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련설(愛蓮說)
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蕃, 晋陶淵明獨愛菊. 自李唐來, 世人甚愛牡丹
予獨愛蓮之出御泥而不染, 濯淸蓮而不妖,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而淸,
亭亭淨植, 可遠觀而不可褻翫焉. 予謂, 菊, 花之隱逸者也, 牡丹,
花之富貴者也, 蓮花之君子也. 噫! 菊之愛, 陶後鮮有聞, 蓮之愛, 同予者何人?
牡丹之愛, 宜乎衆矣.
수중(水中)이나 지상(地上)에 있는 풀과 나무의 꽃은 사랑할 만한 것이 많다.
진(晉)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은 오직 국화만을 사랑했다고 한다.
또 당(唐)나라 이래로 세상사람들은 모란(牡丹)을 대단히 사랑했다.
그러나 나는 홀로 연(蓮)을 사랑하리라.
연(蓮)은 진흙에서 났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깨끗이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다.
줄기의 속은 비어있어도 겉모습은 반듯하게 서 있으며,
넝쿨지지도 않고 잔가지 같은 것도 치지 않는다.
그 향기는 멀리서 맡을수록 더욱 맑으며 정정하고 깨끗한 몸가짐,
높이 우뚝 섰으니 멀리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요,
가까이서 감히 어루만지며 희롱할 수는 없도다.
그래서 나는
국화는 꽃 가운데 은사(隱士)라 할 수 있고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자(富貴者)라 할 수 있는데 대해서
연(蓮)은 꽃 가운데 군자(君子)라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국화를 사랑한다는 말은 도연명 이후로는 듣기가 어렵다.
나처럼 연(蓮)을 사랑하는 사람은 또 몇이나 있을까?
모란을 사랑한다는 속인들만이 너무 많구나.
주돈이(周敦頤) 애련설(愛蓮說)
연꽃아 너만은 더러운 세상에서도 더렵혀지지 않겠지 !
이사진들 은 연꽃으로 유명한 전주 덕진 공원이다.
TV에 나온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이다.
코로나가 사람과 사람을 원수처럼 피하도록 요술을 부리고,
홍수(洪水)가 범람(汎濫)하여 노아의 방주(方舟 Ark of Noah)를 떠올리게 하고,
※노아의 방주(Ark of Noah)-구약성서 창세기 6~8장
부동산(不動産immovables)에 발이 달려 동산(動産movables)이되고,
수도(首都)가 세종시로 옮긴다는 발표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세종시 집값에 서울 집값이 새파랗게 질렸다.
작은 토끼 몸뚱이가 남북으로 갈라지고
경상도 전라도는 동서로 갈라지고
문재인 무조건 지지파와 반대파로 갈라지고
태극기파와 촛불파로 갈라지고
김정은 위인(偉人)파와 반대파로 갈라지고
(2018.12.29. 조선일보 기사)
여성과 남성으로 갈라지고
늙은 놈과 젊은 놈으로 갈라지고
젊은 놈은 20,30대와 40,50대로 갈라지고
20대는 또 30대와 갈라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지고
집가진자와 집없는 자로 갈라졌다.
필자는 독서를 하는 중에
일본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내고 조선학회 설립의 한사람인 일본인
다카하시 도루(たかはしとおる高橋亨1878년~1967년)가 쓴 “조선인(朝鮮人)”이란
책을 읽었다.
다카하시 도루(たかはしとおる高橋亨)는 일본 사람의 이름이다.
일본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내고 조선학회 설립에 기여한 한국통 학자이다.
우리 국민은 대체적으로 중국역사나 서양사는 잘 읽어도 가까이 있는
일본책은 잘 안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역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데 필자생각)
다카하시 도루(高橋亨)는 한국 근대사에서 피해갈 수 없는 일본 학자다.
1902년 한국에 온 그는 한반도 해방까지 한국을 연구했다.
사상·종교·정치는 물론 설화·속담까지 파고들었다.
그가 남긴 한국학 연구 성과는 방대하다.
제국주의(帝國主義) 학문은 이래서 무섭다.
한국을 멸시하면서도 한국을 연구하는 것이 일본 제국주의다.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조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데 철저히 봉사한 학자다.
그가 쓴 책 100년 역사의 “조선인(朝鮮人)”은 긴 분량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사에 남긴 파장은 이 시간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일본의 지배층 엘리트들은 이 책을 통해 조선을 어떻게 지배 할 것인가를 연구했다
“조선인(朝鮮人)” 글 중에
“사대주의(事大主義)는 조선인이 조선반도에 사는 한 영원히 지속될 특성”이란 문구는
지금도 일본 우파들은 한국을 보는 중심적인 눈으로 삼고 있다.
문제는 그가 주장한 “조선 민족성론(論)”이 광복 후에도 악령(惡靈)처럼 한국국민을
따라다녔다.
아니 우리국민이 “조선민족성 분열”을 일본에게 보여 준 것이다.
일본 36년 식민지 치하에서 그렇게 독립을 원하던 한국 국민은
광복 되자마자 우익(민주주의)과 좌익(공산주의)으로 분열하여 국토는 남북으로 갈라졌다.
다카하시의 “조선인(朝鮮人)”책 내용을 뒷받침 한 것이다.
참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다카하시가 주장한 조선의 열 가지 민족성은 아무 가치 없는 글이다.
거짓이거나 모순되거나 왜곡한 서술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좀처럼 부정하기 어려운 한 가지가 끈질기게 우리를 물고 늘어진다.
다카하시가 조선인의 네 번째 민족성으로 거론한
“당파심(黨派心)” 즉 분열적(分裂的) 민족성(民族性) 이다.
다카하시는 이 책에서
“가문. 계급. 신앙. 이익을 바탕으로 손쉽게 당파를 만드는 사람들을
조선인 이외에 아직 본 적이 없다”고 썼다.
이 글을 쓰면서 약 40년전에 외무부 출신의 한 지인과 술자리에서 들은
일본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표현한 말이라고 들려준 이야기가 항상 기억에 남아있다.
“한국 사람은 모래이고, 일본사람은 진흙이다”
모래에 물을 부으면 흩어지고, 진흙에 물을 부으면 단단히 뭉친다.
“조선인(朝鮮人)”책에서는
“조선인은 원래 이해(利害)에 따라 움직이는 무리”란 막말도 썼다.
일제(日帝)는 이런 내용을 당시 조선 초등학생에게 가르쳤다.
식민 교육이란 피지배 민족이 스스로 자신을 멸시하고 지배 민족에게 봉사하도록
하는 세뇌교육이다.
이 목적을 위하는데 다카하시의 “조선은 분열성 민족”주장은 효과적이었다.
오늘의 친구를 내일 적으로 만드는 민족이 조선인이다.
우리 학자들은 “조선인(朝鮮人)”책을 부정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사실 어떤 국가든 권력 투쟁은 일어난다.
투쟁은 정의(正義)와 불의(不義)가 반복되면서 역사를 발전시킨다.
조선 당파 폐해의 상징처럼 거론되는 그 많은 사화(士禍)도 썩은 기득권을 도려내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아무리 당파 분열을 긍정적으로 보아도 조선 후기의 붕당(朋黨) 정치까지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조선의 당파 정치는 철학도, 명분도 없다.
패거리 이익만 있을 뿐이었다.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 아니라 상대를 영원히 지워버리는 독존(獨存)을 추구했다.
그렇게 정권 획득에 성공하면 바로 자기들끼리 또 분열해 다시 싸웠다.
북인(北人)은 대북.소북으로
대북·소북은 육북.골북.탁북.청북으로 세분화 하고
서인(西人)은 공서· 청서로
노론. 소론으로
벽파. 시파로…
요즘 우리 사회의 복잡다단한 분열은 정치 역사의 DNA를 유전 받은 듯하다.
이런 분열을 보면 장차 나라 전체를 멸망시키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방정맞은 말이 아니라 지난 역사가 교훈으로 남겨주었지 않은가?
다카하시가 “조선인(朝鮮人)”책이 나오기 이전부터
조선의 당파성 분열은 우리 국민과 지식인들에 의해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조선 말기의 대문장가 이건창은 저서 “당의통략(黨議通略)”이란 책에서
“두 당이 세 당이 되고 네 당이 되어-----”
200여년이란 긴 기간 동안 분열 정치를 해왔다고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다카하시가 쓴 “조선인” 책을 욕하기 전에
우리가 분열하지 않으면 다카하시의 주장은 아무 의미가 없이 역사 속에 사라진다.
다카하시의 더러운 “조선인”을 이 땅에 남긴 것은
일본이 아니고 조선인 우리 자체다.
이말은 춘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에서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왜 분열하여 왔고 지금 분열하고 있는가.
이건창이 제시한 여덟 가지 이유 중 마지막이 인상적이다.
“나라의 태평이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란 것이다.
배부르고 편안하게 산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서부경남 사투리에
“곤지창에 기름이 끼니 별짓을 다한다”는 말이 있다
즉 먹고 살기가 편하니까 해서는 안 될 짓을 한다는 의미다.
※곤지창- 대장 소장의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붕당은 전란의 폐허에서 시작됐다.
이건창은 말하기를
“적군이 침략해 오면 막아내지 못했고 어쩌다 적군이 물러가면
통치자나 백성 모두 편안하게 여겨 처음부터 어려움이 없었던 듯했다”
고 비판했다.
우리가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운 조선의 헛된 예송(禮訟) 논쟁은 병자호란 22년
후에 일어났다.
후대(後代)는 이를 가혹하게 비판한다.
일본으로부터 광복 75년, 6.25한국전쟁 70년이 지난 지금 벌어지는 오늘의 우리
사회 헛된 분열을 선대(先代)를 욕한 우리 후대(後代)는 어떻게 평가할까.
필자는 이제 죽을 나이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나라가 어찌될까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이
아니다.
같은 민족이라도 북한은 어떤 집단인가?
권력을 잡기 위해서 국가가 결단 나도 관계없다는 분열은 무엇인가?
한반도 삼국시대의 유산인 지역주의가 오늘날 개도 더럽다고 외면하는 이념(理念)으로 탈바꿈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가?
우리 스스로에게 묻고 깊게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蓮)꽃의 본이름을 “하화(荷花)”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荷)는 “짐을 지다”의 뜻으로 풀초(艸-艹)+ 하(何)의 합자(合字)이다
“하화(荷花)”는 글자대로 해석하면 “무거운 짐을 진 꽃”이라는 뜻이다
왜 연꽃을 “하화(荷花)”라고 하는지 설명을 아직 찾지 못했다.
한자사전(옥편)에는 아래와 같이 설명되어 있다.
*芙蓉 芙蕖 之總名蓮花-연꽃의 총 이름을 부용(芙蓉) 부거(芙蕖)라 한다.
*詩經-隰有荷花-시경(詩經)에는 진흙속에 피는 꽃
*荷荷怨怒聲-연꽃은 원성(怨聲)이 터지는 꽃이다.
*資治通鑑-梁武帝口苦索蜜不得再曰荷荷
양무제(梁武帝)는 입에 꿀을 묻히고도 다시 말하기를 연꽃 연꽃 하였다.
깊은 뜻은 모르겠으나 한자사전의 전반적인 설명은
“하화(荷花)”는 중생(衆生)의 무거운 짐을 진 “진흙 속에 핀 꽃”이라 생각한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