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주님,
성탄절을 축하하고 기뻐하며
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거룩하고 정결한 신부로서 신랑을 맞이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오니
팍팍하게 구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다 덮어주옵소서.
오늘의 흡족한 은혜가 저의 영을 생기 있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본문 주해)
1~2절 :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역사적 사실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누가는 실존 인물 두 사람을 소개한다. 바로 로마 황제 가이사 아우구스도와 수리아의 총독인 구레뇨이다.
이들에 의해 실시된 인구 조사는 세금 징수가 목적이었다.
당시 유대는 수리아에 소속되어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수리아 총독 구레뇨에 의하여 이 칙령이 실행되었다.
유대인들은 굳이 본적지에 가서 호적을 하였는데 그것은 민족적 자긍심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3~7절 :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한다.
베들레헴은 약 1,000년 전 다윗이 태어난 곳이었고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다.
예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그곳에서 태어나실 것을 선지자 미가가 예언하였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와서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게 되는 것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인 것이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5:2)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태어나 누운 곳은 가축들의 먹이통인 ‘구유’였다.
호적 하러 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 여관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로서 너무 보잘것없고 초라한 곳에서 탄생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구유에 오신 것이 표적이 되는 것은 단지 목자들이 알아보기 위한 표적만이 아니라 짐승의 먹이통에 오셔서 짐승 같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낮아지심이다.
8~12절 : 그날 밤, 근처에서 양떼를 치던 목자들이 있었다.
당시에 목자는 매우 천시되었던 직업이었다. 그들은 가난하였고 멸시 받는 사람들로, 소외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가장 먼저 구원의 소식이 전하여졌다는 점을 누가는 서두에 둠으로써, 복음이 가난한 자, 불쌍한 자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들에게 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13~14절 : 홀연히 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한다.
예수님이 말구유에 태어나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주님의 순종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자에게만 평화가 임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자들에게는 평화가 아니라 심판의 소식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나의 묵상)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14절)
성탄절 즈음이면 쉽게 보게 되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된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창세 전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셨던 아들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 오시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의 뜻은 무엇인가?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을 구원하셔서 영생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셨던 거룩한 아들이 거룩한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철저히 낮아지심의 모습이다.
이 순종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 것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또 주님의 오심이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성탄이 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마치 함께 기뻐하는 것처럼 들떠서 요란하다.
화려하고 현란한 거리거리의 장식이 그것을 말해 주는 듯하다.
그러나 세상이나 교회나 간에 자기들이 기뻐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들에게는 기쁨과 평화이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심판의 소식인 것을 모르고 들떠서 날뛰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는 어떤 자인가?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알고 예수님의 대속을 믿게 된 자들이다. 오직 주님만을 구하는 자들이다.
오늘 본문에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은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오늘날 이 어둠의 세상에서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깨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심령이 가난하고 겸손한 성도들을 의미한다.
다시 오마 약속하신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신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리고자 끊임없이 십자가의 삶을 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그런 그들의 마음에는 복음으로 인해 세상이 알 수 없는 평화가 가득한 것이다.
이것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가 아니겠는가!
이것을 아는 자들이 맞이하는 성탄의 기쁨이 진정한 기쁨이 아니겠는가?
우리 교회는 오늘 저녁에 성탄 축하 행사를 마친 후 늦은 밤이지만 3호선 역에 나가 성탄 메시지를 전하며 전도하는 행사를 가지고자 한다.
학생, 청년, 어른들이 함께 할 예정이다.
분주하고 즐거운 움직임 중에도 주님 오심에 대한 깊은 묵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
(묵상 기도)
주님,
제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의 죄와 비참함을 늘 보게 하시고
주님만이 저의 소망임을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런 저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보혈을 흘려주셨습니다.
주님의 그 순종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된 것을 보며
저도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날마다 이어지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사모하오니
성령님, 변치 않는 마음이게 도와주옵소서.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