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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머무신 분 1:29~34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메시아를 따르는 제자들 1:35~42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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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 위에 성령이 머무는 것을 보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합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른 안드레가 메시아를 만났다며 형제 시몬을 데려오자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게바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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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머무신 분
1:29~34 _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는 예수님을 알 수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세례 요한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성령이 하늘로부터 비둘기같이 임해 머무는 사람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하나님 아들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세례 요한은 한 사람 위에 성령이 머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34절)로 확신했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29절)으로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라야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이 하나님 아들이심을 믿고 전할 수 있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심을 어떻게 알아보았나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내가 선명하게 알게 된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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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를 따르는 제자들
1:35~42 _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29, 36절)으로 증언합니다. 유대인들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 제사(출 12:3~11)와 속건제를 위한 희생 제사(레 14:10~25; 민 6:12)에 어린양을 사용하기에, 어린양 칭호에는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증언을 듣고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중 안드레는 자기 형제 시몬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증언합니다(40~41절). 그러자 시몬도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분이 메시아심을 적극적으로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시몬(‘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뜻)의 이름을 게바(‘바위, 반석’이라는 뜻의 아람어)로 바꾸어 주시며 그를 새로운 존재로 살게 하십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칭호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어린양 예수님을 나는 누구에게 소개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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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이라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 한 인사 담당자가 구직자들과 인터뷰를 한다. 그런데 담당자는 그들에게 터무니없는 조건을 요구한다. 일주일 내내 일해야 하고, 24시간 내내 마음대로 쉴 시간도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어떤 급여도 없다고 하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건 부당하고 미친 짓이라고 외치며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과연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인사 담당자가 답한다. 존재한다고. 그것도 아주 많이. 그들은 바로 ‘엄마’였다.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며 우리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부모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지금의 자유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의 관계에서 한쪽이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와 상처를 입힌 경우, 이 사랑을 회복하려면 더 큰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고 말한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길 원하셨지만, 정작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그분과의 관계를 망가뜨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노예가 된 우리와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셨고, 우리를 대신해 자기 아들에게 세상 죄 짐을 지우셨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 주셨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추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분명하고 구체적인 것임을 보여 준다. 우리가 그분께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음에 답하다 / 조재욱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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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요한복음 1장 29, 36절
예수님은 희생당하신 유월절 어린 양입니다(고전 5:7).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세례 요한의 진술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물로 자기 몸을 십자가 죽음에 내어 주심을 의미합니다(히 9:12). 어린 양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죄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어린 양 예수님은 요한계시록에서 심판 내용이 기록된 '일곱 인'을 떼실 권세자로 등장하십니다(계 5:5~7). 우리를 구원하시는 어린 양은 최후 심판의 주관자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복음에 응답해 살아가려는 마음과 능력이 생긴다. - 팀 체스터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주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고 알아 가게 하소서. 오늘 제 주변에서, 제가 만난 주님을 전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돌아봅니다. 주님이 필요한 이들이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제자가 되도록 이끄는 일에 저를 사용해 주소서.
오늘의 말씀요약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하며,
그분 위에 성령이 머문 것을 보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합니다.
예수님을 따른 요한의 두 제자 중 안드레가 메시아를 만났다며
형제 시몬을 데려오자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게바라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처음에는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 알지 못했던 세례 요한은 때가 되자 그분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임을 알아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 위에 성령이 머무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습니다.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 제자들이 예수님 따르는 것을 허락하며,
충성스럽게 예수님의 길을 준비합니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는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이끄는
마중물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것을 예수님께 집중합니다.
- 묵상 질문: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고 증언하나요?
- 적용 질문: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증인 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요한복음1:29-42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요한이 어떻게 예수님을 메시야로 확신하게 되었는지를 말합니다
요한은 성령님의 지시로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확신했습니다
31절에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33절에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34절에"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성령이 예수님 위에 임하심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알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한은 성령을 기다린 사람이요 의지한 사람입니다
오늘도 성령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사람을 인도하십니다
기도하기는 예수님이 나의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예수님을 알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요한은 자신의 두 제자에게 예수님이 메시야 이심을 알립니다
35-36절에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한의 말을 들은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릅니다
두 제자가 안드레와 요한이었습니다 안드레가 좀 더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난것 같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을 메시야로 확신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드레는 형 시몬을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을 보시고 이름을 베드로라 바꿔주었습니다
42절입니다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시몬 하나님은 들으신다에서
베드로 반석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이름의 뜻과 같이 시몬을 예수님을 만나 반석으로 새로운 존재로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중에 하나가 사죄의 은혜를 깨닫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나를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예수님과 예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우리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증언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31) 우리 주님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 제단에 바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 양입니다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출12:3)
그 다음 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거니시는 것을 보고 다시 외쳤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36) 우리 주님은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물었을 때에 대답한 그 어린 양입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22:7~8)
그때 요한의 그 두 제자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보고 뒤따랐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구하느냐"(요1:38)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요1:3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보라"(요1:39)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에 주께서 무엇을 구하느냐 물으시면 뭐라 대답할까요?
성공이나 돈을 구할까요?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주 한 분 뿐입니다
그러므로 대답하기 원합니다 "주여, 우리가 아무것도 원하지 아니하고, 오직 주 계신 곳에 우리도 있기 원하나이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곳이 아닌, 어린 양께서 이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기 원합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14:4~5)
그리하면 주께서 와서 보라 말씀하시고, 주 계신 곳에 우리도 있게 하실 줄 믿습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12:26)
그리하면 주 계신 하늘에 우리의 처소도 있게 하시고, 와서 보라 말씀하실 줄 믿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
종교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그리스도를 알려고 하는가?
나는 왜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는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고자 하는 거룩한 불타는 욕망이 내안에 있는가?
세례 요한의 사명은 너무도 분명했다. 요한의 정체성도 분명하다.
요한은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주안에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요1:12)
나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나는 세상의 소금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
나는 빛의 아들이요 어둠의 자식이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다.
나는 하늘 나라의 시민이다.
나는 예수님의 친구다.
나는 성도이다.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자이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는 구속함을 받고, 죄용서 받았으며,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를 받았다.
세례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사람 (안드레와 저자 요한)과 함께 섰다가
예수님의 다니심을 보고"보라, 하나님의 어린양 이로다"라고 예수님을 향하여 보게하고
제자들도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좇게한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 묻고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까?"라고 대답한다.
예수님이 다시 "와 보라" 하시니 가서...보고...함께거하며 1박2일의 수련회를 한다.
예수님을 만난 교제한 안드레는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 "우리가 메시야를 만난다"고 하고
데리고 예수께로 나아온다. 예수께 나온 시몬은 엄청난 축복을 받는다.
세례요한 처럼 최소한 내 자녀 나의 가족 이고 나의 소유라고 착각하지 말고 예수님을 만나도록
그분을 좇아 갈수 있도록 배려하고 적극적으로 방향을 잡아 주어야 겠다.
예수님이 나에게 "What do you want?"라고 물으시면 무어라 대답할까?
무슨 동기와 목적으로 예수님을 쫒느냐고 물어보시면
소심한 성격 고치기 위해서 교양을 쌓기 위해서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고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니고 바로 예수님 자체에 대해서 예수님과의 인격적 사귐을 통해
예수님을 알고 싶다고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싶다고 예수님으로 인해 새사람 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예수님의 "와 보라"는 초대를 받고 예수님과 저녁 시간을 함께보낸 안드레가
자기 형제를 찾아 예수께 데리고 온것처럼 나도 친구들을 찾아 예수께 데려오고 싶다.
교회 안믿어 하던 친구들 찾아 ...데리고...예수 만나게 해야 하는데
누가 먼저 올꼬..... 오면 엄청난 복 받을 텐데 예수님 믿을 생각은 안하고
종교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착각들을 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나쁜게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싫다나....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공적 사역에 등장하시자 세례 요한은 그분이 바로 메시아임을 증언한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나아오시자 그에 대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라고 말한다.
요한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는 것을 보고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 자기의 생각이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알게 되었으므로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전한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가르쳐주자 그의 제자 중 2명이 예수님을 따라간다.
본문의 기자는 그중 한사람의 이름이 안드레라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밝히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 제자가 자신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한다.
결국 세례 요한은 자신을 위해 제자를 키우지 않았고 예수님과 함께 복음 사역을 감당할 사람들을 준비시켰던 것이다.
관심과 사랑을 받을 때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만 온전히 세상에 드러내는 신실한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메시아에 대한 증언은 세례 요한 뿐 아니라 제자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안드레는 형제 시몬에게 자신이 만난 메시아를 형제와 친구들에게 전하고 예수님 앞으로 이끌고 나오기도 했다.복음은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감추려고 해도 나오게 되어 있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전하고 싶어진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다면 입술과 삶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드레가 시몬을 데리고 예수님께 갔을 때 게바(반석)라는 새 이름을 주신다.
그가 훌륭해서 반석이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름에 맞게 변화시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부족한 우리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는 분이시다.
이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전하는 사람으로 자라가길 소망합니다.
(요 1:29~42절) ❝주님을 만난 제자로 사는 삶❞
❚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답게 날마다 변화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 제자로 살아가는 자세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뜻에 순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29~34절).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29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죄를 제거하실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15절의 말씀을 반복하면서 예수님은 자신보다 약간 늦게 등장하시지만, 자신보다 훨씬 앞선 분, 즉 우월하신 분(30절)이심을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것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에 나타내는 것(31절), 즉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성령께서 예수님 위에 머물러 계시는 것을 보았지만,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33절) 하셨는데, ‘...나는 그것을 보았고, 그래서 나는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다...’(34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이스라엘만의 구원자가 아니라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유월절의 양처럼, 고난 당하는 종으로서 기꺼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현재 계획하고 이루고자 힘쓰는 것들이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자신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계획하고 바라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때, 가장 유익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려고 한다면 과감하게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두렵거나 피하고 싶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붙잡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갈망을 가져야 합니다(35~39절).
또 이튿날 요한은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서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35,36절)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돌아서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구하느냐...’...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 싶어하는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도전적인 질문이셨습니다.
그들은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이시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하며,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자신들의 간절한 갈망을 이렇게 대답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 안에서 있는 영적 갈망을 보시고 ‘...와서 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가서 예수님께서 머무르시는 곳을 보았고, 예수님과 함께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질문하셨던 것처럼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겠노라 고백하는 내 자신을 향해서도 ‘왜, 예수님을 따르며, 무엇을 찾고 원하는지...’ 동일하게 물으십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나에게 ‘와서 보라’고 초청하십니다. 주님의 초청에 응했을 때 결코 실패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자신에게 나아오라고 부르십니다(마 11:28~30). 그러므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모셔드릴 때, 주님과 더불어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자 하는 영적 갈망이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 갈망이 있을 때, 주님은 기뻐하시며,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자 하는 영적 갈망 안에서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께 속한 믿음의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40~42절).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였습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우리가 메시아 즉, 그리스도를 만났다...’라고 말했습니다(40,41절). 그리고 시몬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 즉, 베드로라 하리라...’(4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베드로를 완전히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이름을 바꾸어 주는 것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며, 변화의 계기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비록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예수님은 ‘게바’라는 이름의 뜻처럼 견고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임을 예고하셨습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에 비해 별로 주목받지 못한 제자였지만, 그의 전도가 없었다면 사도 베드로도 없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안드레는 위대한 전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대한 열정을 가질 때, 하나님은 그 중심을 꿰뚫어 보시며 살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것처럼 내 자신을 의의 길로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이나 문제 앞에서도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어놓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아실 뿐만 아니라 내 자신을 날마다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 가시는 선한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열정을 가지고, 주님의 제자답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참 제자의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깊이 알고 그분의 삶을 본받고자 하는 영적 갈망을 가지고 복음의 증인 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요 1:29~42절)...
요3:16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잡고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 12:2~11)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7~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1-2)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고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섭리를 찬양합니다. 때론 흔들리고 넘어지는 갈대와 같더라도, 24시간 주님을 바라보고 그 십자가에 시선을 고정하여, 저는 다리가 바로 걸을 수 있도록 고침을 받는 복된 삶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평생 주님과 동행하며,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굳게 서서, 주님을 알리고 구원을 노래하는 파수꾼의 삶을 살아내도록 성령으로 오늘도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열방의 광야와 사막 가운데 증인의 삶을 살아내기를 기뻐하시며 나아가는 선교사님들의 모든 발걸음 가운데 강과 길을 내어 주시고, 그 구하는 것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필요를 채워 주시옵소서.
고통과 슬픔, 핍박과 묶임 가운데 놓인 모든 주님의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새롭고 산 소망으로 풍성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분열과 미움, 분노와 다툼으로 가득한 이 땅을 치유하여 주시고,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로 붙드셔서 맡겨주신 거룩한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