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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없이 사유할 수 있을까? 언어는 의사를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는 하지만 때때로 언어는 사람을 죽이는 달콤한 독(毒)이기도 하다.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 불교에서는 <말을 잃어버린 자리에 진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말을 잃어버린 자리에 진리가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진리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게 아닐까?
이 외계에는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노인도 없으며 먹고 배설하고 휴식하는 생명체의 기본적인 행위조차 하지 않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는 글을 읽고 ‘과연 생명체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왔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내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생식을 하고, 에너지를 공급하며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언어를 쓰고 있다는 것은 사고를 하고, 고차적인 인지를 하며 상호 의사소통을 하고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쓰며 모든 것이 낯선 이 외계에서 나는 어떻게 그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쉬운 접근으로 동물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동물은 인간과는 또 다른 자기들만의 의사소통 체계를 가지고 우리와 다른 문화를 형성하며 생활하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그런 동물들과 인간은 생활환경이 다름은 물론이고 언어체계 또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물의 생활을 관찰함으로써 그들의 문화, 의사사통 체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들 특유의 의사소통 방법을 익히게 되면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들과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는 할 수 있게 된다. 그 예로 꿀벌의 춤을 관찰하고 나서 꿀벌들은 원을 그리며 추는 춤, 8자 모양을 그리며 추는 춤 등 춤의 형태를 달리하여 꿀이 있는 방향과 거리, 꿀의 질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돌고래의 소리를 연구하며 돌고래가 내는 ‘박동음’소리는 내적인 감정이나 정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고, 맑은 소리의 경우 ‘삐익’하는 소리는 구애의 신호, 낮은 음조의 휘파람 소리는 고통의 신호, 높은 음조의 소리는 상쾌함의 신호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듯 우리와 다른 생활환경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또 다른 생명체의 생활은 장기간의 지속적이고 세심한 관찰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곳의 주민들에게 ‘외계의 생명체’로 인식되어 ‘위험한 존재’, ‘없애야 할 존재’로 인식되어 그들의 삶을 관찰하기도 전에 죽음을 맞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한 후(그러나 이때에는 어떠한 의사소통도 되고 있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위협을 무릅쓰고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하여 최소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필요함) 그들과 부대끼며 어린아이가 언어를 배우 듯, 성인이 외국어를 배우 듯 차근차근 그들의 생활을 관찰하며 언어를 배우고 의사소통 체계를 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진심을 전달할 수 없어서 오해받았던 경험을 쓰고, 그 때 어떻게 오해를 풀었는지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알려주시오.
“진심을 전달할 수 없어서 오해받았던 경험”이라는 문장을 보고 문득 작년 가을에 보았던 “사랑을 놓치다”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난 뒤 여자 주인공이 들뜬 마음으로 설레어하며 다음 날 남자 주인공을 찾아갔을 때, 이 남자는 ‘미안하다’라는 단 한마디만을 하게 된다. 남자 주인공은 그렇게 하루를 함께 보냈던 것에 대해 여자 주인공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또 자신의 마음이 확실히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은 복잡 미묘한 모든 감정들과 생각들이 그 단 한마디로 표현이 되었고 ,여자 주인공은 그 ‘미안하다’는 말을 남자 주인공이 같이 보낸 하룻밤에 별 의미를 두고 있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내 감정과는 다르게 표현되기도 하고, 또 있는 그대로 의미가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다. 예전에 한 친구에게 ‘나는 네가 불편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무언가 서로 해야 할 말들을 하지 않은 채, 기름칠이 잔뜩 된 톱니바퀴가 꾸역꾸역 돌아가고 있는 듯한 상황에서 서로의 마음은 표현하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서 풀어야 할 상황을 그냥 묻어둔 채 어색하게 대화하고 행동하는 것이 불편해서 그런 불편한 상황을 풀어보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었는데 그 친구는 내가 자기를 싫어하는 줄 알고 더욱 마음을 닫아버린 적이 있었다.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지만 이미 마음이 돌아서버린 그 친구에게 내 말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잠시 서로가 생각을 할 시간을 가진 후 나는 내 생각과 감정을 글로 써서 그 친구에게 주었다. ‘말’이라는 것이 때론 피상적이고 감정을 잘 대변해 줄 수 없을 때도 있지만 내 마음을,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수단이 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일단 얼굴을 보고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내 생각을 그대로 모두 말로 잘 표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감정에 휩쓸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거나 마음에 없던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내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글로 표현해서 편지를 전했다. 글은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생각을 다듬고, 한 발자국 물러선 거리에서 쓰고, 또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진솔한 마음의 표현, 그 상황에서의 서로의 얼굴 표정이나 이제까지의 행동을 통해 비춰본 그 사람의 생각, 행동, 진심 등의 판단을 통해 그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감정 표현에 서툰 것 같다. 서툰 감정 표현이 담긴 더 어설프고 서툰 말들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면서도 상처를 받게 되고 또, 그런 어설픈 말과 행동을 후회하는 것 같다. 또,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헤아리는 것에도 많이 서툰 것 같다. 복잡 미묘한 감정들, 내 마음 깊은 곳의 움직임을 잘 감지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오해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감정의 교류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표현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감정의 표현은 때로는 애매모호한 상황을 만들어 각자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해석할 수 있어서 서로 오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3]언어가 없어도 생각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시오.
언어 없이 사고가 가능할까? 사고 없는 언어가 가능할까? 사고가 언어를 결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언어가 사고를 결정하는 것일까?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고대 이래로 계속되어 왔다.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크게 언어 우위론과 사고 우위론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언어 우위론이란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이론으로 언어가 인간이 사물을 지각하고 그와 관련된 사고를 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언어학자이자 인류학자였던 E.Sapir는 우리가 듣고 보고 체험을 하는 양식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언어 습성이 특정한 방향으로 해석하게끔 편향돼 있기 때문에 그런 방향으로 지각하고 생각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언어우위론자들은 사람이 사물을 인지하는 방식이 언어의 지배를 받으며 언어의 차이는 각 언어권 사이의 문화의 차이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고 우위론은 언어 우위론에서처럼 실제로는 언어가 그만큼 우리의 사고를 철저하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언어 이전에 사고가 먼저 일어난다고 보는 이론이다. 사고 우위론자들은 색깔의 예를 들며 사고가 먼저 일어난다고 보았는데 즉, 어떤 색깔에 해당되는 말이 그 언어에 없다고 해서 전혀 그 색깔을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진한’, ‘연한’과 같은 말을 붙여 같은 종류의 색깔이라도 여러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언어가 있기 이전에 사고가 먼저 일어나고, 언어가 없어도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생각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거나, 표현하고자 하는 말을 갑자기 잊어버려서 ‘그 단어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네......’하면서 답답해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 해가 뜨는 바다의 풍경, 노을 지는 강의 풍경, 단풍과 억새로 장관을 이루는 가을 산의 풍경, 물안개가 이는 새벽 강가의 풍경, 다채로운 하늘의 모습 등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보거나 정말 가슴이 벅차오르고 감동적인 음악을 들을 때, 또는 슬픈 영화나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슬픔의 감정 등과 같은 우리의 무한하고 다채로운 감정들을 말로써 충분히 다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가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거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생각과 말이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느낌의 형성과 말의 구성이 서로 다르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우리는 새로운 물건이나 새로운 생각을 이제까지 없던 새 말로 만들어 명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2세 이전의 어린 아이들이 말을 제대로 할 수 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사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여러 실험을 통해서도 말소리 생성 이전에 사고가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언어 우위론자들은 언어가 서로 다른 세계관과 사고방식을 갖도록 한다고 주장했는데 우리가 외국어를 배운다고 해서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세계관이 바뀐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언어가 사고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이전에 사고가 먼저 일어나며 언어 없이도 충분히 사고하고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4]물음에 대해 님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잘 제시한 것 같습니다..^^잘읽었습니다..
[3] 논리적으로 잘 서술해주셨네요. 하지만 본인의 의견을 좀더 부각시켰으면 좋았을 듯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4] 네 잘 읽었습니다^^ 표현측면에서 한 번 더 다듬어 주셨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2] 3번문항에 대해 출저를 밝히면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었을 듯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3] 결국은 우리가 관찰하고, 사유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죠...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심리학도가 되시옵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