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7회
도로에는 그다지 차가 붐비지 않아 답답하지 않을 정도로 달리고 있었다.
“은비씨!
오늘은 내게 시간을 주실 수 있겠지요?“
”네!“
“우선 점심을 먹고 함께 갈 곳이 있습니다.”
“네!
안 그래도 저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서재우는 조용한 한정식 집으로 은비를 데리고 간다.
“우선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식사를 합시다.”
서재우는 배가 고픈 사람처럼 아무런 말도 없이 식사만을 하는 것이다.
은비 역시 그런 서재우를 따라 식사를 하는 데 열중한다.
서재우는 식사를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은비가 받아야 할 충격을 생각하니 가슴에 납덩이를 얹어 놓은 듯이 답답하고 무거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 또한 자신이 그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남편인 강정식보다는 젊은 사람인 은비가 이해도 빠르고 모든 것을 중간에서 가교 역활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만 같았다.
“서사장님!
오늘은 다른 날과 뭔가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가요?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요.
일단 식사를 하고 이곳에서 나가 차라도 마시면서 할 얘기가 있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식사를 마저 하세요.“
그러나 은비는 뭔가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늘 보아오던 서재우의 모습하고는 다른 느낌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은비는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 차분하게 식사를 끝낸다.
그리고 서재우가 은비를 데리고 간 곳은 그 놈들을 데려다 모든 것을 밝혔던 서재우 자신의 집이었다.
그곳은 서재우 부모님께 물려받은 단 하나의 상속재산인 것이다.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이기는 해도 경치가 수려하고 공기가 맑은 부모님께서 별장처럼 지어놓으시고 가끔씩 들리시어 쉬시곤 하던 집인 것이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계시지 않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단 하나의 상속재산인 이 집을 소중히 아끼면서 가끔은 자신도 와서 머리를 식히곤 하는 곳이었다.
“이곳은 어디죠?”
은비는 대문을 통해서 차가 들어가자 서재우를 보며 묻는다.
“이 집은 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 내 집이죠.
아무런 걱정하지 말아요.
이곳이 아니면 내가 지금부터 해야 할 말들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요.“
“..............................”
서재우는 은비를 안채에 있는 작은 응접실로 데려간다.
“잠시 기다려 줘요!
목을 축일 수 있는 차를 내 올게요.“
서재우가 주방으로 가고 나서 은비는 집안을 둘러본다.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보통 집안으로 보이지 않는 그런 꾸밈새인 것이다.
가구들 또한 범상하지 않는 고풍스럽고 모든 것과 잘 배치가 되어 안정되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그런 집안의 꾸밈새였다.
서재우는 오래지 않아 두 개의 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온다.
“은비씨!
우선 이 차를 한 모금 마셔요.
마음을 가라앉혀주고 머리를 맑게 해주는 차에요.
향도 아주 좋은 겁니다.“
은비는 두 손으로 찻잔을 들고 입으로 가져가 향을 맡아본다.
“정말 향이 아주 독특한 것 같으면서도 너무 좋으네요.”
은비는 차를 한 모금 마신다.
입안에 향기가 가득 번지면서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차였다.
그들은 잠시 차 맛을 음미한다는 듯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서재우는 은비를 바라보면서 한참을 응시한다.
은비는 지금까지 없었던 서재우의 모든 행동들이 불안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믿어왔던 서재우였기에 자신의 감정을 노출시키지 않고 서재우를 마주 응시하고 있었다.
“강은비씨!”
“.........................”
“잠시 은비씨가 들어야 할 것이 있어요.
듣기에 곤혹스럽고 당황스럽겠지만 끝까지 참고 들어주었으면 좋겠소.
들으면서 고함을 지르고 싶으면 얼마든지 고함을 질러도 좋소.
지금 이 집에는 은비씨와 나 밖에는 아무도 없소.
은비씨의 그 어떤 행동도 모두 비밀에 묻어진다는 것이오.“
“...........................”
은비는 서재우의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했다.
무엇 때문에 갑자기 서재우의 표정이나 말투까지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인지 갑자기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잠깐만요!
서사장님!
제게 원하시는 것이 뭡니까?
왜 이러시는지 설명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은비씨!
이 녹음기를 듣고 나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은비씨에게 이 녹음기를 들려드리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상당히 많이 생각했고 여러 사람들 생각해서 또한 그 정도로 은비씨를 믿고 있기에 결정을 내렸다는 것만 말을 하고 싶습니다.“
“................................”
서재우는 은비의 태도를 잠시 바라본다.
그리고 녹음기를 꺼내어 탁자 위에 놓고 작동을 시킨다.
바로 흘러나오는 소리는 여자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은비는 놀라서 서재우를 바라본다.
그러나 서재우는 은비를 보지 않으려 다는 곳에 시선을 가져간 것이다.
뒤이어 여자에게 폭행을 가하는 소리가 끔찍스럽게 들려온다.
폭행과 함께 성폭행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소리였다.
여자의 음성은 이미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이 비참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처럼 가느다랗게 이어진다.
이미 소리조차 지를 수 없는 아주 가날프고 숨이 끊어질 듯한 신음소리였다.
상대는 한 놈이 아니라 여러 놈이라는 것을 말해주듯이 한 번의 성폭행이 끝나고 나서 곧 바로 다시 이어지는 소리, 난잡한 소리들이 들려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게 뭐예요?
왜 나에게 이것을 들려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은비의 다급한 물음에도 서재우는 아무런 말도 없다.
또 다시 극심하게 폭행을 당하는 여자의 짐승 같은 비명소리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울부짖음과 함께 다시 여자의 음성은 잦아든다.
사내들의 헉헉대는 숨소리와 여자의 음성은 이미 묻혀버렸는지 체념을 했는지 사내들의 짐승 같은 소리들만이 범벅이 된다.
그런 소리들이 한참을 흘러나오고 나서야 잠시 잠잠해 진다.
그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 무엇을 씹는 듯한 소리 뒤에 여자의 처참한 울부짖음 누군가를 부르는 애절한 음성.
은비는 차라리 귀를 막고 싶다.
이곳에서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 흐 흐 흑!
엄마!
나를 왜 낳았어요?
은철아!
은비야!
여보!“
은비는 눈이 동그래진다.
오빠와 자신을 부르는 처참한 음성!
은비의 눈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우리 엄마?
정말 우리 엄마 맞아요?”
그러나 서재우는 못 들은 척 한다.
그렇게 여자의 흐느낌은 한동안 계속된다.
처절한 흐느낌은 사람의 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비참하게 들려온다.
얼마를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나서 조용해진다.
그리고 한참만에 다시 이어지는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사내들의 음성이 들리고 또 다시 여자를 폭행하는 소리, 소리들!
은비는 귀를 막는다.
들을 수가 없을 정도로 폭행을 당하는 여자의 처참한 비명소리도 도가 지나쳤는지 사그러들면서 폭행을 가하는 가학적인 소리가 들린다.
“야!
김태영!
그만 해라!
그러다 죽이겠다.“
“씨팔!
저런 년 하나쯤 죽어 나간다 한들 무슨 대수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고 있어?
만일 저 여자가 죽는다 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래?
생각을 해 봤어?“
”까짓것 이 집과 함께 불태워버리면 그만 아냐?“
사내들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다.
“아!
그만..........
그만해요!
우리엄마가.............
정말 우리엄마가 맞아요?“
은비는 고함을 지른다.
더 이상은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서재우는 녹음기의 작동을 멈춘다.
이미 은비의 얼굴은 흘러내리는 눈물로 해서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서사장님!
아니죠?
이건 정말 아니죠?
어떻게?
우리엄마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저렇게 짐승보다 못한 놈들이.........“
은비는 말이 되어 나오지를 않는다.
“지금 우리엄마 어디 계세요?
이미 죽었나요?“
“아니요!
이미 은비씨하고도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뭐라고요?
그럼?.....................
설마 엘레나 회장님이?“
“맞습니다.
그분이 바로 채소희, 강정식씨를 남편으로 두고 은철과 은비라는 자식들을 두셨던 분이셨지요.“
“어떻게...........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있을 수가 있어요?
무엇 때문에 왜?
이건....이건 아니야!
사람이라면 저렇게 한 여자를 짓밟고 폭행을 할 수 없는 것이야!
저 놈들 내가 죽여 버리겠어!“
은비는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친다.
엄마가 당했던 일들은 상상만으로도 끔찍스럽고 몸서리가 처지는 일이었다.
서재우는 은비가 마음을 가다듬도록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본다.
은비는 한동안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너무나 끔찍하고 몸서리처지는 소리들에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재우는 다시 차를 가지고 온다.
“자!
이것을 한 모금 마셔요.
마음이 한결 차분해 질 겁니다.“
은비는 서재우가 권하는 차를 마신다.
그리고는 큰 호흡을 하면서 자신을 가다듬으러 애를 쓴다.
“미안합니다.
은비씨에게 이런 고통을 주리라 예측을 하면서도 들려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말로서 설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
“이러는 나 자신도 은비씨 못지않게 고통스럽습니다.”
“우리엄마가 저런 모진 고통과 폭행을 당하시고도 살아 남으셨다는 말인가요?
정말로 저것이 사실이라는 말입니까?“
”은비씨!
이제는 조금 마음을 진정하게 나머지 제 설명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서재우는 자신이 프란치스코 신부님을 만난 것부터 말을 이어나간다.
은비는 서재우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평상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서재우의 말은 차분하게 이어진다.
소희의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은비는 다시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서재우는 소희의 얘기를 사내들에게서 풀려나서 신부님과 요안나가 보살펴주는 것과 어떤 심정으로 이 나라를 떠나야 했는지를 소희를 대신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라도 집으로 오시지 않고..........”
은비는 다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당시 엄마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여자로서 그렇게 망신창이가 된 몸으로 다시 가정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고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은비도 여자로서 더구나 결혼을 앞둔 여자로서 여자들의 정조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서재우는 말을 하면서도 은비가 엄마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소희가 살아왔던 이야기들, 가슴에 어떤 한을 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긴 얘기를 끝내고 나서 은비를 바라본다.
은비는 자신을 낳아 준 엄마가 한없이 불쌍해져 온다.
여자로서의 치욕과 극심한 폭행을 견디면서 살아 날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은비의 가슴을 아프게 찢어 놓고 있었다.
“아, 엄마!”
“은비씨!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 주시라 믿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오셨는지 말로서는 그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
“엄마가 지금까지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딸을 딸이라고 부르지도 못하시는 그 심정을 무슨 말로 표현을 하시겠습니까?
수많은 나날들을 자식들이 보고파서 잠을 주무시지 못하시고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은비씨를 앞에 놓고도 엄마라는 말씀을 하시지 못하시고 딸이라고 부르지도 못하셨던 그 심정을 누가 알겠습니까?“
“사장님!
지금 왜 그 놈들에게 복수를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누군지 알고 있는 마당에 왜 잠자코 이렇게 당한 채로 바라보고만 있는 것입니까?“
“은비씨!
지금 그 그룹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사주가 물러나고 전문 경영진의 체제로 돌입을 했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이미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김태영의 모든 것을 빼앗고 그 집안의 모든 권력을 물거품을 만들었습니다.
이미 시효가 지난 상태에서 법적으로는 그 놈들을 처벌할 수 없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징은 가한 것입니다.
김태준 또한 그런 동생으로 이제는 정치권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되었고 김회장 역시 두 손을 털고 대기업을 고스란히 사회에 되돌려야만 했지요.“
“................................”
서재우는 그동안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한다.
김태영과 오승호 그리고 이준혁에게 응징을 했던 모든 것들을 말해 준다.
"오승호 역시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지금 어디로 낙향을 했는지 종적을 감추었지요.
아버지 오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은 모두 이번 일로 일어난 일들입니다.“
“우리어머닌 어디 계십니까?
당장 어머니를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은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모든 일들을 하시고 나서 마음이 몹시 허전하고 억울해 하시면서 일단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습니다.
당신 마음을 조금 진정하시고 당신을 추스른 다음에 가족들을 만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은비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 할 것도 같았다.
“은비씨!
문제는 이제 아버님께 어떤 방법으로 어머니에 대한 말씀을 드리느냐는 것입니다.
이제 어머니를 포기하시고 마음 편안하게 살아가시는 아버님께 또 다시 심한 고통을 드리게 되는 것만 같아서............“
“.........................”
은비는 아버지가 어떻게 받아드리실지 비로소 생각이 되는 것이다.
이제 아버지는 간신히 편안한 마음이 되신 것이다.
엄마로부터 오랜 세월동안 갇혀 지내셨던 아버지의 마음을 은비는 알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고통을 다시 또 시작하게 해 드린다는 것이 마음이 아파온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