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태원 참사에 대한 기억이 아직 쟁쟁한데
오송지하차도 희생자, 서이초 교사 추모와 신림동 참사 희생자에 대한 추모객들의
포스트잇에 눈길이 갔습니다.
지켜본 국민의 공감과 분노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전예해행초-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때가 되어 교직에서 퇴임하신 선후배님들이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곳이
문화원이나 행정복지센터의 서예교실이었습니다.
"글씨는 마음의 거울"이라 했으니
먹을 갈아 글씨를 쓴다는 것은 마음을 닦는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이었지요.
오늘 이야기는 서체 이야기입니다.
한자(漢字)는 한(漢)나라의 글자이기에
우리 글자가 아닌 중국의 글자라고 말하거나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국의 학자들에 의하면 한자는 동이족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쓴 글자라는 얘기인데...
한자의 기원은 석기시대에 거북의 등껍질이나 동물의 뼈에 쓴 갑골문에 두고 있습니다.
이후 청동기시대에 청동판에 쓴 글을 '금문(金文)'이라 합니다.
갑골문이나 금문은 글씨라기보다 그림에 가깝습니다.
이런 그림문자는 주(周)나라 시대에 이르러 정비를 합니다.
글씨같은 글씨가 만들어진 것인데, 이 글씨를 '대전(大篆)'이라 합니다.
의왕(宜王) 때 태사(太史) 주(姝)가 만들었다고 전합니다.
세월이 흘러 진시왕이 천하를 통일하고 화폐나 도량형도 통일을 합니다.
이때 문자도 통일을 시키는데요
재상 이사(李斯:?∼BC 208)가 대전(大篆)을 간략하게 정리를 합니다.
이를 '소전(小篆)'이라 합니다.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의 글씨체를 '전서(篆書)'라 합니다.
간략하게 만든 전서라도 마치 그림같은 글씨라 빨리 쓰기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당시 노예(奴隸) 출신의 정막(程邈)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 옥관들이 글씨를 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보고
빠르게 쓸 수 있는 서체를 만들었는데요. 이를 '예서'라 합니다.
'예서'는 한자로 '隸書'라 씁니다. '隸'는 '노예(奴隸)'라는 말에서 보듯 '종 예'입니다.
서체를 만든 정막(程邈)이 노예출신이었으므로 '예서(隸書)'라 이름 붙인 것입니다.
정막(程邈)이 만든 '예서(隸書)'는 오랫동안 쓰입니다.
세월이 흘러 한(漢)나라 시절(1세기 후반) 종이가 발명되면서
죽간에 쓰던 때와 달리 글자의 쓰임이 활발해집니다.
기록할 때 빨리 써 놓고 후에 정서(正書)하는 방법도 쓰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먼저 대충 빨리 쓰는 것이 '초고(草稿)'이며,
이 초고에 쓰는 글자가 '초서(草書)'입니다.
후한(後漢) 말기에 이르러서는 '예서'가 '해서(楷書)'로 바뀌게 됩니다.
'楷'는 '나무(木)'와 모두를 뜻하는 '皆(다 개)'가 만난 글자로
'모두 다 있는 온전한 나무'를 뜻하는 글자로 온전한 것은 본받을 만하기에
'본받을 만한 온전한 것'이라는 뜻의 글자입니다.
따라서 '해서(楷書)'란 '본받을 만한 온전한 글자'라는 뜻이죠.
초서는 읽기가 어려우므로 초서와 해서의 중간쯤 되는 글자가 만들어졌는데요
이를 '행서(行書)'라 합니다.(행서(行書)라는 이름을 붙인 연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예해행초의 순서는 글자의 모양이 바름과 흘려 쓴 정도를 이르는 말로
만든 순서와는 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서체이든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골라 꾸준히 쓰다보면
'명필'이라는 소리도 듣게 되지 않을까요?
고맙습니다.
-우리말123^*^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