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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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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아버지의 집으로 가고 싶다 외 / 이상국
동산 추천 1 조회 70 13.11.21 12:0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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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집으로 가고 싶다 / 이상국 

 

 

벌써 오래 되었다

부엌 옆에 마구간 달린 아버지의 집을 떠나

마당도 굴뚝도 없는 아파트에 와 살며

나는 그게 자랑인줄 알았다  


이제는 그 부드러운 풀이름도 거반 잊었지만

봄 둑길에 새 풀이 무성할 때면

우리 소 생각난다  


어떤 날 저녁에는

꼴짐 지고 돌아오는 아버지 늦는다고

동네가 떠나갈듯 우는 울음소리도 들었다  


이제는 그 소도 아버지도 다 졸업했다고

이 도시의 시민이 되어 산지 오래인데도

우리 소 잘 먹던 풀밭 만나면

한 짐 베어지고

그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폭설 / 이상국 

 

 

곡(哭)을 하다 배고프면 국수를 먹었다


처음에는 두 형님과 소리가 엇갈렸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곡은 어우러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살다 이렇게 가는구나 하며
나는 속으로 아는 체를 했다
 

꼬질대가 휘도록 눈은 퍼붓고
차일 밖에서 마른 눈을 삼킨 개들이
컹컹 기침을 했다
 

문상객들은 눈을 털며 들어와
양초나 문종이로 부조를 하고는
피가 비치는 돼지고기에 독한 소주를 먹으며
내년 농사 걱정을 했다
 

눈은 잠처럼 쏟아지고
영정 속의 어머이는
졸리면 형들에게 맡기고 들어가 자라 했으나
나는 추우면 화로불을 쬐다가 다시 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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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떡 / 이상국  

 

 

하지가 지나면

성한 감자는 장에 나가고

다치고 못난 것들은 독에 들어가

가을까지 몸을 썩혔다

헌 옷 벗듯 껍질을 벗고

물에 수십번 육신을 씻고 나서야

그들은 분보다 더 고운 가루가 되는데

 

이를테면 그것은 흙의 영혼 같은 것인데

 

강선리 늙은 형수님은 아직도

시어머니 제삿날 그걸로 떡을 쳐서

우리를 먹이신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 이상국 

 

 

감자를 묻고 나서

삽등으로 구덩이를 다지면

뒷산이 꽝꽝 울리던 별

 

겨울은 해마다 닥나무 글거리에 몸을 다치며

짐승처럼 와서는

헛간이나 덕석가리 아래 자리를 잡았는데

천방 너머 개울은 물고기들 다친다고

두터운 얼음옷을 꺼내 입히고는

달빛 아래 먼길을 떠나고는 했다

 

어떤 날은 잠이 안 와

입김으로 봉창 유리를 닦고 내다보면

별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봄을 기다리던 마을의 어른들이

별똥이 되어 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하늘에서는 다른 별도 반짝였지만

우리 별처럼 부지런한 별도 없었다

 

그래도 소한만 지나면 벌써 거름지게 세워놓고

아버지는 별이 빨리 돌지 않는다며

가래를 돋워대고는 했는데

 

그런 날 새벽 여물 끊이는 아랫목에서

지게 작대기처럼 빳빳한 자지를 주물럭거리다 나가보면

마당에 눈이 가득했다

 

나는 그 별에서 소년으로 살았다

 

 

 

 

 

 

 

있는 힘을 다해 / 이상국

  

 

해가 지는데

왜가리 한마리

물속을 들여다 보고 있다

 

저녁 자시러 나온 것 같은데

 

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

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릴 처박는 걸 보면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똬리 다섯 개 / 이상국


 

 배다리 솔밭 살던 장수 아버지 별명이 똬리 다섯 개, 아잇적부터
물건이 하도 커 거짓말 좀 보태면 홍두깨만해서 물동이 이는 똬리
다섯 개를 걸어도 끄떡없었다. 이게 수캐처럼 처녀 과부 안 가리고
밤낮 없이 껄떡거리는 바람에 사람 축에도 못 들고 몰매똥매 숱해
맞았다. 어느 해 봄 이웃집 닭에다 그 짓을 했다고 온 동네가 수군
거리자 장수 할아버지 아예 뒈지라고 뒤란 도라무깡에 엎어놓고
집채 만한 돌로 눌러놓았는데 밤이 되자 땅 파고 기어나와 또
과붓집을 기웃거렸다는 장수 아버지,


올 봄 저 세상 가며 그 좋은 물건도 가지고 갔다

 

 

 

 

  

 

 

딸부잣집 낙수 소리 / 이상국 

 

 

내 말이 그 말이어유 글쎄
저 냥반은 그거시 어째서 그렁가
쇠딱따구리 소리만 났다 허면
벌떡허니 나가 장작을 패드라구유
굴뚝 모탱이구 마루 밑구녕이구
틈새기 읍시 꽉꽉 쟁여 놨었응게
아매두 부엌 아궁이가 그것덜
모다 먹느라구 입깨나 아펐을뀨
산내기 꼬는 것두 하루 이틀이지
밤 질구 방 뜨건디 저 양반은 글쎄
바까티만 뜨겁구 안은 안 뜨건가
나만 맨날 맷돌 밑짝 맹글데유
웃짝 밑짝 그러다봉게 이리 됐지유  

 

 

 

 

Waiting ...(02)

  

 

 

나도 보험에 들었다 / 이상국 

 

 

좌회전 금지구역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다
택시기사가 핏대를 새우며 덤벼들었지만
나도 보험에 들었다
문짝이 찌그러진 택시는 견인차에 끌려가고
조수석에 탔다가 이마를 다친 남자에게
나는 눈도 꿈쩍하지 않고
법대로 하자고 했다
나도 보험에 들었다
좌회전이든 우회전이든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나의 불행이나 죽음이 극적일수록
보험금이 높아질 것이고
아내는 기왕이면 좀더 큰 걸 들지 않은 걸 후회하며
그걸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가구를 바꾸며
이 세계와 연대할 것이다
나도 보험에 들었다

 

 

 

 

 

 

돌배나무와 면장 / 이상국

 

 

강선리 사람치고
은직이 아저씨네 돌배 안 따 먹고 큰 사람 있으면 나와봐라
걸립패 상쇠 놀고
상여머리 선소리 청승맞던
은직이 아저씨 들일 나가면
물매질하고 장대로 털어 먹던
그 사근사근하고 달착지근한 맛
모르는 사람 없었지
깨밭 다 망친다고
이악쟁이 할멈 '베락이 맞을 놈들'이라고 쫓아오면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다가도
다시 모여들던 나무 밑
그 아저씨 자식 하나 못 남긴 채 돌아가고
그 큰 돌배나무 작년에 없어졌다
칠성이 어머니가 그러는데
'면장질 하던 눔'이 우물 파준다며
즈이 집 치장하려고 뿌리째 캐갔단다
참 더러운 면장이다 

 

 

 

 

 

 

봉희네 / 이상국

 

 

그해
마구간 딸린 집 한 채에
궁둥이 먼저 디밀어야 하는 뒷간 옆 돌배나무와
애호박처럼 애리애리해도
억척스럽기 칡줄기 같은 처와 함께
어스럭송아지 앞세우고 세간을 났다
스물일곱에 장가 들고 이듬해 봄
양지 쪽 어린 풀포기들 샛바람에 떠는 날
세상 한가운데 나앉았다
한번 시동 걸어놓으면 멈출 줄 모르는 기계처럼
다시 스무 해 넘게 농토에 엎드렸지만
강선리는 자꾸 지구에서 지워져간다
칠 벗겨진 슬레이트 지붕 아래
아직 안테나를 따로 장만치 못해
주말 연속극이 잘 나오지 않는 TV를 들여놓았고
비온 다음날 돌담 밑 원추리 순 돋듯
비수 같은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죽은 땅을 뚫고 올라왔을 뿐
나라가 뒤집어진다 해도 봉희네는 지킬 게 없다
 

 

 

 

 

  

 

 

 

무밭에서 / 이상국  

 

 

무는 제 몸이 집이다

안방이고 변소다

저들이 울타리나 문패도 없이

흙속에 실오라기 같은 뿌리를 내리고

조금씩조금씩 생을 늘리는 동안

그래도 뭔가 믿는 데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완성해가다가

어느날 농부의 손에 뽑혀나갈 때

저들은 순순히 따라 나갔을까, 아니면

흙을 붙잡고 안간힘을 썼을까

무밭을 지나다가

군데군데 솎여나간 자리를 보면

아직 그들의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손을 넣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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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 이상국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개울물이 밤새 닦아놓은 하늘로
일찍 깬 새들이
어둠을 물고 날아간다

산꼭대기까지 물길어 올리느라
나무들은 몸이 흠뻑 젖었지만
햇빛은 그 정수리에서 깨어난다

이기고 지는 사람의 일로
이 산 밖에
삼겹살 같은 세상을 두고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나는 벌레처럼 잠들었던 모양이다

이파리에서 떨어지는 이슬이었을까
또다른 벌레였을까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을 닫히고
어둠의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 이상국 

 

 

흐르는 물이 무얼 알랴
어성천이 큰 산 그림자 싣고
제 목소리 따라 양양 가는 길
부소치 다리 건너 함석집 기둥에
흰 문패 하나 눈물처럼 매달렸다

나무 이파리 같은 그리움을 덮고
입동 하늘의 별이 묵어갔을까
방구들마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어둠을 입은 사람들 어른거리고
이 집 어른들 세상 출입하던 갓이
비료포대 속에 들어 바람벽 높이 걸렸다

저 만리 물길 따라
해마다 연어들 돌아오는데
흐르는 물에 혼은 실어 보내고 몸만 남아
사진 액자 속 일가붙이들 데리고
아직 따뜻한 집

어느 시절엔들 슬픔이 없으랴만
늙은 가을볕 아래
오래 된 삶도 짚가리처럼 무너졌다
그래도 집은 문을 닫지 못하고
다리 건너오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밥상에 대하여 / 이상국 

 

 

오래 받아먹던 밥상을 버렸다

어느날 다리 하나가 마비되더니

걸핏하면 넘어지는 그를 내다버리며

누군가 고쳐 쓰겠지 하면서도 자꾸 뒤가 켕긴다

아이들이 이마를 맞대고 숙제를 하고

좋은 날이나 언잖은 날이나 둘러앉아 밥을 먹었는데......

남들은 어떻게 살런지,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밥상머리에서 내가 지르는 호통소리에

아이들은 눈물 때문에 숟가락을 들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아내는 공연히 밥알을 줍거나

물을 뜨러 일어서고는 했지

나는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나의 가족들에게, 실은 나 자신을 향하여

어떤 때는 밥상을 두드리고 숟가락을 팽개치기도 했지

여기저기 상처난 몸으로 그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끼 밥을 위하여 종일 걸었거나

배를 있는 대로 내밀고 다니다가

또 어떤 날은 속옷 바람에 식구들과 둘러앉아

별일도 아닌 일에 밥알이 튀어나오도록 웃던 일들을

그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오래 받아먹던 밥상을 버렸다

그러나 그가 어디 가든 나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안다

 

 

  

 

 

 

  장을 바라보며 / 이상국

 

 

  동학말 보천교군 할아버진
  솔밭으로 대숲으로 바람되어 다니시고
  할머니는 별빛만 바라보셨습니다.

  큰 아버님 구름에 섞여 먼 북간도에 가시고
  징용 나간 숙부님 재가 되어 솔밭으로 오셔도
  할머닌 빨래만 하셨습니다.
  무명을 바래듯
  할머니 사랑은 희고 희어서
  강물에 빨래만 하셨습니다.

  소지 사루듯
  소지를 사루듯
  푸른 기와집 난리통에 연기로 올리고
  울안팎 하늘 땅만 지키시다가
  먼 산 그림자 지고 날 저물면 머리만 곱게 빗으시다가
  할머닌 오동나무장의 옹이무늬 되셨습니다. 

 

 

 

talking about the Kyoto protocol

 

 

 

울면서 운전을 하다 / 이상국

 

 

어버지가 첩을 들여

어머니는 ?겨나고

밤낮없이 꼬집히고 굶던 소년은

눈보라치는 겨울

먼 데 시집간 누나를 찾아 나서는데...

울면서 운전을 한다

마치 내가 그 에프엠 방송 속의 소년인 양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울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울면 지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니까 좋다

방죽의 물이 빠져나가듯

헛간에 햇빛이 들듯

나도 내 설움에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운전을 한다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 / 이상국

 

혹시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
집집마다 걸려 있는 오징어를 본적이 있는지
오징어 배를 가르면
원산이나 청진의 아침햇살이
퍼들쩍거리며 튀어오르는 걸 본 적이 있는지
그 납작한 몸뚱이 속의
춤추는 동해를 떠올리거나
통통배 연기 자욱하던 갯배머리를 생각할 수 있는지
눈 내리는 함경도를 상상할 수 있는지
우리나라 오징어 속에는 소줏집이 들앉았고
우리들 삶이 보편적인 안주라는 건 다 아시겠지만
마흔 해가 넘도록
오징어 배를 가르는 사람들의 고향을 아는지
그 청호동이라는 떠도는 섬 깊이
수장당한 어부들을 보았거나
신포 과부들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지
누가 청호동에 와
새끼줄에 거꾸로 매달린 오징어를 보며
납작할 대로 납작해진 한반도를 상상한 적은 없는지
혹시 청호동을 아는지 
 

 

 

 

 

 

  

 

 

 

우리는 읍으로 간다 / 이상국

 


우리는 읍으로 간다
한때는 슬픈 식민지 백성으로
또는 인공의 인민이 되어서,
자유당 공화당 지나 세상이 자꾸 바뀌어도
읍에서 부르면 우리는 간다

할아버지 지게 지고 부역 가던 길
볏가마 실려나가고
아이들 공장으로 떠나던 그 길
머나먼 유엔 사무총장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반나절이면
혁명과 쿠데타에도 도장 찍어주고 오던 길로
오라면 우리는 간다

읍에서 오라면 우리는 간다걸핏하면 프래카드 앞세우고 가
그렇게 손 흔들어 주었음에도
세상 뒤숭숭하고
서울이 위험하면
오늘도 우리는 읍으로 간다 
  

 

 

 

 

 

 

  

 

 

 

禪林院址에 가서 / 이상국



禪林으로 가는 길은 멀다
미천골 물소리 엄하다고
초입부터 허리 구부리고 선 나무들 따라
마음의 오랜 폐허를 지나가면
거기에 정말 선림이 있는지

영덕, 서림만 지나도 벌써 세상은 보이지 않는데
닭죽지 비틀어 쥐고 양양장 버스 기다리는
파마머리 촌부들은 선림 쪽에서 나오네
천년이 가고 다시 남은 세월이
몇번이나 세상을 뒤엎었음에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 농가 몇 채는
아직 面山하고 용맹정진하는구나

좋다야, 이 아름다운 물감 같은 가을에
어지러운 나라와 마음 하나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소처럼 선림에 눕다
절 이름에 깔려 죽은 말들의 혼인지 꽃들이 지천인데
經典이 무거웠던가 중동이 부러진 비석 하나가
불편한 몸으로 햇빛을 가려준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오는데 마흔아홉 해가 걸렸구나
선승들도 그랬을 것이다
남설악이 다 들어가고도 남는 그리움 때문에
이 큰 잣나무 밑동에 기대어 서캐를 잡듯 마음을 죽이거나
저 물소리 서러워 용두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슬픔엔들 등급이 없으랴

말이 많았구나 돌아가자
여기서 백날을 뒹군들 니 마음이 절간이라고
선림은 등을 떼밀며 문을 닫는데
깨어진 부도(浮屠)에서 떨어지는
뼛가루 같은 햇살이나 몇됫박 얻어 쓰고
나는 저 세간의 무림(武林)으로 돌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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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가족 / 이상국



- 아버지 송지호에서 좀 쉬었다 가요
- 시베리아는 멀다
- 아버지 우리는 왜 이렇게 날아야 해요
- 그런 소리 말아라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 것들이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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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자꾸 따라와요 / 이상국 

 

 

어린 자식 앞세우고
아버지 제사 보러 가는 길

- 아버지 달이 자꾸 따라와요
- 내버려둬라
   달이 심심한 모양이다

우리 부자 천방둑 은사시나무 이파리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솨르르솨르르 몸 씻어내는 소리 밟으며 쇠똥
냄새 구수한 판길이 아저씨네 마당을 지나 옛 이발소

집 담을 돌아가는데

아버짓적 그 달이 아직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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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 이상국

  


어떤 날 새벽 자다 깼는데

문득 나는 집도 가족도 없는 사람처럼 쓸쓸했다

아내는 안경을 쓴 채 잠들었고

아이들도 자기들 방에서 송아지처럼 자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생각이 왔는지 모르지만

그게 식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에게 창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고

나는 또 나 자신을 위로해야 했으므로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아, 내가 문을 열어놓고 자는 동안

바람 때문에 추웠었던 모양이다 라며

멀쩡한 문을 열었다 닫고는

다시 누웠다 

 

 

 

 

  

 

 

 

아범은 자니? / 이상국

 

 

지난해 태풍 루사가 왔을 때
나하고 동명이인인
양양의 어느 농협 조합장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뉴스에 나오던 저녁
영랑동 숙모가 전화를 하셨다

 

아내가 받았는데

 

한참 딴 얘기를 하시다가
아범은 자니?
하시길래 잔다고 했단다

 

이 모든 은유로 된 세상에서
나는 계속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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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위한 변명 / 이상국  

 

 

먼 길을 다니다보면 자동차의 발이 천형 같다

말은 안하지만 그들도 몸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쓰레기 봉지를 찢고 나온 닭발이나

바지 밖에서 잠든 노숙자의 다리나

다리는 쉬고 싶다

 

저 가느다란 것들에게 세상이 얹혀 다니다니

 

외다리 집게는 몸이 다리이고

시장바닥을 배밀이 수레로 밀고가는 사람은 찬송가가 다리이다

한 번도 집밖에 나간 적이 없는데 몸통을 잃은 나무를 보거나

아프리카는 짐승들이 사납고 먹을 것도 별로 없다는데

지뢰 때문에 다리가 날아가버린 우간다 아이들이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면

내 무릎 밑이 다 서늘해진다

 

다리는 먹이를 위하여 걷거나 뛰거나 하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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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 / 이상국  

 

 

- 야덜아 내 죽거든 태워서 물치 바다에나 뿌려다오

 

 어머니는 살아생전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선산이 수만평이나 있고

아들자식들이 모두 이름 석자는 쓰고 사는 집에서 될 법이나 한 일

이냐고 감동골 솔밭 속의 아버지와 합장을 해드렸습니다

 

30촉짜리 전등이라도 하나 넣어드릴 걸
평생 어두운 집에서 사시던 분들 

 

 

 

오길 잘했다 / 이상국 

 

 

어느 날 저녁 동네 골목길을 지나다가 자즈러질 듯 우는

갓난애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 누군가 새로 왔구나

그리고 저것이 이제 나와 같은 별을 탔구나 하는 즐거움

 
상당히 이름이 나있는 시인의 시를 읽다가 야, 이 정도면……

어쩌고 하는 이 희떠움

 

티브이 속에서 줄줄이 끌려가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꼴좋다 꼴좋다 외치는 즐거움

 

아무 생각없이 생을 두루마리 휴지처럼 풀어쓰다가

남 모르게 우주의 창고를 열어보는 이 든든함

 

때로 따뜻한 여자 속에서 내 그것이 죽어가는 즐거움

 

친구를 문상 가서 웃고 떠들다가 언젠가 저것들이 내 주검

앞에서 나를 흉보며 내 음식을 축내는 즐거움을 미리 보는

즐거움

 

어쩌다 공돈이 생긴 날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집에 가는데

나무 이파리들이 멋도 모르고 바람에 뒤집어지는 걸 바라보며

아무래도 세상에 오길 잘했다는 이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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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천으로 가는 길 1 / 이상국

 

물소리가
이집 저집 문을 닫아주며 가는데
텃밭에서 고구마가 붉게 여물고
물새들은 알을 품고 누웠다

연어처럼 등때기 푸른 아이들이
물가에 나와
엉덩짝에 풀물을 들이거나
물수제비를 띄우며
그립다고 떠드는 소리를
물소리가 얼른 들쳐업고 간다

집 떠나 오래 된 이들도
물소리 들으면
새처럼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저녁

풀이파리 끝 이슬등마다
환하게 불이 켜지고
어디서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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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일기(山房日記) / 이상국  

 

 

 새벽 한기에 깨어 마당에 내려서면 녹슨 철사처럼 거친 햇살

아래 늦매미 수십 마리 떨어져 버둥거리고는 했다. 뭘 하다

늦었는지 새벽 찬서리에 생을 다친 그것들을, 사람이나 미물이나

시절을 잘 타고나야 한다며 민박집 늙은 주인은 아무렇게나

비질을 했다.
 

 주인은 산일 가고 물소리와 함께 집을 보며 나는 뒤란 독 속의

뱀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서럽도록 붉은 마가목 열매를 깨물어

보기도 했다. 갈숭어가 배밀이를 하다가 하늘이 보고 싶었던지,

어디서 철버덩 소리가 나 내다보면 소리는 갈앉고 파문만 보이고는

했다
 

 마당 가득한 메밀이며 도토리 멍석에 다람쥐 청설모가 연신

드나든다. 저희 것을 저희가 가져가는데 마치 도둑질하듯

살금살금, 청설모는 덥석덥석 볼따구니가 터져라 물고 간다
 

 어느덧 저녁이 와 어느 후미진 골짜기에 몸을 숨겼던 밤이

산적처럼 느닷없이 달려들어 멀쩡한 집과 나무와 길을 어둠

속에 처박는 산골, 외롭다고 풀벌레들이 목쉰 소리를 하면

나는 또 산 너머  세상의 의붓자식 같은 내 인생을 생각하며

밤을 새고는  

 

 

 

 

  

 

 

겨울 선운사에서 / 이상국

 

  

누가 같이 자자 그랬는지
뾰르퉁하게 토라진 동백은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절 아래 레지도 없는 찻집
담벼락에서 오줌을 누는데
분홍색 브레지어 하나 울타리에 걸려 있다

저 젖가슴은 어디서 겨울을 나고 있는지
중 하나가 잔뜩 허리를 구부리고
고해(苦海)만한 절마당을 건너가는 저녁

나도 굵은 체크무늬 목도리를 하고
남이 다 살고 간 세상을 건너가네  

 

 

 

 

 

 

 

봄을 기다리며 / 이상국 

 

 

겨울산에 가면
나무들의 밑동에
동그랗게 자리가 나있는 걸 볼 수 있다
자신이 숨결로 눈을 녹인 것이다
저들을 겨우내 땅속 깊은 곳에서 물을 퍼올려
몸을 덥히고 있었던 것이다
좀 더 가까이 가보면
모든 나무들이
잎이 있던 자리마다 창을 내고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어디에선가 "봄이다!" 하는 소리만 났다 하면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겨울에 둘러싸인 달동네
멀리서 바라보면 고층빌딩 같은 불빛도
다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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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 이상국 

 

  

산을 내려온 바람이

멧돼지처럼 옥수수밭을 뒤지고 다니는 저녁이다

 

하루살이들 이악스럽게 달려드는 멍석마당에서

하늘의 별들이 가끔 더 먼 곳으로 날아가는 걸 바라보며

어머니는 감자를 깎으시고

오뉴월 하루 볕이 다른데

어디 보자며

불쑥 사타구니에 손을 넣어

감자톨 같은 내 불알을 만져보시던

 

아버지야 아버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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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옛집에 가서 / 이상국 

 

 

봄날 옛집에 갔지요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
머위 이파리만한 생을 펼쳐들고
제대하는 군인처럼 갔지요
어머니는 파 속 같은 그늘에서
아직 빨래를 개시고
야야 돈 아껴 쓰거라 하셨는데
나는 말벌처럼 윙윙거리며
술이 점점 맛있다고 했지요
반갑다고 온몸을 흔드는
나무들의 손을 잡고
젊어서는 바빠 못 오고
이제는 너무 멀어서 못 온다니까
아무리 멀어도 자기는 봄만 되면 온다고
원추리꽃이 소년처럼 웃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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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근 현대사 / 이상국 

 

 

국유지와 과부는 깔고 앉는 게 임자다 

 
  
 

아침 시장 / 이상국 

  

 

 화장을 곱게 한 닭집 여자가 닭들을 좌판 위에 진열하고 있다. 발가벗은

것들을 벌렁 잦혀놓아도 그들은 별로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 않다. 그 옆

반찬가게집 주인은 두 무릎을 공손히 꿇고 앉아 김을 접는다. 꼭 예배당

온 사람 같다. 어느 촌에서 조반이나 자시고 나왔는지 장바닥 목 좋은

곳 깔고 앉으려고 일찍도 나온 할머니가 나생이와 쪽파 뿌리를 손주 머리

빗겨주듯 빗어 단을 묶는다. 각을 뜬지 얼마  안돼 아직 근육이 퍼들쩍

거리는 돼지고기를 가득 싣고 가는 리어커를 피하며 출근길의 아가씨가

기겁을 하자 무슨  씹이 어떻다고 씨부렁거리는 리어커꾼의 털모자에서

무럭무럭 김이 솟는다. 아직 봄이 이른데 딸기 빛깔이 꼭 칠한 것처럼

곱다. 순대국밥집 앞의 시멘트바닥에 잘생긴 소머리 하나가 새벽잠을

자다가 끌려나왔는지 꿈꾸는 표정으로 면도를 하고 있다. 갑자기 골목

안이 화안해지며 차 배달 갔다오는 미로다방 아가씨가 어묵가게 아저씨

를 향하여 엉덩이를  힘차게 흔들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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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 이상국 

 

 

새벽 세시에 일어나 동사서독(東邪西毒)을 본다
보아도 서로 모른다
남자들은 칼을 맞으면서도
왜 사랑을 놓지 않는지

집은 낡았으나 자식들은 어리다
영화 속의 한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며
날이 새면 또 내일이 오늘을 이긴다니
그쪽으로 아내의 꿈길을 고쳐준다
누구나 잠잘 땐 가엾은 것이다
나도 깨끗한 물에 얼굴을 비춰보고 싶다

나는 한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술을 마시고 시를 짓는다
불러야 할 노래가 있어서다
돌아갈 곳이 없으면 사랑이 보인다지만
사랑이 끝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모래바람 새벽으로 내가
가시나무처럼 깨어 있는 것은
생이 불구이기 때문이다

복사꽃 피는 고향은 떠난 지 오래되었으나
나는 아직 이름조차 얻지 못하였다
세상엔 날 알아보는 사람이 없고
봄이 와도 돌아가지 못하는 옛집엔
이미 모르는 사람이 사는데
비디오가 끝나고 새벽 어디선가 낙타가 운다 
     

  

 

 

 

小說家 강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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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시인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갈뫼>, <신감각> <속초시> 동인 
제1회 백석문학상, 유심작품상 수상 


시집 

 <동해별곡(東海別曲)>

 <내일로 가는 소>
 <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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