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인(由布院)이란 마을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4년 전이었습니다.
무작정 일본에 가고 싶어 휴가를 내고 떠났던 배낭여행.
규슈레일패스 한 장 가지고 배짱좋게 규슈일주를 하던 중 우연히 탄 열차가 유후인노모리(由布院の森)였지요.
'너무 예쁜 온천마을'이라는 옆자리 할머니의 설명에도
그때 내리지 못한 것은 숙소인 벳부(別府)로 가는 발걸음이 바빴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서야 알았습니다.
일본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온천 1위로 뽑힌 마을,
100여개의 미술관과 기념품가게, 카페들이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붙잡는 곳이
바로 유후인이었다는 사실을...
4년 만에 유후인을 다시 찾았습니다.
12월 초, 날짜로보면 한겨울인데도 유후인은 4년 전 여름과 똑같은 초록빛으로 낯선 여행자를 맞아주더군요.
자, 그럼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유후인으로 여행을 떠나보실까요?
꿈의 열차, 유후인노모리
규슈레일패스로 이 아름다운 열차를 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초록 마을 유후인은 이 열차로 들어와야 제 맛이지요.
마치 2층 기차처럼 좌석이 높이 위치해있어 창밖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관광열차입니다.
유후인까지는 오이타(大分)역에서 45분, 반대편인 하카다(博多)역에서는 2시간 15분이 걸립니다.
마을만큼 아름다운 유후인 역
유후인 역에 내렸습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체육관을 설계했던 유명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의 작품이라는 곳입니다.
중세 유럽예배당을 컨셉트로 1991년 지어져 건축비만 2억 엔에 달했다고 하네요.
개찰구가 따로 없고 대합실은 미술전시공간을 겸하고 있습니다.
유후인 관광의 첫 관문 유후인역. 그냥 지나칠 곳이 아닙니다.
대합실 풍경입니다.
겨울아침이어서 그랬는지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날도 어느 젊은 미술가의 작품이 대합실 벽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유후인역 구내에 있는 발온천탕(足湯).
무료는 아니고 160엔을 구내 매표소에 내면 이용할 수 있습니다.
헌데,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어 살짝 발을 담가봐도 괜찮을까 싶네요.
어쨌든 열차를 기다리는 지루함은 없겠군요.
긴린코(金鱗湖) 가는 길
걸어서 유휴인을 돌아본다면 마을의 끝 부분에 있는 긴린코까지 다녀오는 길이 가장 좋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라 걸어서 두 시간, 자전거를 타면 1시간 안에 돌아볼 수 있지요.
긴린코로 가는 길가, 어느 상점에 핀 꽃이 여행객을 반깁니다.
유후인은 이렇게 맑은 하천을 따라 이루어진 마을입니다.
여름이면 이 곳 하천가에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가 날아들어
황홀한 빛의 향연을 벌인다고 합니다.
그 장관을 보려면 여름에 한 번 더 와야 겠군요.^^
유후인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이 유후다케(由布岳)입니다.
아래서 볼때는 그리 높지 않아보이는데 높이가 1천584m나 된다고 하네요.
유후인 마을 자체가 해발 453m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긴린코로 가기 위해서는 이 유후다케만 바라보며 올라가면 됩니다.
유후인-예쁜가게 둘러보기
10여분쯤 걷다보니 드디어 가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마엔 옥수수가 매달려 있고 등나무 바구니로 장식한 이 가게는
토산품과 민속주를 파는 곳이네요.
도심엔 백엔샵이 있는데, 유후인엔 천엔샵이 몇군데 있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커다란 천엔 지폐가 멀리서도 확 눈에 들어옵니다.
벌꿀로 된 모든 제품을 팔고 있는 '하치미츠노모리(蜂蜜の森)'.
유후인엔 이렇게 '~の森'라는 식으로 한가지 테마의 상품을 파는 가게들이 꽤 있습니다.
그럼 '가라스노모리(ガラスの森)'라 이름 붙여진 이 가게는 뭘까요?
맞습니다. 유리(glass)와 관련된 모든 소품을 파는 샵입니다.
이 곳 1층은 온갖 종류의 오르골을 갖춰놓은 '오르고루노모리(オルゴルの森)'입니다.
두 가게 모두 흔히 보기 힘든 예쁜 물건들이 많습니다.
가라스노모리 상점 앞에 전시된 미니 자동차.
운전하고 있는 꼬마아가씨는?
스누피의 남자주인공 챨리브라운의 여자친구인것 같네요.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간판에 '테디베어노모리'라고 쓰여 있네요.
그럼?
당연히 세계 온갖 종류의 테디베어를 모아놓고 파는 곳이겠죠.
하우스텐보스의 테디베어 뮤지엄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일본아가씨들 정말 이 곰인형 좋아하더군요.
값도 만만치 않은 이 못생긴 곰을 왜 좋아하는걸까요?
레트로 모터 뮤지엄(Retro Motor Museum)이란 가게(?) 앞에 서 있는 클래식 자동차입니다.
실제 운행을 했던 자동차인지 몰라 안을 들여다 보니 나름대로 충실하게 재현되어 있더군요.
유후인엔 이렇게 박물관 간판을 단 가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마을에 기념품 상점만큼 많은 곳이 바로 이런 미술관이라고 합니다.
전혀 미술관처럼 생기지 않은 곳도 있고, 이렇게 번듯한 곳도 있습니다.
많은 미술관들이 일년 내내 신인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공예점과 미술관을 겸한 공간 '유후인의 낭만'입니다.
관광객들이 좋아할만한 소품들을 작가 또는 작가지망생들이 만들고
이의 판매를 겸해 이 곳에서 전시를 합니다.
고양이 테마샵 - 네코야시키
고양이와 관련된 모든 소품을 팔고 있는 '네코야시키'라는 샵입니다.
사진에는 잘 안보이지만 앞쪽 청바지를 입은 여자 점원도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엄청난 고양이떼(?)들을 보세요.
앙증맞은 마네키네코(招き猫, 복과 재물을 부른다는 고양이 인형) 풍경도 있습니다.
많이 보던 고양인데...
어느 동화의 주인공인지 모르겠습니다. 장화신은 고양이였던가?
강아지테마샵 - 이누야시키
고양이 테마샵 바로 옆에 강아지 테마샵이 있습니다.
강아지 인형, 찻잔, 애견용품 까지 없는 게 없더군요.
고양이보다 강아지를 조금 더 좋아하는 탓에
약간 오래 머물러 인형들을 구경했습니다.
봉제인형 비싸다는 일본인데 값(1천~2천 엔)은 그럭저럭 납득할만한 수준입니다.
하나 사서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열쇠고리.
새앙쥐만한 강아지가 너무 귀엽습니다.
샵을 나오니 졸린 눈의 강아지가 '또 오세요'라고 인사 하는 것 같네요.
토토로 테마샵 - 동구리노모리
지금은 여섯살이 된 큰 아들 때문에
100번도 넘게 돌려서 보았던 토토로. 그 주인공들이 바글거리는 테마샵입니다.
가게 이름도 토토로와 메이를 만나게 해주었던 '도토리마을'입니다.
도토리마을 전경입니다.
입구 왼쪽으로 대형 토토로와 고양이버스,
그리고 비오는 날 메이와 사츠키가 토토로를 만났던 버스정류장 표지판이 보이시나요?
이런 가게에 들어가면 항상 열쇠고리에 가장 먼저 눈이 갑니다.
왜일까요?
아마... 값이 싸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잠꾸러기 토토로'라는 이름을 하고 있네요.
정말 온갖 표정의 토토로가 다 있습니다.
그런데, 저 옆의 까만 고양이는 비디오에서 본 적이 없는 녀석인데...
네코야시키에서 놀러왔나봅니다.
이것 저것 구경하며 길을 걷다가 또 아는 캐릭터를 만났습니다.
세균맨!
바로 옆에 호빵맨이랑 호빵맨 여자친구,
그리고 호빵맨 머리 만들어주는 할아버지 조각도 있었는데
여고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통에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했습니다.
뭐... 개인적으론 세균맨 캐릭터에 가장 호감이 가긴 합니다. ^^
이렇게 가게 구경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긴린코(金鱗湖) 입구에 닿았습니다.
지금까지 '동화나라 유후인'을 산책했다면
이제부터는 '온천마을 유후인'을 거닐 차례입니다.
호수 이름이 긴린코입니다.
원래는 '다케모토노이케(岳下の池)'라는 이름이었는데
메이지(明治) 17년(1884년) 모리쿠소 라는 유학자가 이곳 공중탕 '시탄유'에서
온천을 하다가 호수에 뛰어오른 물고기의 비늘이 석양에 비쳐
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보고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긴린코는 그리 넓은 호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아담하면서 꽤나 운치가 있는 호수지요.
연못 한 쪽으로는 물 아래서 솟아오르는 건지, 시탄유에서 흘러 나오는 건지
뜨거운 물 때문에 허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긴린코를 바라보고 있는 갤러리 겸 카페 '샤갈'.
유후인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 아닐까 싶네요.
부부 갓파를 만나다
우리나라의 '물귀신'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요?
일본 옛날 이야기 속에 나오는 친숙한 수중괴물 '갓파'입니다.
긴린코 옆 바로 소바집 입구에 전시된 돌인형인데,
몸매와 인어공주같은 자세로 보아하니 여자 갓파군요.
볼륨있는(?) 몸매의 갓파를 구경하고
잠깐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런... 다비드상 같은 몸을 하고 있는
남자갓파가 물 속에 앉아 있습니다.
아마도 둘은 부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유후인 대표온천 - 시탄유
유후인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 시탄유(下湯)입니다.
이 곳이 유명한 이유는
1. 남녀혼욕 공중목욕탕 2. 저렴한 입욕료 3. 바깥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노천탕
정도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번 들어가보면 아주 재미있는 곳이라는 걸 알게됩니다.
일본 노천온천의 유래를 그대로 설명해주는 곳이죠.
앞서 긴린코의 유래에서 나온 시탄유가 이 곳이 맞다면
이 온천의 역사는 적어도 118년이 되는 것이네요.
입욕료가 200엔입니다.
그나마 받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알아서 돈 통에 넣고 가라는 뜻이죠.
용기 내어 들어가 봤습니다.
앗! 할아버지 한 분이 목욕중이시네요.
기꺼이 뒷모습 모델을 허락해주신 일본 할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보시다시피 시탄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게 전부입니다.
탈의실도 따로 없고 옷장도 없습니다. 그냥 벽 바구니에 옷 넣고 뜨거운 탕 속에 몸을 담그면 됩니다.
바깥에서는 지금 할아버지가 앉아있는 곳이 들여다보입니다.
500엔에 맥주와 온천을! 仙洞
시탄유에 잠깐 몸을 담그고 반딧불이가 산다는
하천을 따라 내려오는데 무척 매력적인 간판이 눈길을 끕니다.
'노천온천 500엔 생맥주 또는 주스 제공'이라 써 있습니다.
한 시간쯤 걷다보니 목이 칼칼하던 차였습니다.
"좋다! 4년 만에 와보는 유후인, 온천이나 실컷 하련다. 게다가 맥주까지!"하는 마음으로
하천을 건너 仙洞이라는 온천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입구에 돈을 내니 수건 한 장과 맥주티켓을 줍니다.
아까 시탄유에서 수건이 없어 그냥 몸을 말려 입었는데...
그리고 주인 아주머니 한 말씀 하시네요.
"오늘 첫 손님이니까 거의 독탕으로 쓰시겠네요."
여긴 버젓하게 탈의실이 있습니다.
헤어드라이어도 있고 탕 안에는 샴푸와 비누도 있네요.
남녀혼탕이 아니라는 것이 마음 놓이면서도 조금 아쉽더군요.
노천온천은 꽤 널찍합니다.
물 온도도 적당히 뜨끈뜨끈해 몸을 담그고 바깥바람을 마시니 속이 시원합니다.
한쪽에선 계속 온천수가 흘러내리고 한쪽으로는 그 만큼이 하천으로 흘러갑니다.
목욕을 마친 후에 이곳 식당으로 오면 맥주를 줍니다.
우동과 소바도 파는 온천여관 부설 식당이지요. 분위기가 꽤 괜찮습니다.
맥주를 받았습니다.
안주가 없나 둘러보니 토종닭이 낳았다는 달걀을 팝니다.
한 개에 100엔. 소금이 겉에 듬뿍 발라져 있는 온천달걀을 안주로 한 잔 들이킵니다.
식당 안의 난로.
장식품이 아니고 실제 불을 붙여 식당안을 덥히는 진짜 난로입니다.
생긴 모양으로 보아 20년은 된 듯 하네요.
그리고 둘러 본 곳들
유후인 역으로 내려가는 길에 눈에 띈 커피숍입니다.
벽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쌀쌀한 날씨에는 꽤 따뜻하겠네요.
온천 후 시간 여유가 있다면 이 곳에서 커피 한 잔 하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유후인의 거의 모든 집들이 이렇게 분위기있는 옛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장식품인 가짜 이발소가 아니라 진짜 이발을 해주는 곳입니다.
처음 본 곳보다 조금 더 멋있는 천엔샵입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기념품을 산다면 천엔샵이 딱 적당하지 싶네요.
유후인 역 거의 다 가서 있는 교통센터입니다.
여기서 후쿠오카(福岡)와 오이타로 가는 버스가 서고 떠납니다.
후쿠오카까지는 2시간20분. 열차와 시간이 같습니다.
규슈레일패스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버스를 타는 것이 조금 더 경제적입니다.
역에서 내려서 다시 역으로 돌아오니 3시간이 흘렀습니다.
마을 전체를 돌아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다음에 온다면 한 시간에 300엔 한다는 자전거를 빌려
가보지 못한 외곽 마을을 한바퀴 둘러보고 오렵니다.
1년 후가 될지, 4년 후가 될지, 아니면 10년 후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유후인을 찾더라도 이 마을은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시 맞이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굿바이! 유후인.
계속 이 모습으로 남아주길...
첫댓글 이런 사진을 보고 어떻게 안 떠날 수 있겠어요? 저도 사진 동호회분이 올리신거 보고 당장에 큐슈로 가기로 결정.. 유후인은 기본 2틀은 묵어야 한다구.. 이런 동화속 마을이 있다니.. 사진을 넘 잘 찍은것도 있지만요.
당장이라도 가고싶네요 긴린코로 가는길가 상점의 꽃은 시클라멘입니다 감상 잘 했어요
아잉~~~~부러워잉!!!!
하늘아래님 일본엔 곳곳에 고양이 모양을 한것들이 상당히 많답니다. 왼손을 들었는지 오른손을 들었는지 자세히 보고오세요.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 상점주인에게 물어보세요. 흠~~재밌는 사연을 안고있답니다!..^^* 행복한 여행되세요.
아기자기....일본틱한 마을.....즐거운 여행되시길바래요..하늘아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