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덕분에 상암 스카이박스에서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12인용 방인데 가격이 200만원대라 부잣집이나 기업 행사 아니고서는
들어가기 곤란한 곳이죠. 초청 티켓이 있어서 친구네 가족, 친척이랑
함께 보고 왔습니다.
오늘 경기 보고 앙골라에 대해 실망하신 분들 많으리라 봅니다.
저도 좀 그랬구요. 워낙 날씨가 추워서(경기 시작할 때 영상 2도,
후반 중반부턴 눈이 내렸죠-_-) 앙골라 선수들은 물론 한국
선수들도 플레이에 애로 사항이 꽃피었던 것 같습니다.
축구하기엔 너무 안 좋은 날씨였던 것을 감안하면 한국팀의
경기력은 상당히 훌륭했습니다. 찬 공기와 낮은 기온 때문에
체력 회복이 더디어서 선수들이 계속해서 몰아치는 경기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마 TV로 시청하신 분들이 보기엔
조금 지루한 부분도 많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산뜻한 선홍색 유니폼을 입고 나온 대표팀은 가벼워 보이는
유니폼만큼이나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압박이 매우
잘 이루어졌고, 몸이 잘 풀리지 않은 듯한 앙골라 선수들이
당황하면서 실수를 연발했죠. 게다가 시작하자마자 박지성이
수비 3명을 제치며 골찬스를 만들어 기선을 확실하게 잡았습니다.
이후 전반은 거의 하프 게임이 되버려서 조금 김이 빠졌습니다만..
오늘 특히 좋았던 부분은 미드필더 간의 협력 수비와 패스 연결
이었습니다. 해외파의 합류로 미들진 3명이 교체되었지만
패스 연결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만큼 국내파
선수들의 패스 수준이 상당하게 높아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측면 플레이도 아주 훌륭했습니다. 이영표가
오른쪽으로 옮겨 오버래핑보다는 수비에 치중한 모습을
많이 보였지만 간간히 이천수와 호흡을 맞추며 측면 장악을
잘 해주었습니다.
선수들 중에서는 역시 박지성이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했고,
국내파 중에서는 이천수가 가장 눈에 띄더군요.
10cm 이상이나 신장차이가 났음에도 몸싸움에 밀리지
않았습니다. 뭐 힘으로 이겨냈다기 보다는 거의 깡으로
견뎠다는 표현이 적당할 듯^^ 가끔씩은 뒤에서 온 몸으로
상대를 덮치거나 밀기도 하는 등, 정말로 죽어라
뛰더군요. 윙포의 역할인 수비 가담역시 확실했습니다.
최후방 수비 바로 앞선까지 내려와서 수비해 주더군요.
티비로 볼 때는 측면 돌파가 잘 안되고 답답해 보였지만
현장에서 가까이서 보니 이천수가 위협적이라는 말이
공감되었습니다. 그 작은 몸으로도 상대와의 몸싸움을
견뎌가며 측면 돌파를 하고, 역습시에는 빠른 스피드로
상대 수비를 정신사납게 만들더군요.
미드필더가 참 패스하기 편한 선수입니다. 패스 길이
생각하지 않고 적당히 앞으로 차 주면 이천수가
따라잡아주거든요^^
그리고 미들 진영에서 우리 선수가 실수를 해서
볼을 뺏길 때 근처에서 컷트해주는 역할이 아주 좋았
습니다. 측면으로 박지성이나 이영표가 오버래핑
했을 때는 이천수가 중앙으로 내려 오면서 상대
역습을 많이 끊어 주었습니다. 박지성을 제외하면
오늘 경기의 수훈 선수로 꼽아도 괜찮을 만한 활약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동국 선수는 다소 볼 트랩이 의도한 대로 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첫번째 터치가 잘 안되기
때문에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더군요. 하지만 장신의 육중한 토고 선수들
사이에서 몸싸움을 많이 해주면서 수비진을 많이
헤집어 주었습니다. 이번 경기 내내 세트피스 상황에서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하지 못했습니다. 토고의 장신
수비수에 밀려 제대로 된 슈팅을 기록하지 못했는데,
그나마 이동국이 볼경합을 많이 해주었지만 단신의
다른 선수들이 힘을 쓰지 못해서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동국이 골문 근처에서 볼을 받았지만 제대로
돌아서지 못한 채 상대 수비에 막혀 버린 장면이
몇 차례 있었는데, 물론 이동국이 기막히게 돌아서서
좋은 기회를 만들어 슈팅까지 연결했으면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뒤에는 토고 선수 3명 이상이
길목을 다 막고 있었기 때문에 슈팅하기란 상당히
힘들었고, 그렇다고 이동국 뒷 쪽을 받쳐
주는 선수가 없었기 때문에 내주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이리저리 턴을 하려다 타이밍이
늦어 실패..
이동국이 볼을 잡았을 때 바로 뒤에 접근해서 리턴
볼을 슈팅으로 연결하는 선수가 없었던 점이 아쉬웠습니다.
대개의 경우, 선수들이 좌우로 쫙 벌리기만 했거든요.
가장 쉽고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포스트-리턴 슈팅(조기
축구회에서도 많이 연습하죠^^) 플레이를 잘 활용하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습니다.
박지성은 뭐...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되죠. 군계일학..
이제는 확실히, 볼의 흐름을 잘 알고 플레이하더군요.
흘리는 게 낫다고 판단할 땐 흘리고, 볼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 게 나을 땐 페인팅 한 번 걸어주고
볼에 발을 대지 않은 채 볼과 함께 나아간다던가,
"주심은 절대 휘슬을 불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몇 차례나 수비의 거친 플레이에 밀려
넘어져도 끝까지 달라 붙어 돌파를 해내는 장면들,
입국 1일만에 경기를 나서면서도 "시차 적응이 안되어
경기를 못한다는 건 어차피 핑계"라는 말로 질문자를
무색하게 하는 인터뷰까지..참 대단한 선수입니다.
원래 볼란치 역할을 했었고, 볼의 연결 고리 역할을
잘 하던 선수였지만, 이제는 공격 지역에서 스루
패스까지 능수능란하게 해내는 진정한 살림꾼이
되버린 듯..
날씨가 정말 추웠습니다. 스카이박스는 실내에서도
경기를 볼 수 있게 되어 있어 음식(뷔페식으로
제공됩니다)먹으며 따뜻하게 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뜨거운(시끄러운?ㅋ) 현장의 느낌을
받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토고 선수들은 정말 희안한 경험을 했을 것 같네요^^
축구장에 눈이라니..
미들 진영에서 완벽하게 압도를 한 게임치곤
득점이 저조했던 게 아쉽지만, 분명 지난 스웨덴,
세르비아 전에 비해 업그레이드가 된 전력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복잡한 지역에서 볼을 뺏기지 않고 풀어가는 방법과
압박을 할 때 루즈볼이 떨어지는 길목을 찾아 볼을
따내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더군요.
공격 부분은 여전히 아쉽고 미흡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미드필더가 많고, 윙포들이 체력이
좋고 활동이 왕성하다는 게 한국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모자라는 부분을 메꿔가면서 호흡을
쌓아가면 분명 더욱 강한 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한국의 특징이 빠른 공격과 강한 공격수, 일본이
세밀한 미들플레이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는데, 이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의 미드필더들 정말 뛰어납니다.
기술은 물론 파워와 체력까지...
히딩크 때의 대표팀이 엄청난(정말 무시무시했었죠)
체력을 앞세워 공간을 선점해서 경기를 압박하는
스타일로 수비를 최우선시하며 상대의 실수를 노리는
팀컬러를 지닌 반면, 현 대표팀은 2002년 팀 만큼의
피지컬은 가지지 못했지만, 기술적으로 더욱 진보된
팀인 것 같습니다. 세련미가 있다고 해야 할지^^
무지막지한 운동량으로 압박하기보다는 패스 코스를
선점하고, 협력 수비를 통해 볼을 뺏어내는 점이나
무조건 가까운 선수에게 안전하게 패스하는 게
아니라 패스의 길을 보려고 노력하는 점 등,
기술과 창의적인 부분에서 2002년 팀을 넘어설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대표팀 선수들의
퍼스트 터치를 유심히 지켜보면, 몸에 바짝
붙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볼의 흐름을 살리면서
상대의 움직임을 이용한 동작들이 매우 많이
나타납니다. 한마디로 머리를 쓰며 경기를
한다는 거죠. 4-3-3이라는 어려운 전술을
한국이 비교적 매끄럽게 구사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는데..^^
실제 월드컵에 가봐야 알겠지만 참 많이
변모했습니다. 앞으로가 계속 기대되는군요.
카페 게시글
…… 축구 토론장
[후기]
상암 다녀왔습니다^^ 스카이박스에서 관람~
금상섭
추천 0
조회 882
06.03.02 02:1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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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럽습니다..저도 그런박스에서 경기관람좀..-_ㅠ
무엇보다 4백이 좋아졋다는거죠. 물론, 미흡한점도 드러나지만 그런 부분 때문에 피할게 아니라 부딪쳐 고쳐나가야겟죠. 스카이박스 ㅎㅎ 좋았겠다.
제대로된 관전평 제대로된 축구팬이신거 같네요 어떤근거도 없이 무작정 이건 아니다란 식으로 씹어되는 몰상식한 여기게시판 여러명하곤 정말 틀린 제대론된 글입니다
카페에 03년에 가입했습니다. 지금까지 본 글중에 제일 좋네요.현장감이 살아납니다. 이런 글들이 많아지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