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집으로 가고 싶다 / 이상국
벌써 오래 되었다 부엌 옆에 마구간 달린 아버지의 집을 떠나 마당도 굴뚝도 없는 아파트에 와 살며 나는 그게 자랑인줄 알았다
봄 둑길에 새 풀이 무성할 때면 우리 소 생각난다
꼴짐 지고 돌아오는 아버지 늦는다고 동네가 떠나갈듯 우는 울음소리도 들었다
이 도시의 시민이 되어 산지 오래인데도 우리 소 잘 먹던 풀밭 만나면 한 짐 베어지고 그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폭설 / 이상국
곡(哭)을 하다 배고프면 국수를 먹었다
꼬질대가 휘도록 눈은 퍼붓고 문상객들은 눈을 털며 들어와 눈은 잠처럼 쏟아지고
감자떡 / 이상국
하지가 지나면 성한 감자는 장에 나가고 다치고 못난 것들은 독에 들어가 가을까지 몸을 썩혔다 헌 옷 벗듯 껍질을 벗고 물에 수십번 육신을 씻고 나서야 그들은 분보다 더 고운 가루가 되는데
이를테면 그것은 흙의 영혼 같은 것인데
강선리 늙은 형수님은 아직도 시어머니 제삿날 그걸로 떡을 쳐서 우리를 먹이신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 이상국
감자를 묻고 나서 삽등으로 구덩이를 다지면 뒷산이 꽝꽝 울리던 별
겨울은 해마다 닥나무 글거리에 몸을 다치며 짐승처럼 와서는 헛간이나 덕석가리 아래 자리를 잡았는데 천방 너머 개울은 물고기들 다친다고 두터운 얼음옷을 꺼내 입히고는 달빛 아래 먼길을 떠나고는 했다
어떤 날은 잠이 안 와 입김으로 봉창 유리를 닦고 내다보면 별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봄을 기다리던 마을의 어른들이 별똥이 되어 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하늘에서는 다른 별도 반짝였지만 우리 별처럼 부지런한 별도 없었다
그래도 소한만 지나면 벌써 거름지게 세워놓고 아버지는 별이 빨리 돌지 않는다며 가래를 돋워대고는 했는데
그런 날 새벽 여물 끊이는 아랫목에서 지게 작대기처럼 빳빳한 자지를 주물럭거리다 나가보면 마당에 눈이 가득했다
나는 그 별에서 소년으로 살았다
있는 힘을 다해 / 이상국
해가 지는데 왜가리 한마리 물속을 들여다 보고 있다
저녁 자시러 나온 것 같은데
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 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릴 처박는 걸 보면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똬리 다섯 개 / 이상국
배다리 솔밭 살던 장수 아버지 별명이 똬리 다섯 개, 아잇적부터
딸부잣집 낙수 소리 / 이상국
내 말이 그 말이어유 글쎄
나도 보험에 들었다 / 이상국
좌회전 금지구역에서
돌배나무와 면장 / 이상국
강선리 사람치고
봉희네 / 이상국
그해
무밭에서 / 이상국
무는 제 몸이 집이다 안방이고 변소다 저들이 울타리나 문패도 없이 흙속에 실오라기 같은 뿌리를 내리고 조금씩조금씩 생을 늘리는 동안 그래도 뭔가 믿는 데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완성해가다가 어느날 농부의 손에 뽑혀나갈 때 저들은 순순히 따라 나갔을까, 아니면 흙을 붙잡고 안간힘을 썼을까 무밭을 지나다가 군데군데 솎여나간 자리를 보면 아직 그들의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손을 넣어보고 싶다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흐르는 물이 무얼 알랴
밥상에 대하여 / 이상국
오래 받아먹던 밥상을 버렸다 어느날 다리 하나가 마비되더니 걸핏하면 넘어지는 그를 내다버리며 누군가 고쳐 쓰겠지 하면서도 자꾸 뒤가 켕긴다 아이들이 이마를 맞대고 숙제를 하고 좋은 날이나 언잖은 날이나 둘러앉아 밥을 먹었는데...... 남들은 어떻게 살런지,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밥상머리에서 내가 지르는 호통소리에 아이들은 눈물 때문에 숟가락을 들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아내는 공연히 밥알을 줍거나 물을 뜨러 일어서고는 했지 나는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나의 가족들에게, 실은 나 자신을 향하여 어떤 때는 밥상을 두드리고 숟가락을 팽개치기도 했지 여기저기 상처난 몸으로 그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끼 밥을 위하여 종일 걸었거나 배를 있는 대로 내밀고 다니다가 또 어떤 날은 속옷 바람에 식구들과 둘러앉아 별일도 아닌 일에 밥알이 튀어나오도록 웃던 일들을 그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오래 받아먹던 밥상을 버렸다 그러나 그가 어디 가든 나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안다
장을 바라보며 / 이상국
동학말 보천교군 할아버진 큰 아버님 구름에 섞여 먼 북간도에 가시고 소지 사루듯
울면서 운전을 하다 / 이상국
어버지가 첩을 들여 어머니는 ?겨나고 밤낮없이 꼬집히고 굶던 소년은 눈보라치는 겨울 먼 데 시집간 누나를 찾아 나서는데... 울면서 운전을 한다 마치 내가 그 에프엠 방송 속의 소년인 양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울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울면 지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니까 좋다 방죽의 물이 빠져나가듯 헛간에 햇빛이 들듯 나도 내 설움에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운전을 한다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 / 이상국
우리는 읍으로 간다 / 이상국
禪林院址에 가서 / 이상국
기러기 가족 / 이상국
달이 자꾸 따라와요 / 이상국
어린 자식 앞세우고 집 담을 돌아가는데
변명 / 이상국
어떤 날 새벽 자다 깼는데 문득 나는 집도 가족도 없는 사람처럼 쓸쓸했다 아내는 안경을 쓴 채 잠들었고 아이들도 자기들 방에서 송아지처럼 자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생각이 왔는지 모르지만 그게 식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에게 창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고 나는 또 나 자신을 위로해야 했으므로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아, 내가 문을 열어놓고 자는 동안 바람 때문에 추웠었던 모양이다 라며 멀쩡한 문을 열었다 닫고는 다시 누웠다
아범은 자니? / 이상국
지난해 태풍 루사가 왔을 때
아내가 받았는데
한참 딴 얘기를 하시다가
이 모든 은유로 된 세상에서
다리를 위한 변명 / 이상국
먼 길을 다니다보면 자동차의 발이 천형 같다 말은 안하지만 그들도 몸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쓰레기 봉지를 찢고 나온 닭발이나 바지 밖에서 잠든 노숙자의 다리나 다리는 쉬고 싶다
저 가느다란 것들에게 세상이 얹혀 다니다니
외다리 집게는 몸이 다리이고 시장바닥을 배밀이 수레로 밀고가는 사람은 찬송가가 다리이다 한 번도 집밖에 나간 적이 없는데 몸통을 잃은 나무를 보거나 아프리카는 짐승들이 사납고 먹을 것도 별로 없다는데 지뢰 때문에 다리가 날아가버린 우간다 아이들이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면 내 무릎 밑이 다 서늘해진다
다리는 먹이를 위하여 걷거나 뛰거나 하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성묘 / 이상국
- 야덜아 내 죽거든 태워서 물치 바다에나 뿌려다오
어머니는 살아생전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선산이 수만평이나 있고 아들자식들이 모두 이름 석자는 쓰고 사는 집에서 될 법이나 한 일 이냐고 감동골 솔밭 속의 아버지와 합장을 해드렸습니다
30촉짜리 전등이라도 하나 넣어드릴 걸
오길 잘했다 / 이상국
어느 날 저녁 동네 골목길을 지나다가 자즈러질 듯 우는 갓난애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 누군가 새로 왔구나 그리고 저것이 이제 나와 같은 별을 탔구나 하는 즐거움 어쩌고 하는 이 희떠움
티브이 속에서 줄줄이 끌려가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꼴좋다 꼴좋다 외치는 즐거움
아무 생각없이 생을 두루마리 휴지처럼 풀어쓰다가 남 모르게 우주의 창고를 열어보는 이 든든함
때로 따뜻한 여자 속에서 내 그것이 죽어가는 즐거움
친구를 문상 가서 웃고 떠들다가 언젠가 저것들이 내 주검 앞에서 나를 흉보며 내 음식을 축내는 즐거움을 미리 보는 즐거움
어쩌다 공돈이 생긴 날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집에 가는데 나무 이파리들이 멋도 모르고 바람에 뒤집어지는 걸 바라보며 아무래도 세상에 오길 잘했다는 이 즐거움
남대천으로 가는 길 1 / 이상국
산방일기(山房日記) / 이상국
새벽 한기에 깨어 마당에 내려서면 녹슨 철사처럼 거친 햇살 아래 늦매미 수십 마리 떨어져 버둥거리고는 했다. 뭘 하다 늦었는지 새벽 찬서리에 생을 다친 그것들을, 사람이나 미물이나 시절을 잘 타고나야 한다며 민박집 늙은 주인은 아무렇게나 비질을 했다. 주인은 산일 가고 물소리와 함께 집을 보며 나는 뒤란 독 속의 뱀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서럽도록 붉은 마가목 열매를 깨물어 보기도 했다. 갈숭어가 배밀이를 하다가 하늘이 보고 싶었던지, 어디서 철버덩 소리가 나 내다보면 소리는 갈앉고 파문만 보이고는 했다 마당 가득한 메밀이며 도토리 멍석에 다람쥐 청설모가 연신 드나든다. 저희 것을 저희가 가져가는데 마치 도둑질하듯 살금살금, 청설모는 덥석덥석 볼따구니가 터져라 물고 간다 어느덧 저녁이 와 어느 후미진 골짜기에 몸을 숨겼던 밤이 산적처럼 느닷없이 달려들어 멀쩡한 집과 나무와 길을 어둠 속에 처박는 산골, 외롭다고 풀벌레들이 목쉰 소리를 하면 나는 또 산 너머 세상의 의붓자식 같은 내 인생을 생각하며 밤을 새고는
겨울 선운사에서 / 이상국
누가 같이 자자 그랬는지
봄을 기다리며 / 이상국
겨울산에 가면
여름 / 이상국
산을 내려온 바람이 멧돼지처럼 옥수수밭을 뒤지고 다니는 저녁이다
하루살이들 이악스럽게 달려드는 멍석마당에서 하늘의 별들이 가끔 더 먼 곳으로 날아가는 걸 바라보며 어머니는 감자를 깎으시고 오뉴월 하루 볕이 다른데 어디 보자며 불쑥 사타구니에 손을 넣어 감자톨 같은 내 불알을 만져보시던
아버지야 아버지야
봄날 옛집에 가서 / 이상국
봄날 옛집에 갔지요
어떤 근 현대사 / 이상국
국유지와 과부는 깔고 앉는 게 임자다 아침 시장 / 이상국
화장을 곱게 한 닭집 여자가 닭들을 좌판 위에 진열하고 있다. 발가벗은 것들을 벌렁 잦혀놓아도 그들은 별로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 않다. 그 옆 반찬가게집 주인은 두 무릎을 공손히 꿇고 앉아 김을 접는다. 꼭 예배당 에 온 사람 같다. 어느 촌에서 조반이나 자시고 나왔는지 장바닥 목 좋은 곳 깔고 앉으려고 일찍도 나온 할머니가 나생이와 쪽파 뿌리를 손주 머리 빗겨주듯 빗어 단을 묶는다. 각을 뜬지 얼마 안돼 아직 근육이 퍼들쩍 거리는 돼지고기를 가득 싣고 가는 리어커를 피하며 출근길의 아가씨가 기겁을 하자 무슨 씹이 어떻다고 씨부렁거리는 리어커꾼의 털모자에서 무럭무럭 김이 솟는다. 아직 봄이 이른데 딸기 빛깔이 꼭 칠한 것처럼 곱다. 순대국밥집 앞의 시멘트바닥에 잘생긴 소머리 하나가 새벽잠을 자다가 끌려나왔는지 꿈꾸는 표정으로 면도를 하고 있다. 갑자기 골목 안이 화안해지며 차 배달 갔다오는 미로다방 아가씨가 어묵가게 아저씨 를 향하여 엉덩이를 힘차게 흔들며 지나간다.
낙타 / 이상국
새벽 세시에 일어나 동사서독(東邪西毒)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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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시인
<동해별곡(東海別曲)> <내일로 가는 소> <집은 아직 따뜻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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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