나는 우리팀에게 경고는 4개나 퍼부은 심판을 욕하면서 기분좋게 경기 후 인터뷰를 끝냈다. 구단 사무실로 돌아와보니 서포터고 구단회고 간에 별로 이긴걸 좋아하지도 않는다. 괜히 억울하다.-_-
사무실을 나오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아스톤 빌라에서 우리팀의 왼쪽 공격수 애덤 레이드에게 오퍼를 걸었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얼마? 라고 했다가 후회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300k라는 오퍼 금액을 듣고는 웃음만 날 뿐이었다. 750만 유로면 보내준다고 답해주었다. 메롱.
3일 뒤에 잉글랜드 커뮤니티 실드가 열렸다. 아스날이 7만2천 관중앞에서 맨유를 2:0으로 눌렀다. 그건 둘째 치고 마틴 키언, 실뱅 윌토르, 리오 퍼디난드가 부상 당하고 니키 벗이 퇴장당했다. 왠지 브라보.
다음 날은 리그컵 첫경기 카디프와의 경기가 있는 날이다. 한참을 고민했다. 리그 컵을 버릴 것인가. 그러나 결국 뛰는 쪽을 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팀에 돈이 없다. 흐... 결국 고민하다가 나는 하루 휴가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현실 도피는 언제나 달콤하다. 팀은 2:1로 이겼다. 췟 내가 없을때 져줘야 선수들이 나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절감할텐데. 아 휴가 나갔다가 지면 잘리려나.
리그 두번째 경기는 왓포드를 상대로 비카리지 로드에서 8월 16일에 열렸다. 왓포드라면 원정이라고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라고 생각하면 항상 뭔가 꼬이더라.
전반 18분 선취골을 먹었다. 얕보던 상대 스트라이커 대니 웨버의 골이었다. 아직 우리 수비의 손발이 그리 썩 잘 맞지는 않는듯 했다. 19세 중앙 수비수 듀오가 안정감을 찾아야 할텐데.
후반이 시작되어도 우리의 공격은 풀리지 않았다. 데이비드 존슨이 눈에 띄게 삽질을 하고 있었다. 골대로 향하는 슈팅이 하나도 없었다. 조커의 투입이 절실한 상황에서 우리의 특수무기 앨런 피어스가 출격했다. 딱 한건만 해주기를 기원했다.-_-
후반 69분. 심판의 정말 어이없기 서울역에 그지없는 판정이 이어지며 페널티킥을 허용하여 2:0이 된다. 어차피 타지도 않겠지만 경기장 잔디에 불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심판은 그후에도 우리팀에게 파울을 계속 불고 경고를 주는둥 정말 얼탱이 없는 경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후반 94분. 심판이 경기 종료 휘슬을 불기만 하면 내가 달려가서 이단 옆차기를 날리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말론 헤어우드가 한골을 만회한다. 내가 정말 가만 안두려 했었는데... 말론을 봐서 참는다. 결국 경기는 2:1로 우리가 패배했다.
시합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데이비드 존슨에게 한마디 하려다가 참았다. 아직 시즌 초반이라 전술이 적응이 안되어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망할 심판놈.
8월 23일. 선더랜드와의 경기가 열렸다. 선더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내려온 팀이다. 부자는 망해도 석달은 간다고 했다. 삼년이었던가? 십년이었나? 에이 설마 강산이 변하는데.
어쨌든 어려운 원정 경기가 될 듯 했다. 선수들에게 주눅 들지 말고 강하게 부딪혀 나갈 것을 주문했다. 심판이 또 뻘짓하면 내가 경기장에 불을 질러버리겠다고 했다. 거널슨이 그럼 우리는 타죽는건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한국어로 즐이라고 해줬다. 선수들이 혼란스러워했다.
전반 초반 결정적인 찬스를 두번 잡았으나 포라린슨의 헤딩슛을 상대 골키퍼 로이 캐롤이 연신 선방한다. 그리고 심판이 슬슬 이상한 판정을 시작한다. 이건 뭐 홈경기면 다야? 로이 캐롤은 전반 끝날때까지 찬스란 찬스는 다 막아낸다. 이건 뭐 치트키에 당한 느낌이다. 젠장. 그러나 전반 45분 포라린슨이 보란듯이 로이 캐롤에게 돌진해서 그를 실려 나가게 한다. 이쁜이같으니라고.
후반 초반 주도권은 잡았으나 데이비드 존슨의 무리한 돌파가 이어지며 공격이 번번히 끊긴다. 저놈 저거 안되겠다. 유심히 보면 우리팀 공격은 항상 존슨이 공잡으면 끝이다. 교체도 필요하겠지만 스타팅 멤버 자체를 좀 조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만드는군.
후반 88분.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승골이 터진다. 유효슈팅 8개의 파상 공세 속에서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번번히 막히던 공격이 드디어 말론 헤어우드에 의해 한방을 먹이는데 성공한다. 말론은 체력이 떨어질때쯤 해서 정신력이 살아나는 스타일인가?
휘슬이 울렸고 경기장은 조용했다. 우리팀 선수들은 환호했다. 난 당당히 걸어가서 심판과 악수를 하고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과연 구단회역시 오늘 승리에 즐거워했다. 감독의 주급을 올려주는 결정은 아직인듯.
다음 경기는 8월 30일 홈구장 시민의 구장에서 열렸다. 상대는 브래드포드 시티였다. 이번 경기까지 마지막으로 데이비드 존슨에게 기회를 주고 이번에도 운동장에서 공대신 삽을 차고 있다면 가차없이 스쿼드를 재편성할 계획이었다.
조용한 전반전이 끝나고, 결국 후반 68분 데이비드 존슨은 아까운 기회 두개를 놓친채로 교체된다. 왼쪽 날대 앤디 레이드가 부상당했다. 치사한 브래드포드놈들.
후반 89분. 앨런 피어스는 놀랍게도 골키퍼와의 일대일 찬스에서 백패스를 했다. 저런 빌어먹을 분을 봤나.
결국 경기는 0:0의 지리한 공방전으로 종료되었다. 슈팅수는 12개. 그중에 골문을 향한것은 7개. 그러나 0골. 한심한 수준의 공격력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공격수들을 매섭게 질타했다. 스쿼드는 교체될 것이다.
결국 데이비드 존슨과 포라린슨의 자리를 바꾸었다. 중앙 공격수는 17세의 아이슬랜드 공격수에게 넘어간 것이다. 이 변화를 시험해볼 좋은 시회가 바로 다음 리그 경기였다. 우승후보 1순위 웨스트 햄과의 원정 경기.
데포에라는 2부 리그에선 셰브첸코 부럽지 않을 사기 공격수를 어떻게 막느냐도 문제였지만 과연 이놈의 공격진이 언제쯤 제대로 된 활약을 펼쳐줄 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전반전은 비교적 만족스러운 경기를 펼쳤다. 0:0으로 끝났지만 주도권은 우리가 쥐고 있었다. 문제라면 데이비드 존슨이 자리를 옮겨가서도 일대일 찬스 세번을 내리 허공으로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저 선수가 연습경기때 골폭풍을 몰아치던 우리팀의 10번 선수가 맞나?
후반 시작과 동시에 데이비드 존슨이 또 한번의 일대일 찬스를 놓친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선수가 한번 감독의 눈밖에 나면 그 다음에는 더욱 슬럼프에 빠지기 마련. 한동안은 그를 기용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하여 기껏 교체하는 것이 일대일 찬스 백패스의 주인공 앨런 피어스였다.
후반 54분 단 한번의 공격에 우리 수비진이 무너졌다. 멀린스에게 한골을 헌납한 것이다. 팀의 총체적 난국이었다. 저 한 선수의 삽질로 인해 공격진 전체가 힘을 잃었다. 잘하던 헤어우드도 덩달아 삽을 들기 시작했다. 피어스는 말할 것도 없었다.
후반 87분 포라린슨이 일대일 찬스에서 백패스를 했다. 후반 94분에는 오른쪽으로 공을 몰고 들어가던 포라린슨이 공을 바깥으로 차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났다. 갑자기 위기감이 들었다. 공격진을 보강해야 겠다.
A매치 데이가 지나고 약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냉정하게 다시 한번 생각했다.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희망하는 것 뿐이었다. 팀의 자금은 바닥이고 선수들은 아직 사기가 떨어진건 아니었다. 마침 유로2004 예선 덕분에 일주일간 휴식을 가질 수 있었으니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9월 13일 시민의 구장에서 길링엄을 불러들여 경기를 가졌다. 이번에야 말로 슬럼프를 탈출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선수들의 각오는 대단했다. 오늘은 무조건 이기리라 다짐하며 경기장에 나섰다.
전반전이 시작되고 파상공세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골을 넣는법을 잊어버린것 같았다. 특히 데이비드 존슨은 더이상 말이 필요없었다. 그는 공격수라기보단 상대 수비수 하나를 편하게 해줄 허수아비 같았다. 전반전의 수십개의 슈팅의 파상공세 속에 상대 골문을 향한것은 단 세개. 그것도 골키퍼 정면이었다.
쉬는 시간 내내 선수들에게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고 곧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후반 시작하기 무섭게 마이클 도슨이 부상당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뛰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나는 그대로 경기를 진행하게 했다. 마침내 왼쪽 코너킥에서 도슨이 올린 공을 거널슨이 헤딩으로 받아넣었다. 후반 64분의 일이었다. 첫경기에서의 결승골을 떠올리게 하는 멋진 세트 플레이였다.
근 한달여만에 골이 터지자 선수들은 부담을 덜고 더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후속골은 터지지 않았다. 결국 경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들은 일류선수가 아니었다. 국가대표가 아닌 것이다. 2부리그 소속의 축구 선수였고, 나는 너무 많은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포라린슨은 8개의 슈팅을 아무렇게나 남발했다. 데이비드 존슨은 헤딩 18개중에 2개만을 따냈다.
1:0의 승리도 같은 승점 3점이다. 나는 선수들에게 만족하면서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9월 20일 크리스탈 팰러스와의 원정경기가 있었다. 리그 19위의 크리스탈 팰리스는 정말 꺾어야만 하는 팀이었다. 선수들에게 화이팅을 외치고 경기에 나서려 했는데 안타깝게도 영국인들은 화이팅이라는 말을 안쓴다는걸 깜박했다. 한참동안이나 선수들은 누가 싸운다는건지 두리번거렸다.
마이클 도슨이 부상으로 빠진터라 힘든 경기가 될 듯 했다. 원정경기지만 꼭 이겼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과연 전반 시작 5분만에 오랜만에 포라린슨이 골을 성공시켰다. 다시 데이비드 존슨을 중앙으로 넣고 오른쪽 사이드로 뺀 포라린슨이 부담감을 털고 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하지만 전반 18분 바로 동점골을 허용했다. 코너킥 상황에서 상대 스트라이커 프리드먼을 놓친 것이다. 마이클 도슨의 빈자리가 뼈아팠다. 그로부터 5분후 드디어 데이비드 존슨이 길고 긴 슬럼프에서 탈출하는 멋진 골을 성공시킨다. 그야말로 숨가쁜 접전이다.
전반 47분 말론 헤어우드가 골키퍼 키를 넘기는 독수리 슛을 성공시키면서 3-1로 앞서나갔다. 쓰리톱이 모두 골을 성공시킨 멋진 장면이었다. 감독을 맡은 뒤 처음으로 세골이라는 대량득점을 했다. 그것도 전반전에만.
후반전에는 우리 수비수들이 크리스탈 팰리스의 파상 공세를 잘 받아내며 결국 3-1의 승리를 지켜냈다. 선수 대부분이 고른 활약을 보여준 신승이었다. 우리팀은 4승 1무 2패로 6위에 랭크되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 기자들을 잔뜩 불러놓고 포라린슨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았다. 금방 팀의 팬들이 이 어린 스트라이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저 팬들중에는 여자도 많을 듯했다. 왜 나를 칭찬할 수는 없는거지?
9월 23일 리그컵 경기가 있다. 확실히 일정이 빡빡해지는 것이 안좋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하긴 해야지. 일단 나는 하루 휴가를 갈 계획이다.-_- 잘리지는 않겠지?
과연 경기는 승리했고 나는 잘리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리그컵 3라운드 상대는 아스톤 빌라로 결정났다. 이길 수 있으려나.
9월 27일. 이것봐라. 빡센 스케쥴이다. 위간과의 홈경기가 있다. 거의 최하위 팀이긴 하지만 방심하다간 당할 수도 있지 않은가. 홈경기이니만큼 확실하게 승리해야한다.
전반 내내 파상공세를 펼치던 우리팀, 7개의 코너킥과 15개의 드로잉끝에 마침내 41분에 앨런 피어스가 감격적인 데뷔골을 터뜨린다. 열심히 뛰는거 하나는 알아주는 어린 스트라이커다. 헤어우드가 부상당한 사이에 첫 선발 출장에서 바로 골을 터뜨리다니.
후반전에도 앨런 피어스의 활약이 눈부시다. 게임 끝나기 3분 전에는 어시스트도 하나 추가한다. 골은 데이비드 존슨의 차지. 결국 MOM을 차지하는 앨런 피어스. 생각보다 뛰어난 공격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직 머리에 피도 안마른 놈이다. 기어오르면 곤란하다.-_-
9월 30일. 잊을만한 때가 된것 같아 체스터필드에게 이제 그만 케빈 도손을 넘기라고 슬슬 꼬드겨 보았다. 바로 대답이 없는것을 봐서는 역시 저 얌체들도 형제가 함께 중앙수비를 보는 가슴따듯한 장면이 궁금하긴 한 모양이다.
그러나 체스터필드 또 거절. 저놈들은 케빈 도손을 네스타로 착각하고 있다.
첫댓글 야- 재밌네요..ㅎ 앞으로도 계속 건필해주세요..ㅎ 이런 류의 자서전은 또 색다른 맛이 있다는..ㅎ
여기 여러글중에 제일 맘에 드네요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