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몇살이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젊은 청년이었고 어머니는 고운 색시였다. 할머니는 병이 나 누워 계셨고 할아버지는 우리집 담 밑에서 지팡이를 든 채로 춤을 추고 계셨다. 아침해가 불그스레 떠오르고 아버지는 멸치 잡이에 나가시고 없었다.
그 날 새벽 아버지가 멸치를 많이 잡아 올렸다고 했다. 지난 밤 어머니가 다섯번째의 첫 아들을 본것이었다. 할아버지의 두 번 째 아들 우리 아버지가 아들을 보았다고 할아버지가 춤을 추고 있는 것이었다. 몇 년만에 경사가 일어난 것이 었다. 유난히 밝은 해가 동그랗게 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어머니는 첫밥을 해 줄 사람이 없어 손수 밥을 짓고 있었다.
낮이되어 어머니 따라 바닷가로 내려갔다. 지난 밤에 잡아 온 멸치들을 말리느라 한창이었다. 어제 해산한 어머니도 오늘 멸치 말리는 일에 가담하고 있었다. 그런데 멸치가 하나같이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나는 "엄마, 멸치가 하품을한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엄마는 아버지께 "말이가 멸치가 하품을 한대서요"하고 일렀다. 나는 잘못말했나 싶어 수줍어졌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마주 웃었다.
내 위로 언니 둘이 있었다. 딸은 끝내도 아들을 보게 해 달라고 이름을 말이라고 지었단다. 그러나 이름이 아들을 데려 오지는 못했다. 내 터울에 또 딸을 낳았다. 그리고 나서 다섯번째 아들을 본것이었다. 큰언니 부터 태어난 아이를 줄줄이 젓만 떨어지면 아버지는 팔을 내어주고 주무셨다. 머리도 아버지가 갂아 주시고 목욕도 아버지가 시켜주시고 몸에 상처가 나면 약도 아버지가 발라 주셨다,
어머니의 기억은 그리 많지가 않다. 밤이면 엄마가 우셨다. 그바람에 우리 자매들이 따라 울었던 기억밖엔 없다. 어머니께 야단 맞으면 아버지가 편들어 주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저녁마다 아버지 등에 업혀 큰 집 할아버지께 저녁문안을 갔다. 아버지의 등은 넓고 아늑했다. 층계를 오를때는 구름을 탄것처럼 우쭐해졌다. 큰언니는 어머니께 둘째언니는 할머니께 나는 할아버지께 보살핌을 받았다.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꾀 친하게 지넀다. 우리집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께 전했다. "아버지는 밭에서 키운 담배를 피우자하고 엄마는 봉초를 사서 피우자 하다 사웠다"고 일렀다. 우리집 전봇줄이라고 엉덩이를 쳐 주시고 좋아하든 할아버지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나는 밥만 먹으면 할아버지와 놀았던 기억이 있다. 할아버지의 햐얀 수염도 기억된다.
어느 날 할머니는 친정집 질녀가 데려온 침술사 한테서 침을 맞고 돌아 가셨다. 내 가슴에 작대기를 뽑아 달라고 소리소리 지르다 그 날 새벽에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금술 좋으시던 할아버지는 할뭄 할뭄하고 우셨다. 나에게 할아버지 이름은 영감 할머니 이름은 할뭄이었다. 그 안타까움은 아직도 가시지를 않는다.
큰아버지는 아들 두명만 두어 사촌이지만 오빠가 두명이 있었다. 사촌 큰오빠가 결혼할 때 내 나이 일곱살이었다. 큰 오빠 결혼식한 저녘에 나는 노래 쟁이가 되어 업혀갔다. 아랫집에 사는 연이라는 처녀가 색시방에 나를 내려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색시 구경에 모여 있었다 자다가 업혀온 나는 영문도 모르고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사전에 이웃집 정애 엄마가 가르쳐 준 노래였다.
<각시 각시 고분각시 친정가서 죽었다네 진작이나 알았으면 불사약을 지을거로 약방안에 약이 없나아다시 가방에 돈이 없나>를 유창하게 불렀다. 그리고 또 재창이 이어졌다. "박귀업아 문열어라 김갑선이 차로든다. 박귀엽아 요깔아라 김갑선이 차로 든다" 노래의 뜻도 모르고 그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눈을 쓱쓱 비벼가면 노래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새색시가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돌아 앉는 것이었다. 시골 새색시 방에 웃음이 꽃피는 시간이었다.
세월은 나를 이제 할머니를 만들어 놓았다. 그 때만 생각하면 웃음이 저절로 흐른다. 내 생에 제일 인기가 있었던 것이 그 때이다. 가끔 그 때를 돌아가 본다 안타까운 것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내 이름을 한 번 불러보는 것이 었다. 일곱살인 나도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세월은 모든 것을 다 씻어갔다. 내 유년의 빤짝이든 기억력과 눈빛도 말이다.
첫댓글 유년의 추억을 잔잔하게 서술하셨군요. 어릴 때의 일은 세월이 지나도 잘 잊혀지지 않지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선생님~~^^오늘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먹먹한 거 같으면서도 웃음이 나네요. 재미있다고 하면 결례가 될까요. 머물다갑니다.
고맙습니다~~수연선생님^^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
그 시절 아들에 대한 기대는 참으로 대단 했나봅니다
이제 남아 선후사상도 많이 변했지요? 너울선생님~~^^감사합니다~~
여러대에 걸쳐 형성한 나름대로의 가족사가 아름답습니다
늘 건강 하세요
감사하고 고맙습ㄴ다~~초록꿈님~~건강 챙기시고 편안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