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 UEFA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F조 3차전에서 아스날이 바이에른 뮌헨(이하 뮌헨)을 2:0으로 꺾고 16강에 대한 희망을 살렸다. 아스날의 승리를 이변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근 몇 년간 챔피언스리그 16강에 그치긴 했지만, 팀이 가진 전통과 벵거 감독 그리고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여전히 훌륭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뮌헨은 부상자가 속출하였음에도, 이번 시즌 무패행진은 물론 연승행진을 이어가며 엄청난 기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객관적 전력에서 뮌헨의 우세가 점쳐졌기에 아스날의 승리가 놀라운 것은 사실이다. 아스날은 객관적 전력에선 보이지 않는 ‘무형의 무기’로 경기를 잡아냈다. 바로 간절함이다.

(△ '뜬금포'로 팀을 승리로 이끈 올리비에 지루. 출처:UEFA챔피언스리그 홈페이지)
아스날은 뮌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두 경기에서 2패를 당한 상태였다. 남은 네 경기에서 디나모 자그레브와 올림피아코스를 상대로 2승을 한다고 해도, 바이에른 뮌헨에게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면 2위 경쟁에서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다. 더구나 이번 경기가 홈에서 열리는 만큼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다. 이러한 간절함은 벵거 감독으로 하여금 전술적 변화를 시도하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뮌헨의 공격 전술을 분석하고 준비해 온 모습이었다. 이번 경기에서 뮌헨이 딱히 부진했다고 보긴 어려웠고, 다만 아스날이 확실히 더 집중한 모습이었다. 경기를 사실상 결정지은 지루의 골은 운이 따른 결과였지만, 그 전까지 보여준 경기력만으로도 분명 아스날은 스스로 승리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다.
이번 경기에서 아스날이 선보인 전략은 ‘수비 축구’였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유기적인 패스를 자랑하는 팀인 아스날에겐 승리를 위한 생소한 시도였다. 기본적으로 수비와 미드필더 라인을 두 줄로 구축하고 뮌헨의 공격을 상대했다. 수비 전술 내에서도 아스날이 철저히 뮌헨의 전술을 분석했다는 것을 베예린의 수비 방식에서 엿볼 수 있었다.
뮌헨의 공격은 좌우 측면에서 시작된다. 돌파 능력이 있는 로벤이나 리베리가 측면에 넓게 벌려서서 수비수와 1:1 상황을 만들면서 공격을 이끈다. 일단 돌파가 성공하면 연계플레이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다. 현재 두 선수 모두 부상으로 결장했지만, 이번 시즌 영입된 더글라스 코스타가 바로 '로베리(로벤+리베리)'의 역할을 대체해 줄 수 있는 선수이다.

(△ 측면의 더글라스 코스타 마크에 집중하는 베예린과 공간 커버에 나서는 아스날의 미드필더.)
드리블과 스피드를 갖춘 더글라스 코스타는 왼쪽에 배치되어 아스날의 우측면 수비수인 베예린을 괴롭혔다. 왼발에 강점을 가진 더글라스 코스타는 넓게 벌려서서 종적인 돌파를 여러차례 시도했다. 주력이 좋은 베예린은 초반에는 측면을 내주는 수비를 했지만 몇 차례 돌파에 이은 크로스를 허용하자, 더글라스 코스타의 종적 돌파를 막기에 집중했다. 더글라스 코스타가 종적인 돌파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반면 중앙으로 접으면서 들어오는 공격엔 능하지 않다는 것을 감안한 전술적 선택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물론 여기엔 다른 선수들의 헌신적인 수비적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더글라스 코스타 수비를 거의 전담하면서 베예린은 사이드라인까지 나가서 수비를 했다. 당연히 중앙수비수와의 좌우 간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뮌헨은 센터백과 풀백 사이에 생기는 공간을 주로 풀백의 오버래핑을 이용해 공략한다. 이는 뮌헨의 주된 공격 루트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베예린과 수비 사이의 공간은 미드필더들의 커버로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었다. 팀 전체가 승리를 위해 일치단결한 모습이었다.

(△ 간결한 터치로 탈압박하여 역습하는 아스날)
또한 아스날의 수비 전술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잘 정비된 역습 전술 덕분이었다. 공격 2선의 외질과 알렉시스 산체스는 아스날 수비가 공을 탈취하는 순간 바로 공을 받기 위해 움직여주면서, 뮌헨의 전방 재압박에 쉽사리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외질과 산체스에게 투입된 후 바로 역습으로 연결하든지, 3선 미드필더들에게 간결한 리턴패스를 연결하면서 뮌헨의 압박을 벗어나 빠른 전개를 연결했다. 정확하지 않더라도 수비 뒷공간을 노린 롱패스를 여러차례 시도한 것 역시 좋았다. 공격수로 기용된 월콧은 빠른 발을 이용해 전진한 뮌헨 수비수들을 괴롭혔다. 덕분에 아스날은 몇 차례 빠른 역습을 통해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었다. 이는 뮌헨의 전진을 견제하였고 당연히 아스날 수비가 받아야 할 압박의 강도를 떨어뜨릴 수 있었다.

(△ 역습을 이끄는 외질과 산체스, 그리고 뒷공간을 노리는 빠른 발의 월콧)
코클랭은 수비적 역할에 집중하였지만 같이 3선의 미드필더 라인을 형성한 램지와 카솔라는 수비와 함께 공격 기점으로의 역할을 담당했다. 공격적 재능 역시 갖췄고 기술이 있어 뮌헨의 압박을 견디고 공을 전방으로 연결하는 것이 가능했다. 수비 전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효과적인 역습 전술이 병행되어야 한다. 90분 내내 수비만 해선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카솔라는 전방으로 빠르게 공을 연결하는 공격 기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비록 눈에 띄진 않았지만 이번 승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바이에른 뮌헨은 평소와 비슷한 경기를 했다. 본디 과르디올라 감독은 자신의 축구 철학이 확고한 감독으로 전술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한 감독이다. 본인들의 전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을 것이고, 뮌헨이 이번 시즌 개막 후 계속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 역시 바이에른 뮌헨이 기존의 전술을 가지고 나선 이유가 될 수 있다. 뮌헨에 있어 이번 경기는 강팀과의 ‘평범한’ 경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스날에겐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의 탈락을 결정지을 중요한 경기였다. 이러한 간절함은 팀의 전술변화는 물론 선수 개개인의 헌신적인 움직임도 가능하게 했다. 강팀 간 경기 양상이 너무 팽팽해서 재미가 없는 경기도 종종 나온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양 팀의 수준 높은 축구는 물론, 선수들의 강한 정신력까지 엿볼 수 있는 경기였다. 때론 객관적 전력과 상관없이 승패가 갈린다는 축구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경기였다. 뮌헨에서 열릴 4차전에선 아스날에게 일격을 맞은 바이에른 뮌헨이 어떻게 설욕전에 나설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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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재밌네요.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