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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사랑 - 리아
초록이 유난히 아름다운 5월, 지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푸르름이 가득했다. 다름 아닌 미국 LA에 살고 있는 딸의 박사 학위 수여식 및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방문을 앞두고 있어서였다. 지인의 딸은 국내에서 여중을 졸업한 후, 조기 유학으로 미국 고등학교에 진학, 고등학교를 월등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대학, 대학원은 칼텍(Caltech)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 진학하여 전 학년 장학생으로 다닌 보기 드문 수재이다. 지인의 딸을 보면서 지난해 미국에서 4박 5일간 단체 여행 중에 일행인 부모님과 자녀들이 생각났던 건 그들과 삶의 방식이 달라서였다. LA에서 현지 여행사를 통해 4박 5일간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 여행을 할 때였는데 일행 50여 명이 대부분 가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가족 중에 한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인 초등학교 4학년, 5학년인 사촌간이고, 다른 한 가족은 회사원인 외동딸이 부모님과 함께 셋이 왔다. 할아버지는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LA 행 여객기에서 하필 내 뒷자리에 앉아서 복도 건너편 좌석에 앉은 할머니와 손주 두 명을 일일이 챙겨주시는데 어찌나 목소리가 쩡쩡하신 지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물론 어린 손주들에게 그때그때 하는 방식만 알려줄 뿐 본인들이 직접 하도록 각자 역할을 분담해 주셨다. LA 공항에 도착해서도 미국 입국심사를 앞두고 필요한 각자의 여권과 전자항공권, 이스타 여행허가서 등을 한 사람씩 복창하며 나눠주셨다. 핸드 캐리어도 각자 들도록 당부하셨다. 물건 살 때는 물론이고, 유니버설스튜디오 관람은 옵션으로 150불의 비싼 가격이지만 손주들에게 각자의 지갑에서 달러를 꺼내 지불하도록 했다. 나중에 보니 할아버지는 다리 한 쪽을 절룩이면서도 손주 둘을 돌보느라고 저녁에는 어깨가 내려앉는 듯 피곤함이 피부로 느껴졌다. 왜 아닐까, 젊은 부부도 아이 둘을 데리고 가족여행을 가면 몇 배로 힘든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내년에 다른 손주 16명을 데리고 세계 여행하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다.
반면 외동딸과 같이 온 가족은 엄마가 남편과 딸을 위해 온종일 동분서주 헌신을 했다. 뷔페식 식사를 할 때도 엄마는 연신 빈 접시에 음식을 날라서 우리가 식사를 다 할 즈음에야 자리에 앉아 식사했다. 4박 5일간의 여행이 끝나갈 즈음 엄마는 마침내 피로가 겹쳐선지 자리에 앉자마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나는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 “엄마가 남편과 딸을 위해 헌신하더니 지치셨네요”라고 했더니 남편이 씨익 웃더니 딸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상전을 모시고 다니잖아요.”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도 부모님의 사랑은 그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는 것 같다. 고사성어에 지독지애(舐犢之愛)라는 말이 있는데 어미 소가 송아지를 사랑하여 혀로 핥아 준다는 뜻으로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지극한 사랑을 비유하는 성어다. 애(愛) 자는 위쪽과 아래쪽이 사람의 손 모양으로 ‘두 손으로 마음을 전달해 준다’라는 의미에서 ‘마음으로 전해준다’라는 의미로 확대되어 ‘아끼다, 사랑하다’ 는 의미가 파생되었다고 한다. 하기는 애초에 사랑하는 연인이 사랑의 결실인 아이를 잉태하고 낳아 기를 때 얼마나 신비롭고 사랑스러울까, 이는 그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러니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지인도 모성애가 남달리 지극하다. 딸이 중학교에 다닐 때는 줄곧 학교 다니기 싫다고 말해서 아빠는 딸을 달래는 데 온 정성을 쏟아야 했다. “학교는 비단 공부만 하러 다니는 것은 아니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도 중요하고, 학교생활도 중요하고…” 그러나 딸은 계속 학교생활이 지루하다고 해서 하는 수없이 고등학교는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보내게 되었다. 아빠가 미국 유학 당시 낳은 딸이라서 미국 시민권자로 어렵지 않게 조기 유학을 갈 수 있었다. 다행히 딸은 미국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해서 지인은 2년 동안 체류할 예정으로 갔지만, 1학년을 마친 후 귀국할 수 있었다. 그 딸이 대학, 대학원도 칼텍(Caltech)에 진학하면서 전 장학생으로 지금껏 학비를 한 푼도 보내 준 적이 없다고 한다. 더욱이 대학원 학기 중에 같은 대학원 학생과 결혼하여 딸을 낳았는데, 공부와 육아를 병행하는 딸이 안쓰러워서 엄마가 키워준다고 해도 한사코 반대하며 자신들의 힘으로 아이를 기르는데 엄마는 그런 딸이 대견스러우면서도 한편 은근히 섭섭해하던 눈치였다. 그 딸은 학생임에도 부부가 합심해서 아이도 건강하고 이쁘게 잘 키우고, 학업 또한 충실히해서 박사 학위 수여 및 졸업을 한다니 대한민국의 장한 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자식에게 부모님은 생각만 해도 힘이 되는 존재인 것 같다. 무엇을 특별히 해주시지 않는다 해도 건강하게 살아 계시는 것만으로도 자식들은 행복을 느끼니까 말이다. ―『시에문학』여름호 (201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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